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탔다.
초겨울 찬바람에 몸이 움추려들었지만, 기차 안의 훈훈한 온기가 몸과 마음의 한기를 다 가시게해준다.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인 충북선은 오늘도 한산해서, 기차를 탄것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게 해준다. 시외버스를 타면 집앞에서 타도 되지만 굳이 시내버스를 타고서도 40분씩이나 걸리는 역에 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싶었던 것은 충북선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 푸근한 낭만 때문이었다.
언제타도 충북선은 경부선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서좋다. 명절에도 늘 여유롭게 탈 수 있어서 좋았던 충북선......기차가 신탄진을 지나 낯익은 시골마을을 지나간다.
청주에서 대전까지, 대전에서 청주까지는 자주 지나다녔던 곳이라 스쳐가는 시골마을이 고향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고, 외딴집 앙상한 감나무에 매달린 두어개의 까치밥에서 공중을 날아가는 새에게도 먹이를 남겨두는 집 주인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섬을 찾아가는 내 눈에 바깥 모든 풍경은 마음 설레이는 바다로 와닿는다.
느린기차가 조치원역에 닿았다. 이곳이 내가 찾아가고있는 쓸쓸한 섬, 희원의 친정이있는곳이 아닌가. 행여 희원의 친정식구라도 만나려나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낯선얼굴들만 스쳐지나갈뿐 희원을 닮은 사람들은 눈에 띄지를 않는다. 느리다 싶었던 기차가 이제는 왜이리도 빠르게 느껴질까. 조치원역을 떠난 기차가 어느새 청주역을 벗어나, 희원의 집에서 가까운 오근장역에 닿았다. 겨울일몰은 어찌 이리도 서둘러 찾아오는걸까. 저녁 이내가 깔린 시골길을 부지런히 달려온 버스가 오랜 친구 만큼이나 반갑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아파트앞, 희원의 호프집에서 은은한 조명이 새어나온다.
그녀의 작은 몸이 부지런히 홀을 왔다갔다 하는게 보인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바쁜 그녀는 "언니왔어?" 미소머금은 예쁜 인사만 달랑 하고서는 나를 주방으로 밀어넣는다. " 언니, 재주껏 밥 찾아먹고 나 좀 도와주라. 오늘은 손님이 많네." 기차안에서 먹은 김밥에 아직도 배가 불러 부지런히 앞치마를 두르고 홀로 나왔다.
" 언니가 손님을 몰고 왔나봐."
아무리 바빠도 장삿집에 손님이 많은것은 기쁜일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지라 오늘도 술취한 손님들에게 몇 시간을 시달린 희원은 무척 지쳐있는 모습이다.
손님들이 빠져 나간 홀안에 오랫만에 희원이랑 마주 앉았다. 맥주 한잔을 따라 주며 긴 한숨을 토하던 그녀가 " 언니 나 오늘은 일찍 문 닫고 언니랑 실컷 이야기나 해야겠다." 하며 가게정리를 하고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난 희원의 아파트에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외아들 창현이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창현이를 돌보시느라 희원과 함께 살고있는 그녀의 시어머니는 내가 보지 못한 몇 개월 사이에 많이도 늙으셨다. 어머니와 손주 사이에 서있어야할 든든한 버팀목 같은 얼굴 하나......그 사람은 뭐가 그리도 급해서 서둘러 이 세상을 버리고 가버렸을꼬. 너무도 일찍 희원의 곁을 떠나가버린 남편의 자리가 오늘따라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하긴 인간의 힘으로 되는일이라면, 그 사람인들 젊은 아내와 어린자식을 두고 그렇게 빨리 가고 싶었으랴 마는......화장을 지우는것이 하루의 피로를 지우는것이라며 희원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희원을 알고지낸지가......
새로 입주한 아파트 상가에 과일가게가 생겼는데, 남의말 하기 좋아하는 아낙네들 입에 과일집 주인 여자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 그 여자 돌 지난 애기 데리고 혼자서 산다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대." 몇 동 되지 않는 작은 아파트에 과일집 여자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길 힘도 없었던지 그녀의 머리는 늘 헝클어져 있었다. 언제난 화장기 없는 부시시한 얼굴로, 아이를 안은채 손님을 맞고있는 그녀가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져,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봐주곤 했던게 인연이 되어 과일집 주인이었던 희원과 나는 서로를 의지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과일가게를 그만둔 희원이 호프집을 한다고 했을때, 아파트 여인네들은 희원을 많이도 힘들게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호프집을 못차리게 하기 위해서 구실을 찾기위한 부녀회 모임까지 열었을 정도니까......자기네 남편들이 아파트 앞에 차린 젊은 과수댁의 호프집에 드나들까봐 미리 방지를 하자는 것이었다. 노골적인 아낙네들의 노파심에 희원이 독이 바짝 올랐는지, 호프집 인테리어를 하는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부지런히 제 할 일만 하던 그녀가 인테리어를 마치던 날 나에게 전화를 했다.
