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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사람들의 끈적한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나
지친 영혼이 외롭게 느껴질 때
궁색한 인생에 흔들릴 때
사람들은 바다를 가슴에 품는다.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지독한 고독에 몸부림치면
고향을 향해 고개 돌리 듯, 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바다를 갈망한다.
그래서 늘 그리운 바다.
잔잔한 물결이 그립고, 청자 빛 바다에 짙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햇살에 윤슬이 반짝일 때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신기가 있다.
내게 남해는 그런 곳이다.
아픔의 과거와 희망의 미래가 함께 담겨있는 곳.
우리에게 던지는 즐거운 메시지가 가득한 곳이 바로 남해이다.
또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호령과 함께 애틋한 사연이 있는 노량진 바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에 호국의 기틀이 담겨 흐르고,
서포 김만중의 애절한 슬픔을 담아내는 벽련마을과 노도가 그렇게 부르고 있다.
팔만대장경 판각의 역사는 침략자들의 망령 앞에
불심으로 화 하려는 순한 마음의 성정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렇게 간절히 기원하는 우리 민족 아름다운 시점의 서정이다.
가천 다랭이 마을의 악착같은 삶의 영위 속에서
질긴 민초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층층마다 쌓여있다.
이곳이 바로 남해군이다.
*
사람들.......
그렇게 그리워하며 남해로 향하는 길에는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묘한 흥분이 있다.
반가운 사람들과의 해후.
지금까지 열두 번째 남해길 마다 늘 새로운 반가움이 묻어있었다.
남해에 사는 벗 김성철 아우님, 바로 우리방의 백우님이다.
남해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반열에 올린 인물 중 한 명이다.
여전히 망운산 만 한 뱃살은 지칠 줄 모르지만 술 빨만큼 말 빨도 대단한 인물이며,
뱃살만큼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그의 지식은 머리에 있지 않고 배 속에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는 그의 지식을 존경한다.
그리고 푸짐한 점심상 앞에서 악수를 청하는 분
바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시인 고두현님이다.
생각보다 젊고 밝은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어떻게 하여 그리 아름다운 감성을 지니고 있을까?
‘남자가 말이지...’ 내 꼴에 질투 아닌 질투를 하곤 한다.
이어 도착한 분, 대전 사시는 안병기 성.
칼날 같은 글들로 정평이 나 있지만 만나서 이야기 하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철학이요, 문학이다.
그 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씩 메모하곤 한다.
또한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분이다.
“글이란 이런 것이여~”하듯 내게 길잡이가 되신 분이다.
그는 꾸불꾸불한 전라도 인간, 나는 꺾어진 경상도 인간이다.
뒤 이어 만난 임병기 성. 바로 선과님이다.
이분은 내게 답사의 맛을 알려준 분이다.
발라당 까진 감성만 가지고 돌아댕기는 내게
“진정한 답사란 말이야” 하듯 역사와 접목된 시각,
인물과 접목시키는 시각과 불교와 풍수의 유연한 접목을 시도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더 많이 돌아댕기는 유일(?)한 분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늘 부럽다. 시각이 부럽고, 그의 여유가 부럽고, 그의 지식이 부럽다.
그러나 제일 부러운 것은 우리의 것을 사랑하는 깊이이다.
때문에 언제나 이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줄줄 엮어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도 버릴게 없는 진국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두 분 다 이름이 “병기” 무섭다. 인간병기들이.
그리고 처음 뵙는 분들.......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은 곧 자연과의 만남과 비슷한 흥분과 설래임을 준다.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따듯하다.
그래서 행복한 공간과 시간이 된다.
그렇게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다시 길을 떠난다.
*
상주바다.......
넓은 태평양을 담고 있으면서도 호수처럼 잔잔한 상주바다.
이곳은 넓은 백사장 모래알만큼 사람들이 사연을 담은 곳이다.
저 멀리 바다가 생긴 이래 수많은 사연을 여기서 엮었으며 풀어갔을 것이다.
바다는 사람을 정화시키거나 달래주는 것만 아니다.
아픈 사연을 품은 사람은 더 아파하게 만들기도 하고
즐거운 사람은 더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고독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바다는 술이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마시는 술은 늘어나는 빈 병만큼 더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바라보는 바다는 더 외롭다.
바라보며 생각하는 그 시간만큼 비례한다.
바다에는 미치도록 주체할 수 없는 자유도 있다.
