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과 9일 강남과 서초 건축사회 등산회 그리고 기란산업 등산 동호회인 비눈바(雨雪風) 회원 36명이 함께 지리산 산행을 다녀왔다.
등산이나 답사로 서울에서 떠날 때 많이 이용되는 서초 구민회관 앞에서 아침 7시 30분 출발했다. 대진 고속도로가 생긴 이후 지리산까지 가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어 그 쪽 산행이 편리해지게 되었다. 출발 후 차 안에서 모든 일행이 한사람씩 차례로 자기소개를 한 후 진행을 맡은 강남 등산회 이명철 부회장이 행사 안내를 했다. 잠시 조용히 가다 9시 45분쯤 대진고속도로상의 무주 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과 점심을 겸한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11시 15분에 지리산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거기서부터 지방 도로를 따라 농촌 체취가 느껴지는 아영면과 지리산 기슭의 운학정 마을들을 지나갔다. 길을 가는 동안 창 밖으로 김을상 옷칠 전시관과 목공예 전시관등 그 지역 특산물을 다룬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산기슭에 산과들 펜션 간판이 보였는데, 그 옆이 우리가 출발할 백무동 계곡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그 곳에서는 동서울터미널까지 직접 운행하는 버스가 있었다.
이번 산행 코스는 백무동에서 한신 계곡을 거처 세석산장으로 올라가 1박하고 다음날 영신봉을 지나 쌍계사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 곳은 지리산 남부 코스로 불리는데, 한신계곡은 폭포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삼신봉은 부산 다대포로 이어지는 낙랑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다.
일행은 12시5분 백무동 주차장을 출발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나아갈 곳을 올려다보니 앞에 보이는 산자락은 높지 않았으나 그 뒤로 지리산의 깊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출발지 길 옆의 상가를 지나며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나도 소주 한 병을 사서 배낭에 넣으며 내심 준비 완료라고 생각했다. 백무동 매표소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난 후에는 다른 생각 없이 산행에만 몰두하였다. 산행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계곡물소리와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숲이 우거진 푸르른 녹음과 거대한 자연의 원초적 기운을 대하면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일깨울 수 있게 한다. 또 현재의 집착에서 벗어나 지나온 삶을 생각하게 하고 내가 나갈 길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하며 인생의 희노애락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 생할에서 산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 느낌을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산에 가고 또 가게 되는 것이다.
산에서 묵묵히 걷다보면 평소 잊고 지낸 많은 느낌들이 내 안에서 살아 꿈틀대기 시작함을 느낀다. 산에 가서는 그처럼 산을 느끼는데 집중하고 싶어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가급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모르는 사람들과는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먼저 인사를 건내기도 한다.
1시간 쯤 지난 삼거리에서 선두에 가던 회원이 멈춰 중간 휴식을 했다. 팻말에 백무동 2.8Km, 세석 4.7 Km라고 쓰여 있는 가내소 지점이었다. 휴식 시간은 특별히 정하지 않아도 이김전심 신체 리듬과 분위기에 의해 갖게 된다. 그 지점은 대개 길의 교차점, 산마루, 그리고 좁은 숲길을 빠져 나와 공터를 만날 때 등이다. 처음 우리가 쉰 곳은 다리를 건너기 전 여럿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터였다. 사람들마다 그 순간을 가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배낭에서 물이나 오이, 과자 등을 꺼내고 막걸리를 돌렸다. 산행에서 먹는 막걸리 맛은 옛날 농촌에서 새참으로 마시던 막걸리 만큼이나 맛이 좋다. 목축임도 그만이고 에너지 보충도 된다. 인원이 많은 탓에 금새 막갈리 몇 통이 동이 났다. 개울 건너를 올려다보니 시원스레 산 능선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름풍경은 초록 일색이어서 단조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름 산행에서는 푸른 능선과 숲의 깊이를 대하는 것이 좋다. 이맘때는 마른 가지에서 돋아난 연녹색 새싹이 자라서 최고로 무성해질 때이다. 생명력의 기운이 최절정으로 치달아 가면서 발하는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성히 얽힌 숲이 수분을 머금고 계곡에 풍부한 수량을 이루어낸다. 우리가 걷는 길 옆 계곡에서는 계곡물 소리가 맑게 들렸다. 그 뒤로는 넓은 계곡에 로프로 걸쳐 만든 출렁다리도 몇 개 건넜다. 