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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소리
정 도 상
버스 종점의 주변에 들어선 골목시장으로 시나브로 어둠이 실려오고 있었다.
오후 다섯시의 애국가가 인월(引月)댁의 앞에 놓인 고무널벅지 가득 울려 퍼지고 난 후부터, 버스에 실려 오는 어둠의 양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인월댁은 주섬주섬 고무널벅지를 챙겼다. 아직도 한 주발이나 까놓은 조갯살이 남아 있긴 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일찍 들어가 눕고 싶었다. 그녀는 남아 있는 조갯살을 주발에 놓인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고 쏟아지지 않게 갈무리를 했다. 조개껍데기 사이로 보이는 시커먼 물을 하수구 쪽으로 쏟았다. 빈 조개껍데기가 한쪽으로 몰리며 부스럭거렸다.
“휴우 ―”
조개껍데기처럼 텅 빈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숨이 밀려올라왔다. 인월댁은 한숨 끝에 자식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자식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밖에서만 빙빙 돌며 있는 대로 속을 썩이고 있었다.
―빠앙 빵빵빵빵.
사람을 가득 싣고 종점으로 들어오던 버스가 길을 넓혀 달라며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인월댁은 고무널벅지를 챙기다 말고 지금 막 들어오는 버스를 쳐다봤다. 자식들 중에서 누구든지 하나쯤은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사람들을 다 비우고 차고로 들어갔지만 인월댁이 기다리는 자식은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골목시장을 빠져나가자 인월댁은 고무널벅지를 챙겨 머리에 이고서 천근같은 발걸음을 떼었다. 하루 종일 먼지를 켜켜이 맞으며 쪼그려 앉아 있었던 까닭인지 무릎께가 뻐근했다. 기름기와 먼지가 섞여 찐득찐득한 얼굴이 더욱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동짓날의 저녁 바람이 어깨로부터 허리, 무릎으로 불어와 온 삭신을 시리게 했다.
“자아 차 싱싱한 생고등어나 생태가 다섯 마리에 오백 워어언. 자아 자 팔딱팔딱 뛰는 생고등어나 생태가 왔어요. 생고둥어나 생태애에.”
인월댁은 고등어라는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손수레에 실린 생선을 쳐다봤다. 등짝이 검퍼렇게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이 물때가 좋은 고등어 같았다.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고둥어 튀김이었다. 비린 것만 상에 올라가면 뼈까지도 꼭꼭 깨물어 먹는 유별난 식성을 가진 둘째였다.
“이 고등어 얼마씩 한다요?”
“예, 어서 옵쇼. 여기 씨알이 굵은 것은 두 마리에 오백 원이고 좀 잘은 것은 세 마리에 오백 원임다.”
“뭐어, 다섯 마리에 오백 원이라더니?”
“예, 다섯 마리짜리는 이쪽 겁니다.”
“에게. 무신 고둥어가 뭐 꼭 꽁치만하다요.”
“차암 아줌씨도. 그러니까 다섯 마리에 오백 원이죠.”
“그러지 말고 아저씨, 세 마리짜리에다 작은 거 하나 더 낑겨 주씨요. 살 팅게.”
“그러면 남는 것 하나두 없어요, 아줌마.”
생선장수 사내가 엄살을 부렸다, 인월댁은 자신도 장사를 해본 처지라 그 엄살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한 마리를 얹어서 사고 싶었다.
“아따, 그러덜 말고 한 마리 더 주씨요. 나두 조오기 아래서 장사하는 사람인디 없는 사람끼리 도와야지 뭐 그러요.”
“알았어요, 알았어. 자아 자, 싱싱한 생고등어나 생태가 다섯 마리에 오백 워어언.”
복어처럼 배가 툭 튀어나온 칼로 탁탁 내리치며 사내는 손님을 끌기 위해 걸쭉한 목소리를 계속 토해 냈다. 육중한 칼로 고등어의 대가리를 내리칠 때마다 피와 내장이 점점이 튀겨 사내의 얼굴에 붙었다.
인월댁은 고등어를 담은 비닐봉지를 손가락에 끼고서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오백 원에 고등어를 네 마리 사고서도, 남들이 안 가져가는 대가리를 개 먹인다며 열댓 개 더 얻어 넣어서인지 제법 손가락 마디가 아팠다. 자식들은 몸통을 먹이고 자신은 대가리를 발라 먹을 작정이었다.
허름한 블록집들이 열차처럼 길게 늘어선 골목길로 인월댁은 들어섰다. 어둠은 지렁이처럼 긴 골목에 먼저 와 있었다. 장마통에 골목은 낡은 보도블록이 주저앉은 것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갔다. 골목 쪽으로 보이는 허름하게 낡은 창으로 불빛과 텔레비전 소리가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월댁은 골목 깊숙이 있는 안방의 창문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다른 집과는 다르게 불빛이 없는 창문을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신물 같은 쓸쓸함이 흘렀다.
“이 가시내는 오늘도 늦을랑가?”
인월댁은 혼자말을 하며 돈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꺼냈다. 문을 열자 눅눅하고 습기찬 연탄가스가 부엌 바닥에 벰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인월댁을 향해 독오른 머리를 쳐들었다. 인월댁은 몸을 낮춰 부엌으로 들어갔다. 연탄 아궁이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바깥채가 인월댁이 달세를 주며 살고 있는 집이었다. 인월댁은 수도 옆에다 고등어 봉지를 던지고 난 뒤 고무 널벅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툭툭 먼지를 털었다. 먼지 냄새가 고춧가루 냄새처럼 어둑한 부엌 안에 맵싸게 퍼졌다.
손을 더듬어 부엌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등을 켜자 파리똥과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전등이 희뿌윰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인월댁은 수건을 부엌 안의 빨랫줄에다 걸고 난 뒤 세수를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얼굴을 씻고 난 뒤의 세숫물은 흙탕물이나 다름없었다. 깨끗한 물로 얼굴을 헹구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안방에 들어가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다. 작은 새의 날갯짓처럼 몇 번을 파다닥거리더니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불이 들어오자 방 안에 어지럽게 널려진 물건들이 낯설게 다가들었다. 그 중에서도 막내딸 은미년의 분홍 잠옷과 손바닥만한 흰 빤스가 허물처럼 뒹굴며 인월댁을 반겼다.
