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장애의 성공적 치료를 위해 : 허찬희
I. 시작하며
나의 정신병 치료 경험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계는 수련의 과정을 거쳐 군의관 시절 그리고 잠간동안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시절이다.(1978-1988) 그 후 개원한 기간에는 외래 환자를 치료하였으며 (1989-2005), 마지막으로 2006년 4월부터 지금까지, 국립부곡병원, 국립법무병원 및 사립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중증 정신병 환자 치료에 몰두하고 있다.(2006-2016)
약 16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접고 증상이 심하거나 만성적 경과 중에 있는 정신병 환자들이 입원해 있던 국립병원에 처음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문의, 간호사들 사이에, 내가 그동안 외래 환자만 보다가 중증 환자를 옳게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병실에 근무하던 간호사 및 보호사들이 보기에 환자들과 소통을 잘하고 소란을 피우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이 줄고 병실 직원들이 환자 관리하기가 훨씬 편해졌다고 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나는 전문의 수련을 마친 후 개원을 한 기간 동안, 정신치료 공부에 몰두했다. 그것이 훗날 정신병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노이로제나 정신병의 경우 단지 나타나는 증상의 양상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노이로제나 정신병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개원 생활을 하면서도 평소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증상이 심한 정신병 환자 진료에 더욱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도 한국정신병심리치료학회 제2차 학술연찬회에서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중증 정신병 환자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 한 바 있다. 현실에서는 대학병원의 경우 물론 교수들이 지도 감독을 하고 있지만 심한 환자는 저년차 전공의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II 정신병 치료의 심리적 접근
1. 첫 만남이 중요하다: 환자를 안심시켜야; 버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어야
(환자는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 두려움과 분노 때문에 공격적이다.)
정신병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 급성 증상일 경우 폭력적 행동을 동반하고 입원실에서도 한 동안 행동 조절을 하기가 힘들고 병동 직원들이 긴장을 하고 기민하게 반응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담당의사의 책무는 환자를 안심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환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위협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에게,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어야 할 끈이 끊어진 사람들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혼자 이 세상에 버려진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치료자의 역할은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당신을 낯선 곳에 입원시켜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바깥(사회)에서처럼 애먹인다고 벌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팽개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차별하지(소외시키지) 않을 것이다’는 느낌이 들도록 안심을 시켜야 한다. 입원 당시 아무리 광적인 행동을 보여도 환자는 주위를(치료자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폭력적인 행동이나 기이한 행동을 보이면서, 그러한 자신을 치료자가 어떻게 다루는지 유심히 관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첫 면담 혹은 입원 초기에 치료자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병실 생활에 쉽게 안정을 하고 적응을 잘 하며 치료팀 입장에서는 관리가 수월하다. 당연히 치료 예후도 좋아진다.
2. 반드시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환자는 항상 옳다’는 의미
최근 다른 병원에서 입원 중, 다른 환자에게 느닷없이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이상 행동이 조절이 안 되어 전원을 한 환자가 있었다. 정신병적 증상과 더불어 지적 능력이 낮고 타인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였다. 병실에서 폭력적 행동을 관찰한 바, 직접적인 이유가 없는 폭행이었다. 그러면 환자 자신의 내부에 분노 때문일 수밖에 없다. 가족 중에는 유일하게 부친만 면회를 오고 어머니는 힘이 들어 면회 오기가 힘들다고 했다. 면회 온 아버지도 자식을 맡긴 병원에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니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기가 힘들고 난감해 했다. 일단 부친에게 당부하기를 집에서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갖도록 안심을 할 수 있게 여건이 되는대로 가족들이 자주 면회하도록 권했다. 이러한 치료 전략에 가족들이 협조하게 되어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폭력적 행동은 해결되었다.
환자들의 이상 행동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치료자나 가족들이 명심해야 한다.
3. 증상을 없애려는데 매달리지 말아야:
먼저 환자를 보살펴야 치료가 시작된다. (THE CURE AND CARE)
급이 낮은 의사에게는 환자의 증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명의는 환자의 고통이 먼저 다가온다. 강박증, 망상, 환청 등 정신과적 증상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환자를 보살피려는 노력과 안심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효과적으로 증상이 치유된다.
보살피는 가족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이상 행동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환자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우선 기울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환자는 불필요한 증상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환자의 증상을 없애려는 노력에 매달리지 말고, 먼저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효과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학회 학술잡지 제목을 "THE CURE AND CARE" 라고 이름 지었다.
