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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인도 네팔 기행 3일차 : 1월 7일 (목요일) 아그라-타지마할, 아그라성
윤상현 추천 0 조회 176 10.08.18 15: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타지마할

 

 

 

 아그라 성에서 본 타지마할 원경

 

 

  아그라 성에서 본 타지마할 원경

 

 

 

 영화촬영 구경꾼들

 

3일차 : 1월 7일 (목요일) 아그라(16~17 세기 무굴제국의 수도. 샤자한과 뭄타즈 왕비의 사랑.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

 

06시 5분 전. 숙면을 취했다. 딱 3시간 잤을 뿐인데도 몸은 거뜬하다. 옆 자리의 세 총각은 아직도 한잠 속이다. 먼저 씻을까하다가 혹시 달콤한 새벽잠에 방해될까하여 답답함을 참고 아직은 좀 더 누웠다. 조금 지나자 건너편 침대의 총각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침의 바쁜 시간을 무려 20분이나 홀로 차지하고 있다. 로비에서의 미팅 약속은 07시이다. 암튼 요즘 젊은이들이란.....! 쯧쯧쯔....... 촉박한 시간을 맞추느라 뒤 이어 들어가 불과 5분 만에 씻고 나왔다. 그래야 또 다른 두 총각이 눈곱이라도 뗄 수 있으리라.

서둘러 침낭을 정리하고 로비로 내려오니 내가 일착이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현관 옆 소파에는 허름한 침구를 덮은 종업원이 여태까지 코를 곤다.

예정보다 30분이나 늦게 아침 요가를 마치고 안개 길을 걸어 인근의 ‘타지마할’ 매표소에 이르렀다. 극심한 안개는 바로 옆 사람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고 호흡 또한 몹시 곤란하다. 천식환자가 있다면 이마도 거의 죽음수준이리라.

이른 아침이라도 매표객들이 벌써 장사진이다.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차례를 기다린다. 입장료를 지불하니 생수 한통과 ‘타지마할’ 관람용의 덧신 한 켤래를 쑈핑 백에 담아준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냥 ‘오토릭샤’를 흥정하여 동문에 이르렀다. 여전히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다. ‘타지마할’ 동문 입구에도 역시 검색대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대원의 삼엄한 검색은 테러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현지인들은 너무도 익숙하여 무덤덤해 하지만 작은 주머니 하나까지도 까 뒤집어보면서 온 몸을 훑는 검색기가 몹시 당황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보니 ‘타지마할’로 통하는 최종 관문이 기다린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높은 문 위엔 아랍어로 코란 경구들을 새겨 넣었다는데 심한 안개로 그마져 확인할 수 없다. 관문을 통과하니 저만치에 무굴양식 정원의 물길만 겨우 보일 뿐 타지마할의 모습은 흔적도 없다.

이런 와중에도 경내를 청소하는 인부들의 상술은 넘쳐 난다. 좋은 자리에서 셔터를 눌러주겠노라고 억지로 이끄는데 혹시나 하는 심정에 따라 나서보니 나름대로 포토 포인트가 있다. 청소하는 여가에 관광객을 상대로 알바를 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역시 안개 뿐, 약간의 팁을 쥐어주고서 자리를 뜬다. 넘쳐나는 관람객들의 흐름을 따라 정원을 거슬러 오르니 뒤편 ‘붉은 관문’이 안개에 숨을 무렵 ‘타지마할’은 그 유려한 자태를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뒤쪽으로 ‘야무나’ 강이 아름다운 이곳은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자한’이 4번째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만든 무덤이다. 17년의 결혼기간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 아이를 낳으려다 세상을 떠난 그녀를 위하여 매일 2만 명의 일꾼을 동원하여 무려 22년 동안 지었다하니 정말 ‘세계 최대의 사랑 탑’으로 불릴만하다. 하지만 그가 무굴 제국을 통치하던 30년간 제국의 번창에도 불구하고 ‘타지마할’ 건설로 인해 국고를 바닥내고 결국 정권마저 잃게 되었으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무튼 안개 속에서나마 겨우 자태를 보여준 이곳은 정망 상상초월 그것이었다. 우유 빛 대리석을 기본으로 하고서 다양한 색상의 돌 장식을 하였는데 그 규모의 웅장함과 정교함은 여타 화보집의 아무리 훌륭한 사진들에서라도 결코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역시나 안개 속이라 전체적인 조화를 감상할 수 없음은 너무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벌써 10시 반. 아침 식사도 거른 터라 반대편의 서문으로 나가 먹자 거리를 찾는다. ‘타지마할’의 높은 담장을 따라 왼쪽으로 접어드니 많은 식당들이 모였는데 간판마다 어김없이 한글 인사말과 함께 한글 메뉴가 곁들여있다. 그만큼 한국의 여행자들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붉은 간판도 선명하게 ‘트리이트 레스토랑’이 눈에 든다. 진황색의 얼굴에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출입문 앞에서 손님을 맞는다. 때 절은 흰 바지저고리에 탁한 하늘색 머플러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계란 프라이와 완두콩을 주문하고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달랜다. 이어서 나온 커리와 감자튀김, 시장이 반찬인지, 음식이 훌륭한지 입맛에 좋다.

