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봉동에 위치하고 있는 경북대학교 사대 부설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모교가 가지고 있는 오랜 전통에 깊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 전통은 전국과학전에서의 잇달은 입상과, 전국체전에서 배구팀의 최상위 입상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전 입상은, 모교의 태생적인 여건 속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모교의 전신은 일제하 최고의 사범계열 인재를 길러냈던 대구사범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필자가 모교에 재학하던 시절(1957-1963)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서너차례 전국 과학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재학생들은 과학전이 열리면 당연히 모교가 문교부장관상 혹은 대통령상을 타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교의 배구팀 전통은, 해방 후 모교가 재학생들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하는 비젼에서 모교의 새로운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영남수재들의 산실이라는 별칭을 얻어 서울 모대학에의 입학성적이 전국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교세신장을 거듭했으나, 그러한 사실에 비례하여 재학생들의 건강은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대구시민 사이에서는 <약골이 부고>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했다.
그래서 학교는 토요일의 수업을 전면 폐지하고, 경북대학교 운동장을 빌려 온종일 운동을 한 적도 있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전교생이 공부 대신에 운동만 했던 것이다.
당시 모교 한 학년은 5개학급이었고, 전국 고교의 등급을 결정하는 서울 모대학의 입학 숫자는 양호할 때는 50명을 넘었다. 5개 학급에 50명이라면 한 학급당 열명이 된다. 영남 수재의 진면목을 여지 없이 과시했던 것이다. 전체 학급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서울의 K모 고교가 일년에 이 대학에 백명이 넘는 학생을 합격시키는 것과 비견될 수 있었다.
이런 전통 탓으로 학생들은 죽어라 공부만 했다.
작년 추석에 김판영 선생님(90)을 댁으로 찾아 뵈었다.
선생님은 시력을 잃으셔서 고생을 하시고 계셨지만, 교감으로 모교에 재직시 전교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시곤 하던 그 열하같은 웅변은 여전하셨다. 자신이 문교부차관 서울시립대총장 인천대학교총장을 지냈지만, 대구부고 교감시절의 학생들만큼 머리좋은 학생들은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는 말을 거듭하셨다. 자신이 교감으로 부임하자 말자, 자기는 도내 최우수 교사 스카웃에 나섰다고 회고하셨다. 특차로 영남 최우수 학생들을 뽑아놓았으니 이제 잘 가르치는 것만이 남았다는 자각이었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의 승승장구는 자신들의 우수한 두뇌에 못지 않게 스승들의 열성적인 가르침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역시 학생들의 건강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울러 학교는 배구팀을 청설하여 적극적으로 선수를 양성하는 한편, 전교생들에게 배구를 적극 장려하여 모든 학생들이 배구를 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배구는 모교의 명실상부한 교구(校球)가 되었고, 전교생이 이 구기를 즐기게 되었다.
선수들은 전국규모의 배구대회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전교생들의 사기를 드높혔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54년 가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35회 체전에서 모교가 전국을 제패하고 우승을 하였다.
전교생이 즐긴 배구를 통하여 부중고생들은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단한 체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평가가 대구시민들과 교사들과 전교생 사이에서 퍼졌다.
배구의 전통은 면면히 후배들에게 전승되어, 그후로도 모교는 전국대회에서 계속하여 우승 혹은 준우승을 거듭하였다.
1960년에 부고에 입학한 필자가 12회이니, 2013년이 된 지금 모교는 65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셈이다.
모교 배구팀의 전통은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
모교 출신들은, 재학중 선수생활을 했건 안했건, 다들 배구에 능숙하다. 그래서 재학으로 진학하거나 사회인이 되어서도 어느 단체에 속하든 배구팀의 주전이 되기가 일쑤였다.
필자도 서울대문리대로 진학하여, 대학단위의 구기팀이 학내에 전혀 없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문리대 불문학과 배구팀을 구성하여 공부벌레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내었다.
문리대배구팀이 공인된 시합에 출전한 적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친선시합을 주선하고 몇차레나 친선시합을 치룬 적은 있었다. 서울대 배구팀이 친선시합을 하자고 제의하면 웃으면서 상대해 주지도 않던 다른 대학에서는 문리대의 배구실력을 보고 다들 놀라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대구부고 시절의 배구실력을 한껏 발휘하였다. 모교 재학시절 존함은 잊어버렸지만, 배구코치로 특별초빙되었던 키 크고 깡말랐던 코취의 혹독한 훈련을 견디어 낸 결과였다.
8년 전쯤에 필자는 모교에 초청되어 전교생 앞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은 것이 기억된다.
중,고교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전교생이 교문에 도열해 있었고, 환영 프랭카드가 교문에 걸려 있었다.
