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다해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심판을 피하려면: 내가 합의해야 할 대상과 합의금이 무엇인지 알아야!>
복음: 루카 12,54-59
연예인 박수홍 씨의 친형이 구속되었습니다. 박수홍 씨는 근 10년간 100억 이상을 횡령한 혐의가 있는 형을 고소하였습니다. 그 이전 20년 것도 있지만 그것은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박수홍 씨는 목숨을 끊을 생각도 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와 형제, 모두에게 등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대로라면 박수홍 씨는 친형제나 자녀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용당하였습니다.
박수홍 씨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형과 7대 3으로 재산을 나누자고 제안하였다고 합니다. 형의 재산은 100억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동생이 번 돈 중에서 상당 액수를 가질 수 있었지만 형은 그 합의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수홍 씨는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은 그렇게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7-58)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가서 그 값을 다 갚아야 합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에 우리를 고소하는 자가 있을 것이고 그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마지막 심판 때 나를 고소하는 자일까요? 당연히 내가 피해를 준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피해를 준 대상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됐다고 할 때까지 말입니다.
저도 운전병으로 군대에 있을 때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군용 트럭으로 프라이드 승용차 한 대를 폐차시켰습니다. 다행히 그 차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300만 원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저는 군 재판에 넘겨지어 그에 해당하는 만큼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그 돈을 여기저기 꾸어 마련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를 지어 피해를 주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자녀가 누구에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가장 큰 대상은 부모입니다. 그 사랑에 반하여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는 자녀에게 그 죗값을 보상하도록 오히려 합의금을 내 줍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장 큰 죄를 짓는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그 하느님께 죄를 지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 ‘양심’입니다.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고소합니다. 양심의 고소를 당하는 이는 그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타인을 심판하고 미워합니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양심은 결국 하느님께서 당신이 만들어주신 우리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하느님의 법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멈추려면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해 주신 것처럼 하느님 자신이 합의금을 내어주셔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받은 ‘가죽옷’이 그 합의금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써 우리 죄를 대신해 주셨습니다. 그 합의금을 받는 순간이 특별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고해성사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합의금으로 나의 고소자인 양심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마치 제가 군제대를 하고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하느님은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느님께서 주시는 합의금을 원치 않고 내 힘만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은 부모님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도 부모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을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 때를 대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고해성사를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 가시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완전한 합의금을 주셨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가라앉으면 미움도 가라앉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을 심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비가 심판을 이깁니다. 내가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만나느냐, 따듯한 부모로 만나느냐는 내 안의 양심의 가책을 당신 피로 잠재워 이웃에게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뿐입니다.
- 전삼용 요셉신부님 -
https://youtu.be/5CcmYnJQdj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