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마법은 장마전선을 멀리 남쪽 바다로 끌어내렸다. 장마철 답지않게 파란 하늘까지 드리웠다. 제주시에서 40
km 가까이 먼길을 달려온 친구들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아니다. 여기는 서귀포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강창학경기장이다.
우리가 찾아갈 각시바위는 여기서 서귀포쪽으로 1km정도 가서 길 왼쪽에 있는 S-oil주유소 바로 옆 농로로 진입하면
된다. 입구에 영산사라는 표시가 있다. 가는 중에도 몇개의 갈림길이 있으나 영산사와 카사블랑카 펜션 표시가 있는 쪽
으로 계속 가면 각시바위 기슭에 이를 수 있다.
영산사라는 절에 이르기전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각시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장 찍은 다음, 절 입구와 붙어 있는 작
은 내창을 따라 오름에 오르기 시작했다. 좁은 냇가에는 숲이 울창하여 맑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냇가의 바위도
현무암이 아닌 안산암 계통의 매끄러운 돌이어서 미끄럽다. 숲에서는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비가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미끄럽다. 흙도 화산회토나 송이가 아닌 진흙이라서 더 그렇다. 우리는 땀을 흘리며
조심조심 오름을 올랐다. 오름 전면이 상록 활엽수로 덮여 있어 시원하기는 하나 바람 한점 없어 조금 답답하고 경사
또한 급한 편이라서 땀이 흐른다. 30분 정도 걸어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 오르니 절로 "야호!!"하고 환성이 나온다.
바로 아래로 서귀포 시내와 섶섬, 문섬, 범섬이 떠 있는 앞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로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다.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줄이 매어 있어서 내려가 보니 바위 굴이 있고 산신을 모시고 치성을 드렸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옛날에 자식이 없는 젊은새댁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뛰어내려 각시바위가 되
었다던데 그 생각을 하니 으시시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오늘 각시바위에 오른 친구들은 모두 여덟명이다. 선달네는 지금 보목리 포구에서 새벽에 나가 자리를 사 놓고 우리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모처럼 좋은 날씨에 오른 각시바위에서 금방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선달의 전화 독
촉을 여러차례 받고 우리는 서둘러 오름을 내려왔다.
점심때가 되어 보목리 포구에 도착했다. 선달네는 이미 트럭에 음식을 가득 싣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위하여 선달은 오름에도 오지 않고 새벽부터 몇번씩 포구에 나와 자리를 사려고 애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2
주 전에도 이런 행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날씨 때문에 배가 묶이는 바람에 행사가 취소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마련한
다른 음식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짐작이 간다.
오늘도 파도가 세서 자리가 잘 안잡히는 바람에 어렵게 산 자리는 얼음까지 채워진 시원한 바닷물에 담겨 싱싱하게 우리
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섶섬이 바로 앞에 보이는 포구의 끝에 자리를 잡고 서둘러 자리를 장만했다. 비늘만 대강
거스르고 툼박툼박 썰었는데도 맛이 기가 막혔다. 이른바 돔베추렴이다. 썰어 내놓기 바쁘게 먹어댄다. 가시가 없는 생
선처럼 부드럽고 연하다. 나는 밥도 안먹고 자리회만 배부르게 먹었다.
음식도 음식이려니와 주변경관이 절경이다. 바다위에 떠 있는 섶섬과 그와 꼭 닮은 제지기오름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포구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고, 우리는 웃음차작을 하며 한번은 섶섬을 뒤로 하고 또 한번은 오름을 배경으로 시진
을 찍었다. 오늘 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열명이다.
오름을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먹은 음식을 소화도 시킬겸 제지기 오름을 오른다. 제지기오름도 세번째다.
1000여개의 침목계단으로 만들어진 산책로 옆에는 머위와 개나리, 원추리가 무성하다. 남쪽이어서 그런지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소나무도 건강미가 넘친다. 작은 오름이지만 경사가 급하여 이마에 땀이 맺힌다.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통일재단에서 운동기구와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았다. 두 개의 전망대 중 우리는 바람이 시
원하게 불어오는 지귀도가 보이는 쪽에 자리 잡았다. 시원한 바다를 내려다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지귀도나 섶섬
에도 꼭 한번 가 보고 싶다.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한참을 머물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 선달네 집에 들렀다. 선달네 집은 두분의 인품을 닮아 정갈하고 넉넉했다. 빈틈없이 심어진 여러가지
과일나무나 꽃나무들이 주인의 바지런한 손길에 다소곳이 정리되어 있다. 집안 곳곳을 둘러 보아도 한 곳 손이 안 미친
곳이 없이 질서정연하다. 한창 분재에 취미를 붙인 선달의 손길에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어린소나무들이 한껏 꿈에 부풀
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집 정원에 늘어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선달네를 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뭐든지 주고 싶어 안달이다. 한쪽이 그러면 다른쪽은 투정이라도 부
릴만한데 이들은 영 아니다. 오늘만해도 선달이 나쓰미깡 이야기를 꺼내자 어느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미깡을 따는
부인이다. 자기만 아는 각박한 세상에 이런 분들이 있어 아직은 살만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분들에게 복이 있을
진저.
귀한 꽃나무 한아름씩 선물 받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장마철에 모처럼 좋은 날씨에 각시바위와 제지기오름까지 오르고 섶섬이 바로 보이는 절경인 보목리 포구에서 갓 잡은
싱싱한 자리회로 한껏 상기된 좋은 기분으로 한라산을 넘어왔다. 산남북을 어우르는 우애가 더욱 돈독해진 하루였다.
그 일을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져온다. 2008. 6. 26.
첫댓글 자네들이 자리회 오찬을 즐길땐 난 한참 열 받아 스트레스 받아, 회의고 뭣이고 섶섬이 내다 뵈는 보목으로 맘은 열 두번을 오가는디.... 전화도 못하고 미안하오. 효돈까지 왕림했는데,
기어코 보목리 자리맛을 보일려는선달의 잔 정, 그것을 마다 않고 기쁜마음으로참여 해서 듬박~~듬박 썬 안주로 샆섬을 향해서 크~~으 ! 하는 모습이 선 ~~하군요. 언제 까지나 정이 담긴 고운 마음 만으로 c 오동이 결속 되고 영광만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