“미친년. 지 옷 하나 간수 못 항께 몸띵이 간수도 못 허지…….”
“작은방 아줌마아, 작은방 아줌마아, 둘째한테 전화요. 얼른 와서 받아요.”
얼굴에 묻은 물기를˙ 채 닦기도 전에 주인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월댁은 수건을 찾다 말고 허겁지겁 주인댁으로 달려갔다.
“여, 여보세요.”
“엄마요. 나요, 은수우.”
인월댁의 가슴속으로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은수의 목소리에는 진한 몰기가 배어 있었다.
“너 거그가 어디냐. 나가 가마.”
“어엄니 미안허구만요. 나 땀시 맘고생 몸고생이 많지라.”
전화 속에서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는 터지려는 통곡을 참느라 자주 끊어지고 있었다. 인월댁의 귓속으로 은수의 눈물이 홀러들었다.
“엄니, 보고 싶구만요…… 죄송해요.”
“야 이눔아, 긍께 나가 뭐라디야. 지발 허지 말라고 안 혔어. 거그가 어디냐. 나가 가마.”
“아녀요, 엄니. 집에는 그 사람들 안 옵디여?”
“쩌지난번에 한 번 오고 아주꺼정은 안 왔다.”
“알겠구만요. 내가 집으로 가께요. 지금 출발헐 팅게 두 시간 정도 있으면 도착할 거구만요.”
“알긍다. 싸게싸게 와야 혀. 헛눈팔지 말구.”
전화가 끊기자 인월댁은 멍멍했다. 반년이 넘도록 코빼기도 볼 수 없던 은수가 집에 오다니, 죽은 남편이 살아 온대도 이렇게 가슴이 벌렁 벌렁하지는 않을 거였다.
주인댁의 문지방을 넘는 인월댁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빨리 저녁을 지어야지. 큰아들과 은미가 일찍 들어와 오랜만에 온 식구가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터였다. 쌀을 씻어 연탄불에 올려놓고 비닐봉지에서 고등어를 꺼내면서 인월댁은 마음이 흡족했다. 은수가 고등어 튀김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인월댁이었다.
그녀는 밥을 퍼서 밥그릇에 담아 아랫목의 요 밑에 묻었다. 팔다 남은 조갯살을 넣어 끓인 시원하고 구수한 된장찌개와 노릿노릿하게 잘 튀겨진 고등어가 올려진 밥상도 윗목에 준비해 두었다. 이제 자식들이 들어와 밥을 먹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며 인월댁은 상에 놓인 된장찌개와 고등어 튀김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먼지가 앉을까 불안했다. 구석구석을 뒤져 낡은 신문지를 찾아 상 위에 사뿐히 올려놓자 인월댁의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가 한창이었다. 아나운서가 북쪽에서 경치 좋은 금강산에다 숭악한 댐을 만든다며 바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물인지는 몰라도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다니 걱정이 되었다. 곧이어 화면이 바뀌면서 학생들이 무슨 대학인가를 점거하여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인월댁은 형사들이 와서 집뒤짐을 하고 은수를 찾는 것을 겪은 뒤로 저런 뉴스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아나운서는 사회가 혼란스럽게 학생들이 과격하고 폭력적인 데모를 하면 금강산댐이 금방 터질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인월댁은 은수의 경우를 보더라도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저렇게 데모를 죽자사자 하는 것이 나쁘게 생각되었다.
또각 또각 또각.
골목에서 여자의 뾰족구두 소리가 들렸다. 은미가 오는가 싶어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었다. 인월댁은 골목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를 습관처럼 들었다. 남편이 죽자 무작정 상경을 해서 온 식구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벌이를 나서야 했던 뒤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인월댁은 어린 은미를 업고 파출부를 나가거나 막노동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못 빼는 일 등을 했다. 일이 끝나고 알량한 판잣집으로 돌아오면 베니어판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흉물스런 빈대만이 인월댁을 기다렸다. 국민학교 일학년생인 은수까지도 껌팔이를 나가고 없는 그 방에서 인월댁은 늦은 밤거리를 헤매며 술집이나 다방을 전전하고 있을 어린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렸다. 더욱이 아이들의 손등을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놓기 시작하는 겨울이 되면 기다림은 고통으로 변했다. 인월댁은 밥을 지어 놓고, 시멘트가루가 묻어 나오는 노란 봉지에 쌀 한 되를 사가지고 돌아올 자식들의 동상 걸린 발과 추위에 질린 얼굴을 생각하며 끄이끄이 속울음을 울어야 했다. 더욱이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판잣집 지붕에서 펄럭거리는 루핑을 할퀴고 지나간 후에도 자식들은 좀체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인월댁의 가슴은 갈가리 찢겨 흩어져 날렸다. 밤늦게까지 미처 다 못 판 신문과 껌을 파느라 동상으로 부르튼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다니고 있을 자식들을 상상한다는 것은 숫제 고문이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어렵게 만나 올망졸망한 어린 자식들이 손을 잡고 판자촌의 미끄러운 흙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인월댁은 길고 오랜 문초 끝에 앉아 비로소 안심(安心) 같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커가면서 앙증맞고 어린 그 소리는 없어지고 근심과 초조한 소리로만 인월댁의 가슴에 울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뾰족구두 소리는 인월댁의 문을 지나서 멈췄다. 옆집의 은행 다니는 아가씨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짜증이 피곤처럼 몰려왔다.
“미친년. 워딜 가서 뭔 지랄 허느라고 요로콤 안 온대여, 안 오길. 말〔馬〕만한 년이 시상 무선 줄도 모르고…….”
집을 떠난 지 삼 년 만에 큰딸 은희가 눈두덩 주위에 들깨알처럼 시커멓게 낀 기미와 산처럼 튀어나온 배를 내밀고 뒤뚱뒤뚱 집으로 돌아왔다. 인월댁이 정신나간 여자처럼 돌아다니며 찾았지만 끝내 찾지를 못하고 포기해 버린 딸이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윗동네에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는 남편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처럼 오히려 담담하게 딸을 맞이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썰렁한 첫밤을 보낼 때 실감나게 전해져 오던 혼자라는 공포에 못 이겨 밤새 몸을 떨던 것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시간이 흘러 딸의 모양새가 제대로 보이자 부아가 솟구쳤던 것이다.
