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를 기억하다
군위 인각사 앞에는 높이 솟은 바위 절벽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른다. 까아마득히 높은 절벽 위로는 소나무들이 서 있다. 이곳을 학소대라고 하였다. 신성한 새인 학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다. 학소대에 연이어 작은 산봉이 솟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산봉을 욕녀봉이라고 불렀다. 옥녀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란다.
도로를 만들면서 옥녀봉 아래로 터널을 뚫었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의 사타구니에 굴을 뚫어 그녀를 화나게 하면 마을 처녀가 바람이 난다면서 반대했으나. 굴을 뚫였고, 마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의 농촌 마을에는 바람날 만한 처녀가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옥녀가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담까지 하고 있단다. 군위군 문화원장이 우리를 안내하면서 한 말이다.
그 산봉이 왜 옥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주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자기도 옥녀봉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옛날을 기억으로 너무 오래 보관하다보니 옥녀의 본래 모습은 잃어버렸으리라. 그렇더래도 지금까지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기억으로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나라 곳곳에 옥녀라는 이름을 갖는 산봉은 수없이 많다. 곳에 따라서는 전설을 만들어서 간직한 곳도 많다. 남해안 지역에는 동제를 지내는 여산신의 거처지라는 곳도 많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가로세로로 줄 맞추기를 해보면 잃어버린 옥녀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기도 한다.
옥녀는 왜 우리에게서 흔적이긴 하지마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기억해두어야 할 만큼 중요한 여인이었기 때문이어서 라고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옥녀를 산신으로 모시는 곳이 있다. 마을 사람이 함께 제사를 올리면서 정중하게 신으로 받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옥녀는 한낱 인간의 면모를 한 여인으로 낮추어서 기억할 뿐이다. 더욱이 성적으로 이리저리 얽혀있어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여인으로만 전해진다.
우리 고을에도 신라시대가 배경인 유명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 있다. 옥문지(玉門池) 전설이다. 신적인 의미를 지닌 듯하면서도 성적인 이야기로 각색되어 진 내용이다. 그러나 옥(玉)은 귀한 여인의 상징이니 옥녀도 아마 신분이 높고 귀한 여인이었으리라. 흔적으로 찾아가보면 여신이었으리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시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폐기해버리거나, 겨우 흔적으로 남아서 기억의 구석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대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보니 떳떳하게 보관할 가치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옥녀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왜 일까. 편리만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쫓는 현대의 우리 삶이 자꾸 허하게 느껴지는 탓이 아닐까. 아무짝에도 쓸데 없다는 옥녀 이야기는 우리의 허해지는 마음을 메꾸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따져보면, 옥녀는 전설이나, 신화에서 나오는 먼먼 옛날의 여인이고, 고귀한 신분의 여인이고, 성생활도 즐겼던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대학교 일한년 때 만든 모임의 친구들은, 이제는 만나는 햇수가 60년 이상이나 된다. 세월따라 이야기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젊은 날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기억 밖으로 사라진 것들이 많다. 그리고 직장 생활 때,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의 현실에서 밀려나 버린 탓에 지금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다.
이제는 모두 죽음을 멀리 두지 않은 나이의 노인이 되었다. 이야기의 내용들은 언제나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노인들 또한 뻔한 이야기를 나눈다. 노년의 건강 이야기, 죽음, 아들 등등, 이제는 손자 이야기도 끼어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어머니도 벌써 옥녀 이야기처럼 희미해져 가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친구가 어머니의 제사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모두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가 수 십 년이고, 우리가 모셨던 제사들은 거의가 아랫 대가 제주가 되어 있다. 그들은 어머니가 아니고, 할머니이다. 또한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면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이다.
친구가 말했다.
“아들이 벌써 10여 년 전부터, 아버지요. 제사를 꼭 지내야 합니까. 라는데. 예전에는 무슨 소리냐며, 호통을 쳤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니, 이제는 아들에게 호통치던 내 목소리도 점점 힘이 없어져간다네.”
우리는 침묵했다. 신이었던 옥녀도 시대가 바뀌니 한낱 성적 대상의 여인으로 추락하였는데, 시대가 그렇다는데 내가 모시지도 않는 제사를 강요하기도 그렇고------. 아들도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제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할머니를 추모하는 방법을 찾자는데---, 현실적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또박또박 꼽는데는 무조건 반대하기도 그렇더라고 했다.
왠일인지, 나는 노년이 될수록 어머니가 더 그림다. 어떻게 하든지 어머니를 기리고 쉽지만 어머니의 제사가 장조카의 손으로 넘어간지 모래다. 요즘은 점점 제사를 없애는 추세이니만큼 아들도 아닌 장조카더러 이렇쿵저렇쿵 말할 처지도 아니다. 옥녀처럼이라도 기억 속에나마 남아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할텐데------.
글쎄다. 내 글에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담아두는 것도 방법이 될까. 책에라도 담아두면 전설의 옥녀 이야기처럼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삶이란 어느 세대이든 외로움도 있고, 마음이 텅 비어버린 듯한 절망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내 책에 잘 모셔두면 후손들에게 옥녀처럼 허한 마음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어머니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남기려 한다.
첫댓글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조상님들이 제삿밥 드시러 오신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을낀데 ᆢ
나 죽고 나더라도 내땜에라도 한번씩 보라고 ᆢ
그렇지만 장손인 저도 아이들 말을 듣고싶은 맘이 숨어 있으니ᆢ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옥녀 옥남입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