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매서웠던 1984년 2월,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딛고 서울 안국동의 미 대사관 직원 숙소에 짐을 풀었다.
대사관에서 한국 소개 브리핑이 끝난 뒤, 서울에서의 첫 저녁 식사를 하러 가까운 인사동으로 향했다.
함께 국무부에 입부하고 같은 시기 한국으로 발령받았으며 워싱턴DC에서 한국어 공부를 같이했고,
심지어 같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동료와 함께였다.
그때 우리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간판만 보고서 어떤 음식을 파는 식당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제일 깔끔하고 손님들 표정이 밝아 보이는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왔고, 최선을 다해 배운 대로 주문했다.
“불고기 이 인 분 주세요.”
5개월간의 한국어 수업 중 음식에 관해 배운 문장은 식당에서 불고기를 주문하는 법, 딱 한 가지였다.
종업원의 대답은 시속 200㎞쯤 인 듯 빨랐는데, 나도 내 동기도 수업에서는 배운 적 없는 단어와 문장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크게 반복했다.
“불, 고, 기, 이, 인, 분, 주, 세, 요….”
종업원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매니저를 불렀다.
두 사람 대화를 많이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가끔 “불고기”는 분명히 들렸다.
대화에서 “불고기”가 나올 때 마다 우리는 해맑게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며 합창하듯
“이 인 분!”이라고 말했다.
종업원과 매니저는 우리를 보고 웃으며 살짝 한숨을 쉬더니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10분, 15분이 지났다. 우리보다 늦게 온 손님들의 음식이 먼저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국무부에서 배운 한국어가 잘못된 걸까?
주문이 많이 밀렸나? 긴 기다림 끝에 종업원이 마침내 내온 불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주문했는데 왜 우리말을 바로 못 알아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며칠 뒤, 대사관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다시 인사동을 찾았다.
우리가 갔던 식당 앞을 지나면서 불고기를 주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미국에서 우릴 가르친 선생님들이 한국에 있어본 지 너무 오래라 한국말의 감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내 생각도 덧붙였다. 동료들이 한바탕 웃더니 말했다.
“저기 사시미 하는 일식집인 건 아는 거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일식집에 들어가 식당에 없는 한식 메뉴를 고집스럽게 주문하고서
내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식당 주인은 우리를 무시하거나 내보내지 않고,
분명 가까운 식당에 가서 우리를 위해 불고기를 주문해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두 번의 인사동 저녁 나들이에서 나는 두 가지 귀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첫 번째는 한국 음식은 정말 맛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첫날 저녁에 얻은 두 번째 가르침은 한국사람, 그리고 그들의 ‘정(情)’이다.
‘정’이라는 말에는 ‘도타운 사랑(fondness)’이나 ‘애정(affection)’ ‘선의(goodwill)’ 같은 뜻이 모두 들어있다.
한국 사람들은 고집과 무지 앞에서도 융통성 있고 참을성 있으며, 또 친절하다.
그것은 여러 해 한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며 한국에 대한 내 이런저런 오해를 기꺼이 포용해준
멋진 친구들을 통해 깨달은 진실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의 세계에 속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 많은 한국 친구와 지인들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순간들은 그들에게 내 친구가 된다는 것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줄곧 수많은 ‘불고기의 순간들’을 내 곁에서 함께 해 준 한국인, 한국 친구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에릭 존, 보잉 코리아 사장,
조선일보 2021년 7월 8일 <에릭의 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