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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 (218)
▶신앙이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는 것이 죄를 덜 짓는 것이라 생각하고 외롭게 외딴곳에 따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기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비가 오나 했는데, 비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홍수경보가 발효되었고, 빨리 안전지대로 대피하라는 방송이 급하게 들려왔습니다. 남들은 다 안전지대로 피난을 가는데 이 사람만은 하나님께 기도만 합니다.
"하나님! 이 홍수에서 우리의 집과 재산 그리고 온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나가 보았더니 어떤 청년이 트럭을 가지고 와서 빨리 트럭에 올라타 안전지대로 피해야 산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해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트럭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기도를 합니다. "노아의 가족을 구하듯이 우리 가족도 구하옵소서!"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 이네 사방이 물바다가 되어갑니다. 그때 밖에서 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가보니 어떤 사람 하나가 보트 하나를 가지고 와서 얼른 타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커다란 방주라면 몰라도 그 조그마한 보트에는 탈수가 없었습니다. 노아의 온 가족과 재산을 구원하듯, 자기 식구들과 재산을 구원하려면 큰 방주가 있어야지 그 조그마한 보트에는 어림도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은 계속 기도만 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으니 구원해 주시옵소서!"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지붕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드디어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구원해 주시나 보다"하고 나가보았더니 헬리콥터 한 대가 지붕 위에 떠있는데, 밧줄 한 가닥이 내려져 있고, 위에서 빨리 잡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밧줄에 매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밧줄보다는 조그마한 보트가 났고, 보트보다는 트럭이 좋았습니다. 그는 헬리콥터에서 내려준 밧줄을 거절했습니다.
마침내 언덕은 물바다로 변하고 그 집도 물에 잠겨 붕괴되었으며 그도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가 죽어서 주님 앞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주님을 보자마자 "제가 얼마나 기도했는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따졌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고집쟁이야! 내가 세 번이나 너를 구원하려고 트럭을 보내고, 보트를 보내고, 헬리콥터를 보냈는데 네가 거절했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책망만 받았답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그런 믿음은 교만한 믿음이요,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의 여류 기독교 소설가인 미우라 아야꼬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때 척추에 이상이 생겨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만 지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척추를 다쳐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에게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밝은 웃음을 선사하기로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그리고는 그때부터 자신의 얼굴 표정을 밝게 하면서, 보는 사람마다 웃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를 보아도 환하게 웃고, 간호사를 보아도 환하게 웃고, 옆에 있는 환자를 보아도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허리를 다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계시는 분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즐겁습니까?"
그때마다 미우라 아야 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너무도 행복하답니다."
그는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내가 건강할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었다."
우리가 형통할 때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얼마든지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는 고난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형통할 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남군의 리장군은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워싱턴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펜실베니아주의 게티스버그를 향해서 밀어닥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백악관에서는 링컨 대통령을 위시한 각료회의가 열렸습니다. 모두들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링컨 대통령만큼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각료 가운데 한 사람이 놀랍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각하, 지금 리장군의 군대가 게티스버그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미국 전역이 전쟁의 도가니로 변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그처럼 침착하실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링컨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소.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소.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오. 어제도 역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소. 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에게 승리가 있을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우리가 두려워할 까닭이 무엇이겠소?"
링컨 대통령의 그 말에 모든 각료는 마음의 평안해졌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박물관에 가면 링컨 대통령이 쓰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속에는 너무나도 자주 보아서 눈에 드러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변에는 눈물 자국도 있습니다. 단어마다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손때 묻은 자국도 있습니다. 시34:4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링컨은 살아오면서 많은 실패를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남북 전쟁을 비롯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시34:4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 낸시는 세상을 떴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낸시는 사랑하는 아들 에이브라함 링컨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네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도, 위인이 되는 것보다도 성경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부디 매일 성경을 읽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삶의 위기가 닥칠 때는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도록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말이다."
링컨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면서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세 분의 목사님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이름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 사래에게는 사라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며,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교회의 이름을 꼭 좀 바꾸어주시도록 간곡한 청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청을 들으시고 사도 베드로를 그들에게 보내시며 진상을 알아보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분의 목사님들을 만나서 면담을 한 후에, 우선 목사님들이 주일날 설교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세 개씩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다 듣고 난 후에 교회 이름에 대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목사님들이 제출한 설교테이프를 다 듣고 난 뒤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는 그만하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설교를 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첫 번째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설교를 들을 때 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남자들이 많이 좁니다."