전교생이 운집해 있는 강당에 들어간 나는 내가 재학중에는 없었던 여학생들이 한쪽에 앉아 있어서 낯설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를 후배들에게 부탁하였다. 영어공부를 좀더 열심히 하라는 것과 배구를 좀더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아직 모교가 배출한 인사중에서 윤종룡선배(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고11회)도 초청강연을 하시지는 않았다고 교장선생님은 말씀하신 것이 기억된다. 성공한 관리나 정치인이나 사업가로서의 위상보다가는 교수와 소설가로서의 나의 모습을 재학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 것같다.
나는 이 자라에서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였고 모교의 배구전통을 강조한 기억이 있다.
어제(2013,6,1)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전통있는 한정식 음식점에서 모교 역대 선수들의 모임이 있었다.
전국제패의 전통을 쌓은 배구명문 대구부고의 위상이 이들 노선수들 사이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만나자말자 배구 얘기를 펼쳤다.
5월 4일 충남 아산에서 있었던 전국종별구기대회 배구부문에서 배구명문 진주동명을 꺾었으나, 숙적 인하사대부고에게 분패하여 전국 3등을 하였다는 것이다.
배구가 만약 야구만큼 인기가 있는 종목이라면 이것도 대단한 성적이고 전교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필자가 학업을 마치고 처음으로 대학교수로 취임한 대학이 전남대학교사대인데, 당시 광주고교와 서울 중앙고교의 결승전이 서울 동대문 야구장에서 벌어진 적이 있었다. 광주 소재 고속뻐스회사인 광주고속에서 전국고교야구결승전에 응원가는 모든 광주 시민들에게 무료로 뻐스편을 제공했던 기억이 있다. 모교 대구부고의 배구 우승은 단순한 모교의 영광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 대구시민들의 영광이요 환희였던 것이다. 이제 더는 약골이 부고가 아닌 것임을 전 시민은 잘 깨달았던 계기가 되었다.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최고 선배로서 모임의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김기순 선배(고 2회, 전 한양대학교 대학원장)는 재학중 배구로 단련된 몸이라서 그런지 8순의 연세가 20년은 더 젊어 보이신다. 회식모임 전에 사전행사로 치뤄졌던 KBS 관람행사에 한 시간전에 참석하시어, 마침 진행되고 있던 전국고교배구시합을 KBS 구내 tv로 관전하시었다. 그야말로 영원한 배구인이다. 대선배로서 금일봉을 내놓으셨다.
어제 모임의 회식 도중, 회원 정소성(중15, 고12) 일어나, 사전에 위임받은 간단한 세미나를 펼쳤다.
조선의 대간제도에 대해 한 5분간 발표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소위 말하는 언론3사의 강력한 대간할동 탓으로, 조선은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세계사에 유례가 없이 500년 넘게 사직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대사헌, 집의, 장령(2인), 지평(2년) 으로 구성되어진 소위 6인 언론인은 임금을 제외한 어떤 관료도 탄핵서 한 장으로 귀양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고위관리는 절대적으로 부패해서는 안되었고, 그 결과 정부의 부정과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다. 사헌부는 일반 관리들을, 사간원은 임금의 언행을 조정하는 일을 했으며, 홍문관은 집현전의 후신으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 제도 자체를 감시했다는 말을 했다. 사헌부 내에서는 위 6명의 대간원 이외에, 정 6품인 25명의 감찰이 있어서 일반 관리들의 서정을 언제나 감찰하였다고 했다.
회장을 맡아서 헌신하고 있는 김성기(고13회)의 말로는 생존하고 있는 역대 선수출신들이 근 40여명 소재가 파악되고 있지만, 10 여분이 유명을 달리하시고, 출석하고 있는 분들은 25명 가량된다고 했다. 어제는 18명이 참석하였다.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두 시간 넘게, 모교사랑의 마음을 배구 얘기에 담아 선후배가 함께한 즐겁고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다.
2회 김기순(모임의 명예회장)
4회 한용섭(대전에서 상경), 강창봉, 김영두, 노대수(대구에서 상경)...전국체전제패 기
6회 정규홍
7회 방극수
9회 한금작
11회 박철규(제주도에서 상경), 최동일
12회 정홍모, 이언영, 김진화, 김일두, 정소성...경북체전 제패 기, 전국체천참가(군산상고에 분패)
13회 김성기(모임 발기인, 모임의 회장, 울산 거주 ), 함헌수
14회 이득원
16회, 권문헌
참고삼아 어제 모임에 참석하시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회비를 보내주신 분들의 존함을 밝혀두는 것이 예의인 것같다.
9회 김만열, 12회 정경수(부산거주), 16회 채희길
9회 김만열, 12회 정경수(부산거주), 16회 채희길
대구에 소재하고 있는 모교의 현재 선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