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9, 우렁각시가 다녀갔네요
모든 일에 처음이 있다.
적어도 그 일을 마주하는 나에게는 그렇다.
전성훈 씨 출근을 돕는다.
전담 지원하는 입주자의 출근을 돕는 건 나에게 처음이다.
지난 사회사업의 첫 순간들을 돌아본다.
처음인 일이 오랜만인 것 같다.
신입 사회사업가이던 시절, 처음 시작하는 과업으로 동호회 활동을 도왔을 때의 감상을 되돌아본다.
그때 새 과업의 시작을 연다는 게, 그 일을 돕는다는 게 어찌나 가슴 벅찬 경험이었던가?
5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가슴 뛰는 일을 한다는 게 기쁘고, 그렇게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
전성훈 씨 첫 출근을 돕는 손이 많다.
전날 외출해 사 온 모자와 선크림을 꺼내 들고 준비하려는데
주위에 있던 동료 몇 사람이 전성훈 씨 옆에 붙어 돕는다.
지그시 눈을 감고 얼굴을 맡기는 전성훈 씨가 연예인 같다.
주인공 같아 보인다.
응원을 등에 업고 집을 나서는 전성훈 씨가 듬직해 보인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기대의 무게가 그 사람을 살린다고 믿는다.
오늘 전성훈 씨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기대가 그를 서른하나 청년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시설도 약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청년과 직장이 오늘을 압도한다.
어제 면접에서 김혜진 대표님이 전성훈 씨에게
‘당분간 놀러 오듯 편할 때 와서 구경하다 가면 좋겠다.’고 권했다.
부담 없이 딸기탐탐을 알고, 공간을 익숙하게 느끼면 좋겠다는 대표님 뜻에 감사했다.
이런 곳, 이런 분을 알게 된 일이 전성훈 씨에게 복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사회사업 연구의 열쇠 말로 삼’는다고 했는데,
딸기탐탐이 전성훈 씨 직장 복지를 이루는 일에 비옥한 땅처럼 느껴졌다.
2) 열쇠 말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연구의 열쇠 말로 삼습니다.
사회사업 온갖 이론과 실무를 대개 이로써 풀어냅니다.
열쇠 말은 사회사업 온갖 이론과 실무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이고
그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벼리입니다.
열쇠 말이 있으면 이야기를 좀 쉽게 풀어낼 수 있고
이야기들 간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복지요결은 이런 열쇠 말을 사회사업의 핵심 요소에서 찾습니다.
요소 : 사물의 성립이나 효력 발생 따위에 꼭 필요한 성분 또는 근본 조건, 국어사전
농사에서 씨앗과 땅이 그러하듯
사람과 사회는 사회사업의 성립과 효력 발생에 꼭 필요한 성분이고 근본 조건입니다.
이러므로 사람과 사회를 사회사업의 핵심 요소로 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과 사회가 사회사업에서는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구체화합니다.
이러므로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사회사업 연구의 열쇠 말로 삼습니다.
복지요결의 온갖 주제가 이로써 일관되게 잘 풀립니다.
『복지요결』 ‘머리말, 4. 연구 방법, 2) 열쇠 말’ 발췌
“대표님, 고맙습니다. 왔을 때 구경만 하고 가면 심심하니까 작은 일이라도 성훈 씨가 도울 수 있을까요?
어떤 일이든 좋습니다. 가능하면 시간도 같은 때 맞춰 오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바구니가 있는데 씻어 줄래요? 저기 앞에 내놓고 갈게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무리하지 말고요.”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대표님 말씀에 감사했다.
전성훈 씨가 이곳을 좋게 여겼으면 한다는 뜻과 더불어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배려가 동시에 담겨 있는 말이라고 여겼다.
딸기탐탐에 도착했다.
하루 사이인데 어제는 면접, 오늘은 출근이다.
달라진 전성훈 씨 복장이 달라진 어제와 오늘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농장에서 키우는 하얀 개 마루와 인사했다.
아직 전성훈 씨는 낯설어하는 것 같다.
순해 보이는데 금세 친해질 수 있겠지.
대표님이 놓아둔다는 곳에 쌓인 플라스틱 바구니가 보인다.
농장 어디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언뜻 보아 대표님 계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이곳을 잘 모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알려 주신 대로 일부터 하기로 한다.
사용 후 흙이 묻은 바구니가 쌓여 있다.