한참을 가다 다시 휴식을 의식할 시간이 된 때 쯤 큰 바위돌 몇 개가 널부러져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해발 905m 세석까지 2.8Km로 남은 지점이었다. 조금 앞으로 가니 계곡 전체가 바위 무더기로 되어 있는 너른 공간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잡고 쉬었다. 그 사이 뒤이어 일행들이 도착하여 함께 쉬게 되었다. 바윗돌이 계곡을 가득 매운 풍경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 돌 틈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배낭을 뒤적여 간식을 꺼내 먹었다. 여러 사람의 배낭에서는 산행이 끝날때까지 요술 보따리처럼 끊임없이 이것저것 나온다. 아까보다 시간이 지나서 김밥도 맛있게 먹었는데, 그때까지 아직 맨 뒤에 오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아서 신발을 벗고 탁족을 잠시 즐겼다. 탁족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현대인처럼 훌훌 벗어 제치고 물속에 뛰어들고픈 욕망을 체면에 억누르고 더위를 달래던 풍속이었다. 그러나 발에는 신경이 모여 있고 계곡물의 수온이 낮아 조금 담그고 있으면 발이 시리게 되어서 실제로 더위를 식히는 효과도 크다. 휴식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탁족하며 벗어둔 신발을 신느라 뒤따라갔는데 한참을 걷다보니 다시 앞쪽에 서게 되었다. 세석까지 1.3 Km 남은 팻말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는 길의 경사가 급해지고 바윗돌도 많아 점점 더 걷기에 힘이 들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다리가 아프고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그 것은 산행에서 언제나 겪게 되는 일이다. 저기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어 능선의 정상을 넘어서니 시야가 휜히 트인 나즈막한 경사지가 나왔다. 막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내리막길로 조금 내려오니 오른편에 희뿌연 안개비 사이로 세석산장이 보였다. 산장에 맨 먼저 도착해 시간을 보니 3시 30분이었다. 그 날 산행은 거기가 종착지였다. 거기서 3.6Km만 가면 대청봉이 있고 날씨가 좋을 때 같으면 서둘러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기상 조건상 무리였다. 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런데 날씨 상태가 심상치 않아 내일에도 계속 비가 올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거기서 남은 시간에 할 일은 숙식뿐이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비바람을 맞으니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일행은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고 침상도 배정받지 않은 상태였으나 관리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장 안으로 들어가 평상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5시경 관리소 직원으로부터 각자 신분증을 지참하고 관리소 창구에 와서 예약자 확인을 하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듣지 못한 줄 알고 남 건축사 이들 성우가 알리러 와서 같이 창구로 내려가 줄을 섰다. 먼저 와 있던 다른 회원이 이미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며 술자리를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산행에서 산을 느끼는 것 말고는 별 취미가 없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사진 앵글에 그 분위기를 잘 담아보려고 신경 쓸 때도 있지만 술을 마시면 느낌이 무뎌지고 산행도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수속을 마치고 내려가 저녘을 먹으며 술자리도 함께 하다가 7시쯤 함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폈다. 잠시 자리를 두고 실랑이가 일었으나 형편대로 자리를 잡자 조용해졌다.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각과 어림없이 다른, 이른 시각에 다들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하기야 갈 곳 없는 산장에서야 그처럼 해 떨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것이 생리에 맞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룻밤을 신세지고 떠날 일행들은 그런 리듬을 지킬리 없었다. 누워 있다가 한 사람씩 다들 일어나 야외 벤치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회원이 내려가자고 했다. 처음엔 그냥 누워 있었으나, 산장의 밤 분위기가 궁금하고 혼자 누워 있기도 무료해서 내려가 합류했다. 이런 시각에는 아예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하거나 담론에 시간 가늘 줄 모르고 예기를 해야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술이 약한 나로서는 술자리를 즐기지 못하고 그냥 자리만 지키는 꼴이 된다.
