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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CIA)
중앙정보국(中央情報局, 영어: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IA)은 미국의 정보 부처 중 하나(정보기관)로서, 외국 정부, 기업, 사이버 공간 등과 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여 미국 정부의 여러 부처에 보고하는 임무를 가진다. 본부는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하고 있다.
CIA는 정보관이나 공작관, 간첩 등을 통해 수집하는 HUMINT(공작원,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를 주로 다룬다. CIA는 2차 대전 때 활약한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를 모체로 1947년 만들어졌다. 예산은 1986년엔 28억 달러, 1994년엔 30억 달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CIA는 관리부, 첩보부, 공작부, 과학기술부 등 4개 부서로 구성돼 있다. 이중 첩보부가 가장 규모가 크다. 첩보부는 정보를 분석하고 생산해낸다. 공작부는 비밀공작, 정보수집, 방첩 등의 임무를 맡는 곳. 과학기술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정찰기였던 SR-71과 지금도 사용중인 U-2 정찰기, 각종 정찰위성의 산파역이 돼왔다.
CIA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략사무국(OSS)의 후신으로 1947년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창설하였다.
최근까지 미국의 전체 정보기관 예산은 비밀이다. 예산을 알아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사고로 공개된 경우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전직 CIA 요원이자 2005년 DNI 부국장이 됐던 매리 마거릿 그레이엄은 1년의 정보기관 총예산이 440억 달러(44조원 정도)라고 말했다.
전직 CIA 요원인 CNN 분석가 Robert Baer는 CIA 직원은 보통 3-4년 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정보부서(Directorate of Intelligence)는 해외의 핵심이슈에 대한 모든 출처의 정보분석을 한다. 산하에는 4개의 지역분석 그룹, 6개의 초국가적 그룹, 2개의 지원 부서가 있다.
본부
CIA 국장은 장관급으로, 대통령이 지명하면, 상원이 인준해야 한다. 2인자 CIA 부국장은 내부 행정을 총괄한다. 국장은 주로 DNI, 백악관, 의회의 업무를 보고, 부국장이 내부를 실질적으로 총괄 지휘한다. 3인자 수석작전장교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통 CIA 요원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로 승진한 사람이다. CIA 사무국의 국장이다.
CIA를 벤치마킹한 국정원은 장관급 원장 밑에 3명의 차장이 있고, 그 밑에 1국, 2국 등이 있어서 1급 공무원이 실국장을 맡고, 그 실국 아래에 2급 단장들이 있다.
반면에 CIA는 국장, 부국장, 수석의 3명이 있고, 6개의 국이 설치되어 있다.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출신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 CIA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국장 지나 해스펠을 최초의 여성 CIA 국장으로 승진 발령냈다. 전세계 현장에서 비밀공작중인 CIA 스파이들을 총지휘하는 CIA 작전국 국장에서 부국장, 국장으로 승진했다.
CIA 사무국(Executive Office)
최고위 3개 관료들이 속해 있는 부서로 모든 CIA의 수뇌부 역할을 한다. 미군과 CIA의 합작을 주도하는 것도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CIA 국장(The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D/CIA)
CIA 부국장(The Deputy Director, DD/CIA)
CIA 수석작전요원(The Chief Operating Officer, COO/CIA)
CIA 디지털국(The Directorate of Digital Innovation)
가장 최근에 생긴 조직으로 2015년 5월경까지는 존재 사항 자체가 비밀이었다. CIA가 임무 수행에 있어서 더욱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혁신을 일으키고 그 속도를 가속시키는 부서이다. CIA 내에서 사이버전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CIA 분석국(The Directorate of Analysis)
정보국(Directorate of Intelligenc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미국의 정책 결정 방향과 국가 안보에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분석, 연구한다.
지역 그룹 중동, 북아프리카 그룹 (MENA)
남아시아 그룹 (OSA)
러시아 유럽 그룹 (OREA)
동아시아, 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룹 (APLAA)
초국가적 그룹 테러 분석 사무소(The Office of Terrorism Analysis)
ODNI와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지원한다.
