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永信) 전강선사(田岡禪師)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700여 시간 분량의 육성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출처: https://emokko.tistory.com/231 [용화선원 법문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