그 곳에서는 10시에 잠자리에 들도록 되어 있어 일행은 밤 9시 30분에 침실로 올라갔다. 방은 툭트인 단일 공간에 통로보다 높게 침상이 설치도어 있고, 다시 침상위에 배낭 등을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 침상에 70cm 폭으로 자리를 나누고 1인당 2장의 담요가 배급된다. 누워 있자니 군대시절 내무반이 떠올랐다. 그런 때에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도 갖게 한다.
모두 자리에 누워 조용해졌다. 그 때 대피소에서 호우주의 예상 특보가 내려졌다고 하면서, 내일 산행은 기상 상황에 따라 전하는 안내에 따라 움직여 달라는 방송을 했다. 걱정을 하면서도 모두 애써 잠을 청하며 조용히 누워 있어 정적감이 돌았다. 금새 잠이 들었는지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신경이 쓰이는지 여기저기 뒤척이는 소리와 각각의 잠버릇이 풍기는 방안 분위기를 느끼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들 누워 있는 새벽에 일어나 물을 찾아 마시고 다시 자려고 조금 누워 있다보니 몇 사람이서 깨어나 웅성거렸다. 그런 때 더 자려고 해 보았자 신경만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예 일어나 세면하고 느긋이 시간을 갖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 세면부터 하였다. 다시 방에 들어오니 취사도구를 씻으러 간다고 해서 동참했는데, 세제를 쓸 수 없다 하여 고양이 세수하듯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취사장에 가서 설익은 햇반을 라면 국물에 말아 아침을 먹었다. 먹는 것에 별 욕심은 갖고 있지 않지만 산에서 먹을 때만큼은 매번 좀 섭섭한 느낌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산에 가면 산행을 생각해서 밥을 잘 챙겨 먹는 편이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일행이 다시 산장 아래에 모여들었다.
아침을 먹고 짐 정리를 하는 도중 대피소에서 날씨 관계로 그날 산행을 통제한다는 방송이 들렸다. 그러면서 가장 빠른 하산길인 거림으로 내려가든지 상황이 해제 될 때까지 대피소에 있으라고 했다. 산에 있는 동안 관리소의 결정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명령이 된다. 더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우리는 대피소에서 말 한데로 7시에 거림으로 내려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산꾼이라 불리는 이명철 부회장이 미련이 남은 듯 조금 더 기다려보고 비가 잦아들면 청학동으로 내려 가자는 솔깃한 제안을 하였다. 몇 사람이 그에 동의하여 그렇게 될 요량이었다. 그러나 연배가 많은 회원들이 아무래도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여 결국 거림으로 내려가기로 결정되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으나 나는 우비가 없어서 걱정이었다. 비닐봉지를 나누어 뒤에 두르고 하였으나, 거센 비바람을 무사히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리 저리 구하던 중 다행히 비눈바 회원이 배낭에 있던 방수복을 꺼내주어 입고 안심이 되었다. 비를 맞으며 일행은 기분이 침울해진 상태로 조심스럽게 길을 나섰다. 이제 당도하기 까지 쉼 없이 종착지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산장을 막 나서 길로 접어드니 평원처럼 넓게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인데 사진기를 꺼낼 수 없어 포기하고 길을 걸어갔다. 조금 지나 숲 사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거기서부터 길이 벌써 물길이 되어 있었다. 신발이 물에 젓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그러나 길을 내려 갈수록 길에 물길이 세차져서 더욱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웠다. 빗방울에 시야도 흐리고 물에 빠지지 않게 디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느라 이동이 더디어졌다. 그러나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때는 할 수 없이 물 속 길바닥을 디디느라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신발 안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신발 자체에서보다 바지를 타고 내려온 물기가 뒤꿈치 안으로 더 많이 흘러 들어갔다. 처음에는 끈끈한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이내, 장화처럼 물기가 꽉 찬 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어쩔 방도도 없고 어떻게 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완전방수라는 신발 살 때 한 주인의 말이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신발 뿐 아니라 우비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온몸이 젖어 왔다. 배낭도 신발도 몸도 점점 젓게 되자,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도착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다는 체념어린 심정이 되었다. 그 사이 계곡해서 쏟아진 비로 계곡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이 경사진 계곡을 따라 둑이 터지듯 세찬 물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연한 흙이 패여 그 물에 섞여서 빨간 흙탕물이 되었다. 그러나 풀밭과 낮은 키의 나무 숲 사이에서 흘러온 물은 비교적 맑은 상태였다.
