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울란바토르에는 배수구가 없다
빈약한 ‘톨강’이 ‘테를지 국립공원’을 휘돌아 울란바토르 시내를 가로지른다. 이곳에서나마 물의 흐름을 볼 수 있고 강바닥에 잡목이 시퍼렇게 자란 모습을 신기한 눈빛으로 볼 수 있어 삭막하던 마음이 다소 편안해진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별도의 배수구가 없다. 아예 만들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양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흐르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 어찌 보면 자연에 맡겨두는 것 같아 이치에 맞지 싶으나 도시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그만큼 강수량이 절대 부족하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물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꼼짝없이 큰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기적이란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돌아다니는 승용차 대부분은 일본 토요타이고, 버스나 봉고차는 거의 우리나라의 현대차다. 현대자동차매장이 보이고, 삼성 티브이도 빼놓을 수 없다. TV 채널 308번은 YTN 전용 채널로 실시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교민 3천여 명이 거주하며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한국인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가는 곳마다 우리 국력이 대단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비록 물은 부족하여도 석탄매장량이 세계 3위가 될 만큼 아주 풍부하다. 따라서 전기는 자연스럽게 화력발전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물이 부족한 중에 중앙난방식으로 공동으로 온수가 공급된다.
울란바토르는 표고 1,350m 고지대로 북위 47.8도다. 위도는 파리, 뮌헨, 시애틀과 같은 위치로 북극이 가까워 약간이지만 백야현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밤이 되어도 어둡지를 않고 오후 10시를 넘어 가로등이 없어도 훤하다. 아침도 일찍 밝으니 캄캄한 어둠은 불과 몇 시간 되지 않는 셈이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으므로 낮이 계속되는 현상을 백야현상이라 하고, 그 반대 현상은 극야현상이라 한다. 우리나라가 여름일 때 북극은 백야현상, 남극은 극야현상이 나타난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응될 수밖에 없다.
06. 테롤지 국립공원을 돌아보며
테를지 국립공원은 70년대에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톨강이 굽이굽이 돌면서 시퍼렇게 나무가 우거졌다. 오직 풀뿐인 초원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양 반갑고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 푸른 나무의 위력이 느껴진다. 유목민 마을이다. 말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익히고 전문 조교와 함께 승마를 즐길 수 있다. 유목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게르에서 전통 음식인 수태차, 아룔, 으름(치즈 직전의 제품)을 시식해 본다. 양고기를 뜨겁게 달군 돌과 각종 채소를 찜통에 넣고 구워내는 요리인 ‘허르헉’도 맛본다. 입맛을 당기는 별미다. 커다란 가죽 부대에 마유주를 담아서 벽면에 걸어놓고 숙성시킨다.
거대한 ‘거북바위’다. 거북은 몽골 사람들이 예로부터 수호신으로 여긴다. 거북의 머리가 테를지 국립공원을 향하고 있어 지켜준다고 믿는다. 불쑥불쑥 솟아있는 바위들은 그 모양새가 같은 듯 또 다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기이한 바위들만 모여 수도라도 하는 것일까? 그 형상이 무엇과 닮았는지 추리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들에게 생김생김 그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인근에 ‘아리야발’이라는 사원이 있다. 몽골인의 종교인 라마교(불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근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는다. 중년의 여인 혼자 대웅전 법당의 출입문 앞에 있다.
일본에서 스님은 하나의 성스러운 직업으로 출퇴근을 한다. 사찰서 행사하려면 미리 스님이 참석할 것인지 사전에 약정하여야 한다. 그러려만 자연 출장비 등도 계산하여야 한다. 결혼하지 않는 비구승과 결혼을 하여 살림을 차리는 대처승으로 분류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스님이 사찰에서 상주하는 것과는 엄연한 거리가 있다. 몽골은 한때 700개 넘는 라마교 사원에 남자 인구 3분의 1이 라마승이었다고 한다. 같은 불교라도 몽골은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곧바로 들어왔으며 우리나라는 티베트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오면서 다소 차이가 있다. 몽골은 공산주의 집권 때 수없이 종교탄압을 받았다.