시간이 어느덧 한 낮으로 접어들자 아침 내내 고약하던 안개가 점차 물러가고 제법 화창한 날씨가 되어 눈앞이 편안하다. 예정에 의하면 오후엔 바로 ‘아그라 성’을 방문하는 스케줄이다. 하지만 날이 이렇게 걷히니 인도의 대표 상징인 타지마할을 제대로 다시 보자는 욕구가 인다. 오전에 구입한 입장권은 하루 종일 재 입장이 가능하다하니 그 또한 맞춤하다.

다시 만나게 된 타지마할은 오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화창한 하늘을 뒤로하고 우유 빛으로 미려한 건축물이 아련한데, 앞쪽으로는 잘 정돈된 수로가 놓인 무굴 양식의 정원을 안았다. 양편엔 널찍한 붉은 빛 회교사원이 대칭을 이루며 옹위하듯 솟았는데 그 큰 규모와 조화로움에 입이 딱 벌어진다.

오전보다 관람객들이 훨씬 불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며 단체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수 십 명의 대학생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모두 바지 지퍼를 내리고 사원 쪽을 향해 소변을 보는 포즈를 취하는가하면, 어떤 그룹은 난간에 한 줄로 걸터앉아 병사들 사열하듯 ‘우로 봐’ 자세를 하는데 표정들이 그렇게들 코믹할 수가 없다. 오전의 청소원들이 모호한 가운데 지정해 주었던 포토 포인트가 역시나 좋은 자리였던 게 지금 증명이 되었다. 재차 방문인지라 한 시간 여에 나름 충분한 관람을 마치고서 원래 계획대로 ‘아그라성’을 향한다. 서문을 나선 뒤 오토릭샤를 흥정하니 조금은 먼 거리라 부르는 게 세다.

만만찮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역시 붉은 색 사암의 장엄한 성채에 오르니 찬란하고 화려했던 시절 무굴제국의 강대한 권력과 힘이 느껴진다. 인도 전역을 지배하면서 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로 평가받는 ‘악바르’ 황제에 의하여 건립된 이곳은 ‘타지마할’에의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인해 결국 권좌를 잃은 ‘샤자한’이 말년에 유배되었던 장소이기도하다.

연꽃잎 형상으로 높이 솟은 성문 입구를 들어서니 널찍하게 사면으로 회랑이 둘렀고 안쪽으론 잘 정돈된 정원의 규모가 대단하다. 아름드리 보리수나무 그늘엔 십 여 마리의 다람쥐들이 스스럼없이 사람들 손바닥 위를 오르내린다. 잘 관리된 잔디밭을 가로질러 회랑의 이층 복도에 오르니 저만큼 모퉁이에 회교사원이 자리했다. 경건함을 요하는지라 신발까지 벗고서 들어서니 우윳빛 대리석이 매끄러운데 양각으로 새겨 만든 창문 장식이 더없이 정교하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힌두교도이여서 그런지 참배객은 눈에 띠지 않는다.