초국가적 이슈 사무소(The Office of Transnational Issues)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을 다룬다. 고위 정책결정자나 법집행기관을 지원한다.
CIA 범죄 마약 담당센터(The CIA Crime and Narcotics Center)
CIA 내에서 분석한 관련 정보를 FBI나 DEA, ATF와 같은 국내법집행기관에 보고서로 보낸다.
무기 정보, 핵 확산 방지, 무기 통제 센터(The Weapons Intelligence, Nonproliferation, and Arms Control Center)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 위협 축소기관(DTRA)과 협업한다.
방첩 분석센터(The Counterintelligence Center Analysis Group)
외국 정보 기관의 동향 정보를 분석한다. FBI 내의 방첩 부서와 협업을 담당한다.
정보 작전 분석센터(The Information Operations Center Analysis Group)
미국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위협을 다룬다. DNI를 지원한다. 미 국방부, 미 국토안보부와 협업한다.
공공 부문, 지원 담당 부서 전략 수집 분석 사무소(The Office of Collection Strategies and Analysis)
정책 지원 사무소(The Office of Policy Support )
CIA 작전국(The Directorate of Operations)
국가 비밀 공작국(National Clandestine Service), 계획국(Directorate of Plans)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기밀 유지를 위해서 명칭은 수시로 변경 된다. 공작국을 담당하는 부국장 두 명의 신분도 다른 부서와 달리 공개하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CIA 내에서의 모든 위험한 작전, 즉 흑색 작전을 총괄하는 부서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백색 요원도 투입한다. CIA 내에서 가장 적은 규모이며 산하에 각종 군사 활동, 정치 공작, 비밀 작전을 담당하는 특수 활동 조직인 CIA SAD를 거느리고 있다.
CIA 특수활동 부서(CIA Special Activities Division)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부서(Counterproliferation Division)
대테러 센터(Counterterrorism Center)
방첩 센터(Counterintelligence Center)
기술지원 부서(Technology Support Divisions)
지역 · 다국적 문제 담당 부서 (Regional & Transnational Issues Divisions)
집단인간정보 조정 센터(Community HUMINT Coordination Center)
CIA 지원국(The Directorate of Support) 보안 사무소(The Office of Security)
통신 사무소(The Office of Communications)
기술 정보 사무소(The Office of Information Technology)
CIA 과학기술국(The Directorate of Science and Technology)
기타 조직들 출판물 관련 부서(The office of General Publications)
의회(General Counsel)
감사, 인사 총괄 부서(The office of Inspector General)
대외 공공사무 부서(The office of Public Affairs)
인재 발굴 부서(Talent Acquisition): 신입 채용, 특채를 총괄
지역 그룹
중동, 북아프리카 그룹 (MENA)
남아시아 그룹 (OSA)
러시아 유럽 그룹 (OREA)
동아시아, 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룹 (APLAA)
초국가적 그룹
테러 분석 사무소: DNI에 설치된 국가대테러센터를 지원한다.
초국가적 이슈 사무소: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을 다룬다. 고위 정책결정자나 법집행기관을 지원한다.
CIA 범죄 마약 센터: FBI나 기타 법집행기관에 보고서를 보낸다.
무기 정보, 핵 확산 방지, 무기 통제 센터
방첩센터: 외국 정보기관의 동향을 감시한다.
정보 작전 센터: 미국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위협을 다룬다. DNI를 지원한다.
수뇌부
2019년 9월 현재 수뇌부는 다음과 같다.
