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운 것 같애서 양말도 안신고 무조건 마당으로 나가서 평상에 앉는다. 마당이 있는 집은 이렇게 바깥의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어서 좋다. 바깥은 깜깜한데 남쪽의 산 너울이 어슴프레 보인다. 저 산너머에 표충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디선가 닭우는 소리 요란하다. 이런 시골동네에는 이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인지 오래이고 닭이나 소등 짐승우는 소리만 난다. 참으로 엣날부터 꼬끼오! 닭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더니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법당에서 스님이 기도하는 소리와 낮은 목탁소리가 들린다. 아랫집하고 가깝기 때문에 새벽 세시가 아닌 네시에 예불을 올리며 목탁소리도 또르르또르르........... 조심조심 낮게 기도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법당으로 들어가서 삼배를 하고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예불은 오래전에 시작한것이 아닌 듯, 지심귀명례................부터 하고 계시다. 아마 신장님이 빨리 가서 예불드려라..............하고 나를 깨우셨나보다.
양말도 안 신고 웃도리도 안입은 나를 보고 스님이 난로를 내 옆에 갖다 놓으신다. 땀이 식어서 정말 선뜻하니 춥다. 언제부턴가 갱년기여서 그런지 자다가 한번은 온 몸에 땀이 나서 깨곤한다. 그러다가 금방 잠을 자지 못하니 낮에는 어렵고 졸리고 그러다보니 일에 능률이 안오르고 일이 겁이 나고 소심해졌다. 내가 이럴줄 젊을때는 짐작이나 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좀 공부를 잘하다보니 항상 자신만만했고, 일 잘 못하고 어리버리 한 것을 이해도 못했고 참지를 못했다. 그러다보니 남에게 말로나 행동으로 상처도 많이 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어리버리하게 그렇게 되었으니 어디가서 하소연할데도 없다. 나도 늙으면 남과 똑 같다는것을 먼저 알았더라면 세상을 좀더 겸손하게 살았을텐데 이제야 깨닫다니 옛말에 나이 먹어야 철난다더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아침공양을 하러 상에 앉으니 스님의 밥상은 참으로 소박한 웰빙 밥상이다. 집에서는 고기 없으면 못 먹는 거로 알고 있는데 채소만으로 차린 밥상은 소박하고 영양도 듬뿍한 아름다운 밥상이엇다.
"혼자 살려면 정확하게 밥 차려 먹을 줄 알아야 해요, 나는 절대로 밥을 안 굶어요, 세끼 꼬박꼬박 차려 먹어요" 하시는 말씀처럼 항상 다시마와 버섯등으로 다시물을 내려놓고, 매실 장아찌등으로 철마다 음식을 만들어서 저장하고, 예쁘고 작은 그릇에 꼭 한끼 먹을만큼만 내어서 드시니 영양가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고 차려놓은 밥상도 예뻤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도량을 산책하자니 아랫집에서 아기와 엄마가 올라와서 마당을 걷고 있다. 시집간 딸인데 요즘에 친정에 와 있다고 한다. 스님이 반갑게 과자를 갖고 나가신다.
" 아가야, 이리 온, 스님이 까까 줄께"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여자아기는 꽃 같이 이뻐서 과자를 받고 좋아라 깍깍 거린다.
"절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깨기만 하면 절에 가자고 엄마 손을 이끈대요, 항상 과자등을 챙겨서 주거든요"
고맙습니다 합장하고 아기와 엄마가 내려 간 후에 할머니 한분이 또 올라 오신다.
" 할매, 커피 드세요, 올라 오세요" 손을 이끌어 탁자에 앉히니, 커피를 드시며 두런두런 말씀하신다. 혼자 사는 영세민 할머닌데 기름을 아끼느라 나무를 때는데 힘이 모자라서 나무 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요, 누가 한짐만 부쳐 주면 좋을텐데, 정호 삼촌한테 부탁해 보지"
" 안돼요, 그럴 수는 없지라........시님, 언제 시내 가시면 비누 좀 사다 주시소"
" 그려요, 이따 나가니까 사올께요"
할머니는 이제 가봐야 한다며 언덕을 내려 가신다.
" 내가 이 동네 부녀회장예요, 모다 6~70 이 넘은 할매, 할아배들이라 내가 돌봐 드려야 돼요, 어느 때는 아랫집 할배가 보일러가 안 돌아가서 밤새 떨었다고 숨가쁘게 불러싸요, 가 봤더니 나사 하나만 돌려 주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서비스부터 부르지 말고 우선 나를 부르라고 했어요, 그게 다 돈이니까" 자식들이 돈을 준다고 해도 많지 않으니 따뜻하게 살지 못하고 또 의료비가 반이 들어가니 대부분궁핍하게 사신다고 한다.
" 처음에 들어 올때보다 몇 사람이 돌아 가셨어요, 이제 열두분 정도 계신데, 한 십년만 더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군데군데 빈 집이 있고, 부산사람들이 새로 집을 지어서 주말별장처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사람들은 집이 따로 있으니 이 동네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한다.
