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朴元淳, 1956년 3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제35대 서울특별시장이다. (민선 5대 시장)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법인 산하 고문변호사를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2006년 만해상과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저작권법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시민운동가로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변호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생애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재수하여 경기고등학교에 입학,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이던 1975년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하여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명당했다. 197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1985년 졸업하였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제 12기를 수료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였고, 이후 1983년 검사 업무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1986년 변호사로 번 돈을 바탕으로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을 주도하였다. 1992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국제법 학위(디플로마)를 취득하였다>
I. 학력논란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의 나경원은 2011년 10월 13일 100분 토론에서 "박 후보의 책 7권에 '서울대 법대 입학, 중퇴'라고 적혀있는데 학력위조 아니냐. 방송 인터뷰에서도 서울대 법대라고 하면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박원순이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박원순이 서울시장 후보 등록일인 10월 7일 출간한 저서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에서도 학력을 '서울대 법대 입학'으로 소개한 사실이 알려졌다. 박원순은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9호 선포이후 시위에 가담했다가 80여일 만인 1975년 5월 23일 학칙위반으로 제명(除名)되었다>
II.박원순 형제 병역 기피 논란
<박원순은 13세이던 1969년, 1941년에 실종된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피양자의 동의 없이 작은 할아버지 호적에 입적했다. 박원순의 형은 69년 당시 18세(만 17세)로 징집 편입 대상자였고, 박원순의 양손 입양으로 인해 '부선망 독자 방위복무 혜택'이 추가된 67년 개정된 병역법의 적용을 받았다. 이후 박원순도 아버지(자신을 양손입양한 작은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77년 6개월동안 방위로 군 복무를 마쳤다>
III. 딸의 법대 전과 논란
<박원순 딸은 2002년 서울대학교 미대 '동양화과'로 입학하여 3학년을 마친 후, 2006년 '법학과'로 전과하였다. 그동안 서울대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한 전례가 없었고, 박원순 딸의 전과가 첫 사례여서 특혜논란이 불거졌다. 2006년 서울대 전과 합격자는 총 41명이었는데, 이중 박원순 딸의 학점이 가장 낮았다. 특히 불합격자 중에는 박원순 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있었다>
IV. 아들의 병역 재검판정 논란
<박원순은 서울시장 후보 때 아들의 군복무 문제에 대해 "올해 모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8월 말 공군에 지원해 훈련소에 입소했으나 사흘 만에 귀가 조치했다"며 "고교 시절 축구 시합에서 부상 당한 후유증 때문으로 현재 모 대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10월 말에는 재검을 받고 다시 입대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후 박원순 아들은 2011년 11월 25일 재 입영 통지를 받았지만, 12월 9일 '수핵탈출증(허리 디스크)'으로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 받고 재검을 통해 현역 군복무 대신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는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박원순의 아들이 병무청에 제출한 자기공명영상(MRI)이 다른 사람의 것과 바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제출된 MRI사진은 등쪽 피하지방이 3cm 넘어서 고도비만환자의 MRI이므로 마른 체형인 박주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같은 의혹제기에 대해 박원순은 "(법적) 대응할 가치가 없다."라고 답했다>
V. 배우자의 인테리어 회사 논란
<박원순의 배우자 강난희가 세운 인테리어 회사 'P&P디자인'에 박원순이 이끈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 을 제기되었다. 박원순은 이에 대해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130여 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 단계에서만 10여개 정도 부인이 도와줬을 뿐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강난희의 회사가 실내건축공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등록 업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VI. 론스타 후원금 수수 논란
<박원순이 참여한 아름다운 재단이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 펀드로부터 5년간 총 7억 6천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것이 논란이 되었다. 2003년 12월 론스타는 정부가 실질적 대주주인 외환은행의 주식 50.5%를 주당 4,245원(총 1조3800억원)에 매입하며 경영권을 획득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에서 7년간 총 7조원이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측은 "아름다운재단이 론스타에서 기부금을 받은 것은 론스타를 비판해 왔던 시민사회의 일반적 시각과는 다른 것"이라며 "공인 중의 공인인 서울시장에 대한 국민의 도덕적 잣대는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VII. 대기업 사외이사 논란
<①박원순은 2004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으며 매년 7,000여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아울러 ②풀무원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받은 기부금도 당초 알려진 2억9천여만원이 아닌 12억4천여만원으로 추가 확인됐다. ₁상법(商法)은 기업과 이사 간에 거래가 있을 경우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했을 경우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원순은 포스코와 풀무원 홀딩스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참가한 표결 307회 가운데 단 1회를 빼고 모든 안건에서 찬성표를 던지며, 감시자로서의 역할은 커녕 도리어 재벌이 시키는 대로 거수기 역할만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₁개정 전 상법 제398조
VIII. 타요 버스 원조 논란
<서울시 버스노선에 투입되어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타요 버스를 두고 여·야 간에 저작권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새누리당이 타요 버스 원조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라고 주장하자 박원순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먼저 응용하는게 장땡"이라며 발끈하며 나섰다. 박원순은 2014년 4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쌩쌩 잘나가는 타요 버스, 여야 때아닌 원조 논란" 이라는 한 종편방송 기사를 링크한 뒤 "누가 만들었든 먼저 응용하면 장땡 아닌가요??" 라며 다소 발끈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IX. 친북·반국가 논란
<2010년 3월 12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보수 정치단체는 친북·반국가 행위 인사 5000명 중 1차로 100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 이 명단에는 박원순이 포함됐다. 국가정상화추진위회는 북한 당국의 노선인 '주체사상', '선군노선', '연방제 통일'을 지지·선전한 행위(친북행위)와 헌법질서를 부정하고 국가변란을 선동한 경우(반국가행위) 등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상은 위키백과에서 올린 논란만을 요약했다.
