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에 내린 눈은 어디로 갔는가. 유난히 많이 내렸던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포근한 햇볕에 산죽만 푸르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향했다. 나목으로 서 있지만, 벌써 향기로운 봄꽃들이 눈앞에 삼삼해지는 십리벚꽃길을 지나 화개장터로 들어선다. 쌍계사 산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 국사암(國師菴)으로 향한다. 청청한 시누대들이 남도의 겨울 풍경을 따스하게 한다. 국사암은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삼법화상이 세운 곳으로, 후에 진감국사가 중건하여 국사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쌍계사에 딸린 암자임에도 국사암은 웬만한 사찰의 규모와 경관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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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암의 대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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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천년이나 묵었다는 느릅나무를 곁에 두고 있으니, 사천왕수로 불리는 고목의 연륜만으로도 암자라는 이름이 오히려 겸손하다. 오래된 고목 옆으로 이어지는 샛길은 따사로운 볕을 받으며 시종 맑은 댓잎 소리를 거닐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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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묵은 느릅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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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840년 당나라에 가서 선종의 법을 잇고 돌아온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스님이 심었다는 야생차가 어느 새 암자 주변에 푸릇한 차밭을 이루고 있어,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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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 가는 산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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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쌍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잔등에 땀이 배도록 오르면, 가운데가 우묵하니 패인 큰 바위와 만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학을 부르며 놀던 곳이라 하여 환학대라 부른다. 학을 타고 다니던 이가 이 바위에서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표지에 적혀 있으니, 이름하여 신선용 주차장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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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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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제법 가파른 산길엔 넓적한 돌들이 타일처럼 깔려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이 공역을 감당하였는지, 그 오랜 시간의 노고를 차마 발로 밟기가 송구하다. 인적 드문 암자에서 댓잎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 소리에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골짜기에 흩어진 돌들을 가져다가 차곡차곡 그 어지러운 마음을 눌러 놓는 심경으로 깔아 놓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세상 홍진에 더럽혀지고 갈래갈래 찢겨진 마음을 보듬어 안고 오를 때마다 여전히 뒤에서 붙잡는 속연을 짐짓 눌러두려고 어깨에 그 무거운 바윗돌을 한 장씩 짊어지고 오르며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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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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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오래 전, 인왕산 약수터에 오르는 길에 미끄러운 바위를 쪼아 수백의 계단을 만들어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 계단을 디디면서도, 불사 가운데 내를 건너는 다리를 놓는 것이 가장 큰 일이요, 여럿이 편히 다니게 하는 길을 내는 일도 그 못지않음이라 하였으니, 쌍계사 오르는 계곡의 바위 여기저기에 제 이름 석자나 부질없이 새겨 두는 이와 엇갈리며 여러 생각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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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평전의 오두막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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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오랜 만에 오르는 산길에 숨을 헐떡일 무렵에 평지가 나타난다. 야영장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이름 하여 불일평전이다. 몇 걸음 위로 오르니, 볕 바른 곳에 조신하게 앉아 있는 산막이 한 채 눈에 띈다. 손바닥만한 못도 있고 여러 사람이 쌓은 돌무더기가 놓인 바위 위에는 범상치 않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아 흡사 세한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산죽으로 울을 치고, 바로 곁에 채마를 길러냄직한 텃밭이 앙증맞게 붙어 있다. 산행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 가는 쉼터 같은 오두막에는 불로주와 감자전, 초콜릿을 팔고 있었다. 벌써 질척거리는 마당에는 봄 냄새가 완연하고, 망울이 소담스러운 복숭아나무는 금세라도 발그레한 꽃을 퉁겨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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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은 편의 기암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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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불일암(佛日菴)은 삼신산 불일폭포 못미처에 있다. 겨우 마주 오는 사람을 비켜설만한 산길에 들어서니, 비로소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간간히 나무 사이로 내려보인다. 맞은편의 거대한 바위가 깎아지른 채 서 있고 어찌나 깊은지 골의 바닥은 내려다보이지도 않는다. 친절하게 에도는 길마다 나무다리가 놓여 있고, 잡고 오를 줄도 매어져 있어 그다지 힘들지 않게 불일암까지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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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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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한때 법정 스님이 머물렀다는 불임암과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하기도 하는데, 법정스님이 머문 불임암은 승주 조계산 송광사의 암자이다. 최근에 새로 손을 본 듯, 불임암의 산뜻한 번쩍이는 단청과 산뜻한 현판을 달고 있는데, 가파른 산에 겨우 들어선 암자의 뒤꼍에는 산자락을 깎아 들여앉힌 대웅전이 그 현란한 광휘에도 불구하고 외려 옹색함을 그 위에 얹는 느낌이었다. 그저 곁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산을 오르내리는 바람 소리를 마주하며 망연히 빈 하늘을 앉아서 바라다보았을 옛 선승의 안온함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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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죽 사이로 뵈는 불일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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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가파른 비탈길을 에돌아 내려가니, 빙벽으로 발이 묶인 불일폭포가 산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용이 승천하며 꼬리로 쳐서 양 옆에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을 떨구어 이루어진 불일폭포는 무려 60여 미터에 달하는데 그 이름에 대해서는 고려 희종 때, 이 폭포 곁에서 수도를 하던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희종이 ‘불일보조(佛日普照)’라 시호를 내린 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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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FILM] FinePix S7000 10/1700ms F400/100 ISO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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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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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덕 |
| 까마득한 높이에서 수직으로 그어진 폭포는 조용히 물소리를 멈추고, 묵언의 깊이로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빙벽을 바라보노라니, 깊고 깊은 첩첩산중에 오로지 맞은 편 산을 면벽하여 무문의 용맹정진에 들어선 노선사를 대하는 기분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 깊은 산 중에 이리도 거대한 물을 모아 흐르게 하고 산과 산 사이에 깊은 못처럼 까마득한 낙하를 거듭하게 하였을까.
비록 소리는 없지만 바로 코앞에 다가선 거대한 폭포 앞에 자신은 한없이 작은 티끌임을 깨닫게 하니, 가만히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훠이훠이 가파른 산을 올라온 갚음이 있겠다. 이제 문득 얼어붙었던 입을 열고 오도의 게송을 발하며, 그 폭포가 사자후를 토할 무렵,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생들이 그 앞에 오르내리며, 저 까마득한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치는 물들처럼 모이고 흩어져 갈 것인지, 가만히 얼어붙은 빙폭 앞에서 헤아리기도 아찔하였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암자에 앉아 물소리에 온전히 젖노라면, 아주 오래전 흩어진 돌들을 가져다 산자락에 겨우 매달릴 암자 하나 마련한 옛사람의 마음을 짐짓 헤아릴 수도 있으련만, 꽃이며 단풍이며 새울음이 불러들일 행락의 걸음에 묻힐 바에는 이처럼 얼어붙은 빙폭의 묵언 앞에 마주 서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돌아오는 길의 쌍계사에는 동백이 붉은 입술을 감춘 채, 고찰에 줄지어 이어진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첫댓글 삼척동자님이 간 길을 35년 전에 걸었었지만 그땐 무심코 자나친 터라 오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