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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왜 신심을 하는 가?
제가 과도한 사제불이에 대하여 강조하고
그리고 스승은 종교가 이전에 권력자쪽에 가깝다고 하는
상당히 부정적인 언사와 함께
평범한 인간을 상당히 프레임업시켜 다른 사람으로
신화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법이 아니라 인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 형질변경등
을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창가이데오로기로 변질되어진 종교현상
에 대하여 거의 7개월에 걸쳐서 극도의 비판적 관점으로 글을 작성하여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가장 만류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외쳐대시는 분이
“회원”님이십니다.
다른 분들은 별반반응이 없습니다.
회원님은 왜 이러한 반응을 보이실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 데
이분이 신한위 회합에 참석하시고 집행부회합에 참석해보지 않아서 그러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90년대 말의 불교회 화합을 생각하시고 저한테
이런 만류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교회 권간부회 또는 장년부 회합에 나가보시면
제가 왜 이런 주장을 일관성있게 외쳐대는 지
이해 할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회 행사 식순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①파워포인트 교학 또는 창가이데오로기를 내용으로하는 강의
②KSGI뉴스 (그냥 보도)
③문화행사프로그램
④지나가는 사부인사말
⑤참석간부지도
①번부터 ⑤번까지 전부 선생님이라는 말이 안들어가면 직성이
안풀릴 정도로 거의 끊임없이 번복하거나 스피치내용 인용입니다.
완전히 이것은 주체사상을 전개할 때 끊임없이
“우리 장군께옵서는~~~~”하고
서두에 아니면 중간에 아니면 말미에 외쳐대고 있는 것과 아주 동일합니다.
(특히 사부인사말에서 )
그리고 ⑤ 참석간부지도를 분석해보면
- 요란한 “덕담”
- 각종의 체험담 들려주기
( 거의 큰사고 났다가 전중경수하여 원위치된 이야기나
길흉화복에 가까운 스토리를 체험담 형식으로
끼워넣은 것으로 감응이 별로 없음 )
- 주구장창 선생님 찬양
- 어서인용은 간혹 보임
⑤번의 지도말씀은 체험담이라도 들어가면 좋은 데 그것도 아니고 사람들 앉혀놓고 그냥
일장연설식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부인부들은 습관적으로 “야! 우아”하지만
집단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서의 심리적 안정감의 다른 표현에 불과 할정도
다른 부들은 거기에 참석하였다는 안도감을 위해서
그냥 참석하고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11월말 장년부 결집대회때는
참석 간부지도는 정말 학생들 앞에 놓고 하는 교장선생님의 훈시와 같았습니다..
11월말 권간부회와 장년부결집대회 2개의 회합을 참석하면서
이것이 불교회 회합인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깨끗한 환경
매끄럽게 진행되는 회합식순
나와서 이야기하는 분들의 심플한 전개방식 (디지털시대를 대변)
거의 완벽할 정도인데 정말로 빠진 게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혀 참석자들에개 가슴으로 던져주는 “블가사의 한 메세지”가
극도로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권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회합목표가 확실한 메시지와 회원님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거기에 못미치기 때문에 노력해가는 모습이라고 보이면
아니 1년중 한두개의 회합이라도 불력법력에 대한 감동이 전개되었다면
문제가 없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아예 십수년전부터 그런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회합에 저처럼 “법”으로 똘똘뭉쳐진 사람이 참석하면
(자랑하는 것이 아님)
참으로 이곳이 불교회인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도다시절의 회원님을 시대를 초월하여 여러번 참석시킨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말 할것입니다.
“환경은 매우 좋아지고 밝아 졌는 데 정작 있을 것이 없다“는
언짢은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이것의 모든 흐름의 근원은 저 일본SGI에 있습니다.
그쪽의 본류가 만들어낸 문화적 지류입니다.
그래서 제가 비판하는 것입니다.
태양의 노래
아~아~ 저 붉고 붉은 태양이 솟아
(생략)
비평하는 자들아 물렀거라.
