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전에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할머니가 키?다. 김활란 선교사가 한국인으로 키웠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미국인과 함께 결혼하였다. 그러나 이상한 남편이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 도 가장 아려웠던 것이 결혼이었다. 그때에 예수님을 만났다.그리고 예수님이 참된 행복을 찾았다. <내 주여..>하고 찬송을 부르는 순간 예수님이 그녀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인생을 바치기로 하였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 일찍밥을 해준 적이 없던 그녀가 병원의 환자들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요리해서 날라다 주었다.
차유람 당구선수 (현 2015년 28세)
시합에서 졌을 때 하나님께 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한다.
당구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목사님은 하나님은 네가 승리않해도 좋아
하나님은 다만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다. 현재 20살.
세계챔피온이 되어 떴을 때 주목을 받자 하나님과 멀어졌고 어려운 시기였다.
말씀을 못 받아 일주일에 3번 이상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한다.
단양아름다운기도원장 간증집회(2)
미국에서 처음 가난하여 5년간 의사로 일하였으나 봉급이 적어 일 ?내고 청소하고 그다음은 택시를 운전하였다.
5년후 병원을 개업하여 한방병원이 잘 되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50에 처음 딸을 나았다. 그 딸이 귀여웠다. 그래서 아침에 정한수 생수를 떠놓고 단군할아버지에게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피겨선수로 키웠다. 딸은 김연아 선수의 연숩파트너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60살이 되자 가정이 깨지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 참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20년의 이민 생활을 접고맨 몸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90세인. 어머니는 중풍으로 쓸어져 계셨다. 동에 가서 주민 등록을 새롭게 만들어 독거노인으로 보조를 받아 일년을 살았다.
그때 한 장로님이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 교회에 가라고 하여 가 열심히 주님을 믿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면 되는 것을 께달았다. 그리고 요르단 선교사로 중동으로 갔다. 그당시 그는 기고만장하였다. 한 목사님이 당신이 당신 명예를 위해 치료를 하였으므로 지옥갈거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때 신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그때 아내와 같이 신학교에서 시작하였다. 1년전에 목사안수받고 작은 교회를 섬기기로 맘을 먹었다.
다시 돈을 벌을 유혹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아내와 두가지 원칙을 정하였다. 첫째로 한 차에 실을 수 있는 짐정도만 갖는다. 둘째로 남에게 빚을 지지 않는다. 애냐하면 떠날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현재의 아내와 저는 20살 차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이다.
술담배를 끝도록 돕는 것이 중풍을 예방하는 것이다.
회복의동산교회, 이동철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