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소재 중에 ‘총’도 들어갑니다. 그 유명한 ‘총 균 쇠’라는 책이 있습니다. 총이야말로 세상을 뒤집은 것 중 하나입니다. 그것으로 조선이 일본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잘 아는 대로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고 총기사고가 발생해도 총기 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기저기서 매일 총 맞아 쓰러지고 있어도 결코 해결하지 못하리라 짐작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총으로 세운 나라가 총으로 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경찰이 아무리 지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뒷북이나 치는 것입니다. 미리 찾아서 예방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을 해하는데 이처럼 쉽고 간단한 도구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뿐만이 아니지요. 아무튼 총으로 살인의 행위가 더욱 쉬워진 듯합니다. 그러므로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규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히 미국의 경우 개인의 안전을 위해서 오히려 개방을 했습니다. 물론 처음 나라가 세워질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회질서가 확실하게 자리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개척해나가야 하는 때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전쟁도 해야 하고 땅도 차지해야 하고 남북전쟁도 치러야 하고 등등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되는 역사 속에서 총기류는 일반 개인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서부활극에서나 볼 수 있는 ‘결투’는 대표적인 총기 휴대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각자 알아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잘 아는 대로 자유로운 총기 휴대는 사회질서를 잡아주는 쪽보다는 개인의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총기류 사업이 대단한 경제력을 구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더구나 정치권력까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규제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부개척시대를 지났음에도 총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고 더불어 총소리를 흔치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위험을 느끼니 개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고 휴대하기도 합니다. 사실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데 드러나는 사실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키기보다는 일으키는 쪽이 많습니다.
결국 경찰력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사설경비업체까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도 경찰들만큼 무장을 합니다. 당연히 사고가 터지면 전쟁하듯 총격전을 시행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경찰은 그 뒤에나 등장하여 뒤처리나 합니다. 어쩌면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말을 타고 총격전을 벌였지만 이제는 자동차를 타고 벌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분위기의 사회 속에서 안전을 보장하고 더구나 안전하게 현금수송을 한다는 것이 평범한 일이겠습니까? 그야말로 목숨 거는 일일 것입니다. 그만한 사람들이 고용될 것이고 일하는 사람도 그만한 준비와 각오를 하고 행할 것입니다.
목적은 돈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의 활동은 눈에 띕니다. 그래서 관심을 끌게 되고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모두 돈에 환장한 가운데 목숨을 걸고 있는데 유독 이 사람은 돈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달려듭니다. 잠깐 사이, 정말 잠깐 사이입니다. 간식거리를 구입하는 그 시간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웬 무리가 현금 수송차를 덮쳐 빼앗고 혼란 중에 경비원까지 살해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가 날 것도 대비는 해야 하겠지요. 더욱 불행한 일은 수행 도중에 얼굴을 가렸던 가면이 벗겨진 것이고 하필 바닥에 엎드려 있던 소년이 그 얼굴을 목격하게 된 일입니다. 어떻게 하지요?
아들이 살해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달려들었습니다. 자기도 총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산 것이 산 것이 아닙니다. 쓰러지면서 보아둔 얼굴,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찾아내야 합니다. 비슷한 짓을 한 무리를 가차 없이 응징합니다. 그러나 목적한 인물은 찾아내지 못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그 업종의 사업체에 위장 취업을 합니다. 뒤를 알 수 없고 말수가 적은 묵직한 직원으로 동료들과 일을 나갑니다. 습격을 당하자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상대방을 응징합니다. 다른 동료들은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당하고 있을 때 홀로 자기 쪽보다도 많은 인원을 상대하여 모두 쓰러뜨립니다.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준 셈이지요.
그리고 드디어 자기네 안에서 벌어지는 모의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직접 개입하지는 말고 오로지 눈만 감고 지나가라는 제의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바로 찾던 그 작자가 껴있습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면서도 두 시간을 채우지요. 꾸준히 이어지는 긴박감에 지루할 시간이 없습니다. 짜릿한 쾌감이 따라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섬뜩합니다. 자신의 내면에도 그런 잔혹함이 들어있다는 뜻 아닌가요? 사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제공하는 쾌감입니다. 우리 사회 속에도 총기 휴대가 자유롭다면 이런 복수전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려운 사회, 살고 싶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런 강도짓이 쉽지도 않고 복수전 또한 쉽지 않아야 오히려 살만한 세상입니다. 영화 ‘캐시트럭’(Wrath of Man)을 보았습니다. 원 제목보다 오히려 부드럽습니다.
첫댓글 달달
털어야 되는데
안테나 더높이 세우자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