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정> 내 어릴 적 별명은= 놀부마누라
일찍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께서 저희 세 자매를 힘들게 키우셨습니다. 저의 경쟁의식과 살기 위한 투쟁은 벌써 이때부터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말 많은 세자매 중 특히, 둘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양보심 또한 요구되었습니다. 제 어릴 적 기쁨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든 저금통장 이었습니다. 천원을 넣어서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통장에 오백 원, 백 원 돈이 있을 때 하루에 세 번 이라도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차곡차곡 쌓인 저금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신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도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 학원비와 학습교재비로 자기계발을 위한 자금으로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저의 알뜰함에 그 당시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별명이 ‘놀부마누라’ 입니다.
<성격의 장단점> 거울의 양면,,,
억척스럽게 살아왔습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이상 끝까지 해내는 근성과 이것은 불가능하다, 위험하다고 하는 일들에 스스럼없이 뛰어드는 도전정신과 적극성이 저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 시간은 돈입니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 또한 저의 철칙이자 신념입니다. 예전의 저는 소극적이어서 어디에 있어도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 낯을 가리고 마냥 수줍어하던 저는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력과 2년 여간의 일본생활로 많이 변했습니다.
<경력사항> 난 대학교 8학년
휴학 4년간을 포함해 8년 만에 드디어 학교를 졸업합니다. 8년 동안 식당, 호프집, 학원강사, 피자 집 사원 등등 경력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이 모든 아르바이트 경험들이 일본에서의 힘든 유학생활을 버티게 해준 저의 힘의 원동력입니다.
아르바이트로 유학비용을 마련, 단돈 삼십만 엔으로 일본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어학 공부를 위해 일본인들과의 잦은 교류를 가진 탓에 자금은 금새 바닥을 보였고 선배가 빌려준 돈으로 당장의 생활비를 해결, 12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잘 안 통하는 일본어로 힘들게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아침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후반 수업을 듣고 저녁 아르바이트, 늦은 밤에 돌아와 숙제며 시험공부를 하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는 다람쥐 챗바퀴 돌리는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공부도 일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억척을 부렸습니다. 그 와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장학금을 위해서 결석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일념 하에 사고 다음날부터 목에 깁스를 하고 꼬박꼬박 출석을 하였습니다. 그 힘든 노력의 결실이 1년간 문부과학성 장학금을 취득 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친구들, 선생님들로부터 인정 받으며 학교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보 다도 기쁜 것은 일본인들의 마음의 벽을 뚫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일하던 곳은 일본인들뿐인 가게였습니다. 처음엔 그들의 주위에 겉돌 뿐 그들은 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첫 번째 외국인유학생 아르바이트생 이었기 때문 입니다. 성실함과 밝은 미소,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저를 드디어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채용된 것은 물론입니다.
<지원동기> 가슴 설레임으로부터
제가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이 물류에 있어 선진국임을 확신했기 때문 입니다. 일본어를 공부 함으로 써 직접적으로 많은 자료를 얻는 것은 물론, 앞으로 이쪽분야에서 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일본의 그 많은 도시 중 오사카를 선택하게 된 것도 큰 항구가 있는 도시였고, 막연하게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취업의 길을 열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국일주일전 오사카 항 주위를 일주하는 배를 탔습니다. 크고 넓은, 장대함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모바일폰의 카메라에 그 곳을 담았습니다. 그때 바람은 너무나도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곳에는 저를 가슴 설레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 이고 그 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신 합니다.
<입사후 포부> 동북아를 거쳐 세계로,,,
저의 어릴 적 꿈은 세계의 모든 언어를 구사하는 것, 최소 5개 국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동시통역가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물론 어릴 적 꿈에 불과하지만 전 지금도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도전하고 싶은 것은 중국어입니다. 취업과 동시에 중국어마스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어학입니다. 저의 이런 어학능력과 관심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달성하고 대한민국을 동북아 물류 중심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동북아에서 세계로 뻗쳐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댓글커리어다음 이승훈입니다. 하나만 말씀드리죠. 놀부마누라!라는 별명은 안좋은 이미지입니다. 진짜 그 별명이라 해도 조금은 긍정적인 별명으로 바꿔주세요. 다른 사람이 "악바리" " 스쿠루지" " 수전노"" 질긴x" 등의 별명을 가진 사람인데..그 분을 처음볼때 님께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 저분은 알뜰살뜰~한가보다!" 란 이미지보단 " 뭔가 돈 좀 밝히겠군..깐깐하겠군" 이란 인상이 먼저 올겁니다.인사담당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글은 최대한 부드럽겠지만..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 이 친구 돈 좀 밝히나본데~" 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단 말이죠.. 자세한건 이메일로 상담
첫댓글 커리어다음 이승훈입니다. 하나만 말씀드리죠. 놀부마누라!라는 별명은 안좋은 이미지입니다. 진짜 그 별명이라 해도 조금은 긍정적인 별명으로 바꿔주세요. 다른 사람이 "악바리" " 스쿠루지" " 수전노"" 질긴x" 등의 별명을 가진 사람인데..그 분을 처음볼때 님께선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 저분은 알뜰살뜰~한가보다!" 란 이미지보단 " 뭔가 돈 좀 밝히겠군..깐깐하겠군" 이란 인상이 먼저 올겁니다.인사담당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글은 최대한 부드럽겠지만..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 이 친구 돈 좀 밝히나본데~" 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단 말이죠.. 자세한건 이메일로 상담
그런가요,,,, 휴~~정말 걱정입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