만삭이 된 배를 주체 못 해서 누울 수도 없이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딸에게 인월댁은 눈꼬리를 사납게 치켜들고 닦달을 했다.
“야 이년아! 급살을 맞아 뒤져도 씨언찮을 년아. 애 아비가 누구여. 왜 말을 못 해. 도대체 애 아비가 누구냔 말이여어.”
인월댁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딸의 어깨를 쥐고 혼들었다. 딸의 상체가 가볍게 흔들렸다. 인월댁은 미움보다는 불쌍한 마음이 더 컸지만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숯불 같은 성질을 어떻게 다독거릴 방법이 없었다.
“엄니, 애기만 낳고 갈게요. 죄송해요. 안 올라고 했는디…….”
기미가 낀 뺨 위로 두 줄기 눈물을 홀리며 은희가 입을 열었다. 인월댁은 딸보다도, 이토록 엄청난 일을 겪어야 하는 세상이 더 저주스러웠고, 또 세상의 한쪽 구석에서 살아가고 있을 뱃속에 든 애 아버지가 더욱 증오스러웠다.
그녀를 더욱 미치게 하는 것은 다른 자식들의 태도였다. 아무도 그녀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인월댁을 제외한 자식들은 은희를 육교 위의 동냥아치 대하듯이 무관심하게 대했다. 큰아들 은석은 매일 술에 만취해 들어왔고, 은수는 아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은미도 제 언니의 고통 따위에는 애써 무관심했다. 단지 인월댁만이 은희의 고통을 조심스레 어루만지고 있었다.
결국 은희는 아이를 낳다 28년 동안 참고 참았던 절규를 양수처럼 요 위에 질펀하게 쏟아 놓고 죽었다. 아이는 눈이 파랗고 숱이 많은 노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파란 눈과 노란 곱슬머리가 준 충격은 딸을 잃은 슬픔을 깡그리 잊게 했다. 인월댁은 밤마다 전쟁 때 보았던 덩치가 큰 백인 병사들이 초라한 자신을 짓누르는 흉몽에 시달렸다. 흉몽은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에 갖다 줘버린 뒤까지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은미는 또 달랐다.
지난 여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밤 12시가 넘도록 은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월댁은 방에 누워서 혹시 사고가 났을까, 남자하고 여관에나 같이 갔지 않을까, 이태원인가 어디에서 술 처먹고 춤을 추고 있지 않을까, 또 애를 떼느라 미리 주사 맞고 산부인과 회복실에서 뒹굴고 있지나 않을까, 등등의 온갖 나쁜 상상은 다 하고 있었다. 막차 시간이 다 되도록 그런 상상을 계속하다가 결국 인월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찾아 들고 마중을 나갔다. 비는 세상이 인월댁을 업수이여기듯 녹슨 우산은 당치도 않다는 듯 무섭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골목으로 나서자 곧 고무신 가득 물이 차서 질척거렸다. 인월댁이 바쁜 마음으로 골목을 빠져 큰길을 허위허위 걸어나가는데 자가용이 한 대 빗속을 헤치며 올라왔다. 인월댁은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지나가는 자가용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차창 속에는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인월댁은 속엣말로 그 여자를 욕했다. ‘시상이 시끄런께 간네들이 더 염병지랄들이랑께. 그저 사내라면 환장을 혀서 쯧쯧.’ 자가용은 뜻밖에도 인월댁의 골목에 멈춰 서고 있었다. 인월댁은 웬 자가용인가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차 안을 쳐다보았다. 빗물이 홀러내려 차 안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두 형체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에이 미친것들. 세상도 말세야 말세. 아무 데서나 지랄들이니…….”
인월댁은 골목에 있는 누구네 딸이 저러는가 싶어 계속 차를 지켜봤다. 인월댁의 치마가 땅에서 튀어오른 빗방울에 거의 다 젖어 갈 무렵에야 앞좌석에 앉은 여자가 문을 열고 내려서 자가용 운전수에게 손을 흔들며 골목 안으로 뛰어들었다. 인월댁은 아찔했다. 은미였다.
인월댁은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털고 있는 은미를 주저앉혔다.
“야, 이년아. 바른 대로 대. 그 남자 누구야. 그놈하고 어디 가서 뭐 하다 왔어. 빨리 대.”
“좀 놀다가 왔어요. 그게 뭐 잘못됐어요.”
“야, 이년아. 몸띵이 고로콤 아무렇게나 굴리고 댕기는 것이 좋아. 아나 좋아. 아나 좋아. 몸띵이 그렇께 갈가리 찢어 농께 엔간히도 좋겠다. 이년아, 내가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겠다. 이년아.”
“왜, 나만 갖고 그래요. 내 몸 내가 알아서 해요. 에이 이놈의 집구석 아예 들어오지를 말아야지.”
“뭐? 안 들어와. 그래 이년아, 들어오지 말어라. 니 언니처럼 집구석에 들어와서 새끼 까놓고 에미 속 뒤집어놓고 뒈지지 말고 나가서 뒈져 이년아.”
인월댁은 눈앞에서 한풀도 꺾이지 않고 독사풀처럼 꼿꼿한 딸의 모습을 보니 불똥이 튀었다. 말대답을 또박또박 해대는 은미의 머리채를 나꿔채고 뒤흔들었다.
“너 이년. 지금 나허고 같이 뒤져 쁠자. 같이 뒈져 이년아.”
“왜 이래 씨발. 엄마면 다야. 놔.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구야. 엄마 아니야. 놔. 놔. 이 손 못 놔.”
인월댁은 은미의 말대꾸를 들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 후로 한동안 인월댁은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을 잃어가기도 했다. 먹어도 먹어도 뱃속이 허전한 것 같은 기분에 그녀는 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여자의 욕망을 다 자식에게 바쳐 온 지난 날들이 온통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은미는 그 뒤로 얼마 동안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듯하더니 곧 본래대로 저녁 늦게까지 시내를 싸돌아다녔다.
짜증과 함께 속을 뒤집어 놨던 은미에 대한 생각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끊겼다. 인월댁은 밤이면 시계를 안 보고도 텔레비전 프로그램 바뀌는 것으로 몇 시쯤 되었는가를 알았다. 뉴스가 끝나고 연속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은수는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오지 않았다.
