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귀향에 목말라 하면서 살아 왔다,
그것은 지금도 같다. 그러나, 꼭 가야할 일이 없다.
한 번 가봐야지 하다가도 이내 생각을 지우고 만다.
너무 싱거워질까봐서다. 적막한 공허로만 느껴진다.
정말 아담하고,아늑하며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고갯길 등마루에 외딴집 '남수네 집'이 그려지고, 그 집 지붕위에
옹기 종기 열려서 오붓한 형제들처럼 얹혀서 곱게 익어 가던 박들이
보이기도 한다. 남수는 어릴 적에 죽은 외딴 오두막 할머니의 외동 딸이다.
참 마음씨 곱고 친절해서, 내가 고향을 가면 언제나 반겨주셨고
목마르다면서 바가지로 물이라도 퍼서 먹여 보냈다.
한참 뒤에 갔을 때는 이미 돌아 가시고 빈 집만 남아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또 허전하고 서러워진다. 어머니같은 분이었는데...
나는 고향을 갈 때면, 늘 마음은 바빴다. 어머니가 보고싶어서다.
그래서, 종일토록 터덜거리면서 타고 온 고물 버스를 내리자 말자
남수네 지붕의 흰박들을 보면서 정신 없이 뛰는 것이 버릇이었다.
잘 익어 풍요로운 달래벌(가칭), 정답게 흐르는 달래강(가칭), 그
시원하게 불어 오는 강바람, 물새 소리들, 서녘 하늘의 곱게 물든 저녘 노을!
이 광경이야말로 사람을 압살하고도 남을 장관이었다.
그래서, 고향갈 때면 언제나 마음이 급했었고, 떠나올 때는 항상
서러웠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노랫말은 그런 회상에서 적은 졸작이다.
70년대 후반 쯤엔가, 어느 예술학교 창작 공연 행사 때 쓰겠노라
하는 말은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다. 어느 등신이 이런 가사를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