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쉬 오픈은 세계 최초의 공식 골프대회이자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가 있는 대회이다. 1860년 10월 17일 수요일에 12홀의 프레스트 윅 코스에서 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코스를 3회 라운드했다. 36홀 경기를 치룬 결과 머셀버그 출신의 윌리 파크가 톰 모리스 부자를 물리치고 174타의 스코어로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1871년엔 챔피언쉽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톰 모리스가 3회 연속 우승으로
챔피언인 은제 벨트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은 처음엔 은화 5파운드와 은제 벨트였는데 1872년부터 상금과 은제 컵으로 바뀌었다.
참가자도 1890년 40명으로 늘었고 1892년 부터는 72홀의 경기를 하면서
참가자들은 출전비를 내게 되었다. 프로선수들이 활약하는 대회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우승한 것은 1890년 존 볼의 164타인데 스코틀랜드가 아닌 영국 본토의 선수가 우승한
최초의 기록이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는 1차대전으로 경기가 없었고
미국으로 선수들이 대서양을 건너오던 1920년까지는 영국인들만의 잔치였다. 우승자로는 월터 하겐 4회, 구성이라고 불리우는 보비 존스가 3회인데 존스는 아마추어였기에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53년 벤 호건, 1960년에 아놀드 파머가 대서양을 건너와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수많은 미국 골퍼들이 찾아왔고 브리티쉬 오픈은 비로소 군웅이 할거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골프대회가 되었다.
1969년 토니 재클린이란 영국 선수가 우승한 이후로
영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1986년 샌디 라일이 최초였다. 그리고 거북이로 불리는 닉 팔도가 1987년, 90년, 92년에 우승하고 미국으로 진출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93년엔 그레그 노먼이 86년에 이어 두번 째 우승한 것 같다.
당시 노먼은 당대 최고의 골퍼였다.
93년, 내가 90대 초반을 치며 한참 건방을 떨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95년엔 알콜과의 전쟁에서 살아 남은 존 델리가 콘스탄티노 로카를 연장에서 이겼다.
델리는 1991년 대기선수로 PGA 챔피언쉽에 참가하여 우승하는 돌풍을 일으켰는데
전 날 밤새워 운전하고 대회장소로 갔다고 한다.
아직도 티브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존 델리는 우승을 확신하며 새로 결혼한 여자와 무차별 키스를 하면 로카의 페어웨이에서 퍼팅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인 로카의 공은 굴러굴러 버디가 되었고 10초 만에 존 델리는 처참한 얼굴로 연장에 나갔다. 로카의 눈물과 델리의 참혹함이 묘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브리티쉬 오픈 3승을 가진 간 닉 팔도는 보무도 당당하게 미국으로 갔다.
하지만 그의 미국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좌절만을 거듭하던 중에 잭 니클라우스와 섬이 되어 치는데 잭은 자유자재로 드로우와 페이드를 구사하면서 우승했다고 한다. 핀이 왼쪽에 있으면 드로우, 오른쪽이면 페이드, 이런 식이다.
여기서 닉 팔도는 충격을 먹었다. 브리티쉬 오픈 3승의 스윙을 버리고
데이빗 레드베터와 다시 스윙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스터즈에서 연패하는 기염을 토한다. 레드베터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바디 턴 스윙을 재정립하며 부와 명성을 얻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도 몰려드는 한국여자골퍼들로 부를 더욱 축적하고..
브리티쉬 오픈은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Royal & Ancient 골프 클럽이 주관한다.
해안을 끼고 있는 8개의 코스(스코틀랜드에 5곳과 잉글랜드에 3곳)를 순회하는데 대부분 바닥이 고르지 않고 그린은 일관성 없기로 유명하다. 불규칙한 바운드, 악명 높은 러프,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악천후도 대회를 더욱 어렵게 한다.
링크스 코스란 원래 탁트인 땅이란 스코틀랜드의
사투리였으며 해변코스나 나무가 없는 코스를 가리키는 말로 지칭된다.
때론 골프 코스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다른 설명은 그린에서 다음 티까지 카트를 타고 가는 거리가 짧아 홀들이 모두 연결되어(링크스)있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링크스의 진짜 의미는
"바다 근처의 모레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페어웨이가 단단하고 나무가 없는 거대한 코스"를 말하는데 특히 바람이 불 때 독특한 플레이의 특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선 지상전은 물론 공중전에서도 뛰어난 실력이 있어야 하며 현실적인 코스의 길이는 무의미하다.
