1권 일탈하는 군상 (44)
제 9장 다시 만난 구문룡과 노지심
이충(李忠)과 주통(周通)은 얻은 재물이 적지 않아 자못 신나게 산채로 돌아왔으나 기다리는 것은 뜻하지 아니한 사태였다.
남겨 둔 졸개들은 산채 기둥에 꽁꽁 묶여 있고 탁자 위에 있던 금은 그릇과 노지심(魯智深)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노지심은 어디 갔느냐?“
주통(周通)이 묶여 있던 졸개를 풀어 주며 물었다.
졸개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저희들을 때려눕힌 뒤 탁자 위의 금은 그릇을 모조리 쓸어 가버렸습니다."
"뭐라구? 그 민대가리 중놈이 정말 나쁜 놈이로구나! 이따위 분탕질을 쳐 놓고 그래 어디로 갔단 말이냐?"
주통(周通)이 그렇게 악을 쓰다가 난처해 있는 이충(李忠)을 충동질해 노지심을 찾아 나섰다.
산을 돌아 뒤쪽에 이르니 한군데 가파른 언덕 아래 수풀 무성한 곳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이 뒹군 자국이 보였다.
"그 머리 까진 노새 같은 놈이 알고 보니 진짜 도둑놈이었구나. 이렇게 험한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다니!"
대강 짐작을 한 주통(周通)이 분을 못 이겨 욕을 퍼부어 댔다.
낯이 없어진 이충(李忠)도 마침내 화를 내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 어서 따라가 그놈을 잡도록 하세. 그놈에게 한바탕 망신이라도 주잔 말이야."
그러나 한번 노지심에게 혼이 나 본 까닭인지 주통(周通)은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에이 그만둡시다. 이미 이곳을 벗어나 멀리 달아나 버린 도둑놈을 어떻게 따라간단 말이오?
또 용케 따라잡는다 해도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어디 있소? 만약 따라나섰다가 우리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하면 정말로 어려운 꼴을 당하게 됩니다.
이만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는 게 낫겠소. 차라리 방금 털어 온 수레나 몫을 나누고 속을 풉시다.
형님이 한몫, 내가 한몫, 그리고 저 애들이 한몫, 이렇게 하면 아무도 불평이 없을 게요."
주통(周通)이 그같이 말하며 이충을 잡았다.
이충(李忠)도 굳이 노지심을 뒤쫓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노지심을 산 위로 불러들인 게 자신이라 난처한 나머지 화난 체했을 뿐이었다.
"내가 그자를 산 위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자네가 그 많은 물건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네. 그러니 이번의 내 몫은 자네가 갖게.“
이충(李忠)이 풀 죽은 목소리로 받자 주통이 펄쩍 뛰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나와 형님은 함께 살고 함께 죽기로 하지 않았소? 하찮은 재물을 가지고 그렇게 옴니암니 따지면 내가 오히려 섭섭하우.“
그렇게 이충을 나무랐다.
이충(李忠)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아 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간 그들은 곧 졸개들을 이끌고 산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털어 온 재물을 나눈 뒤 노지심의 일은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무렵 도화산을 빠져나간 노지심(魯智深)은 방향도 없이 달아나기에 바빴다.
아침부터 한낮이 지나도록 달려 한 육십 리쯤 가니 못 견디게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겨우 걸음을 늦추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마을은 커녕 불 피울 만한 곳조차 없는 산골이었다.
'아침부터 줄곧 뛰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은 게 없으니 정말 죽겠구나. 자, 어디로 간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고 다만 멀리서 방울 소리와 목탁 소리 같은 것만 은은히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노지심(魯智深)은 반가워 소리쳤다.
"됐다. 이 근처 어디에 절 아니면 도관(道觀)이 있겠구나. 바람결에 처마의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니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봐야겠다."
그리고 곧 소리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언덕 몇 개를 지나니 큰 솔숲 하나가 나오고 그 사이로 산길이 한 갈래 보였다.
그 산길로 다시 한 반 리나 갔을까, 문득 노지심(魯智深)의 눈에 낡고 허물어져 가는 절이 한 채 들어왔다.
풍경 소리는 거기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노지심(魯智深)은 그곳이 절간인 게 한층 반가워 뛰듯이 산문으로 다가갔다.
산문에 걸린 붉은 편액에는 '와관지사(瓦官之寺)'란 네 글자가 금칠로 쓰여 있었다.
거기서 다시 한 사오십 걸음을 지나니 돌다리 하나가 나오고, 멀지 않은 곳에 손님 받는 집채가 보였다.
노지심(魯智深)은 얼른 그쪽으로 가 보았다.
실망스럽게도 대문은 없고 네 벽이 모두 헐어 내려앉은 게 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큰 사찰이 어떻게 이다지도 헐었을꼬?“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그 절의 주지가 거처함 직한 곳으로 가 보았다.
거기 또한 황폐하기는 앞서의 집채와 마찬가지였다.
땅바닥에는 제비 똥만 가득 쌓여 있고 문에 채워진 자물쇠에는 거미줄만 어지러이 쳐져 있었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래도 행여나 싶어 선장으로 땅바닥을 치며 큰 소리로 외쳐 보았다.
"객승 문안이오!"
그러나 한창 되풀이해 외쳐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방 쪽으로 가 보니 거기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아궁이에는 솥 하나 남아 있지 않고, 부뚜막도 허물어져 있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