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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이사야를 찾음(1-5)
참담한 치욕을 당해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입니다. 그러나 출산할 기력이 없는 여인의 기도만큼 간절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힘이 남아서가 아니라 힘이 없기에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1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1-5)
신하들에게 랍사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가린 후 여호와의 전에 들어갑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른 것은 커다란 재앙이 임했다는 상징으로 히스기야는 재앙이 임하자 여호와를 의지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갑니다. 현재의 상황을 여호와께 알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탁을 받기 위해 랍사게의 말을 들은 엘리야김과 셉나와 제사장 중 연장자들에게 회개를 상징하는 굵은 베로 몸을 가리게 한 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이사야에게 간 이들은 오늘은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인데, 이는 아기들이 출구까지 왔는데 낳을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히스기야의 말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아기가 자궁 입구까지 나왔으나 출산할 힘이 없다는 속담은 재앙과 연결된 것으로, 아기를 출산할 때 산모가 제대로 힘을 주지 않으면 아기와 산모가 모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특별히 랍사게가 하나님을 비방한 것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허무한 우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들의 비방하는 말을 들으시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요청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부로 말한 앗수르를 심판해주실 것과 랍사게와 앗수르 왕의 위협에 떨고 있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아 있는 자’는 앗수르의 침략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을 의미 합니다. 이렇게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선지 자 이사야를 찾아갑니다. 그래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여호와를 찾고 그의 말씀을 구하는 것은, 아직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희망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빼고 세상의 논리들은 맞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많은 말로 반박하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나 전제하지 않는 논쟁에 공연히 기어든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히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이사야(6-7)
구약 시대는 나라의 무능이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무능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복한 나라는 지배한 나라의 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의지할 여러 대상 중 더 나은 대상이 아니라 유일한 대상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갈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6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6-7)
히스기야가 전한 말을 들은 이사야는 그들에게 앗수르의 신하들이 한 여호와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랍사게의 말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말이 성취된 듯 보이는 것이 세상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참 주인이시기에 그런 말이 역사가 되지 않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헛된 말에 의해서 무너지도록 그냥 두고 보실 분이 아닙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보다 약하다고 하는 말은 여호와에 대한 지식 없이 전략적으로 내뱉은 말로 그런 말이 하나님께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호와를 조롱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속에 거짓 소문을 퍼뜨려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며, 또한 앗수르 왕은 본국에서 칼에 죽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조롱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약속하셨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앗수르 왕은 풍문에 속아서 죽게 될 것입니다.
헛된 말로 함부로 하나님께 지껄인 자를 하나님께서는 헛된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게 하실 것이란 뜻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랍사게의 말에 흔들렸던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고 안심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그 속에 두시겠다’는 영은 열왕기상 22:22에서도 나오는데, 하나님의 명령으로 ‘거짓말을 하는 영’입니다. ‘거짓말하는 영’이 만든 소문은 거짓 소문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헛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롱하던 인간들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거짓말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랍사게가 돌아가다가’(8)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앗수르 진영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고, 그로 인해 갑자기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풀고 앗수르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물거품처럼 없어졌지만, 다른 이들이 지어내는 헛된 말에는 사로 잡혀 죽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을 잘 지어낸 자들이 거짓말에 잘 속는 것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첫 번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높아졌을 때 우리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진정하게 회복 될 때, 교회도 부흥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살 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명예는 땅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곧 교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교회도 살고, 우리도 살 것입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앗수르 왕이 다시 협박함(8-13)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세상의 위협과 회유, 그리고 핍박까지도 도리어 자신들을 죽이는 ‘풍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만 믿고 위협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안개처럼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 더욱 담대해야 합니다.
8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9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8-13)
랍사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정복하고 립나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앗수르 왕의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립나로 방향을 돌립니다.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듯하다가 중단되었습니다. 산헤립은 랍사게의 군대와 합류하여 립나를 함락하고 더 큰 규모의 군대로 예루살렘을 다시 공격하려고 랍사게를 불러들인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하였고, 오히려 다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과 싸우기 해서 구스 왕 디르하가가 온다는 말을 듣고 히스기야를 다시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구스 왕 디르하가는 애굽의 바로로 앗수르와는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앗수르 왕 입장에서 구스 왕의 등장은 예루살렘 정복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입장에서 보면, 때마침 등장한 우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애굽이 동맹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앗수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이런 곤란한 상황 속에서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앞서 랍사게를 통해서 했던 협박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 협박한 편지의 내용은 두 가지로, 첫째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의 손에 예루살렘을 넘기지 않을 것이란 말에 속지 말라며, 둘째는 앗수르의 손에서 스스로 구원을 한 신들이 있었느냐고 협박한 것입니다.
