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를 사살하는 자가 선한 자입니까, 악한 자를 보호하는 자가 선한 자입니까? 참으로 까다로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둘 다 선한 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악한 자라도 누구에게 그를 살해할 권리가 있습니까? 그 사람 역시 살인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살인자를 선한 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 사람의 목숨을 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요즘 사형제도까지 불법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가라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을 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람들의 생명을 해한 사람을 처단한다는 것도 허락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보호해준다는 것도 선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보디가드는 선하고 악하고 그런 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의 직업일 뿐입니다. 그러니 상당한 보수를 받으면 그에 따라 일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것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뢰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지요. 보디가드는 그것을 논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따집니다. 왜 그런 사람을 보호해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잡아서 경찰에 넘겨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직업인으로서 그것을 일일이 찾아내고 알아보고 따지고 그래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유명인사(?)라면 쉽게 알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가능할까요?
서로 앙숙처럼 된 대단한 실력자들이 만납니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죽이려고 맞닥뜨렸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서로 죽을 뻔하다 피했습니다. 그러니 원수지간입니다. 그런데 묘한 처지가 됩니다. 이번에는 한 쪽이 다른 쪽을 보호해서 목적지까지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서로 못 죽여서 한이 된 사이인데 어떻게 보호하고 보호를 받으면서 갈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그만한 조건이 주어져 있기에 임무로 수행해갑니다. 가는 과정이 순탄할 수 없습니다. 런던에서 바다를 건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겨우 이틀도 되지 않습니다. 가능할까요?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아 무시무시한 독재를 행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살인광 독재자 ‘두코비치’를 국제사법재판소가 재판을 하여 무거운 중형을 내려야 합니다. 문제는 증인으로 택함을 받는 사람마다 살해당하는 것입니다. 재판 기일은 얼마 남지 않았고 무혐의로 풀려날 지경입니다. 어떻게든 증인을 확보하여 재판을 진행해야 합니다. 웬만한 증인들은 이미 저 세상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경찰이나 인터폴보다 강력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독재자의 권력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 가능성은 악명 높은 살인자로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킨케이드’를 증인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그 아내를 석방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해줍니다.
역시 이송 중에 습격을 당합니다. 운송 책임자 ‘루셀’이 간신히 피하여 자기네 안전가옥으로 부상당한 킨케이드를 데리고 피합니다. 그리고 옛 파트너요 애인이었던 ‘브라이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유명한 보디가드였는데 한 번의 실수로 그 대열에서 물러난 사람입니다. 그래도 실력만은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옛 명예를 찾아줄 조건으로 도움을 청해 부릅니다. 브라이스와 킨케이드의 만남, 말 그대로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이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가 아닙니다. 경찰에도 쫓기며 범죄단에게도 쫓기는 상황입니다. 일단 피해야 합니다.
원수지간이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어떻게든 목적지 암스테르담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시간 안에 가야 합니다. 경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코비치를 두호하려는 범죄단입니다. 무시무시하게 막무가내로 쫓아옵니다. 어떻게 알고는 길목마다 지키고 따라오고 공격합니다. 그러니 길목마다 사고가 터집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대단한 실력자들입니다. 위기 때마다 용케도 벗어나며 헤쳐 나갑니다. 특히 암스테르담 도시에 도착해서 막바지 재판소까지 시간에 쫓기며 당도하는 당면이 압권이지요. 보트로 오토바이로 도시를 가르고 질주합니다. 대단한 액션입니다. 어느 쪽이 보호자이고 어느 쪽이 피보호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사실 재미는 액션보다도 두 사람의 떠벌리는 입담에 있습니다. 그 속에는 특히 킨케이드의 삶이 묻어있는 속된 말로 ‘개똥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두 사람이 일단 생존을 위하여 합력하게 되고 서로 각자의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갑니다. 천하의 악질 독재자 살인마 두코비치를 죄인으로 확실하게 감옥에 쳐 넣어야 하는 목적을 달성함으로 속이 후련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희한한 동행이 더욱 신나지요. 그렇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눈도 즐겁지만 귀가 한결 호강합니다. 킨케이드, 조금 과장하면 총보다 입이 더 셉니다.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The Hitman's Bodyguard)를 보았습니다. 2017년 작품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차 한자에 즐건시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