비평하는 자들아 물렀거라 할려면
정말 대성인의 불법이 융성하게 맥동쳐야 합니다.
그러나 회합에 나가보면 전부 창가의 이념과 선생님이 95%이고
대성인의 법은 5% 정도입니다.
이 회합에 참석해보면 “회원님”이 선생님스피치가
어서해설을 위한 유용한
해결책이라고 하는 말이 쏙 들어 갈것입니다.
다른 분들도 제가 말하는 관점에서
학회의 회합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말을 아마 부정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정말 “과도”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불교회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석하면서 내내 제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제가 너무나 부정적인가
아니면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아무리 머리좋은 사람도
이런 회합에 참석하면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겠구나
소위 집단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가만히 회합에 참석하여 있어보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관점을 배양시켜주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단단하게 갖추고 있어도
여기에 슬쩍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동경대학교 문학부 박사학위 소지자인
사이토 교학부장 같은 분도 일본화합에서
이런 문제룰 집어내지 못하고
창가이데오로기를 전파하느네 여념이 없다고
생각되어 지는 것입니다
회원님께서 제가 일본경제를 가지고
1000조엔의 세계제일의 채무국이라고
이것을 보아도 입정안국론에 비추어서
“법의 홍통”이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을 했을 때 일본이 그렇게 된
경제적 동기를 자세히 설명 하셨습니다만
그것에 대하여 대하여 “사회과학적인 인과” 말고
근저에 흐르는 “불법의 인과”로 볼때는
일본 경제파탄은 “법의 홍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법의 홍통에 문제가 있다면 종문의 30만 정도와
일본학회의 300-400만 정도는 게임이 안되는 상황이라.
이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학회인 것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 76개로 2위
일본은 48개로 3위
한번 말좀해보시지요
일본은 인구가 1억3천만명입니다.
한국은 5천만입니다.
1인당 개인소득은
한국은 2만달러
일본은 4만달러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두배인데
일본의 청년들의 기량은 한국에 비해서 2배
못 미치게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본국운의 지표(보이지 않는 것이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내보이는 것 )인
청년들의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본청년들의 생명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그 나라에 홍통되는
“법”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입정안국의 지표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메달순위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을 등장하여도
반증을 할수 없습니다.
일본의 생명력이 심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중 하나입니다.
신심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고민을 깊이 옳바로 하지못하는 사람은
진정 지금의 학회가 옳바로 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믿고
수행을 하는 무비판적인 관점의 수행자입니다.
한마듸로 현상을 보다 깊이 있게 넓게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2. 모든 광포활동의 전제 “법(dharma)”
- 무소외(無所畏)의 경지 획득 방법
그 보다도 나는 왜 신심을 하는 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내릴려고 하고
건강한 비판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은
불교수행의 깊이와 넓이를 확보할 수있을 것입니다.
이런 비판의식을 위한 토대가 바로 “법(dharma)”에 있습니다.
학회에서 가르쳐주는 불법을 잘 공부해서
그 원리를 자신의 것으로 하면
“법(dharma)”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사유체계를 창가이데오로기(창가이념체계)로부터
벗어나 별도의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분명히 짬봉하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법에 대한 사유체계를 세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이제까지 공부해왔던 법에 대한 지식은 쓰지 않는 것입니다.
창가이념과 법을 짬뽕해서 알고 있는 것은 나중에 다시 살려내더라도
전부 잊어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주요어서 5-6개정도를 깊이 있게 공부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생성불초
② 생사일대사 혈맥초
③ 제법실상초
④ 개목초
⑤ 관심본존초
⑥ 십법계사. 십여시사. 일념삼천법문
⑦ 어의구전중 여래수량품 해설
⑧ 방편품 여래수량품 해설집
⑨ 삼세제불총감문폐립초
상기중 ④⑤번은 너무 길고 해서 그냥 읽으시고
①②③⑥⑦⑧을 학회에서 출간한 해설집을 통해 완전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컴퓨터를 하실 줄 아시면 원문을 전부 확보한 후
미주 각주를 달아가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통해를 읽으시고
어구해설을 읽으시는 데 어구해설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강의를 일으시는 데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중요합니다.