왕이 전쟁하러 왔다고 하여 혹시라도 구스와 유다가 협공하면 앗수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히스기야가 앗수르와 전쟁하러 나올지 모른다고 예상한 것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한 앗수르 왕의 술책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진멸’이란 말을 첨가하여 전쟁하러 나오면 모두 죽이겠다고 강하게 협박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요약>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베를 두르고 신하들을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한 영을 앗수르 왕에게 두어 그가 소문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가 죽게 하리라 하셨다고 전합니다. 구스 왕의 공격 소식을 들은 앗수르 왕은 사자를 보내 히스기야를 다시 위협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
▼ 열왕기하 19:1-13
[오늘의 말씀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I. 왜 과감한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이 국난이 왔는가(?)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 포위되어
총체적 국난에 빠져있는 가운데 전개되는 말씀이
열왕기하18-19장/역대하32장/이사야36-37장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국가적 위기의 배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당대의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참고하여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당시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 시대에
과감한 종교개혁을 실천하고서도
이러한 국난이 온 것은
그들이 전쟁의 날을 대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방비하며
많은 수원[물 근원]을 확보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죄악을 지적하고 있으며[사22:9-14]
더욱 특별히 왕을 잘 못 모신
신하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왕의 서기관 “셉나”는
나라의 국고를 맡고 왕궁을 맡은 자가 되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인데
그는 친 애굽 정책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 정책을 잘못 세운 사람이며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를 향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오늘의 말씀에 소개되는 왕의 세 신하 중에
엘리야김에게 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하겠다는
예언도 하고 있는데 [사22:15-25]
사22:15 [총리 대신 셉나의 좌천] 만유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궁중 살림을 맡은 저 관리 셉나를 찾아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22:16 '너는 도대체 이 나라에서 무엇하는 사람이냐 ? 나라는 위태로운데도 불구하고 너는 죽어서도 편히 쉴 무덤을 파고 능을 만들어 놓았느냐 ? 도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드높은 곳의 바위를 파서 네 사후의 안식처를 꾸며 놓았느냐 ?
22:17 너는 스스로 용사라고 생각하지만 나 여호와가 너를 꼭 틀어쥐고 빙글빙글 돌려 집어 던지겠다.
22:18 내가 너를 실뭉치처럼 똘똘 감아서 공처럼 드넓은 땅으로 던져 버리겠다. 거기서 너도 죽고 거기서 네 화려한 마차도 썩을 것이다. 너는 네 왕궁의 수칫거리가 될 것이다.
22:19 네가 호화로운 능을 팠으니 네 왕이 너를 관직에서 쫓아낼 것이다. 왕이 너를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뜨릴 것이다.'
22:20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때에는 내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불러 내 종으로 쓰겠다.
22:21 내가 네 관복을 그에게 입혀 주고 네 띠를 그의 허리에 매어 주고 네가 지금 궁중에서 행사하는 모든 권리를 그에게 넘겨 주겠다. 그는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백성을 위하여 아버지와 같이 모든 일을 잘 도와줄 것이다.
22:22 내가 그에게 다윗 왕궁의 열쇠를 맡겨 주어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더 이상 열 사람이 없을 것이다.
22:23 튼튼한 벽에 박힌 못처럼 내가 그의 지위를 튼튼히 하겠다. 그의 집안 전체가 그 사람때문에 영광을 누릴 것이다.'
22:24 [패망하는 엘리아김] 그러나 엘리아김에게 그의 친인척들이 모두 매달려서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그는 작은 물병에서 커다란 항아리까지 질그릇들을 모두 걸어 놓은 못과 같이 될 것이다.
22:25 그 못이 아무리 단단한 벽에 박혀 있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부러질 것이다. 그때는 못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모두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만유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한 마디로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 포위되어
총체적 국난에 빠지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없이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자주 국방의 교만을 [사22:11]
회개해야 되는 날이 이른 것이다.