“새끼들이 크면 나아질 줄 알았더니 클수록 더 속을 썩이는구만. 끄웅, 그저 무자식이 상팔자여…….”
매일 즐겨 보던 연속극도 오늘은 재미가 없었다. 대신 자꾸만 골목으로 신경이 쓰였다.
처벅 처벅 처벅.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인월댁은 골목으로 귀를 모았다. 그 소리는 구두의 딱딱한 밑창이 부딪혀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운동화의 물컹한 고무창이 보도블록 위를 걷는 소리였다. 은수일지도 몰랐다. 발자국 소리는 텔레비전 위의 낡은 나무 창문을 타고 점점 크게 들려 왔다.
“제발…… 제발…… 이놈아…….”
인월댁의 두 손이 어느새 포개져서 가슴께에 모여 있었다.
처벅 처벅 처벅…….
그 소리는 부엌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가버렸다.
“끄으웅, 미친놈. 올라면 싸게싸게나 오등가…….”
인월댁은 점점 작게 들리는 그 소리가 아쉬웠다.
아쉬움은 곳곳에 있었다.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되어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 때문에 팔자도 고치지 못하고 늙어 버린 자신의 청춘이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자식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못난 남편보다는 못하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요즘 들어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인월댁이었다. 자식들은 눈치나 살살 보며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새앙쥐였다. 새앙쥐들이 찬장 다리며 다락 한모퉁이를 갉아먹듯이 인월댁의 몸을 갉아먹는 것은 바로 자식들이었다. 어느 날 문득 공장에서 손가락을 잘라먹고 들어온 큰아들 은석이뿐만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대학까지 보내서 이제 졸업할 참이 되었는데 날벼락처럼 데모주동자가 되어 쫓겨다니는 둘째아들 은수, 거기다가 막내딸 은미도 한몫 하느라고 몸뚱아리 함부로 굴리다가 결국 중절수술을 두 번씩이나 한 모양이었다. 집이라고 들어와도 두 다리 죽 뻗고 쉴 만큼 편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어디 한군데라도 재미를 붙일 곳이 없는 인월댁이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좋은 옷 입고 나오는 무슨 기업 회장댁 사모님과 비교를 해보면 그야말로 자신은 그 집 강아지 만큼도 대접을 못 받는 여자가 되어 푹푹 늙고 있는 중이었다. 인월댁은 연속극 속에서 사모님과 그 아들이 결혼문제로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을 보다가 명치 밑 아랫배가 심하게 당기는 것을 느꼈다. 명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슬슬 주무르면서 인월댁은 채널을 돌려 버렸다. 심사가 아주 뒤틀리거나, 걱정 근심을 많이 하면 위장인지 창자인지가 딱딱하게 굳어서 명치 아래를 심하게 경직시켰다.
“온다냐? 안 온다냐.”
채널을 돌려 봤지만 속이 뒤집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만치 든 젊은 아가씨가 옷을 거의 다 벗고 화장품 선전을 하고 있었다. 화장품이라고는 처녀 시절에 동동구리모밖에는 발라 본 적이 없는 그녀는 그 선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월댁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아랫목에 누웠다. 차분하게 누워 등짝이나 뜨끈하게 지지면서 자식들을 기다릴 참이었다. 방바닥의 따끈한 온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온기가 어깻죽지며 엉덩이, 팔꿈치에 알맞게 퍼지자 인월댁은 버스 종점에서 장사를 하면서 옷섶을 사납게 들추어내던 차가운 바람을 생각했다. 갑자기 콧날이 찡해졌다. 아들놈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낯선 사내들에게 쫓기며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에미는 누워 있다니. 인월댁은 도저히 따뜻한 방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디. 으짠디야. 으매 짠해 죽겄능거.”
인월댁은 스웨터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코끝에 싸아하게 부딪쳐 왔다. 먼지를 쓰고 앉아 조개를 까면서도 문득문득 은수의 생각에 손칼을 놓고 멍하게 앉아 있던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그 바람이었다. 추운 겨울에 도망을 다니고 있는 자식을 위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이 물때가 시커멓게 낀 손끝으로 찬바람과 함께 전해졌다. 그럴 때마다 인월댁의 가슴 속에 시뻘건 숯불덩이를 집어넣은 것처럼 화끈화끈한 불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에이 드런 시상. 고것이 무신 죄가 있다고. 크응!”
인월댁은 혼자말로 중얼거리고는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마른 코를 힘 있게 풀었다.
골목 어귀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바라보는 거리는 한산했다. 군데군데 가로등만이 차가운 빛을 내고 있었고 한 떼의 바람이 우우우 소리를 지르며 몰려가면 바닥에 누워 있던 휴지만 불빛에 몸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는 중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가 가로등 밑을 지나 사라지곤 했다. 인월댁은 그 사람들의 걸음걸이, 몸짓 등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눈에 익은 행동거지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막차가 사람들을 토해 내고 차부 속으로 사라졌지만 기다리는 자식들은 내리지 않았다. 곧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가 되는데 껌과 신문을 팔러 나간 자식들은 보이질 않았다. 통금에 쫓겨 집으로 돌아가는 불안스런 발자국 소리와 방범의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버스 종점 가득 울려퍼지면 인월댁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못난 에미 탓에 어린 자식들이 저 거리 어디에선가 집 잃은 새 새끼들 모양 옹기종기 모여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 혼자만이 집으로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청춘을 자식들에게 다 쏟아붓고 살아왔지만, 제대로 된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나 둘째 은수에게는 각별한 기대를 걸고 살아온 그녀였다.
삼각형으로 쏟아져 내리는 가로등 아래를 두 사내가 스쳤다. 인월댁은 그들의 걸음걸이가 자식들의 것이 아님을 알고 다시 은수의 생각에 잠겼다.