길을 가다 곳곳에 설명을 위해 세워 논 간판은 그런 기후에서는 별로 관심을 갖게 되지 않지만 무거운 기분에 그나마 그 것이 지리한 기분을 환기시줄 것 같아 읽고 갔다. 영신봉쪽 지형을 안내한 간판이 나타나 쳐다보니 남해 삼일포라는 그림과 글씨가 써 있었다. 간판에 그 앞으로 펼쳐진 광경을 축약해서 그려 놓았는데,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그림과 풍경을 대조하며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비오는 날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지리산은 방장산 두류산으로도 불린다. 올해 초 금강산을 다녀왔었는데 제주도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이다. 1967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곳을 지나 좀더 급경사 길을 내려와 북해도 다리를 건널 때는 다리 아래로 큰 강물처럼 폭이 넓고 물살이 센 상태가 되었다. 그 아래로 더 내려 갈수록 주변에 치닫는 물길은 폭이 넓어지고 물살도 거세졌다. 가는 도중 작은 게곡물 길을 두어번 건넜는데, 보폭에 적당한 징검다리 돌이 있지만 물살이 세차서 디디기가 조심스러웠다.
산장을 출발한지 두시간 가까이 되었을 무렵 길이 조금 완만해진 것이 산 아래쪽으로 내려 온 것 같았다. 거림까지 남은 거리가 1.3 km와 0.7Km로 표시된 팻말을 차례로 지나 한참을 걷다보니 큰 소나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앞이 훤해지 느낌이었다. 거기서 잠시 멈춰 앞을 바라보니 두어 채 집이 보여,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 더 내려가 9시30분에 고대하던 거림 매표소가 나타났다. 거기서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이 서서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일행들이 건물 매점 처마밑으로 비 맞은 새처럼 꾸역꾸역 기어들었다. 그리고 물에 젖어 떨리는 몸을 달랬다. 배낭에서 물과 과자등을 꺼내 먹으면서 맨 뒤에 오는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30분 후쯤에 다 만났다. 거기서 함께 아래쪽 주차장에 서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했는데, 관리소 직원들이 앞쪽에 나타난 다리 입구에서 위험하다며 통제하고 그 아래쪽으로 안내했다. 안내한 그곳을 통해 마을에 들어섰다. 길 주위에 몇 채의 상가가 늘어서 있었지만 돌아볼 마음 없이 버스에 올라 탔다. 몸이 물기로 질척거리는 탓에 심기가 불편했다. 으시시한 상태가 되어 누군가 히타를 틀어 달라고 했다. 산장에서 출발할 때는 내려가서 찜질방을 가자고 했으나, 운전사가 해 놓은 점심 예약이 되어 있어서 그냥 식당으로 가기로 하고 10시 20분 그곳을 출발했다.
