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김홍래
간들바람이 들판을 적시면서 곡식들이 토실하게 영글었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검푸르던 나뭇잎도 물감을 흩뿌린 듯 붉게 물들었다. 높다란 하늘은 말갛고 엷게 푸르다. 연이틀 가을비가 뿌리더니 기온이 내려갈 무렵이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한테서 ‘커피 자루’를 구해 놓았으니 가지고 가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몇 달 전이었다. 농촌에서 두루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커피 자루’를 보내주겠다고 했었다. 친환경 소재인 야자수 껍질로 만든 것이라서 환경오염 문제도 전혀 없다고 했다. 나는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친구의 권유를 사양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농장 입구에 주차장이 비만 오면 질어서 주차에 어려움이 있고 또 겨울에 어린나무를 보온하기 위해서 감싸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좀 구하고 싶다고 했더니 구해 준다고 할 적에는 필요 없다고 하다가 인제 와서 또 구해 달라고 하느냐며 핀잔을 준다. 언제부터인가 커피 자루를 모 기업에서 모두 구매해 가서 최근에는 개인이 구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었다. 그러던 차에 ‘커피 자루’를 구해 놓았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30~40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였으나 친구는 용달차로 1대 분량을 구해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몸이 아파 치료차 병원에 가려고 인천에 와있는 중이어서 반가우면서도 사실 좀 난감하고 마음 겨웠다. 운반이 문제였다. 화물차를 빌리자니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해서 화물차 운임도 만만치 않았다. 배보다도 배꼽이 크다고나 할까? 나는 택배로 가능한 양 만큼만 보내 달라고 하였으나 친구는 굳이 모두 가져가서 필요한 곳에 쓰고 남으면 썩혀서 퇴비를 만들어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부탁을 하였으니 더는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실로 사정이 딱하게 된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데 서울 친구가 00한테 부탁해보라고 한다. 나는 화물차도 없거니와 몸이 불편하여 병원 신세를 지는 형편이다. 일이 생겼으니 수습을 해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동네 사는 00친구에게 부탁하였다. 습습한 친구는 흔쾌히 짐을 실어다 주겠노라고 한다. 미안하고 고맙기 그망없다. 동네 친구는 친구 부인과 함께 ‘커피 자루’를 보관 중인 경기도 용인으로 가고, 서울에 사는 친구도 부인과 함께 용인으로 와서 두 부부가 함께 짐을 정리하여 차에 실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도와주는 것만도 몹시 미안한데, 부인들까지 발 벗고 나서서 일하셨다니 정말 염치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아내는 괜스레 일을 벌여서 여러 사람을 번거롭게 한다며 나무란다. 짐을 싣고 온 친구한테 좀 가져가라고 해도 자기는 소용이 없다고 하더니 얼마 후 친구가 몇 장만 가져다 쓰겠다고 한다. 그나마 이제 내가 조금 덜 미안하다.
나중에 가보니 “커피 자루”가 생각보다 무척 많았다. 1t 화물차로 높이 쌓아 꽉 찬 한 대 분량이니 그 많은 짐을 내리는 것도 문제였다. 양이 너무나 많아서 혼자 내리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화물을 싣고 온 친구가 지인에게 부탁하여 두 사람이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농장 입구에 반듯하게 쌓아서 비닐까지 덮어 각단지게 잘 갈무리해 놓아서 눈비가 와도 걱정 없겠다.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이 고맙고 고맙다. ‘커피 자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좋았다.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어린나무 보온을 해주어야 한다. 옛날에는 볏짚으로 어린나무를 감싸주었지만, 요즘은 볏짚이 모두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어 구하기가 어렵다. 보름 후 누님이 커피 자루 20여 장을 가져다가 감나무를 감싸 주었더니 아주 맞갖다고 하신다. 나보다도 누님이 먼저 제대로 이용한 것이다. 나도 감나무를 보온해 주고 비가 오면 진 주차장 바닥에 깔았다. 질지 않고 보기도 좋고 약간의 쿠션감도 있어서 좋다. 흐뭇하다. 고향 친구들 덕분에 농사에 필요한 자재를 쉽게 많이 구한 셈이다. 아픈 친구를 배려해준 친구들의 진한 우정에 느껍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란 인디언 속담이 있다. 언제나 어려움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친구란 인생길을 함께하는 도반이기에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고 한다. 서그럽고 든직한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올 겨울은 여느 해 겨울보다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명심보감 교우 편에 있는 한 구절을 뇌어 본다.
路遙知馬力이요 日久見人心이니라
먼 길을 가보아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오랜 세월을 지내보아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명심보감 교우 편 부분」
아내가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고 해서 고향의 사과 상자에 정성과 온정을 듬뿍 담아 보냈다. 나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주면 좋겠다. 친구들의 고마움을 과일 한 상자로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인지상정이다. 이런 친구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어느새 산하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다. 그래도 어디 두 친구의 우정보다 아름답겠는가! 서울에 사는 친구가 내려오면 촌 두부와 파전을 부쳐서 막걸리라도 넉넉하게 대접해야겠다.
2020.12.25
첫댓글 올리신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사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옛 친구가 가까이 있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지요,
글을 읽으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두부에 파전을 부쳐 친구와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건강하시고 보람 찬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한해도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가 극심합니다. 조심하시고
건강한 겨울 나시기 바랍니다.
정말 오랫만에 가슴이 뭉클한 글을 대면했어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심한 짐을 친구분이 지셨어요.
그런데도 싫은 기색이 없이 참으로 대한다는 마음 자체가 너무 천사같습니다.
너무 감동이 와닿았어요.
오래오래 변치않으시길 두손 꼬옥 모아봅니다... 감사합니다.
허술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 들어 가면 친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따뜻하고 포근한 글들이 ..글쓴이의 고운 마음씨가 곱게도 들어있는듯 싶군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
졸작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즐감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
정말 친구만큼 소중한 보물도 없는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보석같은 친구네요... 두분의 우정이 영원하시길~~~
친구가 있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슴 뭉쿨하네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진정한 친구네요~! 그런 친구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데
인생에서 지기 1명만 얻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합니다.
참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친구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
친구의 소중함을 더욱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