박원순은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1월12일 참여연대와 환경연합 등 420여개 시민단체와 함께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총선연대)를 구성, 단체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 낙선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노골적인 불법 운동인 줄 잘 알면서도 김대중 정권을 믿고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낙선운동이라는 기상천외하고 비열한 운동을 전개하여 톡톡한 효과를 보았지만 민주화투쟁으로 인정했을 당시 정부이기에 역시 처벌 받지 않았다. 그래서 좌익들이 인간 대우를 못 받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며 문익환을 비롯한 공안사범들을 변호하였다. 아름다운 가게나 희망제작소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비 노조 기업을 협박하고 기부금을 받았지만 정작 아름다운재단에는 노조가 없다. 불합리의 표상인 그가 아름다운지 재단이 아름다운지 이명박은 시장 봉급을 다 갖다 바치고 포철의 박태준도 아현동 자택을 팔아 10억을 기부했다. 그가 협박에 능한 것인지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앞 다투어 아름다운재단에 헌납하였다는 사실이다.
박원순은 명실공히 이 나라 기부계를 장악했던 좌익계의 숨은 사자왕이다. 누구라도 그가 빼어드는 청룡은월도 앞에선 추풍낙엽이었다. 지금 그는 서울시장을 한 번 더 지내면서 정세를 관망하려는 자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때가 올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인물이다. 깡통좌익 안철수와는 격이 다르다. 지난 선거에서 나경원 네거티브로 기선을 잡았던 그가 이번 선거에서 “누구든 네거티브로 나를 음해하는 자는 법적으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적반하장이다.
승리의 여신은 언제나 박원순을 돕는 것인지 언뜻 보기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는 가히 철옹성이다. 각 분야에서 박원순을 돕는 인간이 진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주위 반경 10m만 접근하여도 들고 있는 총구가 녹아버리는 느낌이다. 정몽준은 박원순의 처를 꺼집어내어 나경원이 원수 갚으려 하지 말고 재벌 정몽준만이 할 수 있는 공약을 서울시민에 심어주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선거기간에 백팩을 등에 메고 서울 시내를 싸돌아다니는 연극배우 박원순에게 그런 방법은 녹 쓴 칼이다.
2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 텁수룩한 수염의 노숙자 모습으로 쭈빗쭈빗 나타나 얼굴 알리기 포석만 깔려고 했던 박원순의 지지율은 제로에 더 가까웠지만 대통령자리에 급급한 안철수가 빠지면서 사랑의 편지로 그를 밀대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좌익시민이 몰표를 주게 된다. 조상의 공덕으로 복을 타고난 그는 안철수의 기를 받아 지지율이 급반등하며 졸지에 서울시장이 되었던 것이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편지는 대박’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권 후 서울의 발전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예들이 수도관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온다. 단언컨대 좌익은 절대 나라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민주화가 본질이기에 산업화에는 체질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건설과 경제보다는 복지 정책에 힘을 더 쏟고 문화제나 축제를 하나라도 더 개최한다. 소위 말하면 우익이 심어 논 나무의 열매를 따서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정책으로 선심을 베푸는 것이 좌익이다.
쑈맨쉽이 강한 박원순은 논밭을 일구어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을 지향하는 무능하면서도 여우같은 관료이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또한 우리의 수준이다. 그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웃음 터지는 짓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사람이다. 천정에 닿을 만큼 산더미 같은 서류를 책상 위에 줄줄이 쌓아 놓고 그 속에 파묻혀 업무에 열중하는 모습을 찍어 화보로 만들어 흘렸다. 하버드대 도서관 1200만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뻥카 박원순이 다운 모습이다. 그는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는 김일성이나 세살에 총을 쏘고 다섯 살에 운전했다는 김정은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젊은 서울시민이 생각하는 박원순 시장상은 언제나 우물거리며 말을 하는 것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하게만 보이는 서민 시장!! 사무실에선 서류더미 속에, 밖에서는 수수하게 백팩을 메고 시정을 살피는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친환경적인 사람, 한시도 쉬지 않고 서울을 위하여 분골쇄신하는 시장이라 각인되었다. 서울의 젊은이들에겐 멋지고 믿음직한 그가 새누리당의 웰빙 정치모리배와는 너무나 격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박원순은 제대로 일 하지 않는다해도 그 지지율만 가지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바탕을 깔아 놓았다. 민도가 낮은 나라이기에 그는 이미 거물이 된 것이다. 정몽준은 박원순의 철 지난 색깔론이라는 말 때문인지 박원순이 걸어 온 수많은 반국가적 행보와 이념에 대해 거론도 공략도 하지 않는다. 귀족 농사를 하는 박원순에게 농약급식을 쟁점으로 피나는 투쟁을 하고 있지만 상대하기가 몹시 벅찰 것이다. 까도까도 양파 껍질 같은 박원순의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먹구름이 점점 짙게 드리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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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한 민국은.. 좌파는 물론이고... 보수 우파도... 국가 정체성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충심이 없습니다.. 거저 척할뿐... 국민들을 기롱하는데에는... 보수 개누리도 마찬가지일뿐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 여기 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지경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