몸이 젖은 상태에서 좌석에 앉으려니 의자에 엉덩이가 말착되어 더 움직이기 불편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차 안에서는 거의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없었다. 다만 가끔 침묵을 깨뜨리며 양말 등을 짜는지 주루륵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림 주차장에서 예약한 식당까지는 1시간 반 정도나 가야 하는 제법 먼 거리였다. 지리산 남쪽을 돌아 화개장터와 구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가는 길옆에 섬진강이 보였다. 식당은 그 강물을 거슬러 가다 구례를 막 지날 즈음 천은사 입구쯤에 있었다. 차가 주차장을 출발할 때 눈을 부치고 있다, 섬진강변을 달릴 때부터 차창밖으로 보이는 주변 풍경을 감상보며 갔다. 우리가 만난 거센 계곡 물길처럼, 여기도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강물은 누렇게 변하고 수량도 많아져 있었다.
이번 행차에선 예상치 못한 비로 계획대로 산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산행 못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도시에서는 자연의 운행과 상관없이, 문명을 이용해 밤에도 불을 켜고 활동할 수 있고 일을 보러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에서는 인간이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의해 삶의 리듬을 맞췄던대로 여전히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산에 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며 따르게 된다. 더욱이 자연의 시원(始原)의 체취를 간직한 지리산의 크나큰 품은 기상대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국지 기후가 형성되어 이번처럼 갑자기 비를 만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12시에 목적지 식당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2층의 6개 방에 나눠 들어가 씻기부터 하였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 식당에 들어서니 먼저 자리한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온 탓에 속을 달래려 빨리 식사하고 싶어 했으나 손님이 많아서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몸을 씻고 옷도 맑은 물에 빨아 입어서 한결 정결한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기분을 만끽하듯 술을 먼저 한잔씩 돌려 마셨다. 조금 후 주문한 연잎 죽통밥과 많은 반찬이 나왔다. 식탁에는 여러가지 산나물 반찬이 놓였는데 모두가 좋아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당을 나오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뽑아 들고 잠시 마당에서 느긋이 있다 차에 올라 1시 40분에 그곳을 출발했다. 거기서 장수 가는 국도로 접어들어 이동하는 동안 다시 창 밖으로 보이는 고향 내음 나는 들녘을 지났다. 그리고 2시48분 장수 인터체인지를 이용해 무진 고속도로를 달리다, 내려갈 때처럼 무주 휴게소에서 휴식을 하고 서울까지 계속 달려왔다. 고속버스 전용차선제가 적용되는 시간이라 막힘없이 내달아 6시 20분 경 서울에 도착했고 출발할 때 탔던 곳에 멈춰 순차적으로 일행을 내려주어 각자 귀가 길에 올랐다. 그러나 종착지에서는 내가 알지 못한 뒤풀이로 산행의 여운이 계속되었을 듯 했다.
2006. 7. 11 김석환
컴퓨터와 친하지 않아서 이번에 처음 와 보았는데, 조병섭 등반대장을 비롯한 산행 식구들의 열정과 활약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산을 통해 더 가까이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은 인터넷에서 통상 쓰는 문체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실 것 같습니다.
첫댓글 참 자세히도 느끼셨군요. 역시 생각의 깊이가 다르군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아서 이번에 처음 와 보았는데, 조병섭 등반대장을 비롯한 산행 식구들의 열정과 활약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산을 통해 더 가까이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은 인터넷에서 통상 쓰는 문체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실 것 같습니다.
역시~~ 저희들은 허기진 배를 추스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김석환건축사님께서는 마음의 양식을 채우시고 계셨군요.....^^ 글 감사합니다.
예 글잘읽었슴니다. 운무덮힌비오는세석산장에서 그래도 함께한그시간 그사람들이좋았고~~~~ 라면에 이슬이도~~~ 근데 석환님 불어나는 계곡 물앞의 비맞은 사진은 아직도 현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