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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곤충 연대기(2부), 행성B>
드뎌 다 읽었다. 도대체..., 읽은 부분 까먹을만하면 뒷부분 읽고..., 한 권 읽어내기도 쉽지가 않구나.ㅋ 책 읽는 것도 이제는 일이 되고 있다. 밀린 책들이 많다... 생물학 이야기, 곤충 연대기, 이제 '가장 섹쉬한 동물'이 살아 남는다를 읽어야지...
1.
곤충에 대해선 어릴때 여치 잡아서 괜히 팔다리 떼어내고 불쌍하다고 장례 치뤄준 기억이 나서, 그 후로는 아이가 그저 순수하다고 보기에는 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어떤 무지가 더 큰 고통일수도 있겠다라는생각과 함께 - 유년의 추억이 반드시 순수하다고만 할수는 없는 아찔함도 함께 - 그러나 몰라서 그랬다라는 위로보다는 어떤 쏴한 쓰라림이 좀 오래 지속되다가 - 곤충은 이내 삶에서 큰 비중을 주지 못하고 인간의 행위에 대한 상념은 계속 이어져 왔다.
저번에 이어 리뷰를 이어가 본다. 곤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생소한 곤충도 많고 그런 곤충에 대한 이야기가 깊게 파고 들어오지는 않지만, 인간과 같이 살펴보면 조금은 읽기가 수월해 지는거 같다. 그리고 나는 웬지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 짠하면서도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대책없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당장 옆에 곤충이 있다면, 나는 싫을 것이다. 그럼에도 곤충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인간은 집단거주지(도시 형태, 서울 이런 형태의 도시만 얘기하는 것은 아님, 문명은 문명을 한데 모아놓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의미임)에 거주하는게 맞는거 같다. 그것이 자연을 덜 파괴하는 것이 되겠지. 저자의 시선에 완전공감은 다 되지 않지만, 인간을 혹독하게 평가하는 저자의 표현이 재미 있어서, 끝까지 따라가며 읽어 보았다.
2.
한 권의 책으로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나오니, 큰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작은 곤충의 세계가 지구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어떻게 지구를 자신들의 서식지로 최적화 시켜 왔는지에 대해서도 - 작지만 거대한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출현이나 역사는 상대적으로 협소해진다. 저자가 인간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선을 채 안에서 계속 견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지구의 주인은 곤충이다. 생명체의 최상위는 곤충이다. 생명체의 출현방식은 곤충의 형태가 가장 적합하다. 곤충이 없다면 먹이사슬로 구성된 생태계의 공진화는 없었을 것이다. 읽다보니 저자의 시선에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저자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불빛들을 반짝이며 모두 자기 에너지를 발광하는 그 자체를 경탄하는듯 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 지구안의 생명체 연대기에서 보자면. 억세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하는 저자의 시선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인간의 비루함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화자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곤충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척추동물의 공통 조상인 벌레를 닮은 모습의 아주 작은 '피카이아' 가 삼엽충시대에 해저퇴적물 속에 터널을 뚫고 비루하게 숨어 살고 있다라는 표현과, 포유류의 직접적 조상인 폐어는 동작이 굼뜨고 눈치없고 몸이 미끄럽고 행동이 느릿하여 데본기 어느 시점에 가서야 간신히 육지로 기어 올라왔다. 라는 표현과 공룡의 시대에 뾰족뒤쥐들을 닮은 포유류들은 공룡의 눈치를 낙엽더미에 숨어 살았다. 라는 것과......,
[ 신생대는 흔히 '포유류의 시대' 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뭘까? ... 진화사를 쓴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지구상에 등장 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무작위 사건을 겪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진화했다' 라는 사실을 알고, 과학자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캄브리아기에 포식자로 군림했던 절지동물이 우리의 비천한 조상 피카이아를 사냥하여 멸종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르도비스기의 포식자들(바다전갈.삼엽충,오징어 등)이 초기 어류들을 싹쓸이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루리아기와 데본기의 전갈과 지네들이 매우 치명적이어서, 척추동물의 육지 상륙을 용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석탄기에 물속에 살았던 거대잠자리의 유충이 양서류의 새끼들을 포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수억 년에 걸친 중생대 동안, 거대한 공룡들이 왜소한 포유류들을 모조리 도륙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백악기에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이 지구를 살짝 비켜가 공룡이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떤 경우든 대답은 하나다. 상황이 조금만 달라졌어도 인간은 지구상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결코 필연이 아니었으며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 이라고 할 수 있다... 신생대를 지배했던 것은 곤충과 꽃식물이었으며, 포유류는 그저 들러리 중 하나였을 뿐이다...신생대의 주인공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본문 발췌 - ]
3.
어찌되었든, 이리 따져보아도 억세게 운 좋은 인간이기는 한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운'을 좋아하나 보다...메헤~~~
숨고 숨고 최대한 느릿하게..., 인간으로 까지의 진화는 더디고 더디었다고 볼 수 있을듯 하다. 인간진화의 전략이라고 한다면, 끝없이 생존력을 강화시키며 진화해가는 주변 생명체 상황을 내재화 시키는 거 외에는 달리 뾰죡한 방법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학습은 하되, 그 실행은 엄청나게 더디었지만, 직립은 단박에 해결 했다. 학습을 어디에 축적 했을까...? 당근 '뇌'였을 것이다. 생각이란 것을 통하여 이 역시 일원화 시켰다. 길고 긴 시간을 비루하게 숨어 산 결과, 가장 효과적인 저장방법이자 생존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어쩌면 찾았다기보다는 숨고 피해다니며 살다보니 저절로 환경을 축적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저장은 해야 되는데...가장 가지고 다니기 좋도록 진화된다면..., 당근 '뇌'였을 것이다. 그 결과 뇌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지적 생명체가 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기생곤충들의 진화과정을 보면 별안간 섬뜩하기도 하다.