좋은 점수를 기록하려면 상상력이 넘치는 샷을 구사해야 하며
최고의 선수가 우승할 확률이 큰 골프장이 되는 것이다. 아놀드 파머의 2회 우승과 더불어 잭 니클라우스는 3회, 톰 왓슨 5회, 게리 플레이어, 세베 발레스테로스, 닉 팔도가 각각 3회, 리 트레비노, 그랙 노먼이 2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엔 토드 해밀턴 2003년엔 벤 커티스가 오픈에서 깜짝 우승했다.
이번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에선 112개 벙커가 선수들의 경계 대상 1호로 라고 한다. 험난하기로 악명높은 올드코스의 벙커들은 "관(Coffin)" "고양이의 덫(Cat’s trap)" "사자의 입(Lion’s mouth)" 등 무시무시한 별명을 갖고 있다.
역대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참가자들도 벙커 때문에 수없이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닉 팔도는 95년 대회때 14번홀 "헬" 벙커에 볼을 빠뜨린 뒤 4타 만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이 홀을 벗어나는 데 10타가 필요했다. 4타만에 벙커에서 나간 토미 나카지마 홀도
유명하다.
골프에서 대부분의 기록은 타이거 우즈에 의해 깨질 것이라고 한다.
우즈는 2000년 올드코스에서 벌어진 129회 대회에서 우승했고 어제도 6언더파를 쳤다.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는 우즈의 나와바리란 것을 증명한 것이다.
5년 만에 올드코스에서 대회를 여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2000년 타이거 우즈에게 당한 치욕을 씻겠다며 절치부심, 전장을 164야드 늘리고 코스의 난이도를 높였다. 올드코스는 2000년 우즈에게 19언더파의 기록을 세워줬음. 하지만 코스를 늘리고 까다롭게 고쳤지만 첫 날부터 속절없이 무너졌다.
평균 비거리 339야드, 이런 무시무시한 드라이브 샷이 단 세 번만 페어웨이를
벗어났다. 우즈가 이런 정확도만 유지하면 당금 지구에 그의 적수는 없다. 우즈에게
거는 도박사들의 분석도 흥미롭다. 우즈는 유명 베팅업체들로부터 2005년 브리티쉬 오픈 우승 1순위다. 우즈의 우승 시 배당률은 5-2로 전망된다고 한다.
또다른 배팅업체는 우즈 3-1 어니 엘스 10-1 비제이 싱 14-1 필 미켈슨 16-1의 순이다.
올드코스에 메이저 통산 10번째 우승을 노리는 우즈가
2010년까지 잭 니클라우스의 18승을 넘을 것인가에 대한 것도 화제가 되었는데 한 도박사는 우즈가 능가할 것이라는데 20만달러를 배팅했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 잘 나갈 때의 페드로 마르티네스처럼 외계인으로 불리기에 손색 없는 전투력을 가졌다. 지존무상, 타이거 우즈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그는 움직이는 금고답게 96년 9월 1일 밀워키 오픈으로 데뷔해 2005년 7월 4일까지
상금으로 번 돈이 527억, 기타의 소득까지 합치면 5220억을 벌었다고 한다.
상금으로 계산하면 공식 하루 일당은 7820만원, 비공식 일당은 5억원이다.
우즈를 초청하는 4라운드 경기는 평균 2백만불을 하기 때문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타이거 우즈가 사용한 것은 그의 몸밖에 없다.
우즈의 지금까지 공식대회에서 4만 6731타를 쳤고 한 타를 돈으로 환산하면
113만원이다. 상금 2억짜리 한국여자프로대회에서 113만원을 벌려면
컷을 통과해야 하고 210번 이상의 스윙을 한 뒤 50위를 해야 하는 돈이다.
타이거 우즈는 지금까지 180경기에 출전했고 모든 경기에서
평균 28억 이상의 상금을 받았다. 우승 확률 23퍼센트, 3위 이내는 42퍼센트,
탑 텐 입상률은 무려 64퍼센트나 된다. 한마디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기록이다.
첫 날 66타, 드라이버는 멀리 그리고 똑바로. 이런 컨디션이라면 올드코스에서
타이거 우즈의 적은 자기 자신 말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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