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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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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자리를 잘못 잡아 버려진 산, 문필봉-사달산-럭키산(`14.4.20)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279 14.04.28 07:3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문필봉(文筆峯, 625m)-사달산(士達山, 634m)-럭키산(608.4m)

 

산행일 : ‘14. 4. 20()

소재지 :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산행코스 : 충혼비문필봉사달산쇠다리봉헬기장럭키산분기봉거인마을(산행시간 : 3시간15)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문필봉 등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바위산들이다. 그러나 바위 위가 흙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막상 산행은 흙산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산을 오르내릴 때까지 암벽(巖壁)을 피할 수는 없다. 때문에 바윗길의 특징인 조망(眺望)에다 암벽을 오르내리며 짜릿한 손맛까지 느낄 수 있다. 당연히 괜찮은 산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막상 이 산들은 이정표나 정상표지석 하나 없이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다. 대둔산이나 운장산, 연석산 등 이름난 산들이 많은 고장에 자리 잡고 있어, 그들의 유명세(有名稅)에 밀린 탓일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충혼비(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1105-2)

익산-장수고속도로 소양 I.C에서 내려와 26번 국도를 타고 진안방면으로 잠깐 달리다가 화심교차로(交叉路 :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서 좌회전 55번 지방도를 따라 울치를 넘어가면 동상면사무소 1.5Km 못 미치는 지점의 왼편에 ‘12이라고 쓰인 커다란 입간판 보인다. 이 간판에 가기 50m쯤 전 오른편에 충혼비가 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충혼비 뒤에 SK중계탑이 보이니 참조하면 된다.

 

 

 

충혼비(忠魂碑)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그래서 비()를 세운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歷史的) 사실을 기초로 하여 당시에 순국(殉國)한 이들을 기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이 고장에는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 궁금해 하며 안내판을 살펴본다. ‘6.25참전 전사자와 자유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투쟁하다 순직한 선현들’. 그야말로 두루뭉술한 표현이다. 특정하게 누구를 지칭하지 않고 위에서 적은 목적을 위해 순직한 선현(先賢)들 모두를 기리고 있는 것이다.

 

 

충혼비 왼편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충혼비 바로 뒤편 ‘SK텔레콤 동성 기지국정문 앞을 지나게 되는 너른 길을 2~3분 걸으면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이 나타난다. 오솔길은 처음부터 제법 가파르다. 그러나 힘들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4분 정도 후에 올라서게 되는 능선까지의 거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산길이 울창하게 우거진 잣나무 숲 아래로 나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친 숨결을 따라 들어오는 짙은 솔향에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듬뿍 들어있을 테니까 말이다.

 

 

능선을 따라 잠시(2) 걸으면 임도(林道)를 만나게 되고, 산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능선으로 나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7분 정도를 걸으면 여기저기 파헤쳐진 흔적이 역력한 너른 공터가 나타난다. 아마 묘()를 이장(移葬)해간 모양이다. 산길은 점점 경사(傾斜)가 가팔라져가더니 6분 후에 또 다른 묘역(墓域)이 나타난다. 주위는 온통 연록(軟綠)의 물결, 누군가 오월의 연록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5(五月)은 얼마 더 있어야 찾아오겠지만, 올해는 철이 이를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남쪽의 산들은 연록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 이미 오래이다. 이런 길에선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코를 킁킁거려본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내음, 봄내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두 번째 묘역(墓域)에서 9분 정도 더 걸으면 마지막으로 묘 하나가 더 나타난다. 이번의 무덤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 있다. 그나저나 이곳 문필봉은 풍수(風水)가 뛰어난 산인 모양이다. 수 없이 많은 묘들이 능선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마지막 묘에서 2~3분 더 오르면 높다란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무작정 오르기가 다소 부담스럽게 보이지만 그냥 치고 오르는 게 좋다. 암벽을 피해 오른쪽으로 우회(迂廻)를 할 수도 있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른 게 거의 낭떠러지 수준이라서 오히려 더 힘이 들기 때문이다.

 

 

암벽 위로 오르면 시야(視野)가 툭 터진다. 건너편에 있는 대부산이 손으로 잡으면 금방 잡힐 것 같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구불구불 대부산을 넘어가는 산길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선명하다. 저 길은 완주군에서 만든 둘레길인 고종시 마실길이다. 고종시라고 하면 완주군에 있는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종시의 ''는 도시(都市)를 의미하는 '()'가 아닌 감나무 '()'. 고종시란 조선시대 고종 임금이 동상곶감을 즐겨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니 고종시 마실길은 동상곶감의 생산 과정을 보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생태문화 탐방로인 셈이다. 학동마을에서 대부산을 넘어 거인마을로 이어지는 구간은 마실길의 2구간으로 거리는 6.5Km라고 한다. 하여튼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 모양이다. 그동안 미세(微細)먼지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眺望)을 즐길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거칠 것 없는 조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망 좋은 바위를 지나면 잠시 가파르기 짝이 없는 너덜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나타나는 바위벼랑은 왼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오른다. 이후부터는 널찍한 암반(巖盤)이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조망(眺望)이 터지기 시작한다. 시야(視野)가 열리는 곳마다 최고의 전망대(展望臺)가 되는 것이다. 오른쪽 그러니까 남동쪽에는 운장산과 연석산이 장쾌한 능선이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고개라도 돌려볼라치면 대부산과 원등산을 잇는 긴 능선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바윗길은 제법 험하다. 그러나 걱정할 것 까지는 없다. 비록 안전시설은 갖추어져있지 않지만 조금만 조심하면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망이 너무 시원스럽게 터진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주변 풍경(風景)에 정신을 쏟다보면 발을 헛디딜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앞서가던 사람들이 몇 명씩 모여 있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하나 같이 넋을 잃은 채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조망이 좋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른편에는 운장산과 연석산이 우람한 산세(山勢)를 자랑하고,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면 조금 후에 오르게 될 사달산과 럭키산의 범상치 않은 암릉들이 어서 오라며 겁을 주고 있다.