사22:11 그 자리에는 수원지를 파서 옛 못의 물을 끌어다 놓았다. 그러나 이런 전란의 때를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를 너희가 바라보지 않고 오래전부터 이런 재앙을 너희에게 내리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을 너희가 찾지 않았다.
II. 반전의 시작 [19:1-4]
그런데 어제 오늘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계속해서 항복을 강요하는
앗수르의 압박은 이제 도를 넘어서서
유다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조차도
여러 민족들 중의 한 지방신 정도로 격하하며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위협하고
항복을 강요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는데 [18:33-34]
왕의 측근 세 신하[엘리아김/셉나/요아]는
먼저 자신들의 옷을 찢고 왕에게 나아가
이 참혹한 말을 전하게 되고[18:37]
히스기야는 자신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까지 경멸을 받는 참혹함에
자신도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하며
세 신하를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예루살렘을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이 전쟁의 반전이 시작되게 된다.
III.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것[19:5-7]
열왕기 저자는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되어
국가의 존망이 좌우되는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실마리로써
히스기야의 기도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희망의 메시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19:6-7]
묵상적용
히스기야 시대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그의 왕정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 포위되어
국가의 존망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또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기원된 것이며
또 어떻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반전으로 나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그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33:12]는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히스기야 시대, 왕은 선하고 신실했으나
셉나와 같은 최 측근 대신을 잘 못 두어서
하나님 없는 국정을 펼치다가 국난을 맞은 것처럼
이런 일이 이 나라에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나라의 자주국방과 안보는
우리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지만
그보다 더 그 이전에
모든 나라와 열방을 다스리시고 주재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나라의 국정을 펼치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정권으로 서야한다.
그리고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을 때
이러한 국난이
어디로부터 기인된 것인지 살펴야하고
오늘의 말씀이 보여주는 바
오직 기도가 나라를 살릴 수 있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씀에 응답하는 기도]
북 왕국 이스라엘은
선지자 호세아, 아모스의 경고를 무시하다
앗수르에게 잡혀 먹힌 반면
이제 남 왕국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까지 삼켜지려는 위기 속에서
옷을 찢고 베를 두른 왕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으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는 반전의 시작을 봅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세상 나라와 열방을 주재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나라가 되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주의 기업으로 빼신 백성들이 되어
우리 주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은 후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아사야에게 보내자
그들이 이사야에게 말했습니다. “히스기야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수치의 날이라. 아이가 나오려고 하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랍사게가 그의 주인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사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가 한 말로 인하여 그를 책망하실 것이니,
당신은 여기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앗수르 왕의 신하들이 나를 모독한 그 말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불어 넣을 것이니,
그가 뜬소문을 듣고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립나로 가서 왕을 만났는데, 왕은 거기에서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앗수르 왕 산헤립은 구스(에디오피아) 왕 디르하가가
자기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앗수르를 향하여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산헤립이 다시 사람을 보내 히스기야에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서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그 말에 속지 말라.
보라, 앗수르의 여러 왕들이 많은 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어떻게 했는지 네가 듫었나니,
그런데 어찌하여 너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냐?
내 조상들이 멸망시킨 여러 민족들,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사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모두 어디에 있느냐?’ 하였습니다.”
랍사게가 유다 백성들을 위협하고 회유하는 말을 전해들은 히스기야는 기도하며 신하 중 몇 사람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 하나님의 뜻과 도움을 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앗수르 군대가 물러갈 것과 앗수르 왕이 자기 나라에서 칼에 죽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신다.
앗수르의 위협 앞에 히스기야는 굵은 베를 두르고 신하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나가 통회하는 기도를 드리고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사람들을 보내 기도를 요청한다.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는 신앙으로 반응했는데 우리도 어떤 상황이든지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위기 앞에서 신앙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는데 나는 어려움이 닥칠 때 누구를 먼저 찾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기가 그 자체로 유익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더욱 확실한 믿음이 세워지는 유익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의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신다.
소문을 듣고 산헤립이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믿음 위에 세우시고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인생의 위기는 동트기 전의 어둠과 같고 산 밑을 통과하는 터널과 같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할 것은 터널은 반드시 출구가 있으며 지름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과 말씀의 빛이 떠오르면 위기의 어둠은 물러가게 된다.
위기를 만날 때 믿음의 뿌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우연은 없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을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가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그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