온 집안의 축복을 받으며, 아니 가난한 판자촌의 축복을 받으며 은수는 대학에 들어갔다. 인월댁에게는 은수의 대학 합격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지난 겨울에 대통령이란 사람이 죽은 이후로 세상의 공기가 흉흉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은회가 집을 나가고 은수의 옷에서 풍겨 나오는 고춧가루보다 더 지독히도 매운 냄새가 그녀를 좌절감으로 빠지게 했다. 인월댁은 날이면 날마다 틈만 나면 은수를 타일렀다. 은수는 그런 에미의 마음을 알았는지 입학한 첫해, 오월이 지나면서부터 차분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인월댁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들을 보며 은희와 손가락이 잘린 은석의 고통으로부터도 서서히 놓여났다. 은수는 이학년 때부터 독서실에 나간다며 일 주일에 한 번 꼴로 집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성적도 제법 괜찮아 장학금도 적으나마 꼬박꼬박 탔다. 그런데 4학년 오월, 그러니까 지난 오월부터 갑자기 소식이 끊겼고, 대신에 형사들이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인월댁은 은수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의 두 사내가 인월댁의 앞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 골목에서는 못 보던 사람들이었다. 인월댁은 어깨를 두 손으로 엇갈리게 감쌌다. 밤이슬이 내렸는지 축축한 물기가 손바닥에 누껴졌다. 그녀는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또 하나의 사내가 가로등 밑에 나타났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걸음걸이가 팔자(八字)로 비틀대는 것을 보니 큰아들 은석이 같았다.
“으이그, 그저 씨도둑은 못 한당께. 술 처묵고 뒤진 애비 새끼 아니랠까 봐 허구헌 날 술이여. 술이…….”
인월댁은 큰아들 은석이가 술만 먹고 들어오면 주문처럼 똑같은 욕을 했다. 욕설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집어넣은 큰아들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으이그. 저 징헌 술. 나가 못 살아. 어디 에미 맘 알아주는 새끼가 하나라두 있어야 허재이. 옛말이 꼭 맞당께. 부모 복 웂는 년 서방 복 웂구, 서방 복 웂는 년 자식 복 웂다는 말이 하나두 틀링 게 웂당께.”
큰아들이 비틀거리며 걷다가 인월댁의 욕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인윌댁은 자신을 향해 성큼 다가드는 큰아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와 술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똑같은 냄새지만 오늘은 싫었다. 바로 손만 뻗치면 닿을 거리에 큰아들이 입을 묘하게 비틀며 말을 했다.
“으매! 엄니가 웬일이다요이. 여그를 다 나와 계시고. 끄윽. 집에 무신 일 있습디여. 끄윽. 그리고 엄니. 그 복타령 은수가 들어 뿔면 가만히 안 있을 판인디. 끄윽. 들어갑시다. 끄윽.”
“너나 들어가. 쥐새끼가 괭이 걱정허딜 말고. 나는 은수 지달리는 참잉 께.”
“은수우? 끄윽. 안 와요.”
은석이는 골목이 들썩하도록 말소리를 높였다. 순간 인월댁이 큰아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가. 조용히 말혀. 늠들이 들으면 으짤려고 고함을 질러싼다냐?”
인월댁은 조용히 그러나 재빠르게 큰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찌요. 나 맘인디. 은수우. 지달려 보씨요. 오능가 안 오능가?”
큰아들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말을 자꾸만 했다. 인월댁은 애가 탈 대로 타서 큰아들의 둥을 골목으로 밑었다.
“잔소리 그만 허고 싸게 들어가. 나두 금방 들어갈 참잉께.”
“알긍구만이라. 끄윽. 못 배운 큰아들, 술만 처묵는 큰아들 뭐가 좋아 지달렸겼소. 끄윽. 그래도 잘난 짜근아들이 낫제. 끄윽.”
인월댁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야가. 못 묵는 술을 먹었대. 왜 그런다냐. 싸게 들어가. 그런찬어도 가심이 마른 장자 피운 것맨치로 널렁거려 축겄는디 왜 또 어그짱 박는대?”
“알겄소. 끄윽. 들어가지라. 미련 없이 후회도 없이 들어가지라. 끄윽.”
터벅 터벅 터벅…….
큰아들의 멀어져 가는 등짝에서 울려 나오는 힘없는 발자국 소리가 인월댁의 가슴에 서늘하게 와닿았다. 가슴속이 불지옥처럼 답답했다. 내일모레면 삼십인데 아직 장가갈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큰아들이었다. 인월댁은 큰아들의 힘없는 발자국 소리에 쏟아져 나오는 칼날 같은 바람에 가슴이 섬뜩하게 베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은미도 은수도 포기하고 둘만이 쓸쓸한 저녁을 먹어야 될 것 같은 예감에 빠져들었다.
“내 주제에…….”
인월댁의 눈에서 그렁그렁 배어 나오는 눈물에 가로등 불빛이 짧게 반사되었다.
“킁.”
그녀는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눈가의 물기를 찍어 내고는 다시 마른 코를 풀었다. 큰아들이 술기운에 곯아떨어지기 전에 저녁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에 발을 컴컴한 골목으로 떼어 옮겼다.
차박 차박 차박…….
인월댁의 허깨비같이 가벼우면서도 천근같은 발자국 소리가 긴 골목에 스며들었다.
“잘려면 밥 묵고 자. 몸 베려.”
안방에 엎드려 있는 큰아들을 보면서 인월댁이 말했다.
“……”
“싸게 인나. 인나야 밥을 묵을 것 아녀.”
그녀가 큰아들의 등을 흔들었다.
“에이 귀찮아. 안 묵어도 되는디. 끄윽. 어서 채려 주씨요. 끄윽.”
큰아들은 인월댁이 밥만큼은 지성으로 먹이고야 마는 성질을 알기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꾸물꾸물 일어났다.
“좀 지달려, 자덜 말고. 된장 좀 데워 올 뎅께. 다 식어빠졌어.”
큰아들이 텔레비전을 켰는지 부엌 에서도 아나운서의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뉴스가 들렸다. 아주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좀 줄여. 시끄런께.”
인월댁은 방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따뜻한 화덕에 걸터앉은 인월댁은 열려진 부엌문 밖의 어둠에 망연히 시선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은수가 곧 ‘엄니’ 하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연탄불의 화력이 좋은지 금방 된장 끓는 소리가 났다. 인월댁은 시선을 돌려 된장 냄비를 쳐다봤다. 파랸 연탄불꽃이 뱀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냄비를 둘러싸고 있었다. 불꽃의 한가운데에서 냄비뚜껑이 들썩 거렸다.
들썩거리는 냄비 뚜껑을 보니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말을 더듬던 은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니이. 그것이 아니랑께요. 제발 그 복타령 좀 쪼께 들어 보씨요.”
은수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말을 이었다.