07. 몽골의 초원을 한가로이 달리며
독수리가 칭기즈칸으로 뒤바뀐다. 세계를 호령하던 전설 같은 영화는 하늘을 찌르며 영원할 줄 알았는데, 원나라는 백 년도 못 버티고 힘없이 무너졌다. 그 후예들은 그간 수 없는 수모를 겪어가며 여전히 거친 초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며 이빨 빠지면 발버둥을 쳐대도 헛일이다. 초원은 나무라고는 거의 없다. 잡풀에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엉겅퀴며 쑥이 짙은 향기를 내 품는다. ‘콘도르’라고 독수리가 칭기즈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팔뚝에 앉은 사진모델로 2불이다.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독수리와 함께 추억에 담아두려는 호기심에 사람들이 시시덕거리며 웅성거린다.
초원 저쪽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짙은 매연에 석탄 가루가 휘날리면서 흙먼지보다 더한 시커먼 분진이 뒤덮는다. 무려 85량이나 되니 한 량에 10m씩만 계산해도 850m라는 계산이 나온다. 조금 후 객차는 불과 10여 량으로 화차와는 달리 아담하면서 품위를 갖추어 사르르 빠져나간다.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도 흔들어주고 싶다. 테를지 국립공원 지역이 옛날 옛적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바다가 1,600m를 넘나드는 고원이 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되었다니 그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분위기에 트레킹을 하며 승마를 즐긴다.
‘어워’라는 토속신앙을 만난다. 큼직한 돌무더기 위에 빨간색, 파란색, 흰색, 노란색 천이 매달린 나뭇가지가 꽂혀 섬뜩하게 펄럭인다. 인간의 세계와 구분되는 간단한 의식을 치르면서 신격화하여 산신령에게 예를 갖추는 민속신앙 터이기도 하다. 시골 언덕배기 외진 길목을 지나다 보면 당산나무 아래 흔하게 있던 성황당이 떠오른다. 신기하다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먹만큼 한 돌을 주워들고 반신반의 호기심 섞어 돌무더기의 왼쪽으로 돌아가다 조심스레 얹고 소원을 빈다. 세 바퀴를 돌아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한쪽에 돈을 낼 수 있도록 돈통도 마련되어 있다. 호기심에 그냥 따라나서 본다.
08. 가도 가도 초원 트레킹
무성한 숲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산과 풀뿐인 초원이 생동감 넘쳐 아름답다.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가 더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초원의 외곽으로 돌산이 마치 키 재기 하듯 고만고만하다. 어쩌면 저리 생김생김이 비슷비슷해 뜬금없이 병풍을 떠오르게 한다. 일부러 재단이라도 한 것 같다. 자연이 빚어낸 조화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옛날 옛적에는 이곳이 바다였다더니 해당화와 닮았다. 외관과 달리 열매는 많이 변형되어 아주 작다. 이렇게라도 고산지대에 아직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한 번 생겨나기 어렵듯 없어지기도 쉽지 않은 생명체다.
거대한 초원에 길은 따로 필요치 않다. 가는 곳이 곧 길이 된다. 뚜벅뚜벅 어울려 한국에서 가져온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풀어놓는다. 하지만 가축의 배설물은 피해야 한다. 송장메뚜기가 팔딱거리고 개미는 여전히 분주하다. 앙증스러운 다람쥐에 들쥐가 먹잇감을 찾는다. 하늘엔 수리의 멋진 날갯짓에 늑대도 어슬렁거린다고 한다. 몸을 낮춘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의 수줍은 미소가 정겹기만 하다. 주인 없는 땅 같아도 자기 몫의 영역임을 주장하며 여기저기 철조망이 쳐졌다. 소 말 양 염소 야크 같은 가축은 자기 주인의 땅이면 출입에 제한받지 않는다. 그들만의 먹이 밭이고 보호를 받는 특별구역이다.
황무지 같아도 적성에 맞는 것은 낙엽송과 자작나무다. 이곳에서는 아주 어렵사리 살아가는 귀한 것들인데 누구의 잘못, 못된 짓인지 그마저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내몰렸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고사목지대보다 더 심각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곳은 괴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근육질의 몸매를 아예 드러내놓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한 장의 화면처럼 조화를 이루는 멋진 장관으로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으면서 감탄을 토해내게 한다. 그래도 공해가 없어 가슴뿐 아니라 마음도 편안하다. 하늘이 하나의 커다란 우산이다. 금세 묻어날 성싶은 새파란 하늘이다. 잘 풀어진 솜 구름이 덩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