베드로는 그 말을 듣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그 교회의 이름을 조는 교회라고 지읍시다."
두 번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예배시간에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경향이 많습니다. 설교 시간에 괜히 쓸데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고, 주보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쪽지를 적어서 옆 사람에게 건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을 듣더니 기가 막힌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설교 시간에 완전히 딴전을 피우고 있구먼요. 그렇다면 그 교회 이름을 딴전 교회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우리 교인들은 졸지도 않고, 딴전을 피우지도 않고 다 좋은데, 아멘이 너무 없어서 좀 냉랭한 분위기입니다."
베드로는 그 교회 이름을 아멘이 없다는 뜻으로 노멘 교회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세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는 즉시 그 이름들이 바뀌었습니다. 교인들은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사도 베드로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기에 불평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신앙 상태를 회개하면서, 하루 속히 자신들의 오명을 벗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태도를 바르게 한 결과 얼마가지 않아서 조는 교회는 말씀을 잘 듣는 교회로 주변에 알려지게 되었고, 딴전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또 노멘 교회는 아멘 교회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신학자[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말을 타고 시골로 사냥을 가면서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길에서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여인이었기에 그만 첫 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생각나고 그리웠습니다.
그는'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내 사랑의 진실을 믿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는 괜찮지만 여자 쪽에서 볼 때 신분의 격차도 있고 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그 여인도 자기를 사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궁리를 합니다. 날마다 쉽게 자기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저도 자기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던 끝에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가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세 얻고 목수가 됩니다. 목수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박한 생활 속에 엄청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동네 사람들과 정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여인하고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고백합니다."내가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듯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찾아왔노라"고.... 비로소 이 여인은 왕자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믿고, 깨닫고 받아들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언젠가 위대한 힘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통하게 마련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사랑을 5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은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만나는 많은 사람 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사랑은 존경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위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것이 존경이고 이 존경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란 말을 영어로는Understand라고 합니다. 뜻은‘아래에 서다’란 뜻입니다. 이 단어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낮추고 상대방을 바라볼 때 가장 올바른 이해가 될 수 있다는 중요한 말입니다.
넷째로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과 권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매사에 의무보다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 책임감이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 이전에 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한 가지 소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위한 소원을 묻습니다.
그때 아기의 엄마는“이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엄마로서의 간절한 소망을 말합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이 아이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할 줄 몰랐고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큰 고민에 빠져 우울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노인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간곡히 소원을 말합니다.“제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제 아이가 사랑받기보다는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소원을 다시 빌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예일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urg)]가 <사랑의 삼각 이론>이라는 유명한 이론을 말했습니다.
"사랑은 마치 정삼각형처럼 균형이 잡혀야 참 사랑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그 삼각의 첫째 요소가 뭐냐 하면 <친밀감>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우선적으로 친밀함을 느껴야 됩니다. '저 사람과 나는 가깝다.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나의 사정을 잘 알아준다.' 이 정도의 친밀감을 느끼는 정서가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정열>입니다.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로맨틱하기도 하고 때로는 욕망으로 치달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하려고 하고 꼭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열인데 그런 마음의 뿌리에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삼각이론 중 세 번째 요소는 <약속과 책임>입니다. 사랑을 하면 약속이 확실하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저 사람의 실수가 곧 나의 실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입니다. 자식의 실수를 내 탓이라고 아내의 잘못도 내 잘못이라고 남편의 잘못도 그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책임을 지는 마음이 그게 사랑이거든요. 자, 이것이 삼각형처럼 꼭 균형을 잡아야 된대요. 왜냐하면 친밀감에 치우치면 감상주의자가 되어 버립니다.
또 정열에 치우치게 되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정신을 못 차립니다. 또한 약속과 책임, 이 의무에 지나치게 치우치게 되면 아주 메마르게 됩니다. 그런고로, 이 세 요소가 함께 합쳐서 정삼각형처럼 이 세 변이 같은 길이로 세 각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참 사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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