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은 대전후반 영국군이 사용한 아쳐(Archer) 대전차 자주포. 보병전차 발렌타인의 차대를 전용하여 17파운드포를 얹은 자주폽니다. 언뜻 보기엔 꽤나 정상적(?)으로 생겼는데, 저 물건, 오른쪽이 앞이에요. (.....)
2차대전 기간 내내 독일군은 화포의 관통력에서 연합군을 압도해왔으나, 대전 후반에 이르러서는 연합군의 각국들도 독일포에 대응할만한 물건을 내놓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군의 M3 90mm, 소련의 D-10 100mm, 그리고 영국의 17파운드(76mm)가 있죠.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전쟁에 공헌한 측면에서 독일의 L/70 75mm나 88mm 패밀리를 따라가지 못했는데, 거기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는 17파운드포에 대해서만 짤막하게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17파운드포는 관통력에서는 엄청난 물건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통상의 철갑탄(AP 및 APC)을 사용할 경우에도 독일의 75mm L/70(판터)나 88mm L/56(티거)보다 근소하게 우세했으며, 전용 강화탄인 APDS(장탄통분리식 철갑탄)을 사용했을 때는 1000m에서 수직장갑 200mm 이상을 꿰뚫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셔먼의 75mm와 비슷한 수준인 6파운드포를 중(重)전차(처칠)나 차기 주력전차(크롬웰)에 달아보려고 끙끙대던 영국에게 17파운드포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상의 복음이나 다름없었죠. (...)
확실히 당시까지의 영국의 대전차화기체계에서 '이질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오버파워된 물건이었기에 영국육군은 이것을 주포로 탑재한 전차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삽질을 거듭하게 됩니다만... 이것은 그 유명한 첼린저(포탑 전면장갑 20mm)나 블랙 프린스(처칠에 한번 달아보고 끝. 실전기록 전무)를 만들어낸 대전 중 영국 전차개발사의 암울한 연장선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 그나마 17파운드포를 달고도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분류되는 차량들은 파이어 플라이, 아킬레스 등 미국이 랜드리스로 공여한 차량에 반(半) 개조를 시도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죠. (짤방의 아쳐를 보세요. 메이드인브리튼에 달면 숫제 저런 물건이 나오곤 했습니다 orz;;)
어찌됐든 부랴부랴 17파운드포를 양산하기 시작한 영국은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 직전까지 대전차포 및 자주화차량 탑재형식을 합쳐 상당한 물량의 17파운드포를 확보하게 되고, 프랑스에서 독일군 기갑부대를 박살낼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전에 대량 투입하고 보니 전과는 예상 밖으로 상당히 신통치 않았습니다. 관통력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 포, 아무리 쏴도 안맞아요. (...) 독일제 포들은 10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백발백중의 귀신같은 명중탄을 내는데, 이쪽은 위력은 발군인데 도무지 맞질 않으니, 심지어 "싸우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6파운드포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일선부대의 요구까지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ㅅ-;
그런데 사실 이런 17파운드포의 낮은 명중률은 이미 노르망디 상륙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1943년에 있었던 일련의 관통력/명중률 실험에서 영국육군이 얻은 17파운드포의 탄종 당 명중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드(미터) - 명중률 퍼센티지
AP/APC
400(365.7) - 90.5
600(548.4) - 73.0
800(731.5) - 57.3
1000(914.4) - 45.3
1500(1371.6) - 25.4
APDS
400(365.7) - 56.6
600(548.4) - 34.2
800(731.5) - 21.9
1000(914.4) - 14.9
1500(1371.6) - 7.1 (....)
실전에서는 거의 나올 일이 없는 근거리에서는 나름 괜찮은 명중률을 보여주다가, 정작 표준 전투유효거리인 1000미터를 전후해서는 바닥을 기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75mm급 이상의 독일제 포가 1000m 내외에서도 90% 이상의 명중률과 집탄률을 보여주는 괴력을 과시했음을 감안하면 실전에서 상당한 디스어드벤티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탄체가 가벼워서 원거리의 안정적인 궤적 확보가 어려운 APDS의 명중률은 말 그대로 한심한 수준이어서, 일선부대들의 경우 대놓고 사용을 거부했다는 일화도 전해내려올 정도의 물건이었죠. (...)
뭐, 그 결과는 보다시피... 굉장한 관통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살린 장거리 저격은 꿈도 못꾸고, 안정적인 명중률 확보를 위해 제 발로 표범과 호랑이 가까이로 다가가야만 하는 맹수 사냥꾼의 심정... 이라고 하면 적절할까요. -ㅅ-;; 물론 독일제 화포에 맞먹는 위력으로 당시 영국육군의 전체적인 화력을 한단계 끌어올린 물건으로도 평가받고 있지만, 그 극악스런 명중률은17파운드 옹호론자들조차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명중률 문제에 관련해 일선부대들의 불만이 심해지자, 영국육군은 결국 나중에 17파운드포의 표준 교전거리를 900야드(약 800m)로 공식 지정하기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
P.S. - 그렇다면 17파운드포의 명중률은 왜 이리도 유난히 낮았을까요? 100%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포의 구조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7파운드포의 약실 크기는 동급인 독일제 L/70 75mm보다 약 15 ~ 20% 작은 편이지만, 포탄 발사 시의 약실 내 압력은 오히려 15% 이상 더 높습니다. 즉 자기 덩치에 걸맞지 않는 과도하게 강한 힘으로 포탄을 쏘아보낸다는 소리지요. 이 과정에서 포 전체에 충격이 크게 전달되고, 그 충격으로부터 포신이 안정되기까지의 텀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적의 장갑을 파괴할만한 충분한 관통력을 뽑아내면서도 명중률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제 위치로 안정되는 포는 당시 기준으로 독일 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보는게 편하죠.
첫댓글 스크루루루룰 Down
읽는게 귀찮습니다... 고3병 아직 안나았습니다...
처음 2줄만 읽으라능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