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신앙고백(삼상 2:6,7)25.03.02.주일낮설교
이국종 전 아주대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총상을 수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사이며, 대한민국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는 거의 대부분 이국종교수가 수술을 합니다.
이 교수가 의사가 되는 데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 참전 당시 지뢰를 밟아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심하게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그는 중학교 때 심한 축농증 치료를 받기 위해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들고 병원들을 찾았지만 무시와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병원의 이학산이라는 외과 의사가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라고 말하고 흔쾌히 치료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조언을 듣고 병원 문을 나오면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
여러분!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영혼을 상하게 한다.”(잠 15:4, 우리말성경)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브닌나는 말과 행동을 잘 못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여자였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한나는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관례에 따라 브닌나라는 처녀와 결혼하더니
1년도 채 못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를 낳은 둘째 부인 브닌나가 한나를 구박하고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장 6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격분한다' 라는 말의 히브리어(카아스)는 '마음을 슬프게 하다', 또는 '괴롭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스트레스 주면 안 됩니다.
한나는 고통을 당할 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10절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는 하나님 앞에 괴로움을 다 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불쌍한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셔서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을 낳은 후 그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기도라기보다는 한나의 신앙고백입니다.
한나의 신앙 고백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의 무덤을 예수님이 찾아 가셨습니다.
그의 누이 마르다는 이미 썩어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무덤에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했을 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그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누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까?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37편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혔을 때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때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옛날 시온에서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불렀을 때가 있었습니다. 참 영광스러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때 켜던 수금을 바벨론 강가에 걸어놓고 옛날을 회상하며 울고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라고 해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126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 한 노래가 시편 126편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새도록 쫓기고 쫓기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꿈을 깨고 일어나 보니 그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습니다.
과거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마치 꿈과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이 꿈과 같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까?
시편 137편 3절에 보면 “주께서 큰일을 행하셨도다”
이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포로에 잡혀가게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혹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 가 있는 것처럼 기쁨의 노래조차도 부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의 모든 상황들도 완전히 한나처럼 역전시켜주실 날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이 마치 꿈꾸는 것 같을 때가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생명과 구원과 영생과 성공과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나의 신앙 고백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고 했고,
8절을 보면 "가난한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흥망성쇠를 장악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들은 얘기입니다. 여자들 루즈 색깔과 국가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핑크나 빨강색 루즈를 바르는 것이 유행을 탈 때 한국경제는 상승지수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어둡고 시꺼먼 루즈를 바르기 시작하면서부터 IMF가 터지고 경기가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거품경제로 호황을 누리고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주차장이나 동경시내를 둘러보면 온통 자동차 색깔이 하얀색 일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차색깔이 검정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일본경제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통계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 풍요와 빈곤, 발전과 퇴보가 색깔로 결정되고 바뀔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망할 사람도 없고 실패할 사람도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흥망성쇠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전도서 5 : 19을 보면
"재물과 부요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알로에 마임 회사의 홍해실 전무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남편이 여덟 번째 사업에 실패하고 밤낮없이 찾아오는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다 못한 남편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제안하기에 이르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4 : 17 말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은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느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임마누엘이라는 식품회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주일성수 못하고 장사했던 죄를 회개하고 총매출액의 1%는 선교와 구제를 위해 쓰기로 하고 옥토 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94년부터 생산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알로에 마임」으로 바꾸었는데 1년 만에 300%매출 신장을 가져왔습니다.
96년 가을 인천 남동공단 안 대지 2천평에 공장 면적 1500평 규모의 공장을 건축했습니다.
요즈음 같은 불황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왕 중에 벨사살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입니다.
벨사살은 어쩌다가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이 되었을까요?
성경은 그 원인을 벨사살이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서 5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벨사살이 귀족 천 명과 연회를 열면서 성전의 기구들을 가져다 사용한 겁니다. 거룩한 성물을 술을 마시는 도구로 사용한 겁니다.
그러자 그 때 돌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손가락만 나타난 겁니다.
그 손가락이 벽에 글을 썼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만이 그 글자를 해석했는데 그 뜻은 이러했습니다.
여기서 메네는 세어본다,
데겔은 저울로 달아본다,
우바르신은 나눈다, 망하게 한다는 뜻이다.
다니엘은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저울에 달아보니 당신은 부족합니다.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나라를 둘로 나누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리니 망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은 그 말대로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저울에 벨사살 왕을 달아보셨습니다.
그런데 무게가 맞지 않아서 버리셨다는 겁니다.
바벨론제국도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주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1장 5,6절을 보겠습니다.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 하게 하시니 임신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임심하게 하시니 임신했습니다.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사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임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본문 6,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지옥에 던지실 수도 있고, 건지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부하다고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또한 가난하다고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