강의를 읽는 것은 “법”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입니다.
어서 원본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읽어가야 합니다.
절대로 붕뛰우는 이야기들 사설등 창가이념이 들어간 것등에
마음이 빼앗기면 안됩니다.
이런 것들과 엉키면 법원리를 확보하는 데 장애가 있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법중심의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어서 해설서도 여러가지 있겠지만
담백한 해설서가 좋습니다.(검정색 페이지로 된 것)
그리고는 끊임없이 번복해서 읽어 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냐 하면 어서의 전반적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때 까지 말이지 죠.
분명히 부분부분만 아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을 확실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쉬운것 같아도 이것 상당히 어려움)
초기에는 통해나 어구해설쪽에 신경을 써서 읽지만은
뜻이 어느정도 파악되고 나면
나중에는 강의는 보지 말아야 합니다.
전부 원문을 번복해서 읽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에서 법원리가 생겨납니다.
수없이 읽어내야 합니다.
초기에는 지루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5-6개를 돌려가면서
읽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하고 내일이 읽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나의 몸 저 밑에서 해석해주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다가 맡기는 것입니다.
몸속에서 차곡차곡 법(다르마)에 대한 감각이
체계적으로 쌓여 갑니다.
그리고 가끔 학회의 강의내용을 읽습니다.
자신이 읽는 방법과 학회가 읽는 방법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학회에서 제시하는 주요 해독방법을 자기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천포로 빠질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삼천포로 가면 이상한 주의주장을 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어서를 문저니 어서를 제대로 일으라고 큰소리 치는 사람으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저의 권에 지역장이라는 분이 있는 데
지부장 시절에 어서전편을 6번 읽었다고 합니다.
지부에 돌아다니면서 어서 6번을 그렇게 강조하고 다니십니다.
그런데 "법 원리"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반담님들이 참석간부로 요청 하지 않습니다.
어서 전편 읽으면 확신은 상당히 생깁니다.
절대로 퇴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법의 원리능력"이 생기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법을 중심으로한 사유의 능력말입니다.
법을 근본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해내는 능력말입니다.
법해석은 학회가 정확합니다.
여기서도 붕붕날르는 이야기와 창가이데오로기는 제외합니다.
법자체를 해석하는 내용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 자신의 번복된 리딩에 의해서 어는정도 흐름이 잡힌다음 강의록을 참고하기 시작함 )
번복해서 읽을 때 한편식 프린트해서 손에 달고 다닙니다.
몸에 지갑은 없더라도 어서원본프린트물은 항상 갖고 다닙니다.
최후에는 생사일대사나 일생성불초나 제법실상초등은 달달외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서가 거의 완벽히 들어옵니다.
제가 추천하고 있는 어서들은 전부 법화경의 십여시(제법실상)와
여래수량품에 몰려 있습니다.
총감문초는 이런 것을 모두
종합한 대성인 말년의 어서들입니다.
어서들은 초기에 너무 많은 수를 읽는 것보다는
( 이러면 나름대로의 주장을 할 수 있음 )
중요핵심어서를 여러번 읽어서 확실하게 육화시켜
깊이 있게 확보 한다음 그 다음이 넓게
여러 어서들을 읽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여러 어서들이 말할수 없이 깊이 있게 들어옵니다.
저도 어서전편을 분량으로 보아서 1회독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편은 별로 읽은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저 상기의 어서들은 300-400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어의구전을 읽는 것으로 다르마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데 거의 완성단계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세상을 법(다르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판능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남이 하는 해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판적관점에서 읽어가는 법해석능력입니다.
이것을 저는 “다르마(법) 리터러시(해독)능력”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법과 불교회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올바른 광선유포시대의 법원리를
창출시켜갈 수 있는 법 해독력을 말합니다.
