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자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이단(異端)으로 여겼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하면 유대 사회에서 퇴출(退出)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예수님을 안 믿는 유대인 가족들에게 쫓겨나기도 하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을 경우에는 그 사회에서 여러 측면에서 불이익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을 경우에는 그 가족의 집과 토지를 비롯한 재산까지 문제가 없었겠지만, 가족의 일부만 예수님을 믿었는데 가장(家長)이 아니었다면 집안에서도 쫓겨나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상황에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4:32). 그러면서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通用)하여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4:32). 그래서 성도들 모두가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4:34). 자기의 토지와 집이 있는 성도들은 그것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고,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기 때문입니다(4:34,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다른 사람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로 가져왔고, 교회에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투명하고, 균형이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 개인이 독자적으로 도와주게 되면, 도와준 사람과 도움을 받은 사람 사이에 혹시라도 보이지 않게 종속(從屬) 관계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에 바쳐 교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푼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에서 베푼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는 모습의 대표적인 예로 구브로(Cyprus, 키프로스, 사이프러스) 출신 레위 사람 요셉의 헌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4:36, 37). 이 구브로의 요셉은 사도들에 의해 바나바(Βαρνάβας)라고도 불렀는데, 바나바라는 말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4:36). 위로의 아들은 헬라어 원문에서 “휘오스 파라클레세오스”(υἱòς παρακλήσεως)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휘오스는 아들이란 의미이고, 파라클레세오스는 “위로의”, “권면(勸勉)의”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전의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위로의 아들을 “권위자”(勸慰者)라고 번역했었는데, 권면(勸勉)하고 위로(慰勞)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바나바는 자기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지고 와서 드린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4:37).
그런데 이렇게 재산을 팔아 사도들 앞에 두어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의 자발적(自發的) 헌신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전 재산을 팔지 않아도 일부를 처분해서 드리거나, 자기의 소유 중 일부를 내어드리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도 밭을 팔아 하나님께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 집이나 다른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다 드린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그래도 생색(生色)은 내야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생색을 낸다는 말은 누구에겐가 보여주기 위해서 뭔가를 했다는 말입니다. 5장 1절부터 11절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는 그러한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게 된 이유는 이 부부가 전 재산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5장 1절의 말씀을 볼 때 모든 소유(所有)라고 하지도 않았고, 5장 4절의 말씀을 보아도 아마 땅을 판 금액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이 부부가 자신의 땅을 팔아서 그 일부만 드리겠다고 했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바나바처럼 자신이 매우 헌신된 자처럼 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아나니아(Ἀνανίας)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냐(חֲנַנְיָה)라는 이름에서 온 것으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 있고, 삽비라(Σαπφείρῃ)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삽피르(סַפִּיר)라는 이름에서 왔는데 “청옥”(靑玉), 즉 사파이어(Sapphire)라는 의미로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입니다. 이렇게 멋진 이름을 가진 부부가 정직하지 못하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을 빙자(憑藉)하여 거짓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아나니아는 자기 땅을 판 모든 금액을 바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왜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을 얼마를 감추었냐고 꾸짖었을 것입니다(5:3). 베드로의 이런 꾸짖음은 땅을 판 모든 금액을 바치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드리면서 왜 거짓으로 포장했느냐에 대해 꾸짖은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죽은 지 세 시간 정도 지난 후에 아나니아의 아내인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 왔는데, 삽비라는 자기 남편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삽비라마저도 베드로 앞에서 하나님 앞에 드린 금액이 땅을 판 금액의 전부라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삽비라마저도 죽게 됩니다. 이 부부는 결국 죽어서 그날 장사(葬事)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그날 장사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좀 심하게 징계하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 안에서 거짓말과 가식(假飾)이 허용되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정말 쉽게 무너질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질서를 바로잡으시기 위함이라 여겨집니다. 베드로가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5:3)라고 말씀한 것이나,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5:9)라고 한 말씀을 보아도, 교회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 거짓과 가식 등이 용인(容認)하게 되면 그 공동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기가 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경고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습니다(5:11).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기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색을 내기 위해 거짓과 가식으로 포장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재산까지도 내어놓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통용하고, 아름다운 나눔을 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로 인하여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4:33).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은혜를 누리는 자들은 기꺼이 주님을 따르는 다른 지체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지체들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지체들을 돌보고, 그 필요를 채워주고,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을 주셨고, 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보고,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섬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내가 돌보고 섬겨야 할 지체가 누구일까요? 그들을 돌아보며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아름다움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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