“엄니가 부모 복이 없다는 것은 조선시대나 왜놈 치하에서 머슴살이를 했거나 소작 부치던 부모에게서 태어났응께 당연한 일 아니겠소. 그런께 서방도 부모 같은 머슴이나 소작인 자슥 중에서 맞는 거 아니겠소.”
인월댁은 그래도 배웠다는 자식이 그런 당연한 소리를 내뱉는 것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놈아. 넌 배웠고 난 못 배워성 그런다, 이놈아. 그래 맘껏 무시해라 무시 혀.”
“아따 참, 엄니도. 나가 언제 엄니를 무시혔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엄니의 복타령 속에는 짚은 뜻이 있는디 그것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복쪼가리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가 또 그런 사람과 살 대고 사는 것은 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끼리끼리 살게 하는 세상 때문이랑께요.”
“야 이놈아. 니깐 것이 시상을 얼마나 안다고 시상 시상 해쌓냐. 니 말대로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녀. 시상이란 것은 이놈아. 천방지축으로 날뛰지 말고 공부나 혀. 그래야 시상이 널 알아중께.”
“아따 엄니도. 내 말은 그런 것이 아니고 하루 종일 일만 해도 허천나게 가난하고, 복이 없는 원인이 엄니처럼 개인적인 복타령에 있는 것이 아닝께 고로코름 알고, 그것의 뿌리가 되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당께요.”
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g
은수의 말이 인월댁에게는 무섭게 들렸다. 왜놈 치하에서 소작쟁의를 하다가 마름의 괭이에 맞아죽은 친정 큰오빠의 푸르딩딩한 얼굴이 떠올라 소름이 쫘악 끼쳤다.
“으음, 모진 놈의 새끼.”
인월댁은 자신도 모르게 어둠을 향해 혼자말을 했다. 갑자기 화덕에서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인월댁은 황급히 된장 냄비를 쳐다 봤다. 된장이 넘쳐흘러 연탄 위에서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녀는 치맛자락으로 된장 냄비를 싸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야, 큰애야. 밥 묵어라.”
상 가운데 냄비를 올려놓고 요 밑에서 밥그릇을 꺼내며 말했다. 큰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밥상에 앉았다. 굳어진 얼굴 표정에는 어떤 심각함이 서려 있었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냐?”
“일은 무슨 일요. 엄니는 안 묵는다요?”
“되았다. 니 동생들 들어오면 같이 묵을란다.”
“근디 요새 은미년은 워디를 고로콤 싸댕 긴다요?”
“나도 모르겠다.”
인월댁은 간단하게 한마디만을 던지고는 텔레비전 앞에서 돌아앉았다. 어느덧 뉴스가 끝나고 일일사극을 하고 있었다.
뚜벅 뚝 뚜벅 뚝.
부엌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알아들을 수 없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누구세요?”
인월댁이 방문을 열고 자라처럼 목을 길게 뻬어 부엌문 쪽을 쳐다봤다. 두 명의 사내가 어둠 저편에 희끄무레한 형체로 서 있었다.
“여기가 김은수네 집 맞죠?”
인월댁의 간이 콩알만하게 오그라들었다. 사내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은수가 끌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그런디요. 위치……·케 왔다요?”
“실례합니다.”
“좀 들어갑시다.”
두 사내는 각기 한마디씩을 내뱉고는 거침없이 부엌 안으로 들어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인월댁은 얼떨결에 인사를 받고 자신도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아까 골목 어귀에서 스쳐 지나간 사내들이었다.
“저희는 ○○경찰서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댁의 아드님을 찾고 있습니다만…….”
“그……· 그런디요?”
인월댁이 한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에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두 사내는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구두를 벗고 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아!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들어오지를 말든지.”
은석이가 수저를 놓으며 받아치는 말에 가시가 박혔다는 것을 느낀 인월댁의 안색이 추위에 질린 뺨처럼 파랗게 변했다. 혹시나 큰아들 은석에게도 해가 미치지나 않을까 싶어 가슴이 자꾸만 떨려 왔다.
“야는! 왜 뜬금없이 나서 싼다냐? 싸게 밥 묵어 야아. 그리고 우우리 은수는 지지금 지집에 웂는디요.”
“아一 안심하세요. 없는 줄 알고 왔습니다. 몇 가지 사항만 묻고 갈 테니 협조 좀 해주십시오.”
“저희도 죽을 맛입니다. 다 먹고살려니까 어쩔 수가 없네요. 아드님이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고…….”
인월댁의 뛰는 가슴은 좀체로 진정되지 않았다. 두 사내가 앉아 있는 방 안이 갑자기 좁게 보였으며, 그녀는 낯선 집을 방문한 손님처럼 방 안의 풍경을 어색하게만 바라봤다. 두 사내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사내들이 은수가 집에 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싶어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은수는 어디 있습니까?”
조금 뚱뚱해 보이는 사내가 인월댁의 얼굴을 찬찬히 보며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사내의 말투는 은수가 집에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단정적이었다. 인월댁은 은수가 집에 없었음에도 아찔했다.
“우…… 우리 은수는 도통 집에 안 들어오는디…….”
“아주머니, 집에는 안 들어와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뚱뚱한 사내에 비해 약간 마른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인월댁은 사내의 잔인해 보이는 눈빛을 보자 언뜻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자꾸만 당황해서는 안 되며 정면으로 말을 되받아야 사내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영악스런 눈으로 말을 했던 사내를 마주 보았다.
“나가 워치케 알긍소. 나보담은 자네들이 찾아댕긴다니께 더 잘 알고 있긍그만. 혹시 소식 들응 거 있으믄 알려주씨요. 나두 궁금혀서 환장허겼응께.”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협조해 주십시오. 협조만 하면 우리도 잘 봐줄 수가 있으니까요.”