생활상의 현실과 불교회 조직활동
회원들의 어려운 문제,
회우들의 종교적인 의식수준등과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세계가 어떻게 답할수 있는 지
알아내는 사유능력을 말합니다.
법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주관적인 비판적 사유에서의 세계관입니다.
방편품에 무소외(無所畏)의 경지가 있습니다.
무엇에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경지입니다.
저는 미흡하나마 이 싸이트에 와서 거침없이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 같으면 두려워서 감히 쓸 수 없는 글들입니다.
몸의 밑바닥까지 뒤적거려보아도 별로 공포심이 없습니다.
제안의 의식이 그런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다르마가 주는 무소외”의식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철저히 법으로 무장한다음
그러한 관점에서 창가이념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집단의 역량에 힘입어 광포는 전개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집단의 이념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이념을 자신의 것으로 하여 광포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집단의 위상과 고유한 정체성이 없으면 광포는 꿈도 꿀수가 없습니다.
학회가 표방하는 이념과 위상은 표면적으로 너무나 홀륭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것의 전제가 있습니다.
몸에 다르마를 완전히 세워놓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몸에 법정신은 찾아볼수가 없고
창가이데오로기로 똘똘 뭉쳐진 사람을 보면
저는 정말 경멸합니다.
학회는 지금 선생님이라는 “인”에 너무나 초점을 맞추고
이데오로기화하여 왔습니다.
법은 5%정도이고 인중심 창가이념은 95%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니 방면장이상의 간부들을 보면 깊이감, 개방성, 법인격이
별로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입니다.
오로지 창가이데오로기가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대로
엷은 가랑잎과 같은 존재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광포일선에 같다놓으면 절대 조직을 일으킬수 없습니다.
괜히 큰소리만 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직관리자들 입니다.
이런 현상으로 부터 빨리 탈피하여
법과 자신이 일체화가 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3. 법을 근본으로 한 활동
이렇게 자신을 법으로 완전히 무장해가면서
조직에 나갑니다. 사실 지부정도면 자신과 활동할 사람
1명만 있으면 됩니다.
제일 처음 활동할 이 한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밥도 많이 사주고 술도 가끔은 사주고 하면서 친근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부명단을 정확히 확보해야 합니다(회우까지)
그런데 초기에는 제목을 하루에 적어도 1시간이상은 불러놔야 합니다.
다음은 이것은 제가 쓰는 생명상의 방법인데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임)
걸어다닐 때 항상 자신의 머리는 묘이고 목은 호이고
가슴은 렌이고 배는 게이고 다리는 교라고(대성인의 어서에 나옴)
마인드 콘트롤하고 다닙니다.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妙法蓮華經”를 머리서부터
“훅”집어넣어 근본법과 저자신을 일체화 시켜갑니다.
저는 이것을 제 자신을 “묘호렌게교 당체모드로 변환하기”라고
마음속으로 명명하고 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어서에서 소리를 내지만 생각이 있는 자는
관념을 병행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천태의 관념관법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들의 관법의 체가 “묘호렌게교”가 아니라
일심삼관법이었습니다. 세상을 공가중 삼제라고 바라보는 수행말입니다.
그 속에는 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마음속에 법체가 바로 서있습니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제목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저의 길거리의 관념법입니다.
그냥 소개 한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으로 참고하시라고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걸어다닐 때가 즐겁습니다. 경행입니다. )
그리고 가정방문입니다.
1명의 파트너와 움직일 때 또 모시고 다닐 분이 있습니다.
바로 니찌렌대성인 이십니다.
이분과 함께 한다는 자세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 * 이런 것이 교주를 교주답게 대하는 자세임 )
가정방문할시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드려야 합니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끝을 내면 절대 안됩니다.
가정방문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이런 가정방문 많음. 실력을 배양하지 않아서 그럼 )
그리고 뻔한 종교쟁이 말로 끝을 내면 안됩니다.
