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구직) 24-7, 농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고요한 침묵.
TV도 태블릿도 멈춘 방에서 에어컨 소리가 적막을 메운다.
진중한 분위기를 어색해하는 전성훈 씨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가 금세 바닥에 누울 것처럼 휘청휘청 몸을 움직인다.
가구 회의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다.
“에이, 성훈 씨. 이거 좀 봐요. 성훈 씨 일을 제가 돕는 건데 집중해 주셔야죠. 네? 맞죠? 맞죠?”
전성훈 씨가 머쓱한 얼굴로 한 걸음 가까이 와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고개를 돌려 웃으니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린다.
시야가 가려질 때까지 점점 가까워지는 손, 웃는 입, 따뜻한 손.
한결 자연스러워진 분위기 가운데 비장한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투둑투둑, 화면 속 키보드를 바라보는 네 개의 눈.
열심히 쓴다.
이런 순간마다 떠오르는 그 글이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비집고 앉는다.
“지금 전화 걸어 봅시다. 회원 모집한다는 현수막인데 여기 보면 회장님 번호 있죠?
제가 대신 걸어서 가입할 수 있는지 말씀드려 볼게요.
대신 보성 씨 일이니까 차에서 내리지 말고 통화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알겠죠?”
“네! 알겠다니까요, 정말.”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거창마라톤클럽 회장님 번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다름이 아니라 동호회에 가입하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건 이유와 보성 씨 상황과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가입하고 싶다는 목적은 분명히 알리되, 그 속에서 보성 씨를 ‘약자처럼’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다.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더라도 약자라는 이유로, 부탁하는 입장으로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보성 씨가 평범한 여느 회원과 같은 입장과 자격이기 바랐다.
실은 떨리는 마음에 회장님 듣기에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이보성, 여가(마라톤) 19-45, 거창마라톤클럽 가입 문의(2019년 5월 7일 화요일, 정진호)」 발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정진호라고 합니다.
박시현 소장님에게 연락처 전해 받아 메시지 드립니다.
월평빌라에 사는 입주자 전성훈 씨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
박시현 소장님 찾아뵙고 딸기탐탐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전성훈 씨는 1993년생, 올해 서른둘 청년입니다.
오래전에 클레오미용실과 요리하는남자에서 청소 일을 했습니다.
올해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궁리하다가 ‘꾸준히 나갈 수 있는 직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뜻에서 시작해 구직을 계획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대표님 찾아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전성훈 씨와 전성훈 씨를 돕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말씀 전합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살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월평빌라 사회사업가 정진호 올림.’
메시지 보내는 이유와 전성훈 씨 소개를 간단히 전했다.
일하고 싶다는 목적은 분명히 알리되, 그 과정에서 전성훈 씨를 ‘약자처럼’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농장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약자라는 이유로, 부탁하는 모양새로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전성훈 씨가 평범한 여느 직원과 같은 입장과 자격이기 바랐다.
오래 품어 온 뜻이라 대표님에게도 분명해 보였을 것이다.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은 밖에 나와 있어서 내일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대표님! 그럼요. 언제든 좋습니다. 내일 편하실 때 연락 주시면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8월 9일 금요일, 메시지
‘주일에 쉬시는 데 연락드렸죠? 내일 오전은 일이 있고, 오후에 통화 괜찮으실까요?’
‘좋습니다. 지금 메시지 확인하고 답장드립니다. 편하실 때 연락해 주시면 언제든 통화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8월 11일 일요일, 짧은 통화 후 메시지
대표님과 며칠 동안 짧은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에게 적절한 때를 맞추어 의논하려 시간을 살피고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 반가운 전화를 받았고 십여 분 남짓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구직을 희망하는 전성훈 씨를 소개했고, 대표님은 농장과 농장 일을 안내했다.
전성훈 씨를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답했다.
전성훈 씨 옆에서 전성훈 씨와 함께 전화 받았으니, 셋이 함께 통화했다.
무슨 전화인지, 어떤 일인지 잘 아는 전성훈 씨는
내 어깨에 고개와 턱을 번갈아 기대며 통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드문드문 웃었다.
휴대전화 너머 대표님 목소리가 사라지고 전성훈 씨와 방금 나눈 대화를 복기했다.
‘네에, 네에.’ 전성훈 씨가 대답했다.
우리가 시간을 정해서 알리기로 했고, 계획된 일정에 맞추어 오후 2시가 좋겠다고 의논했다.
면접 전, 마지막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제 실전인가? 아니지, 이미 실전이지. 처음부터 실전이 아니랄 건 아무것도 없었지.
‘대표님, 통화 후에 전성훈 씨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오후 2시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기쁜 마음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네, 2시에 농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농장 주소는 남상면 인평길 334-76입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2024년 8월 12일 월요일, 정진호
‘전성훈 씨는 통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본인 일이죠. 신아름
선생님의 기록에도 언급했듯이, 전성훈 씨 구직과 이보성 씨 마라톤 동아리 찾는 게 자꾸 겹칩니다. 하하. 그때도 ‘약자처럼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 듯! 그때나 지금이나 약자처럼 표현하지 않기가 쉽지 않았겠죠. 다만 짐작하기는, 5년 전보다는 덜 떨렸을 테고, 하는 말을 기억할 테며, 더 확신에 찼겠죠? 응원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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