국장 /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D/CIA) - 지나 해스펠(Gina Haspel)
부국장 / Deputy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DD/CIA) - 버건 F. 비숍(Vaughn F. Bishop)
수석작전요원 / Chief Operating Office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COO) - 앤드류 (앤디) 마크리디스(Andrew (Andy) Makridis)
부국장(분석) / Deputy Director of CIA for Analysis
부국장(작전) / Deputy Director of CIA for Operations
부국장(작전-집단 휴민트) /Deputy Director of the NCS for Community HUMINT
부국장(과학기술) / Deputy Director of CIA for Science & Technology
부국장(지원) / Deputy Director of CIA for Support
부국장(디지털혁신) / Deputy Director of CIA for Digital Innovation
부국장보(양성) / Associate Director of CIA for Talent
정보연구센터장 / Director of the Center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
공보실장 / Director of Public Affairs - 브리트니 브라멜(Brittany Bramell)
법무실장 / General Counsel - 코트니 시몬스 엘우드(Courtney Simmons Elwood)
감사실장 / Inspector General - 크리스토퍼 R. 샤플리(Christopher R. Sharpley)
인재발굴부서장 / the Chief of Talent Acquisition - 셰론다 도르시(Sheronda Dorsey)
CIA 한국지부장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6년 2월 13일 CIC의 서울지부가 설치된 뒤 CIA 서울지부를 거쳐 CIA 한국지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미국 대사관에 CIA 한국 지부가 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는 1970년대 CIA 한국지부장을 지낼 당시 김대중 납치 사건에서 김대중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최종길 고문 치사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에 경고하여 당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등 중정 직원들을 파면, 경질시켰다.
2005년 9월 한국계 한성옥(미국명 세린 워넬)씨가 CIA 한국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CIA 지부장에 한국계는 물론 여성이 부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비
RQ-170 무인 항공기
RQ-180 무인 항공기(엔진 수, 재질등 제원 기밀, 날개 길이 130피트(39.62m) 이상 추정, 공중급유 능력 보유, 체공시간 무제한, 공격 능력 갖춤)
고문 논란
CIA는 국외에 비밀 수감시설을 건설해 이곳에 수감자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가혹한 방식으로 심문했다.미 중앙정보국은 이들 수감자들에게 '워터보팅'이라 불리는 물고문을 자행했다. 미 CIA 헤이든 국장은 상원정보위에서 '사람을 널빤지에 묶고 얼굴에 젖은 수건을 씌운 다음 물을 붓는 고문'인 워터보딩(waterboarding)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동구권에 비밀수용소를 두고 테러용의자들을 억류하는 등 비인권적 사례들이 계속 드러나자 미 의회는 '포로고문 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우리는 고문을 하지 않는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한편 미 상원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자행한 고문 실태를 조사한 CIA의 고문에 관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를 부분 공개키로 했다.
CIA 고문 보고서
미 상원 정보위가 12월 9일 공개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CIA의 해외 비밀감옥 고문 실태 보고서에서 CIA가 비밀감옥인 ‘블랙 사이트(black site)’에서 자행한 고문은 알려진 것보다 더 잔인했고, 미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아 효과도 없는 심문기법이었다고 상원 정보위원회가 결론을 내렸다. 6700쪽 분량의 기밀문서를 요약한 500장 분량의 이 보고서는 2001년 9·11테러 후 자행된 고문에 대한 첫 공개 보고서로 고문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음을 보여줬다. 고문 기술 중에는 작은 상자에 가두기, 오래 재우지 않기, 물고문, 폭행, 용의자 가족의 신변 위협과 성폭행 위협 등도 있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연방수사국(聯邦搜査局, 영어: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FBI)은 미국 법무부 산하의 수사 기관이자 정보기관으로서, 범죄 수사와 미국 내의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08년에 법무부 검찰국(Bureau of Investigation)으로 발족하였으며 1935년 연방 수사국 (FBI)으로 개칭되었다. 본부는 워싱턴 D.C.에 위치하고 있다. 국내 정보 수집 기관이지만, 범죄의 국제화에 대비해 전 세계적으로 지부를 두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에도 지부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첩보 활동이 미국에서 활발해지자 간첩죄 등의 수사에 많이 활약하였다.