[외부기생에서 내부기생으로 옮아가는데, 오늘날 곤충세계는 대다수의 기생동물들이 내부기생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숙주를 영구적으로 마비시키면서 기생하는 방식을 '독립생활'이라 하고,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만벌을 '독립생활자'라고 한다. 그러나오늘날 대다수의 말벌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부기생이 진화한 마당에 굳이 숙주를 마비시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기생방식을'공동생활'이라 하고,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말벌을 '공동생활자'라고 한다.
독립생활과 공동생활의 결정적 차이는, 전자는 숙주를 무방비 상태의 저장육 덩어리로 만든다는 것이고, 후자는숙주의 생명을 살려두어 섭식.성장.탈피가 가능한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것이다. 서식지에 얽매일 필요없이 쥐라기 후기에 들어서자 숙주들을 닥치는데로 공습하기 시작 했다.]
4.
인간도 곤충과 크기는 다르지만 곤충의 기생방식을 차차로 습득한거 같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 보관하고 기르고, 이는 다시 사회성에서는 생산방식으로의 기생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저자의 냉혹한 인간에 대한 힐난에도 불구하고..., 느릿하게 꿈벅거리며 뭍으로 상륙한 '폐어'에 웬지 연민이 간다. 오늘날 인간도 그때의 폐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을 피해 할 수 없이 뭍으로 기어 올랐든 어쨌든, 느릿하게라도 움직이긴 했으니 말이다. 공룡의 기세에 눌려 몸짓을 키우지 못하고 낙엽더미속만 전전했든 어쨌든 작디작은 포유류들도 애상하다. 나무위에서 살던 호미닌도 초원으로 내려와 두 발로 직립하기 까지는 환경을 읽어 어쩔 수 없이 직립했는지도 모른다. 직립한다고 다 끝나나... 이제 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피해서 살 수만은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뇌는 점차로 오랜 시간의 기억을 축적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 했다. 아이디어의 시작이 도래 했다. 드디어 인간도 완전변태에 성공한 것일까?
인간은 점차로 집단화되고 문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길고 긴 시간을 더디고 더디게 흘러온 결과 인간은 인식의 세계를 열었다. 자연에서 축적된 인간의 생각은 인식으로 나타나 자연을 거울처럼 문명에 비추었다. 자연은 문명에 투사되었다. 그곳은 인간이 중심이다. 지구가 곤충들의 것이라고 해도, 인간은 인간세계가 중심이란 생각이 강하다. 모든 존재들에 대해 파괴와 보호를 자처한다. 인간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인간에 의해 환멸을 당하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 였을까?
인류는 긴 시간을 등떠밀리듯이 여행 했다. 그 결과 자연의 진화를 뇌에 축적하게 되었다. 생각시스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되었다. 인류의 조상이 '뇌'를 늘린 것은 환경을 읽은 결과 무엇인가에 대응하기 보다는 대처한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곤충들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곤충들만큼 대놓고 활보하지도 못했다. 은둔의 수도자처럼 인류를 탄생시킨 인류의 조상들은 그리도 조용하게 연명해 오고 있었다.
5.
허나, 저자의 항변처럼, 인류가 '운'좋게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공진화의 혜택이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자연의 여유로움이 주는, 싹쓸이 하여 먹이를 다 잡아먹지 않는 - 그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연의 여유로움이 주는 혜택을 다시한번 상기해 본다면, 인간 문명의 진화에는 반지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해 길을 찾는다는 것이 맞는 방향이 맞을 것이므로, 인간의 지성은 자연의 그런 여유로움도 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저자는 곤충들이 더 멸종하기전에 찾아서 이름도 붙여주고 서식지도 보호해 주는 것이 맞다고 지성에 호소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호소와 경고를 하기위해 지구생태계 변천사에서 큰 족적을 가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며, 실제로 그랬다고 여긴다.
곤충과 꽃들만으로도 지구는 지구를 잘 꾸려갔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나는 좀 한숨이 나왔다. '그래, 그런 지구도 충분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어쩌자고 기어이 살아남아서 뇌를 늘려 자연의 진화를 모두 암기하여 문명으로 투사해 버렸단 말인가...?' 라고 말이다. 그런데, 곤충이 진화를 촉진시켰다면, 그 안에 인류의 조상도 배제 되지는 않았을테니,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인간이 없었다면, 자연파괴와 어느때보다 빠른 생태계안의 다양성의 멸종 속도도 지구가 알아서 조절하였겠지..., 지구안에서 대멸종은 평균 2,600만 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태양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2,600만 년의 궤도를 가진) 암흑성이 존재하는데, 그 별이 태양계 근처를 지날때마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궤도를 교란시켜 지구와 충돌하게 한다.고 한다. 무엇에 의해 대멸종이 일어나든, 현재의 곤충도 인간도 살아 남았다. 인간 역시 곤충의 방식을 어느정도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존과 공진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저녁이다.
첫댓글 '기생충에게 배운다'는 새로운 관점들이
떠오릅니다.^.,~
YouTube에서 '기생충에게 관심과 사랑을 | 정준호 | TEDxBusan' 보기 - http://durl.me/b89c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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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작지만 무쟈게 큰 세계들 입니다...ㅋ^^
이것도 읽어야하는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