“엄니, 상 치우시요. 밥맛 다 달아나 뿐졌소. 그리고 나가 한마디 끼여드는디요. 혀도 혀도 너무들 해쌓소. 날이면 날마다 공장에 와서 죽치고 있응께 사람이 전딜 수가 있어야제. 은수 그새끼가 뭘 워치케 혔능가는 몰라도 허구헌 날 나꺼지 졸졸 강아지새끼모냥 따라댕길 건 뭐다요. 게엘국 오늘 직장에서도 모가지 되았는디. 시방 우리 모자더러 집을 나가 달라고 왔소? 고것이 아니면 당장 나가시요.”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큰아들의 말을 듣자 인월댁의 가슴은 십수 년 전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완행열차의 종착역인 용산역 앞 광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의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낯선 거리에 눈이 휘둥그래진 자식들은 저마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쌀쌀한 초봄의 바람에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 자식들이 스무 살이 넘게 큰 지금이나 그때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오히려 더 애간장이 타는 지옥 같은 이 방 안의 현실 앞에서 인월댁은 울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악착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 사람 노릇을 하며 살려고 버둥거리면 거릴수록 사람 노릇은 고사하고 점점 비참한 생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거기에다가 자식들은 하나같이 에미의 맘과는 반대로 행동을 하였다. 은수녀석 하나라도 에미를 이해하고 제대로 커나갈 줄 믿었는데 이건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둥을 사정없이 찍힌 꼴이었다. 더구나 은수 때문에 은석이마저 직장을 잃다니, 산동네에서 구청 직원들의 무작스런 해머질에 부서져 날리던 판잣집의 조각들을 보며 악에 받쳐 몸을 부들부들 떨던 때의 부아와 난감함이 밀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은수 있는 곳만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곧 조처하겠습니다.”
“조처? 웃기는 소리 마씨요. 당신들을 믿어요? 차라리 뒈진 여동생이 살아나는 것을 믿지. 잔소리 그만 허고 가씨요. 속에서 천불난께!”
인월댁은 큰아들이 사내들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저러다가 감정이 북받쳐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보는 형사들이란 영리하고 힘도 장사일 뿐만 아니라 권총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큰아들을 작은방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가 술이 취해도 단단히 취했구만.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 그만 허고 싸게 건너가 자!”
“엄니, 나 술 안 취했습니다. 좀 앉았다 갈 팅께 그리 아시씨요. 내 동생 일잉께 나도 좀 듣구 압시다.”
큰아들이 밥상에서 몸을 돌려 앉았다.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저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형씨도 앉아 계시지요. 금방 가겠습니다. 은수 있는 곳만 알려주세요.”
은수가 오기 전에 이들을 돌려보내야 하는데, 적당한 구실이 언뜻 떠오르지를 않았다. 재수가 없어도 아주 더럽게 없는 날이었다. 하필 은수가 온다는 날에, 한동안 뜸하던 형사들이 찾아왔으니 지금 한창 집을 향해 오고 있을 작은아들을 생각하자 그녀의 이마에는 진땀이 솟아나오고 몸살이라도 결린 듯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형사의 말끝에 골목을 잔잔하게 울리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인월댁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방 안에 두억시니 같은 형사들이 버티고 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엄마” 하고 은수가 들어온다면……· 인월댁의 등짝으로 스멀스멀 땀방울이 기어내렸다. 심하게 체한 것처럼 다시 명치 아래가 못견딜 정도로 당겼다. 그녀는 손끝으로 배를 지그시 눌렀다. 두 형사가 인월댁의 갑작스런 변화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얼굴이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들이 눈치채기 전에 은수를 빼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 꽉 들어찼다. 마땅한 구실을 찾고 있던 인월댁의 눈에 윗목에 밥상이 보였다. 인월댁은 그것을 들고 부엌으로 나갔다. 밥상을 내려놓고 급히 문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골목을 쳐다봤다.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니 은수가 아니었다. 인월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골목을 가득 채우며 불어오는 밤바람이 시원하였다.
“저어, 아주머니. 은수가 있을 만한 곳을 좀 알려주세요.”
“참 아저씨도 딱허시요잉. 그 동안 친척이라면 사돈의 팔촌네꺼지도 다 뒤진 사람들이 으째 그것 하나 못 잡고 에미헌티 왔다요. 내 자슥이 설사 못된 도둑놈이라고 혀도 안 가르쳐 줄 판인디 더군다나 뭐다냐 나라에 진 죄는 죄도 아니라고 허등만.”
“아주머니 저희도 다 압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정하는 거 아닙니까. 은수가 있는 곳만 알려주시면 설사 잡아도 자수한 걸로 할 테니 좀 알려 주세요.”
“그렇게 하셔요, 아주머니. 자수만 하면 간첩도 그냥 풀어 줍니다. 아주머니가 알려주시면 자수한 걸로 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쪽이 이익인가를 잘 생각해 보세요.”
“자수?”
자수라는 말이 인월댁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간첩도 자수를 하면 광명을 준다는데 은수가 자수를 하면…… 더구나 간첩죄보다 큰 죄는 없는데…… 형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오늘 찾아온 형사들은 어쩐지 인간적인 것 같았다. 여태까지 집을 들락거리던 사람들처럼 윽박지르지도 않고 차근차근 사정조로 말을 하는 것이 믿을 만했으며, 은수가 오늘 ‘집에 온다’고 말을 해도 괜찮을 성싶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속이고 데모를 한 소행이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냥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이 생겨 다행스러웠다.
“은수 그새끼 어디 있는지 나가 먼저 알고 싶소.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다리몽뎅이를 확 분질러 놓을 판잉께. 엄니 알고 있으면 나헌티 먼저 알려주씨요. 자수는 무슨 자수, 그냥 죽여 뿌려야제.”
인월댁은 움찔했다. 여태 은수에 대해 이렇다할 특별한 태도를 보이지 않던 큰아들이 오늘은 이상했다. 오히려 조금씩 역성을 들던 사람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것 같아 인월댁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설마 죽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어디에 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증말 자수하면 금방 풀려날 수 있다요?”
“그럼요.”
“아따 엄니는 추접스럽게 뭘 그런 거를 자꾸 물어 본다요. 가만히나 계시씨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자수는 무슨 자수. 죄를 졌으면 감옥에 가야지.”
제 동생을 꼭 감옥에 처넣어야 속이 풀릴 것처럼 말을 하는 큰아들을 쳐다보는 인월댁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몰려 있었다. 형사들에게 입도 벙긋 못 하게 다그치는 은석이의 꼴을 보기 싫어 인월댁은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 한구석이 비어 나가는 느낌에 형사들만 없다면 큰 아들에게 한바탕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추운 겨울에 자식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 에미의 속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저렇게 독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저희가 책임을 질 테니 알려주십시오, 아주머니. 도망을 치는 사람이나 우리나 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우리는 차라리 낫습니다. 뜨신밥에다 그래도 잘 때는 집에 가서 자니까요.”