분명 “다르마”적 관점에서 상대방이 “혹” 할수 있는
그 무엇을 창조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어서를 깊이있게
공부한 다르마 능력을 동원하면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이싸이트에 제가 미흡하지만 같은 내용을 가지고
남들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도 전부
광포현장에서 개발한 논리들입니다.
“법(다르마)의 입장에 서면 무궁무진한 것들이
몸에서 올라와 자기답게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회원들 회우들의 눈이 반짝거리입니다.
창조적인 지도는 그에게 통상적이지 않고
“의식의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을 합니다.
그는 그 넓혀진 지평만큼 한발짝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4. 아름다운 비계설정
이것이 광포의 아마추어와
프로(전문가)가 다른점입니다.
이것은 탑의 비계설정과 같습니다.
근본법이 있으면 회원이나 회우의 처지에 부합되는 비계를 설정해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비계만큼 앞으로 나아갑니다.
봄이님에게 간부님들이 와서 대화를 나누면 정말 싫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 간부가와서
통상의 메뉴얼을 번복하시니까 그런 것입니다.
마음을 터놓던지
아니면 “아름다운 비계”설정을 통해서 약간의 깨달음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통해 힘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지부장과 회원간의 비계를 통한 건강한 “소통”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일 환희하는 구룹이 있습니다.
바로 제천선신들입니다.
노상 창가이데오로기에 식상해서 법미를 보지못해 나른해 있는 제천들
그 중에서 큰 제천들은 들을 게 없다고 하여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런 “비계”의 묘미를 자주 쓰면서 개인방문과 절복을 추진 하다보면
큰 제천들이 법미를 먹기 위해서 달려옵니다.
방편품의 “명칭보문 성취심심”(名稱普門 成就甚深)
“매우 깊은 것을 성취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다”입니다.
자연히 제천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한바퀴 두바퀴 이렇게 돌다보면 신심의 감각이 있는 분이면
제천의 움직임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런 비계설정의 지도법을 회관에 가서 배워야 하나
상기에도 볼수 있다시피
헤드쿼터에는 “법의 비계”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개발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광포현장에서 힘을 낼수가 없습니다.
철학부재의 활동은 수원이 길지 않으므로 흐름도 길지 않습니다.
그냥 인원집계, 다른 지부와 숫자비교, 타화자재천의 마음,
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르마 리터러시 능력을 배양하면
절대로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조직은 그래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다르마 리터러시능력을 갖게 되면
학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갖추고 30명 정도가 종문으로 넘어간 집단이 있습니다.
서울의 용산권장년부들입니다.
자신을 키워준 곳이 학회이고 학회의 발행도서와 광포현장에 의해서
스스로를 키워온 사람들입니다만
(이중에서 1-3명정도만 그렇고 나머지는 허당이라고 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학회가 좋아지고 나면 그들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시올 것인지....
그러나 학회로부터 배워서 학회를 비판하는 자가
있게 됩니다. 바로 저와 같은 자입니다.
눈에 보이니 안그럴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받는것도 학회가 키워준 비판능력에 기인합니다.
잘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회는 이 훌륭한 광선유포 조직은 변해야 된다고 외쳐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방문시 초기에 “법의 비계”를 나타내기에 역량이 딸린다고 할 경우
우리 다 좋은데 부처님말씀 한번 읽고 끝냅시다 하고
어서 한구절을 읽어주며 법의 의식을 환기시켜 주어도
제천이 어느정도는 모일 것입니다
법에 대한 비계설정능력은 상기와 같은 단단한 어서해독능력을 가지고 선생님스피치,
학회가 발행한 모든 도서들을 통해서
쟁점사항들을 평소에 가슴에 기억해 놓습니다.
지부에서 이렇게 움직이다보면
지부장님의 몸둥아리는 점점 묘호렌게교로 당체화가 되어
강력한 구심력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구심력은 1명의 파트너가 2명으로 늘어납니다.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활동을 하고
그리고 3-4명정도가 되면
(다르마 중심으로 가면 구심력 때문에 반드시 이렇게 되어 있음)
함께 제목을 할 곳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체계적인 활동에 들어 갑니다.