 

 

 

 

눈터지는 조망(眺望)을 즐기며 산행을 이어가다보면 드디어 문필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1시간이 지났다. 어렵게 올라온 문필봉 정상은 의외의 풍경이다. 죽어라하고 바윗길을 올라왔는데 그 꼭대기는 막상 흙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분지(盆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 정상은 철저하게 버려진 듯한 느낌, 대구의 산악인(山嶽人)인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까지 트이지 않으니 구태여 머무를 이유가 없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인 듯 그냥 지나쳐 버린다. 참고로 문필봉(文筆峯)은 붓끝같이 뾰쪽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문필봉에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오른편으로 가면 운장산으로 가게 되므로 사달산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야하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얼핏얼핏 나타났다 사라지는 운장산에서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10분 후에는 TV ()안테나가 방치되고 있는 사달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사달산 정상도 버림받기는 역시 문필봉과 마찬가지이다. 이정표나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사달산 정상도 역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조망(眺望)은 터지지 않는다. 하필이면 이름이 사달일까? ‘사달이란 사고나 탈의 뜻을 지닌 별로 상서롭지 못한 낱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금방 해소되었다. 함께 산행을 하고 있던 일행이 사달산이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치 그 모양이 사다리를 펼쳐 놓은 것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달산 정상이 조망(眺望)이 터지지 않는다고 해서 발길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에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나아가면 오늘 산행 중 최고의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서면 왼편에 럭키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오른쪽 사면(斜面)이 내다보이는데, 천 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바위벼랑이 서슬이 시퍼렇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성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사달산에서 럭키산으로 향하면 초반에 잠깐 바윗길을 걷게 된다. 아까 사달산 전망대에서 왼편에 보이던 그 벼랑 위를 걷게 되는 것이다. 산길은 벼랑에서 제법 안쪽으로 붙어서 나있기 때문에 위험성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망(眺望)만은 뛰어나다. 오른편에는 조금 전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성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왼편으로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어김없이 대부산이 또렷하게 눈에 잡힌다. 그것도 모자라게 느꼈던지 지금 걷고 있는 능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바위벼랑의 기암괴석(奇巖怪石)들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눈터지는 조망을 자랑하는 구간이다.

 

 

 

 

사달산에서 8~9분 정도 진행하면 산죽(山竹)이 무성한 삼거리가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무심코 산행을 하다보면 능선을 따라 계속해서 직진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길은 신성리로 하산하는 길로서 슬랩(slab)구간이 있어 초심자(初心者)들이 통행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 슬랩 방향으로 진행해 보니 얼마 안 있어 위험 경고 플래카드(placard)’가 눈에 띄었다. 삼거리에서는 왼편의 사면(斜面)길로 내려서야 한다. 산악회의 시그널(signal)들이 많이 붙어 있는 방향이 럭키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길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럭키산 방향으로 내려서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솔길 하나가 오른편에 나타난다. 아마 슬랩구간을 우회(迂廻)하는 길인 모양이다. 이어서 경사(傾斜)진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이 잠깐 나타난다. 주변은 온통 흙인데 산길만 암반으로 이루진 것이 오늘 답사(踏査)하고 있는 산들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나, 그 바위 위를 흙이 둘러싸고 있는 특성 말이다. 내려가는 길에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뭇가지 사이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슬랩(slab)이 어렴풋이 내다보인다.

 

 

 

슬랩 우회길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이번에는 거인마을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왼편에 보이고, 이어서 왼편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구간을 통과한 후, 오르막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한양조씨 묘()’가 있는 510봉이다. 봉우리 위에 오르면 쇠다리봉(510m)’이라고 쓰인 코팅(coating)지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박건석선생의 작품이다. ‘그 분이 봉우리 이름을 또 하나 지었나 보네요.’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조(自嘲) 섞인 목소리. 그러나 산행 후에 네이버(naver) 지도(地圖)’를 검색해 본 결과 510봉은 쇠다리봉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려면 그가 자기 멋대로 봉우리의 이름을 지을 리 있겠는가. 차라리 그가 붙여 놓은 정상표시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는데 도움을 받고 있음에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다. 사달산에서 쇠다리봉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린다.