" 할매들이 보살같애요, 아침에 일어나서 절에 불이 안 켜져 있으면 눈물이 확 난대요, 나는 해제때는 자주 절을 비우거든요,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할매들 방에 불이 켜졌나 한번 둘러봐요, 안 켜져있으면 한번 전화 해보고요"
할머니들은 그 나이에도 일을 다니신다고 한다. 어제도 꽈리고추 한 봉투가 마루에 놓여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일 갔다가 조금 갖고 오신 것이다. 그러니 작은 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고, 없는 것은 할매들이 갖다주니 정말 장에 가서 살 것은 두부나 콩나물 정도라고 하신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천천히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은 전형적인 경상도 마을로 돌담이 많이 있다. 내가 사는 충청도에는 돌담이 별로 없는데 아마 돌이 많아서도 그럴 것이고, 충청도 보다 더 산골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군데군데 사람이 떠난 빈 집이 을씨년 스럽다. 그러면서도 별장같은 조립식주택이나 통나무집 같은 것이 몇채 보인다. 신과 구가 공존하는 농촌풍경이다.
사과나무를 손질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공손히 합장을 하시니 스님도 마주보며 합장하신다. 힘에 겨워도 밭을 묵힐 수가 없어서 일을 하시면 또 밤에 끙끙 앓으신다고 하니 안타깝다. 자전거를 타고 일 나가시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하시며 어제 가져다 놓은 꽈리고추 드셨냐고 물어본다.
" 물론 맛잇게 먹었지요, 여기 충청도에서 오신 보살님과 맛있게 먹엇어요, 고마워요' 인사하신다. 구불구불한 길을 얼마를 내려가니 매화꽃나무가 보인다. 이곳은 남쪽이라 벌써 매화꽃이 반쯤은 피었다. 하기는 엊저녁 전화한 하동에 계신 지성스님은 하동의 매화는 지금이 한창이어서 다음주에는 떨어질 것 같다고 하셨다. 예년보다 2주는 먼저 피는 것이라고 한다.
매화꽃나무가 몇 그루 있는 곳에 가서 매화차를 만들기 위하여 반쯤 핀 매화꽃을 따서 모은다. 작은 통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으면 매화차가 된다고 한다. 매화꽃나무 옆에서 조심스럽게 꽃 한송이를 따는, 밀집모자를 쓴 스님의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다. 녹차를 마신 후에 마지막에 매화꽃을 찻잔에 한송이 떨어 뜨리면 꽃이 활짝 피고 은은한 매화향이 흐른다고 한다. 이런 멋을 즐기시는 스님들이 정말 보배롭지 아니한가! 그러나 새로 바뀐 법에 의하여 카드를 만들 수 없으니 열차 예약도 안된단다. 당신 이름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어서란다.
" 이제 우리같은 옛날 사람은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져요' 하며 웃으시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모두가 뛰어가는 초스피드 시대에 이렇게 느리게 천천히 수행하며 사시는 분들도 분명 우리시대에 필요한데, 어쩌자고 시대는 이런 귀한 분들을 자꾸 세상밖으로 내 모는지 모르겠다.
부처님 도량 같이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시는 예쁜 매화꽃 마을에 무지개빛 햇살 한자락이 찬란하게 비추인다.
군데군데 사람 떠난 빈집이란 말이 이상하게 각인 되네요, 도시에서는 평생을 애 써도 자기 힘 만으로는 짐장만 하기 어려운데,,, 충청도 분이 어인 연유로 경상도가서 매화 마을 풍경을 썻을까 하는 의아심도 있네요, 사람사는 세상, 마음에 근심만 없으면 모두가 극락인데,,, 자부자분 잔잔히 써 내려가신글 조용히 읽고 갑니다. 산자락님 또 봐요.
첫댓글 다 산이 되고 강이 되어지면 그 산을 보고 또 강을 보고 마음으로 느껴갈수 없겠지요..산 혹은 강처럼 살아가시는 그분들의 마음을 담아봅니다.감사드립니다.
정감 넘치는 산사의 풍경에 마음 내려 놓고 갑니다.
군데군데 사람 떠난 빈집이란 말이 이상하게 각인 되네요, 도시에서는 평생을 애 써도 자기 힘 만으로는 짐장만 하기 어려운데,,, 충청도 분이 어인 연유로 경상도가서 매화 마을 풍경을 썻을까 하는 의아심도 있네요, 사람사는 세상, 마음에 근심만 없으면 모두가 극락인데,,, 자부자분 잔잔히 써 내려가신글 조용히 읽고 갑니다. 산자락님 또 봐요.
충청도에도 사람떠난 빈 집이 하나 둘 늘어 갑니다.........도시에서는 자기 몸 하나 뉘일 세칸 방하나 갖기도 어려운데..........고맙습니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몇번이고 이건 아니다 라고 외쳐 보지만,쉽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