III 효과적인 약물치료
1. 신약에 쫓아다니지 말아야
20세기 중반 항정신병약물이 처음 소개된 이래 무수히 많은 약물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 약물이 다른 약물에 비해 효과가 더 낫다고 하는 약물은 없다.
최신약이라고 하는 무수히 많은 약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보아 왔다. 제약회사는 영업 차원에서 홍보를 하고, 대학병원에서는 앞 다투어 최신 약을 소개하고 있다.
2. 개인의 증상의 특징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정신분열병(조현병)이란 진단은 다양한 증상을 묶어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를 해놓았을 뿐이다. 망상이 심한 경우, 대인기피증이 심한 경우, 폭력적 행동이 심한 경우 등 주된 증상이 개인에 따라 다양하므로 증상의 특징에 따라 약물을 선택해아 한다.
3. 기왕의 치료 경험을 존중해야
만성 경과 중에 있는 환자의 경우 담당 주치의가 자주 바뀔 수 있는데, 새롭게 주치의가 되었을 경우, 과거 치료자의 처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은 후 그 환자에게 비교적 가장 적합한 약물로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서서히 관찰해 가면서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단일 약으로 조절을 시도한다.
먼저 단일 약으로 적당한 용량을 시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치료 효과가 나지 않는 적은 용량으로 여러 종류의 약을 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보험공단 통계에서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이 처방한 세 가지 약물은 리스페리돈(risperidone), 할로페리돌(haloperidol), 쿠에타핀(quetiapine)이다.
5. 그 다음 단계로 두 가지 병용을 시도한다.
현재 가장 많이 시도하는 병용 조합은 ‘리스페리돈 + 쿠에타핀’ 혹은 ‘할로페리돌 + 쿠에타핀’이다. 가장 많이 시도하는 조합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참고할 만하다.
6. 클로자핀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약물에 잘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 투약 중에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등 다소 번거로움이 있지만 클로자핀이 상당히 효과가 좋다. 현재까지 수많은 약물이 개발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0세기 중반에 항정신병 약물로 최초로 개발된 클로르프로마진이 가장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개인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약물의 선택이 중요하다.
IV 마치면서
정신병 환자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이 세상에 버려져 있는 느낌(소외감, 고립감)에서 벗어나 환자 자신이 치료자와 항상 끈이 닿아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치료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 점이 정신병 환자 치료에서 심리적 접근(치료)의 핵심이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약물의 선택과 적정량(titering)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신 약물을 선호할 이유가 없고 개인에게 맞는 약을 치료자와 함께 선택해야 한다.
정신병 환자의 경우 자아의 강도가 비교적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치료자가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다음 과정으로 가족이 환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족치료와 교육을 통하여 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환자-치료자-가족이 삼위일체 힘을 합쳐 치료 과업을 수행해나가야 한다.
첫댓글 허찬희 선생님 가억해 놓겠습니다~~^^
돌처럼 선생님 항상 감사드려요~~^^
공부하시는 겸허한 마음 존경 합니다~~^^
돌처럼님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급이 낮은 의사는 환자의 증상이 먼저 눈에 들어 오고 명의는 환자의 고통이 먼저 다가온다 '
는 글이 정말 마음에 새겨지네요.
요즘 딸아이가 윗집소음에 더예민해져서 밤마다 '시끄러 ' 하고 윗집을향해 몇번씩 소리 치는데. . .
엄마인 저는 ' 저아이가 얼마나 힘들까?생각하기보다는 언제 그만할까 ? ' 하며 기다렸네요 ㅠㅠ
얼마나 힘드세요
저도 딸이 한창 예민할 때
너무 가슴조려서
가슴이 쥐가 날뻔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 어머니가
딸 증세를 상담해보세요
저도 너무 오랫동안 딸 증세가 안잡혀서
병원을 바꿔서 약을 바꾸니
증세가 좋아졌습니다.
힘내세요 어머니~~
늦게나마 감사 인사 드립니다.
제가 확인을 이제서야 했네요 ㅠㅠ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외래때 의사샘께 상담해봐야겠습니다.
요즘 더 심해진거 같아요. 윗집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엄마는 모를거라고 자기가 가는곳마다따라오면서 존재감을 알린다고. . . ..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네요.
네 요사이 계절이 변하는 요즘시절에 좀 예민해 지는 경우가 많아요.
칭찬 지지 공감 사랑을 많이 주고 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돌처럼(수원 광교) 전화 주셔도 괜찮아요 우리같이 위로,공감,지지하며 살아야하는 가족입니다.
제가 응원합니다
네~~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