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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버시> ‘가시버시’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전의 ‘부부(夫婦)의 낮춤말’이라는 기술을 참고하면 ‘부부(夫婦)’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아 그 정확한 용법을 알기가 어렵다. 물론, ‘가시버시’는 이른 시기의 문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 단어는 20세기 이후에 와서야 용례가 확인된다. 필자가 본 가장 이른 시기의 용례는 20세기 초 소설인 ꡔ임꺽정ꡕ의 “같이 살면 가시버시지 어째 명색이 없느냐?”에 나타나는 그것이다. 이 ‘가시버시’라는 단어는 일단 ‘가시’와 ‘버시’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해 놓고도 ‘가시’와 ‘버시’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이들과 관련된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의 경우는 ‘버시’의 경우보다는 사정이 낫다. ‘장인’, ‘장모’를 뜻하는 ‘가시아비, 가시어미’ 등과 같은 단어를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시버시’의 ‘가시’를 ‘가시아비, 가시어미’의 그것과 똑같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런데 ‘가시버시’의 ‘가시’와 ‘가시아비, 가시어미’의 ‘가시’는 그 어원이 다르다 하더라도 의미상 관련되는 것은 분명하다. ‘가시아비’나 ‘가시어미’의 ‘가시’가 ‘여자’나 ‘아내’를 뜻하는 ‘갓’에 속격 조사 ‘’가 결합된 ‘가’로부터 ‘가싀’를 거쳐 나온 것이라면, ‘가시버시’의 ‘가시’는 그 ‘갓’에 주격조사 ‘ㅣ’가 결합된 ‘가시’가 명사로 굳어진 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가시’가 ‘아내’라는 뜻임은 분명히 드러난다. 혹자는 ‘가시내’의 ‘가시’까지 ‘가시아비’나 ‘가시버시’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가시내’는 ‘가나(갓++아)’로부터 변한 어형이어서 ‘갓’을 포함은 하지만, 속격의 ‘’을 취하고 있어 ‘가시아비’나 ‘가시버시’의 그것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의미가 유사하고 어형이 같다고 하여 모두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버시’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단순히 ‘가시’에 운(韻)을 맞추기 위한 첩어 요소로 설명해 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보면 ‘가시버시’는 ‘부부(夫婦)’ 가운데 ‘부(夫)’의 의미가 반영되지 않은 이상한 단어가 되고 만다. ‘버시’에 대한 궁금증은『조선어사전』(1938)에 나오는 ‘가시밧’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싹 가신다. 이 사전에서는 ‘가시밧’을 ‘내외의 옛말’로 기술하고 있다. ‘가시밧’에서 ‘가시버시’가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가시밧’의 ‘밧’은 무엇인가? 이는 ‘>밖[外]’의 다른 표기에 불과하다. ‘밖’은 단순히 ‘外’라는 뜻 이외에도 ‘바깥에서 활동하는 사람’, 곧 ‘사내, 남편’의 뜻도 함축한다. ‘바깥양반, 바깥주인’에 쓰인 ‘바깥’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조선어사전』(1938)에서는 ‘밖’에 ‘사내[夫]’라는 의미를 정확히 부여하고 있다. ‘가시밧’의 ‘밧’이 ‘남편’을 지시한다면 ‘가시밧’이라는 단어는 ‘아내’를 뜻하는 ‘가시’와 ‘남편’을 뜻하는 ‘밧’이 결합된 합성어가 된다. 그러므로 ‘가시밧’이 ‘부부(夫婦)’라는 의미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가시버시’의 ‘버시’는 바로 이 ‘밧’으로부터 변한 것이다. ‘밧’에 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바시’가 되었다가 모음 변화에 따라 ‘버시’가 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시밧>가시바시>가시버시’의 변천 과정이 상정된다. ‘가시밧’의 ‘밧’이 ‘남편’의 뜻이기에, ‘가시버시’의 ‘버시’도 ‘남편’의 뜻으로 이해된다. ‘버시’는 ‘남편’을 뜻하는 단어로 굳어져 ‘버시아비(시아버지), 버시어미(시어머니)’와 같은 단어를 만드는 데도 이용된다. 이로써 ‘가시버시’도 ‘가시밧’과 같이 ‘夫婦’의 뜻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