그래서 바다에 혼을 잠시 맡겨 두고 놀기를 자처한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것을 거부한다.
깔깔 웃는 웃음 뒤에 숨어있는 슬픔을 느꺼 본 사람은 다 안다.
가슴 한편에서 아련한 아픔이 밀려오는 삶의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무게를 내려놓고 가라고 하지만 더 많은 생각과 짐을 지워준다.
부서지는 포말도 없는 상주의 바다는 그런 나를 비웃는다.
그래서 돌아서는 내가 부끄럽다.
갈증이 올라와 술이 간절해진다.
*
김명인 시인
詩와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작은 음악회.......
물미 해안도로를 따라 시선을 빼앗긴다.
단순히 풍경을 눈으로만 즐기려 하지 말고
가끔은 아픔의 눈으로 보기를 권하는 임병기 성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질긴 물질 한 번에 삶의 질곡처럼 얼굴에 주름 잡히고
작은 논배미, 지친 노동에 허리 펴고 하늘을 올려보다
가슴앓이는 그저 내 대에서 끝내주길 바랐을 것이며,
다음 세상에 대한 소망을 담고, 희망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서서히 태양이 기울어지는 시간.
물건방조어부림,
바람과 파도에 깎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
모르긴 해도 비보(裨補)의 성격도 있었을 것이다.
고두현 시인
그 앞 몽돌 바다에는 우리를 위한 작은 축제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바닷가 피아노 두 대와 작은 무대.
뒤 이어 펼쳐지는 시인들과의 만남.
시인 김명인, 김영남, 하응백님
고두현 시인의 시낭송과 김명인 시인의 낭송이 바다 바람에 실려 오고
어둠이 내리는 솔밭에도 잔잔히 울린다.
나는 시인을 존경한다.
시란 읽어내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시를 쓴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좁은 가슴에 모두 담아내기란 용량이 부족한 관계로 숙연하게 고개만 숙인다.
박초연님의 춤사위 “여심”
아름다운 표정에 말려 올라가는 손끝이 가냘프다.
사뿐사뿐 버선코에 여인의 마음을 담아내는 가녀린 아름다움이 있다.
그녀의 몸짓 하나에 오동지 섣달 사랑을 기다리는 황진이 마음이요,
오매불망 서울로 떠난 낭군님 기다리는 정절 여인 춘향이 마음이렸다.
손짓 하나, 사뿐한 춤사위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바다에는 여기저기 호기심 많은 숭어가 튀어 오른다.
예쁜 두 분의 피아노 연주.
초가을 해질 녘,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바다에 잔잔히 퍼진다.
맑은 소리, 펴지다 모아지고 가늘어 지는가 싶더니 내 속으로 파고든다.
내 장똘뱅이의 귀가 호사를 하는 순간이다.
세 번째, 현악 4중주.
미천한 나의 십팔번 “떠나가는 배”
일제강점기 때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로 알려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 연주가 이어졌다.
함몰, 하늘과 바다와 선율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언제 내가 이런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숭어가 뛰며 만들어 내는 파문을 보았다.
시각과 청각과 내 발라당 까지 감수성이 슬픈 감성을 만들어 낸다.
내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대금연주, “천년학”
그리고 이우학씨의 통기타 반주에 “섬소년” “바위섬”
누구랄 것도 없이 조용한 바닷가에 합창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어간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해가지고 별이 뜨는 순간에 앞에 서고 싶었다던
정현태 남해군수의 시 암송.
윤동주의 “별 혜는 밤”
나는 과연 몇 편의 시를 외우고 있을까.
그것도 진정으로 시인의 감성을 담아내며 읊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누님을 생각하며 시를 낭송하는 군수님의 눈이 충렬 됐다.
내 머리통을 쥐어박던 내 누님이 보고 싶어 졌다.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정현태 남해 군수님
더불어 남해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마지막엔 늘 아쉬움을 준다.
연주가 끝난 뒤의 텅 빈 객석에 벌써 어둠이 내려있다.
우리는 맛있는 회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텅 빈 속을 채운다.
그러나 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두 병기 성들, 시인 고두현님, 남해 벗 김성철 인생의 고수들인 이들과 나
그렇게 다섯이서 자리를 옮겨 밤이 깊도록 소주잔 기울였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에 취했다.
그 속에는 철학도 있었고, 세상사 흥청망청도 있었지만
가장 깊게 다가오는 것은 살가운 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들이 가진 지식 훔치기를 즐겨한다.
