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 241102
기적을 내리는 트릉카 다방 - 야기사와 사토시 - (임희선 올김) - 문예춘추사
책을 다 읽고도 10일 이상 독후감을 쓰지 않은 것은, 독후감이라 표현하기도 쑥스러운 글이지만, 책을 읽은 기록을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인 것 같다. 읽은 책에 대한 단순기록이야 아무 때나 적어 놓으면 되겠지만 그래도 독후감이랍시고 적으려면 책 내용이 가물거리지 않는 정도의 기일 내에 적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무언가를 읽을 때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늘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앞장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도 실제로 기억력에 문제가 있으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기억력이 이러하니 책을 읽은 지 10여일이 지나 독후감이라는 걸 쓰려한다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동네 허름한 골목 끝에 위치한 ‘트릉카 다방’을 중심으로 한 주요 이야기가 세 개 뿐이고 이야기 마다 꼭 기억하고 싶은 내용도 없으니 그저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표지를 보다가 지금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방(茶房)이라는 장소에 우선 마음이 끌렸다. 길거리마 넘쳐나던 곳이 다방이었고 지금 그 이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커피숍이나 카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내 세대에서 아직 친밀감을 느끼는 이름은 다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의 모든 약속과 만남이 다방에서 이루어질 때였고 길거리 공중전화조차도 줄을 서서 사용하여야 했지만 모든 다방에는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쩌다 다른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약속한 다방으로 전화를 걸어 다방의 근무자들에게 손님 중에 000을 바꿔달라고 부탁하던지 혹은 내 이름과 상대방 이름을 알려주고 말을 전하면 다방 직원은 메모지에 그 말을 적어 다방 한편에 마련된 메모꽂이에 꽂아주었다. 약속시간이 되어도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메모꽂이를 살펴보는 것은 필수였고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 메모를 본의 아니게 훔쳐보는 일도 많았다. 지금은 감수성이 예민해진 나이가 된 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핸드폰도 없던 옛날에 연애결혼 하셨다며 데이트약속이 어그러지면 어떻게 연락을 했어요?”라고 물으면 다방과 덕수궁 대한문과 돌담길을 설명하여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의 길거리 빌딩 지하에 지금도 00다방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이 한 군데 있다. 들어가 보지 않아 예전 같은 다방의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칠 때마다 궁금증이 인다.
일본인이 쓴 글을 변역한 것이라 난 일본에서도 같은 한자어로 다방(茶房)을 사용하는지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어는 喫茶店, 喫茶로 표기되고 중국어의 간체와 번체로는 茶馆, 茶室, 茶館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 다방이라는 것은 우리식 한자어 표기인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일본과 중국에서도 과거에 우리와 같은 다방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도에 일본에서 초판이 발간된 책이라고 하는데 그 연도라면 우리의 다방 소멸처럼 일본에서도 커피숍이나 카페가 한자어를 대신하는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책의 일본어 원제를 보지 못하여 어떤 제목으로 쓰였는지 궁금하지만 아마도 번역자가 글의 내용과 배경을 참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다방’이라는 표기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 든다. 책에 쓰인 소개에 의하면 이 트릉카 다방을 무대로 한 이야기는 시리즈로 발간되는 모양인데 그 제목이 “커피전문점 트릉카”인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의 책 제목은 喫茶店, 喫茶가 아니라 '커피전문점'으로 쓰인 모양이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의 내용은 ‘트릉카 다방’을 드나들던 단골손님들과 그에 얽혀진 사실적 이야기를 다방의 주인이나 직원의 기억에 의한 에세이풍의 기록이라 짐작하였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그 다방을 드나들던 단골손님의 이야기는 맞지만 모두 가상적인 인물이고 트릉카라는 다방을 무대로 하여 구상한 세편의 옴니버스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방은 허름한 동네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세 편 모두 그 다방 단골 1세대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세 편 소설의 내용 모두 다방이라는 무대가 어울리는 순정적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내 나이 세대들이 중고등하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순정소설의 내용을 닮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내용으로 인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정신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여도 내가 세편의 내용처럼 살아온 날이 없으므로 그저 순정 단편소설 세 편을 읽었다는 생각밖에는 달리 느껴지는 건 없다.
책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에 따르면 작가의 데뷔작은 영화로 만들어지고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하였다. 우리가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게 있고 맞지 않는 게 있듯이 책의 장르나 내용도 개인에 따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 ‘권하고 싶다 아니다’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순정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같은 작가의 다른 글을 이미 대하신 분들에게는 관심이 될 만한 책이라 하겠다.
2024년 11월 1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58caqix3wsg 링크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첼로 + 피아노) Original Song : Serenade to Spring by Rolf Rovland | 첼로댁
첫댓글 화신백화점 지하에 참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