 

 

 

 

 

 

쇠다리봉에서 평지(平地) 같은 길을 잠시 걸으면 왼편에 다시 거인마을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헬기장이다. 헬기장의 한쪽 귀퉁이에 보도블럭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그 용도가 궁금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헬기장에 깔려는 것일까 아니면 헬기장이 폐지되어서 필요가 없어진 것들을 모아 둔 것일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의문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보면 오늘 산행이 여유로워도 많이 여유로운 모양이다.

 

 

 

헬기장에서 럭키산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그 구간이 짧고 중간에 바윗길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지루하다거나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헬기장에서 10, 쇠다리봉에서는 20분 정도가 지나면 드디어 럭키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럭키(lucky)는 곧 행운(幸運)을 뜻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행운을 가득 안고 귀가(歸家)하는 셈이 될 것이다.

 

 

럭키산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진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도 역시 아까 지나왔던 문필봉이나 사달산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버려진 느낌이다. 아니 오히려 버려졌다는 느낌은 더욱 강하게 든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이곳에는 김문암씨의 정상표지판까지도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그의 빈자리를 인천 우정산악회의 회원님들이 매우고 있다. 매직펜(magic pen)으로 럭키산 608m'라고 서툴게 쓴 자연석(自然石)을 삼각점 앞에 세워 놓은 것이다.

 

 

 

럭키산에서 하산하는 길은 서북쪽 능선을 따른다. 잠깐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맞은편에 보이는 작은 바위 봉우리를 왼편으로 우회(迂廻)한 후 10분 남짓 더 진행하면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기봉(分岐峰)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점이다. 거인마을로의 하산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내려가는 길은 제법 또렷하고 산악회의 시그널들도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에 길이 헷갈릴 염려는 없다.

 

 

 

 

앞서가던 일행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그가 사랑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한다. 두 개의 나무줄기가 서로의 몸통을 비비꼬며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이 꼭 사랑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이 맞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는 표현은 그렇다면 근친상간(近親相姦)이네요’. 두 줄기의 나무기둥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것이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마 내 심성(心性)은 바르지 못한 모양이다. 사물(事物)의 내면(內面)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에 음심(淫心)이 가득하니 말이다.

 

 

산행날머리는 거인마을 마을회관

거인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길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길가에 붙잡을 만한 나무들이 촘촘히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나무들조차 없었더라면 이 길은 사람들이 통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험한 산길은 이제 그만을 수도 없이 외친 다음에야 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순해진다. 그러나 왼편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잡목(雜木)이 울창한 전면으로도 희미하게나마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잡목 사이를 헤치고 나오면 거인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임도를 따라 잠시 더 걸으면 이내 55번 지방도에 내려서게 된다. 산행이 종료되는 거인마을 마을회관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200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럭키산 정상에서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귀경 길에 들른 화심 손두부

산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단체로 식사를 할 계획이란다. 가려는 곳은 화심손두부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곳이다. 이곳을 알게 된 연유는 전주에서 학교를 오래 다닌 이유도 있겠지만 과천에서 근무할 당시 전주로 출장을 오게 되면 현지에서 안내해 주던 식당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전주는 맛과 창()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는 유네스코(UNESCO)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전주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이 다 맛있는 것만은 아니다. 당연히 맛이 있었던 음식점만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 맛있었던 음식 중의 하나가 화심순두부였던 것이다. 집사람이 싸준 도시락을 냉큼 감추어버리고 일행에 합류한다. 진안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로 가는 길에 순두부가 들어가는 간판이 달려있는 식당이 여럿 나오는데 이곳이 순두부로 유명한 화심마을이다. 이곳은 강릉시 초당동, 속초시 노학동 학사평과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두부마을이다. 이곳의 순두부는 얼큰 매콤한 것이 특징. 순두부라고 하면 양념장으로 간을 맞춰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화심순두부는 매콤하게 다진 양념을 듬뿍 넣고 팔팔 끓여 상에 올린다. 그 안에 바지락 등 해물(海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얼큰한 국물과 부드러운 두부가 어우러진 뚝배기에 밥 한 숟가락 살살 말아 먹는 맛이 일품이다. 식사용으로 시킨 순두부도 맛이 있었지만, 이곳의 또 다른 음식인 손두부도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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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28 17:20

    첫댓글 가을하늘님 잘지내시지요....
    지난 주말에 홍천 노천면에 지인집에 놀러갔었는데 위치가 예전 공작산 다녀오면서 말씀하신 가을하늘님 위치와 비슷하던데 혹시 노천면 노촌분교 뒤쪽 아닌가요?

  • 작성자 14.04.29 08:14

    마자, 분교 옆으로 잠깐 올라가면 오란색 단층 집이 보일거야
    물론 분교 앞에서도 보이고...

  • 14.04.29 09:24

    @가을하늘 제가 아는 분은 제일 끝집입니다. ㅎㅎ

  • 작성자 14.04.29 13:33

    @블루엔젤 아! 윗집이 팔렸다고 하더니 엔젤이 아는 사람이 샀던 모양이구나

  • 14.04.29 14:39

    @가을하늘 예 지난 가을에 갔을때 분위기가 그렇더라구요.. 지난주에 가고 확신 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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