형사의 말이 옳았다. 지금쯤 은수는 눈이 퀭하게 쑥 들어가고 몸도 많이 상해 있을 터였다. 수중에 무슨 돈이 있어 배를 채우고 다녔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느라 하루라도 맘 편히 밥을 제대로 넘긴 적이 없는 인월댁이었다. 가끔가다 바람처럼 한두 마디 들려 오는 소식을 곰곰이 따져 보면 몸에 나쁘다는 라면만 먹는 모양이었다. 인월댁은 요의 중간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밥을 쳐다봤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요 밑에 따뜻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밥을 먹이고 싶었다. 그런데 형사들이 이렇게 버티고 앉아 있으니 밥을 먹이긴 다 틀린 것 같았다.
“자수를 시키세요, 아주머니. 우리를 믿으세요.”
자수라는 말이 자꾸만 와닿았다. 혹 자수를 시키면 어떻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이 형사들이 조금 양해만 해준다면…… 인월댁은 곧 은수가 온다고 말을 해야 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믿기는 뭘 믿어. 당신들을 믿어. 애먼 사람 직장에서 쫓아내는 당신들을 믿으란 말이지. 웃기지 말더라고. 웃기지 말고 싸게 가씨요. 피곤항께 자야겠수다.”
“큰애야아. 싸게 건너가 자랑께 왜 자꾸 나서 싼다냐 나서 쌓길.”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그렇다면 은수의 사진이라도 좀 보여 주세요.”
“사진은 뭐 할라고 보여 달란다요?”
“예. 저희가 새로 은수를 담당하게 되어 얼굴도 모르고 그래서 그럽니다.”
“사진 가져가면 안 되는디. 은수가 애끼는 물건들잉께.”
“그냥 보기만 할 테니까 좀 보여 주세요.”
“사진보다도……·.”
“엄니이! 무슨 말이 그리 많다요. 싸게 앨범 갖다 주씨요. 사진이나 보고 가게. 그것 보고 싸게들 가씨요. 좀 쉬고 잪은께.”
큰아들의 볼멘 목소리가 인월댁의 말을 중동에서 끊어 버렸다. 오늘따라 말을 못 하게 하는 큰아들이 심상치 않았다. 인월댁은 입을 다물고 은수의 앨범을 찾아 그들 앞에 내밀었다. 방 한가운데에서 오래된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앨범을 쳐다보는 그들의 눈동자는 징그러울 정도로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인월댁도 앨범을 쳐다봤다. 은수가 바보처럼 웃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착하고 순진했던 은수의 지난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자식, 그러나 그 자식은 지금 절망이었다. 남편이 죽었을 때에는 자식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겼지만 은수가 저 지경으로 쫓겨다니자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인월댁이었다.
“사진 잘 봤습니다.”
앨범을 내밀며 뚱뚱한 사내가 사진 두어 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인월댁은 말과는 달리 사진을 챙기는 것을 보자 이상스러웠다.
“사진은 뭐 한다고 가져간다요. 일루 내놓으시요.”
“죄송합니다. 이것만 가져가겠습니다. 꼭 필요한 데가 있어서요.”
사진이 필요한 데가 있다는 형사의 말에 인월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파출소나 동사무소 또는 종점 옆의 방범초소에 붙어 있던 강도나 도둑놈들의 험상궂은 얼굴이 두 줄로 박혀 있는 종이가 생각났다. 은수가 사진까지 찍혀서 거리거리마다 나붙어야 한다니…… 인월댁은 형사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싸게 돌려주씨요. 사진 갖고는 못 강께.”
“괜찮습니다, 아주머니.”
“괜찮기는 뭐가 괜찮어!”
형사들의 품속에 은수가 갑갑하게 갇혀 있는 듯한 느낌에 인월댁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니, 그냥 보내씨요. 나가 뭐라 헙디여. 믿지 맡랑께.”
큰아들의 그냥 보내라는 말에 인월댁은 더 부아가 솟구쳤다. 속은 것도 분한데 사진까지 줘서 보내자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처벅 처벅……· 처벅 처벅…….
갑자기 골목 어귀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틀림없는 은수였다. 끝까지 에미 가슴에다 대못을 박는 자식의 발자국 소리였다. 오늘은 차라리 듣지 않아야 할 발자국 소리가 인월댁의 가슴을 찍어누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요 아래의 밥그릇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얼른 그것을 외면했다. 인월댁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방 안에 형사가 있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신호를 보냈다가는 눈치를 챌 것이 뻔하고, 인월댁의 가슴이 빠르게 두방망이질을 쳤다. 피가 모두 얼굴로 몰리는 듯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사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조금 덜 뚱뚱한 형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처벅 처벅…… 처벅.
발자국 소리는 벌써 가까이 와 있었다. 인윌댁은 제발 은수가 아니길 빌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부엌문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인월댁의 심장도 멎는 듯했다. 형사들이 말없이 일어섰다.
“엄니…….”
은수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듣고 싶은 목소리였던가.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아들여도 시원치 않을 자식이 왔는데도 인월댁은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인월댁은 대답 대신 형사들의 동정을 살폈다. 일어서서 바깥의 동정을 살피는 형사의 허리춤에서 수갑이 보였다.
“엄니이, 나요 은수우.”
순간 두 형사가 방문을 벌컥 열어제쳤다. 동시에 인월댁은 두 형사의 다리를 끌어안고 악을 썼다.
“은수우야, 싸게 달아나 은수야 너를 잡을라고…….”
타다다다닥.
골목길을 빠르게 달려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귀에 들렸다. 큰아들과 인월댁이 두 형사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아니, 이 늙은이가. 야, 둘 다 조져.”
뚱뚱한 형사가 큰아들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은석의 코에서 피가 터져 흘렀다.
“으은석아, 야 이 백정놈들아……· 헉.”
다른 한 형사가 팔꿈치로 인월댁˙의 야윈 등을 깊숙이 내려찍었다.
다리를 부둥켜안고 있던 두 사람의 팔이 힘없이 풀리며 방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요 밑에 깔린 밥그릇이 덜커덕 넘어졌다.
(『친구는 멀리 갔어도』, 풀빛, 1988)
2016년 5월 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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