" 언니 내려와, 나랑 차 한잔 하자."
실내를 아름답게 꾸미고 나니 기분이 좋다며 모처럼 밝은 웃음을 웃던 그녀가 " 언니, 나 이제부터 섬이 될거야.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무인도 같이 고립된 섬 말이야."
" 무슨 소리,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장사는 어떻게 하고......"
" 손님들 말고, 주위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로 부터 나는 섬이 되고싶어."
장사를 해야 하는지라 외적인 희원의 모습은 열린 바다였지만, 마음은 은둔의 섬처럼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남자에게는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장사만 부지런히 한탓에 아파트 아낙네들 사이에서도 희원의 소문은 좋게 나기 시작했다. 남편들은 일찍 퇴근 하는 날이면 아내랑 함께 술을 마시러 오는지라 희원의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가끔씩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술에 취한 손님들이 그 자리에서 자버리는 일이었다. 그런 손님을 깨워서 보내는 일이 혼자 사는 여자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했다. 그럴때, 남편 없는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하던 그녀......
사진이라도 보면 위로가 되는것일까.
희원의 방에는 아직도 커다란 결혼사진이 횡덩그러니 걸려있다.
사진속의 희원과 남편은 두 손을 꼭 잡고 웃으면서 다정하게 서있다.
2년도 함께 못살고 갈 인연 인줄도 모르고, 결혼 적령기를 놓치고 뒤늦게 만난 두 사람은 천년 만년이나 함께 갈 사람들처럼, 튼실한 인연의 줄로 실하게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희원이 " 언니, 난 아직도 저 사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라며 생긋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쳐다보고있다. " 이제 저 사진에 그만 연연해하고 재혼이나 서둘러라." 재혼을 부추기는 내 말이 귀너머로 들리는지, 풀잎에 이슬 구르는듯한 웃음 한번 또르르 흘리고서는 부지런히 기초화장을 하고있다. " 언니, 나 창현이랑 살거야. 재혼은 싫어." 서른초반에 혼자 되어 외아들 하나 키우면서 사는 모습이, 꼭 내 친정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듯 해서 마음이 아리고 아리다.
할머니는 내 아버지를 낳고서 스물에 청상과부가 되어,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아름답게 살다가셨다. 이른 새벽부터 산 밑에 있던 교회에 가셔서 새벽종을 치면서 하루를 펴셨고, 저녁늦게 기도 하는것으로 하루를 접곤하셨다. 청상과부의 외아들이었던 아버지는 7남매의 많은 손주들을 할머니 무릎에 안겨드렸고, 할머니는 그 손주들을 볼보는것을 당신의 크나큰 낙으로 생각하셨다. 외며느리였던 내 어머니랑은 친딸 처럼 잘 지내셨다는 할머니......돌아가신 후에도 손주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시는 할머니지만, 난 내 할머니의 수절의 삶을 희원이 닮아가는 것은 만류하고싶다.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다가, 희원이 나이든 후에 허탈해 할까봐 미리 걱정이 앞선다.
아들 장가 보내고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았겼다는 상실감에 빠져서 재혼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 할까봐 미리 걱정이 앞선다. " 외아들만 바라보고 혼자 살던 누구누구는 이랬다더라......" 내 아무리 이랬다 시리즈를 연발해도 희원은 벼락에도 끄덕없는 나무처럼 굳세게 버티고있다. " 언니 , 나 돈이나 많이벌고 살거야. 우리 나중에 함께 여행이나 다니자." 그래 그러자, 우리 함께 여행이나 다니지뭐......
잠옷으로 갈아입은 희원이 자리에 눕는다.
누워서 몇마디 얘기를 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잠 속으로 빠져 들었는지 아무런 말이없다.
세상에, 밤새도록 이야기 하자더니 누워서 5분도 안되어 자버리는 그녀...... 많이도 피곤했겠지. 혼자 힘으로 돈벌어 집도 사고 시어머니도 모시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꼬.
얼마전에 새로 입주한 이 아파트가 희원의 피땀의 결정체 처럼 느껴진다.
