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반적으로 잘못을 범하는 생각중 하나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잘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으며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커다란 난관과 고난속에 있었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등장하는데 이들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늙고 노쇠하여 더 이상 후사를 기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따라 다니는 아픔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왜 자녀가 없는가”하고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당시에는 유대의 랍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했고, 자녀가 있어야 했습니다.
자녀가 없는것은 하나님의 징벌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자녀가 없음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말거리 되었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안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으면 당연히 그러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것이 있습니다.
이것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에게는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후사를 기대할 수 없는 그들 노부부에게 세례요한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요한을 주셔서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도록 하시기 위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무자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사명과 연관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예가 많습니다.
한나 역시 자식이 없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을 영적 암흑에서 건지는 사무엘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살면서 인구가 급격히 불어나던 시대에 태어나
이스라엘의 강성함을 두려워한 애굽의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자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이도록한 시대에 태어나
백일이 못되어 어머니의 품안을 떠나는 아픔을 격었으나
이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는데 사용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17세가 될 때 까지 평안한 삶을 살다가 형들의 질투에 의해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아픔을 격지만 그는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들과 애굽인을 비롯하여 가나안 지경의 많은 사람들을 가뭄에서 살리는 도구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을 애굽에 정착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이 격는 고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가항력적 이였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고난을 격을 만한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고난은 덮쳤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시는 사명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그 고난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받고 그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도 이유모를 고난과 불가항력적 고난이 안개 처럼 덮일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난의 황무지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보내아 할 것입니다.
머쟎아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의 의미를 일깨우시며 우리를 사명의 자리에 세우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고백하기를 “보옴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사 38:17)”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으로 세우시려고 우리를 고난의 자리에 두실 때 그 자리를 감사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마음이 심란하고 내 안에 2% 부족함을 느껴서 클릭하게 됐답니다~ 지금 내 생활에 있는 이 고통은 하나님이 저를 단련시키시고자 하시는 것이 겠지요? 이 길에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실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