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사이
5월 8일 오후 5시 30분 부산 출발. 5월 9일 새벽 1시 서울 집 도착. 부산과 서울 사이 눈치작전이란 없다. 밤 11시가 넘어서도 10km 넘도록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데다 차선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리는 상황이라면? 장거리 운전을 즐겨 혼자 운전 하는 신랑이 결국은 운전대를 나에게 넘겨주고 옆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한다. 몇시간 뒤면 Thank you God! It’s Monday이다.
그럼에도 이번 부모님 방문은 우리에게 감사와 풍성함을 선물해 주었다. 처음 이틀은 진주 시댁에서 보냈다. 아버님 어머님을 세가지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강건한, 부지런한, 따뜻한’. 이런 부모님 덕에 진주에 가면 좋은 곳에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은이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파란 하늘, 작약과 철쭉과 여러 봄꽃으로 아담하게 가꿔진 정원에서 잔디 피 뽑는 아이들. 경쟁하듯 많이 뽑았다고 자랑하는 아이들 얼굴 보니 이런 곳에서는 코로나로 한 달 자가격리해도 살 만 하겠다 싶다. 아침식사로 신랑이 좋아하는 경상도식 쇠고기무국을 끓여놓으셨다. 고추장에 무친 가죽나물과 젓갈과 함께 먹는 머위, 각종 나물들로 역시 어머니! 외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배를 채운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눈도장 찍어둔 산림휴양림에서 목재체험도 하고 거대한 방방이도 타며 신나게 어린이날을 보냈다. 다음날은 철쭉명소인 합천 황매산을 갔다. 길을 잘 아시는 어머니 덕에 초행자 분들 1시간 넘게 주차 줄 서고 땡볕으로 대로 걸어올라갈 때 우리는 적절하게 차 세우고 나무 우거진 데크 산길로 기분 좋게 걷는다. 컨디션이 안 좋은 서은이가 투정을 부려도 할머니는 단호박 엄마와 달리 받아줄 것 받아주며 여유있게 갈 길 가신다. 합천 온 김에 영상테마파크에서 또 어린이날 기분 내고 저녁은 가은이가 좋아하는 얇은 고기를 할아버지께서 사 주셨다. 이틀 내리 빡빡한 일정에 피곤하실텐데도 애들 내려주고 두 분은 다시 집을 나서신다. 주일에 교회 가져갈 음식을 위해 미리 장을 봐 두셔야 한단다.
매끼 정성껏 상을 베푸시는 어머니, 며느리 위해 흑염소 고아두신 어머니께 나는 내리사랑을 배운다. 아버님처럼 건강하게 신실하게 이렇게 자녀들이 안정감을 누리는 품이 되고 싶다.
진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친정이 있다. 아빠와 엄마를 세 가지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선량한, 성실한, 은혜로 사는‘. 엄마가 뇌종양 수술하신 것과 우리가 서울 산 햇수가 일치하니 만 5년이 다 되어간다. 엄마는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으셨고 수술 후유증으로 계속 약을 드신다. 아빠가 요양보호사 겸 24시간 엄마 곁을 지키며 돌보시며 지내신다. 그래서 친정을 갈 때 나는 뭔가 잘 해드려 한다는 마음과 몸으로 간다. 엄마 말동무도 해드려야 할 것 같고 평소 식사와 집안일을 다 꾸리시는 아빠를 위해서도 맛난 음식을 해 드려야 할 것 같다. 심호흡 약간 하고 창원 친정에 도착하니 두 분이 기다렸다는 듯 기쁘게 우리를 맞아 주신다. 처음에 쭈뼛하던 서은이와 가은이는 곧 할아버지와 친한 동무 사이가 된다. 할아버지가 누군가! 딸 둘 잘 키워낸 유경험자 아닌가.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디즈니 명작 동화의 주인공들을 책보다 더 잘 그려주고 배구공으로 잘 놀아주시던 최고의 아빠였다. 그 아빠는 엄마를 돌보시느라 사명감을 갖고 걷기 운동과 체중조절 등으로 건강을 관리해서 지금도 알통이 있다. 그 알통에 이제는 손녀들이 매달린다. 아이들이 까르륵거리고 7세 가은이도 입이 트였다고 서울 말씨로 이 말 저 말 하면 소파에 지그시 기대어 앉은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확실히 우리가 오면 엄마 상태가 좋다고 하신다. 엄마를 모시고 동생네 가기 전에 창원 용지호수를 들렀다. 어린 시절 참 넓어보였던 호수, 매점에서 진분홍 가방을 잃어버리고 온 적 있는 그 호수를 3대가 같이 도는데 엄마가 잘 걸으신다. 내 손에 느껴지는 엄마의 도톰한 손이 참 따뜻하고 가볍다. 늘 엄마손 붙들고 다니는 아빠는 지금 손녀들과 가볍게 호수 주변을 날아다니신다. 내가 이번에 내려오길 잘 했다고 뼈 속 깊이 느낀 순간이 바로 이 때다.
엄마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이 분들의 노후의 삶이 평온하시기를, 엄마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런 삶에도 감사거리가 있다. (넘친다는 표현은 아빠가 아닌 내가 함부로 할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엄마가 우울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지내신다는 거다. ‘온유’라는 단어를 좋아하시는 엄마. 온유한 품성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 때문 아닌가 싶은데 지금 엄마는 온유와 닮았다. 그리고 두 분이 잘 지내신다는 거다. 아빠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이 따뜻하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십수년 전 목회를 꿈꾸며 작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셨던 아빠가 지금 엄마를 목양하고 계신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주일 아침이 밝았다. 곧 친정부모님도 예배 드리러 나설 시간. 손녀들의 손편지로 대미를 장식하고 한바탕 포옹으로 작별을 고한다. 우리가 떠나도 까르륵 웃음소리는 며칠이고 바람결에 남아 자꾸 생각이 난다신다. 건강히 잘 지내다 뵈어요. 제가 명분이 ‘병간호 휴직’인데 서울 올라와 한 열흘이라도 있다 가셔요~
서울과 부산 사이. 멀지만 가까운 곳. 기회되는대로 또 갈건가? 당연 대답은 ‘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