그리고 제목을 끝내고 나면 반드시 어서해설(10분간) 그리고 활동입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면 반드시 2-3개월만에 일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시면서 창가의 이념을 전파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이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이것 5%내에서 끝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도 대상자들은 창가이념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습니다.
지부장이 이것을 번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활동을 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나의 다르마의 힘이라면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절복을 못할 대상자가 없다.
누구든 와라
그리고 가정방문에서 언제든 삶의 본질을 꽤 뚫고 있는
인문학적인 소양인 “다르마 리터러시 능력”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라고 외칠수 있어야 합니다.
< 다시 정리하면 >
1. 법으로 무장 할 것
2. 활동파트너를 만들 것
3. 지부장 스스로가 구심력을 확보할 것
4. 법의 비계설정능력을 카워갈 것
5. 제목회를 할 거점을 확보할 것입니다
저는 지부장 임명 3개월만에
1명의 반장 2명의 지구부장, 부지부장에서
12명의 반장, 3명의 지구부장, 부지부장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지부장 자신의 구심력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갖추어짐입니다.
지역장일 때 4개지부 245명의 장년부의 결집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것의 원천은 다르마 획득---> 구심력 확보 ---> 조직적인 움직임입니다.
조직의 인재육성은 자신이 인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주변은 인재로 넘쳐납니다.
스스로의 구심력을 확보에 주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렇게 무장된 인재들이 오지말래도 들 끓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개인의 방법론입니다.
자 이것에 대하여 질문 받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답할 용의있습니다.
첫댓글 이거 프린트해서 공부해야 겠습니다. 어서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공감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답글로 달아 놓지 마시고 이거 게시판에 다시 새로 올려주시면 안되나요? 좀 더 많은 회원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이요.
흐름님! 감사하고요,수고하셨습니다.기다린 보람있는것같습니다.일단 정독으로 2번읽었습니다. 윗글은 체험과 고민 실천이 아니면 나올수없는 글같습니다.(죄송) 중요한 포인트를 적어서 이제 실천해보겠습니다.중간 중간에 혹시 보충할부분,당부의 말씀있으시면 또 부탁드리겠습니다.흐름님의 글을 좀더 읽어야겠습니다 수준이 워낙 차이가 나서요.한줄한줄에 긴장하며읽어야 될것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충분히 아시겠지만 활동을 하실때 절대 학회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주시기바랍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이 상당한 혼란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지금은 전부 학회체제야 말로 100%이다라고 신뢰하고 신심하시고 계시는 분이 거의다 이기때문입니다. 특히 부인부들한 테는 "어서"에 대하여 너무 강조하지 마시기 랍니다. 그분들은 어서보다는 스피치를 더 좋아하고 (쉬우니까) 이런 복잡하고 입체적인 상황을 잘모르며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도 이해할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부장님이시면 4부를 잘융합해가는 위치에 계신분이므로 현체제에 반하는 이야기를 던지면 자신도 힘들어지고 4부도
힘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공덕의 소멸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윗글의 내용은 자신만이 혼자알고 조용히 수행하고 활동을 하셔야 된다고 봅니다. 서로 어서를 공부하고 싶으면 "그냥 어서도 중요하니까 같이 공부하자"라는 식으로 전개하면 되갰습니다. 만약 지부장님께서 어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참석간부지도로 스피치를 접을 경우 바로 부인부 라인으로 보고가 올라가 그 처절한 맛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주의주장은 조직에서는 조금도 내비치면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 싸이트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은 대한민국애서 이런 주장을 할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의 역할입니다. 불가사의한 카페라고 할수
있습니다. 학회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건강한 싸이트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이 카페의 역할이 그런 것이므로 여기다가 간뎅이 크게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됩어집니다. 그러나 저도 이카패를 벗어나는 순간 학회에 혼란을 가하지 않기 위해서 "신구의"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전 서민들이 웅집해있는 지금의 학회는 언제인가는 그 "여시연" 에 의해서 한순간에 변할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학회가 1990년이전에 잘해 온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여시인"으로 하여 시기의 움직임이라는 "여시연"을 만나 여사과와 보로 바로 설날이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어서공부를 위한 자료를 제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자료중에서 극히 일
부 자료를 드릴 수도 있으니 쪽지로 메일 주소를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은행나무님께서는 아무래도 제 자료(학회자료를 종합한 것)를 가지고 공부하시는 것이 속도가 빠르실것 같습니다.