언제쯤 희원은 외로운 섬을 벗어나 사람들속으로 나오게 될까.
찾아오면 마음 가득 평안을 안고 가는 이 섬에 내 다시 찾아 올 수 없다 해도, 스스로 갇혀버린 그녀의 섬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싶다. 그러나 그녀는 술을 파는 호프집의 주인으로 있는 동안은 고립된 섬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을것 같다. 혼자 사는 동안은 영원히......
고독한 그녀의 삶에 아자 아자 !!!... 힘을 주고 싶네요. 물이 흘러 가는데로 인생도 머무러지않고 흘러 가다보면 인연이 되면 그보다 좋은 사람도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안된다면 혼자 나름대로 또 다른 멋진 인생을 살수도 있을거예요.......용기를 주세요...그분께........^^*
힘들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에 아직도 묻고 있는 사랑하는남편에 대한 사랑 ,,그리 힘든 동생을 위한 에스더님의 인생의 좋은 친구 ,에스더님 덕분에 그동생이 많이 힘이 되겠네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좋은 인연으로 만난 두사람 오래도록 같은 행복 누렸으면 합니다,,,,에스더님 좋은 여행 하셨네요,,,,
비록 몸은 힘이들게 살지만 그래도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사랑 하는 아들 이있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든든한 남편이 자리하고 힘이되어 주니까 .....멎지게 살아 가리라 믿어요...동생분 에겐 항상 든든한 에스더님이 곁에있으니까.... 그런데 반갑네요....청주에 사시나봐요...?인연이 되면 만보고 싶네요...^ ^*
에스더님 님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여 흐믓해집니다. 동생분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정겨움도 느끼지만 고립된 섬에서 빨리 빠져나와 행복한 삶을 따뜻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하네요.. 시어머님 모시고 사시는 그 동생분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사시는 그 분에게 밝은 미래가 늘 열려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은 이루 말로 표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당장은 힘들어도 외로운 섬에서 서서히 나올 겁니다.... 곁에서 따뜻한 사랑을 많이 주셔야겠네요... 충북선을 타본지 여러해가 지났네요... 조만간 충북선 기차를 타 봐야겠네요....
고독한 그녀의 삶에 아자 아자 !!!... 힘을 주고 싶네요. 물이 흘러 가는데로 인생도 머무러지않고 흘러 가다보면 인연이 되면 그보다 좋은 사람도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안된다면 혼자 나름대로 또 다른 멋진 인생을 살수도 있을거예요.......용기를 주세요...그분께........^^*
힘들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에 아직도 묻고 있는 사랑하는남편에 대한 사랑 ,,그리 힘든 동생을 위한 에스더님의 인생의 좋은 친구 ,에스더님 덕분에 그동생이 많이 힘이 되겠네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좋은 인연으로 만난 두사람 오래도록 같은 행복 누렸으면 합니다,,,,에스더님 좋은 여행 하셨네요,,,,
대단한 분이시네요. 혼자서 그렇게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이 마름답습니다. 아마 저라면 남편 없이 단 하루도 못살 것 같은데...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겠죠?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까 열심히 사시는 것 같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잖아요.
비록 몸은 힘이들게 살지만 그래도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사랑 하는 아들 이있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든든한 남편이 자리하고 힘이되어 주니까 .....멎지게 살아 가리라 믿어요...동생분 에겐 항상 든든한 에스더님이 곁에있으니까.... 그런데 반갑네요....청주에 사시나봐요...?인연이 되면 만보고 싶네요...^ ^*
공쥬님, 청주에서 살다가 유성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청주는 자주 가는 편입니다. 성안길도 그립고 자주 자녔던 안면도 칼국수집도 그립네요.
나름대로의 삶은 행복한 거라고 생각됩니다...각자 자기의 갈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들은 모두 신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거던요...
마음의 섬에 갇혀 지내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이지요 꼭 희원님만 그리 사는게 아니지요 섬이라는 외로움 섬안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외로워하고 고독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의 눈길을 원하는게 아닐까요???
에스더님 언제 성안길 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미리 .......그럼 안면도 칼국시 함께 할수 있을거 같은데....^ ^ 인연이 될까요.....?
에스더님 님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여 흐믓해집니다. 동생분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정겨움도 느끼지만 고립된 섬에서 빨리 빠져나와 행복한 삶을 따뜻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하네요.. 시어머님 모시고 사시는 그 동생분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사시는 그 분에게 밝은 미래가 늘 열려지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