수돗가로 옮긴다.
솔과 수세미로 바구니를 문질러 닦는다.
씻은 바구니가 넘어지지 않을 만큼 쌓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을 돕는 나 스스로 이 일이 누구의 일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처음이니 더욱 그랬다.
일을 잘해도 내가 대신해 버리면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와서 시간 들이는 데 무슨 소용이 있나?
마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내 앞의 다른 일이 없지 않다.
그만큼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했다.
전성훈 씨가 일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더라도 금세 흥미를 잃으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했다.
미리 품은 고민 속 전성훈 씨와 실제는 달랐다.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나?
전성훈 씨를 아는 누구라도 데려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성훈 씨가 열심히 일했다.
방법이 서투르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하려고 했다.
오늘 있었던 일 가운데 가장 기쁜 건 그런 전성훈 씨를 발견한 것이었다.
여기가 어떤 곳이고, 왜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같았다.
감당하려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모르겠나, 직접 준비하고 본 면접이었다.
처음에는 바구니를 가져다 닦고 쌓는 것까지 하나를 씻는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일했다.
Quality Control, QC라고 하던가?
그렇게 하니 다 닦았다고 내놓은 바구니 청소 상태가 들쑥날쑥했다.
성급하게 하느라 내가 못 본 부분이 있고, 정성 들여 닦느라 전성훈 씨가 오래 지체하는 구간이 있었다.
학원이 아니라 직장이라면, 전성훈 씨가 직장인으로 보이고 그렇게 여겨 주기 바란다면,
그만큼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표님의 ‘할 수 있는 만큼’은 그 후에 딸기탐탐에서 고려해 주는 것에 감사할 일이지
전성훈 씨가 일하기 전에 이유로 삼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황을 통제하자’던 말을 떠올렸다.
상황이 달라지면 일을 더욱 매끄럽게 도모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통제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 상황을 통제하자, 어디 냉장고뿐이겠습니까?
식사, 요리, 샤워, 청소, 세탁의 주인으로 세웁시다.
「월평빌라 웹사이트, 월평 연구방 453번 글, ‘상황을 통제하자(2020년 3월 5일 목요일, 월평)’」 발췌
“성훈 씨, 우리 나눠서 해 볼까요? 한 번에 끝까지 하려니까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요.
보니까 흙덩어리 털고 씻는 건 제가 빠른 것 같고, 안 닦인 부분 꼼꼼하게 보는 건 성훈 씨가 잘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먼저 바구니를 담가서 물 칠하고 씻을게요.
그다음에 성훈 씨한테 드리면 마무리해서 다 씻은 바구니 쌓아 주실래요?”
“네에, 네에.”
과연 괜찮은 제안이었다.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전성훈 씨도 나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 하게 되었다.
목표한 시간에 목표한 만큼 일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대표님을 찾았으나 어디 계시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하며 찍은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전성훈 씨가 사진을 골랐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성훈 씨 10시 조금 넘어서 왔다가 바구니 씻고 이제 가 보겠습니다.
성훈 씨가 기대보다 열심히 해서 놀랐고 반가웠습니다. 귀한 기회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말씀드린 출장이 있어서 20일 화요일에 오겠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또 뵙겠습니다.’
‘우렁각시가 다녀갔네요. 육묘장에 있다 보니 미처 못 봤네요.
열심히 했다는 건 저희 농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적응 잘해서 함께할 수 있기를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성훈 씨 첫 출근 잘 다녀왔습니다. 어제 김혜진 대표님이 일러 주신 대로 쌓여 있던 바구니 씻었습니다.
막막해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열심히 해서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소식 나눕니다.’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
전성훈 씨가 잘 보일 수 있는 일이라면 마음껏 알리고 싶다.
내 일을 충실히 한다는 느낌이 드는 일이라면 원 없이 해 보고 싶다.
오늘이 꼭 그랬다.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정진호
성훈 씨가 할 수 있는 일 찾아 주신 사장님, 고맙습니다. 첫 출근 축하드립니다. 신아름
첫 출근, 축하해요. 성훈 씨의 다른 모습을 볼 정도로 성훈 씨가 ‘서투르고 느렸지만’ 아주 잘 감당했다니 감사합니다. ‘여기가 어떤 곳이고, 왜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같’은 성훈 씨를 보며, 선생님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살피며 목도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보여요. 감사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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