밤새 실컷 훔치며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불어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신 탓인가, 즐거운 대화 탓인가.
서로 구겨서 잠이 들었지만 아침이 가볍다.
밝게 떠 오른 아침 햇살에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
가천 다랭이 마을.......
매번 찾을 때 마다 또 다른 감정을 안겨주는 곳이다.
사실 나는 이곳이 그리워 남해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룩으로 빚은 할매막걸리가 그리운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남자의 기를 상하게 만드는 좆바위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일백 팔층 층층마다 저며든 사연들이 그리운 것이다.
백팔번뇌 잊으라고 일백 팔층을 올렸을까.
곧추선 논배미에 허리 펴고 바다를 보았을 민초들의 서러운 사연들이
골골이 베여있고, 희망이 담겨있고, 땀방울이 이곳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저 멀리 한 점 되어 돌아오는 배에 깃발을 보며 한 숨을 놓았을 것이며
환한 얼굴의 서방님 모습이 반가웠을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에 지친 누운 좁은 방에
호롱불 밝혀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도란도란 소망을 꿈꾸며 그렇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
용문사.......
용문사는 천년고찰이다.
호구산 용문사 대웅전은 바로 반야용선이다.
반야, 즉 지혜를 일컫는 말이지만 차안의 세상에서 피안의 세상으로 가는 배를
호위하며 이끄는 것이 용이다. 해서 반야용선이라 부른다.
용문사 대웅전 공포에 두 마리의 용이 이끌고 있다.
대웅전이 바로 배, 즉 용선이다.
그 속에 부처님 세상을 표현 해 놓았다.
사방에 꽃비가 내리고, 극락조가 춤을 춘다.
아는가, 우리가 죽어서 타고 가는 상여가 바로 반야용선인 것을.
여기 용문사에는 색다른 것이 또 있다.
부처님 세상을 사방에서 호위하는 사천왕 발아래
우리의 사악한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은 악귀가 아닌
탐관오리나 양반을 밟고 있다.
저항의식에서 나온 반려이나 그만큼 당해온 기억이 커다는 사실도 된다.
그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못 견뎠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사실 부도밭을 더 좋아한다.
해남 미황사 부도밭과 이곳 용문사 부도밭을 꼽는다.
이름 모른 고승들의 무덤을 왜 좋아할까.
여전히 의문이지만 굳이 따져 보자면
적막한 가운데서 선을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대화,
주차장에서 잠시 넋을 놓고 대화를 동냥하고 있을 때
유려한 화술로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신 분
바로 대하소설 [삼한지]를 쓴 소설가 김정산님의 맑은 모습이 오래 기억 된다.
*
용문사를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원시어업 죽방렴에서 점심으로 멸치 쌈을 먹었다.
허전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또 다음을 약속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사치의 허물을 벗고 일터로, 붙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시간이다.
하루, 반성도 있고, 지혜를 담아내기도 했다.
열세 번째 남해 길에는 또 다른 추억이 만들어 지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돌아서 온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초시님요~~~오랜만이니더~~~
아~~~~~~ 이 꺼져가는 가을날 한 편의 흔적에 취해~~ 사람에 취해~~ 참 부럽습니다... 잘 계시지요^^*
아~~~~~~ 이 꺼져가는 가을날 한 편의 흔적에 취해~~ 사람에 취해~~ 참 부럽습니다... 잘 계시지요^^*
아~!! 남해의 반가운 소식이네요..... 남해팸투어때가 몇년전인가????... 선상에서의 시낭송도 있었고....까맣게 잊고있었던 그리운 소식에 감사~~~~ ^^*
다들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풍경입니다. 대구에서 먹었던 육회가 생각납니다. 날이 꾸물거려서 그럱디
저짝에는 진작 올라 왔던 글...초시 햄 글은 이제 올라 왔네...잘 지내시죠?
언젠가 처음 들었던 노래가 절절히 슬프게 다가왔었는데 훗날 알고보니 제목이 사의찬미더군요. 남해의 여정이 예술과 함께하니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
미조도 다녀가지 그랬수~~! 잘지내는겨? 궁금하넹....
^_^
좋은 마음으로 다녀 갑니다~~~~~~~~~~~**&&^^*
저의 고향이 기분좋게 묘사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아는 친구가 실명으로 나와 더욱 반갑네요.덕분에 고향을 한번 다녀온 기분입니다.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