“정보 및 법집행 책무를 지닌 정보 기반, 위협 중심의 국가 안보 기관으로서, FBI의 임무는 미국을 테러리스트와 외국의 정보 위협으로부터 보호 · 방어하고, 미국 형법을 유지 및 집행하며, 연방, 주, 도시, 국제 지부에 대한 형사 사법 업무 및 지휘를 수행하는 것이다.”
— FBI 웹사이트, 우리의 임무(Our Mission)
연방수사국 특수요원 배지
FBI는 미국 사회에 대한 위협과 지역 및 주의 권한만으로는 다루기 힘든 대형 사건을 수사하며, 수사 최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1.테러리스트 공격
2.정보 공작 및 간첩 행위
3.사이버 기반 공격 및 첨단기술 범죄
4.공공 부패
5.시민권 보호
6.국제 및 국내 범죄 조직 및 범죄 기업
7.중요 화이트 칼라 범죄
8.중대 폭력 범죄
법적 권한
수사권 범위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안보 관련 범죄
납치유괴죄
은행 강ㆍ절도 및 은행 임직원의 횡령부정사건
연방공무원의 증수뢰 범죄
항공기 및 여객용차량 파괴범죄
중요 도망범죄자의 수사
1901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은 미국이 아나키스트들의 위협하에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법무부와 노동부는 아나키스트들의 기록을 수년동안 보관하고 있었지만, 새로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들을 더욱 더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원했다.
법무부는 이미 1887년부터, 모자란 직원 수에도 불구하고, 주와 주 사이의 상업을 조절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오리건 주 토지 사기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는 직원 수 부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찰스 보나파르트 법무장관에게 미국 법무장관에게만 보고하는, 독자적인 수사기관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보나파르트는 미국 비밀검찰국을 포함한 다른 기관의 수사관 및 직원들에게 접근하였다. 1908년 5월 27일, 미 의회는 이 새로운 기관이 비밀경찰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우려해 법무부가 재무부 직원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시 주장하자, 보나파르트는 특수요원들을 보유한 공식적인 수사국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검찰국(Bureau Of Investigation, BOI)은 의회가 여름동안 휴회했던 1908년 7월 26일에 설립됐다. 보나파르트 법무장관은 법무부의 기금을 사용하여 34명(그중에는 비밀검찰국 출신도 있었다.)을 뽑아 새로운 검찰국에서 근무하도록 하였다. 첫 국장은(옛 명칭은 '치프(chief)'였으나 현재는 '디렉터(director)'로 바뀜.) 스탠리 핀치였다. 보나파르트는 이 사실을 1908년에 국회에 보고했다.
연방 수사국의 첫 임무는 '백인 노예 수출 금지법'과 '맨 법률'(Mann act) 실시 준비 단계에서 매춘굴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1932년, 명칭이 미국 수사국(the United States Bureau of Investigation)으로 변경됐다. 그 다음 해에 수사국은 금주국과 연결되었으며, 1935년에 법무부에 속한 독립기관이 되기 전까지 명칭이 '수사부(the Division of Investigation, DOI)'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 기관의 명칭이 공식적으로 바뀌어 현재의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FBI)'이 되었다.
후버 국장의 재임 시절
백악관 오벌하우스에서 찍은 에드거 후버 국장의 모습
존 에드거 후버는 검찰국(BOI), 수사부(DOI), 연방수사국(FBI)을 통틀어 1924년부터 1972년동안, 총 48년을 FBI 국장으로 지냈다. 후버는 '과학 범죄 수사 연구소'(또는 FBI 연구소)를 창설하였는데, 1932년 개소한 이 연구소는 정부가 수사를 전문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후버는 그의 재직 기간동안 FBI의 수많은 중요한 사건과 프로젝트에 상당히 관여하였다. 후버 국장이 죽고나서 미 의회는 이후 FBI 국장들의 재임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30년대의 '범죄와의 전쟁' 기간동안 FBI 요원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유괴, 강도, 살인으로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체포 및 사살하였다. 대표적으로 존 딜린저, '베이비 페이스' 넬슨, 케이트 '마' 바커, 앨빈 '크리피' 카피스, 조지 '머신 건' 켈리 등이 있다.