신발 정돈에 대한 팁을 요구하는 관리인을 짐짓 무시하고서 건넌 편 광장에 내려선다. 저 아래편 ‘야무르 강’을 따라 그 끝에 ‘타지마할’이 그림처럼 섰다. 박무 속에 아련히 먼 경치가 오전의 그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정말로 잘 계획되고 정비된 기념비적 건물이다. 광장의 끝 모서리 창살 굵은 감옥 방은 샤자한이 8년을 갇혀 있던 곳이다. 건넌 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쓸쓸히 죽어갔을 정황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이제 날씨는 살짝 더워오고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 걸음에 어지간히 발바닥이 아프다. 성 벽 한 모퉁이 그늘을 찾아 쉴 겸하여 메모장을 펼쳐 든다. 아그라성의 단상을 대충 적어두고 출구를 향해 가는데 회랑의 저편에 많은 인도인들이 원색의 옷차림을 하고 몰려다니며 뭔가 한창 구경 중이다. 영화 촬영 현장. 인도는 세계적으로도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의를 벗어부치고 잘 발달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 배우는 이른 바 인도의 국민배우 쯤 되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촬영하느라 바쁘고 싸인 공세 도 이어진다. 얇은 비단을 두른 여배우의 반라 실루엣 또한 매력적이다.

어느덧 해가 뉘엿할 즈음. ‘오토릭샤’로 오전의 식당가를 다시 찾는다. 만만치 않을 내일의 이동거리를 감안하여 미리 간식도 마련해 두어야만 한다. 뒤편 골목에 자리한 시장 통을 둘러보며 과일을 비롯한 약간의 먹 거리를 장만한다. 좁은 골목길을 막으며 배회하는 소들과 바닥의 쇠똥 정도는 이미 무신경이다. 아빠의 오토바이 뒤에 앉은 아가들의 큼직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소를 닮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로터리 한 편의 ‘조이너스 레스토랑’을 찾았다. 4층 옥상에 테이블이 마련된 전망 좋은 곳이다. 셋이 둘러앉아 ‘탄두리 치킨’과 ‘푸딩’ 등을 주문하고서 맥주 몇 병을 시켰다. 인도의 음식 값은 참으로 저렴한데 오직 술 값 만은 서울보다도 비싸다. 갈증이 심하더니 8도짜리 네 홉 들이 병맥주 5병이 금방 비워진다. 저편 건너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타지마할의 첨탑이요 가까이는 민가들의 지붕이다. 각종 빨래가 널린 옥상 위에서 아가씨들이 배드민턴을 치며 깔깔거린다. 로타리엔 각종 ‘릭샤’가 뒤섞였고 리어카행상들의 과일들이 풍성하다. 바리케이트가 쳐진 한길 어귀엔 방탄조끼에다가 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경찰들이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다. 이런저런 광경을 조망하노라니 마음자리가 한가하다.

땅거미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어두워진다. 낮에서 밤으로 꼴까닥하고 넘어가버리는 것이 대륙의 한 특징이다. 천천한 걸음으로 숙소를 향한다. 오전에 안개 길을 ‘릭샤’로 헤매었던 길이 막상 걸어보니 10분 남짓의 지척이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운데 도시의 불빛은 그다지 밝지 않다. 숙소의 옥상에는 여행자들을 위해 인도식 모의 결혼식이 준비되었다. 신랑 신부 역할 한명씩을 뽑아 전통복장을 입혔는데 무척이나 화려한 옷이 너무도 잘 어울려 현지인을 방불케 한다. 사두의 집전 아래 모닥불에 둘러 앉아 주례의 덕담과 신랑 신부의 다짐으로 이어지는 느릿한 절차가 성스럽다. 들러리로 나선 모의 하객들 모두 꽃목걸이를 두르고서 진정으로 즐거워한다. 모의 혼례라도 2층 카페에 피로연까지 준비했다는데 음식 차림이 늦어져 계속 지연된다. 슬그머니 홀로 객실에 드니 갑자기 한가로워 편안하다. 아침에도 막혔던 변기가 또 막혀있다. 종업원을 다시 부르기도 귀찮아 직접 손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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