@흐름 제게도 메일부탁 드립니다. knjangelksr@naver.com 입니다.
흐름님은 정말 신심형 인간 이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아무쪼록 흐름님의 훌륭한 지도 계속해서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도시의 수행자이십니다.^^ 많은 민중을 구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흐르님, 저도 자료 메일로 보내주세요. 메일 주소 쪽지로 보내겠습니다.
흐름님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군요^^?
저는 누구에게나 어서가 중요하다고,
스피치도 어서를 읽어보면 더욱 더
깊이 알게 되며, 어서에서 스피치도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닛켄종을 파절하며 무시하는
것도 어서에서 배운 교학으로 입니다.
선생님도 어서의 정신대로 스피치를
하신다고 보며 그래서 스승이 됩니다.
닛켄종은 어서의 혼을 짓밟는 겁니다.
어서에서 배운 교학으로 종문을 파절하며 무시한다는 그 교학적인 이슈와 쟁점이 무엇인지 혼자만 알고 계시지 말고 여기서 리얼하게 펼쳐보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으로 궁금하군요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그렇게 체계를 잡았었는데 흐름님 생각해왔던것이랑 비슷하네요
더욱 확신이,,,
이런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도리"(건전하고 합리적인 사고, 기본적인 소양. 에티켓 등 )를 근저로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자기나름의 깊은 경애를 많이 회원들이 얻....
그것이 대성인의 자식이요 제자된 도리 및 사명이라,,,또한 참된 만년광포의 밑바탕,,,
어서를 공부하면 머리가 커지고 그래서 나중에 상당히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님의 우려하는 가정에 대하여는 어서공부의 전제가 있습니다. 자행화타에 걸친 신심을 하지 않으면 절대 머리가 커지고 나름 삼천포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제목과 남다른 광포현장에서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도록 해줍니다. 불교활동에 대하여 남다른 체험과 쓰디쓴 아픔을 지니고 있는 봄이님이나 지부장으로써 광포에 대하여 남다른 열정과 현장위주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님 같은 분들은 어서공부를 많이 해도 이상하게 되지 않고 상당히 자신들을 일생성불의 반열에 올려놓으실 분들입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힙니다.
어서를 공부하면 머리가 커지고 그래서 나중에 상당히 이상한 사람이 된다에
선행하는 전제로 개인적 측면에서 기본적인 소양이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서 등을 읽다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입니다.
창제와 끊임없이 활동을 진정 자기의 마음 즉 기심을 수시로 보고 부족한 부분을 (건전한 합리적, 도리적 사고) 를 넗히는 그런 병행의 노력이 없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기본적 소양 즉 도리를 미리 체득했다면 이상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그다지 높다고 보지 않습니다..
화타행대성인의불법으로전환하면자행화타의제목행, 절복 결국자신의성불을 위한 중요한수행으로 결국궁극으 의정불이에 있어서 "정"이라는주체요주관이 핵심일듯
제목, 광포, 절복 등 끊임없이,정신없이 그러나정작 궁극적으로 자기라는 "정"을곰곰히생각하는사람이별로없는 듯, 여하튼 "붕~~붕~뜨고 "대범,활기참"도 중요하지만 내실, 깊이있는,"물흐름처럼"
정상,체계적인소양 공부 등 부족,결여되면 나중에사회적, 종교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받더라도쉽게피해갈수없는게 외골수,아집,고집,특히"타인에대한 이해부족" 등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이부분고치기 쉽지 않은듯. 함께움직임속에항시기심을관하는수행을병행할필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