이런 활동 외에도 쿠 클럭스 클랜의 범위와 영향력을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FBI는 에드윈 애서튼의 활약을 통해 1920년대에 캘리포니아와의 경계에서 멕시코 신혁명주의자 군대를 체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후버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에 주류 밀매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도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7년 도청을 통해 범죄자들을 체포한 옴스테드 대 미국 사건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은 FBI가 도청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개인의 주거에 출입하지 않는 한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4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금주법 폐지 이후, 미 의회는 동의 없는 전화 도청을 금지시키고 감청은 허용한 '1934년 통신법'(Communications Act of 1934)을 제정하였다. 1939년, '나돈 대 미국' 사건에서 연방 대법원은 1934년의 통신법에 의거햐여 FBI의 전화 도청을 통해 수집한 증거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1967년의 카츠 대 미국 사건이 감청에 대해서 허용한 1927년 사건의 판결을 뒤집은 이후, 의회는 영장이 있을 경우에만 공공기관이 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범죄단속 및 가두안전종합법을 통과시켰다.
국가 안보
194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연방수사국은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간첩 사건들을 수사했다. 미국을 표적으로 한 사보타주 공작 사건의 공모 혐의로 8명의 나치 요원들이 체포되었고, 6명이 선고 후 사형당했다. 또한, 이 기간동안 미국과 영국이 연합하여 암호를 해독하려는 노력(베노마 프로젝트)으로 소련의 외교 및 정보 통신 암호를 해독하였으며 미영 양국 정부가 소련의 통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노력은 소련의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후버 국장은 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었지만 1952년까지 중앙정보국(CIA)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957년의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 체포 사건이다. 미국 내에서 활동하던 소련 스파이가 발견되면서 후버 국장은 미국 공산당(CPUSA) 연합 구성원들에서 미국인 자유주의자에 이르는 아메리칸 레프트로 인한 위협에 대해 오랫동안 집착을 계속하게 되었다.
시민권 운동
1950년대와 1960년대동안 FBI 직원들은 시민권 운동의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관계가 있거나 지나치게 공산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 그들의 영향력에 대해 점점 더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56년에 후버 국장은 시민권 운동 지도자이자 부유한 기업가, 의사였던 T.R.M. 하워드 박사를 비난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당시 하워드 박사는 FBI가 조지 W. 리, 에멧 틸과 남부의 다른 흑인들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음을 비판했었다. FBI는 "COunter-INTELligence PROgram"의 약자인 COINTELPRO 작전을 통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국내 감시를 수행하였다. 이것은 무력 또는 비폭력 조직을 포함한 미국 내 반체제 정치 조직 활동을 수사하고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종교적 지도자들의 시민권 운동 조직의 선두주자였던 남부 기독교인 지도자 회의도 FBI의 표적에 포함되었다.
FBI는 수시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 대해 수사했다. "워싱턴 포스트" 저널리스트인 칼 로완의 1991년 회고록에서 그는 FBI가 킹 목사에게 최소 한 편 이상의 익명 편지를 보내어 자살을 권유했다고 주장하였다.
1971년 3월,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어 (펜실베이니아) FBI 요원의 상주 사무소가 도둑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도둑은 비밀 파일을 훔쳐 하버드 크림슨 등의 신문사에 그것을 뿌렸다. 그 파일은 FBI COINTELPRO 프로그램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담고 있었으며 그속에는 펜실베이니아 군사 대학교 흑인 학생 집단과 위스콘신 주의원 헨리 로이스의 딸 등, 민간인의 생활에 대한 조사도 있었다. 미국은 정치 운동가의 암살 내용이 담긴 폭로로 인해 엄청난 파장에 휩싸였으며, 여당 의원인 해일 보그스 등의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활동에 대해 질타했다. 보그스 등 일부 국회의원의 전화가 도청됐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