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밀이 죽은 뒤에 누가 이맘이 될 것인가?"
"칼 끝이 날카로운 사람'
- 톨스토이 저 '하지 무라드' 중에서
2005년, 체첸 3대 대통령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죽은 뒤에 반군 진영은 압둘 할림 사둘라예프와 샤밀 바사예프의 지휘 아래 대오를 정비하고 코카서스 산맥 내의 다른 공화국으로 전장을 확대하고 있었다. 리더십의 타격은 반군 진영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으며 체첸 친러 진영의 대표인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도 2004년 5월 9일에 암살당했다. 반군의 공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친러 진영 내에서도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선 공석이 된 체첸 공화국 대통령의 자리는 전술한데로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알루 알하노프가 취임하였다. 하지만 그는 경찰 근무를 했던 경험은 풍부했지만 '리더'로서 필요한 인기는 거의 없었다. 다만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푸틴에게 다음 대통령으로 낙점받았기 때문에 요식행위에 가까운 2004년 선거에서 85.25 퍼센트의 지지로 당선됬을 뿐이었다. 두번째 후보는 8.95퍼센트 득표했다.
2004년도 대통령 선거 당시의 알루 알하노프
당시 나이가 47세였던 알루 알하노프가 무난하게 운영하기에는 체첸 공화국에서 아직도 반군의 위협은 상당했다. 거기에 어느 진영에서나 수장에게 그닥 고분고분한 성향이 아닌 체첸인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알루 알하노프는 그럴만한 세력이 없었다. 친러 진영 내에서는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군벌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알루 알하노프의 리더십에 그리 존중할 생각이 없었다.
친러 진영의 군벌 중에 대표적인 세력들은 역시 전술한 야마다예프 가문의 '보스토크 (동쪽)' 대대와 사이드 마고메드 카키에프가 지휘하는 '자파드 (서쪽)' 대대였다. 체첸 동쪽 구데르메스가 거점이었던 야마다예프 가문의 '보스토크' 대대는 1차 체첸전 당시에 러시아군과 교전했던 '이치케리아 국토수비대 2대대'의 병력들이 2차 체첸전 시작 이후에 친러 진영에 넘어간 병력이었다. 체첸 북서부 켄 유르츠 마을 출신인 사이드 마고메드 카키에프의 '자파드' 대대는 1차 체첸전이 시작되기 전인 1994년 11월의 친러시아 진영의 그로즈니 공세 시절부터 활동했던 철저한 친러시아 부대였다. 이들은 각각 800 명 (보스토크), 900명 (자파드)의 병력으로 공식적으로는 러시아 제 42 차량화 보병사단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군정보총국 (GRU)의 직접 지휘를 받는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였다.
'자파드' 부대원
이들 중에 사이드 마고메드 카키에프는 정치적인 야심을 크게 보이는 편이 아니었지만 야마다예프 가문은 체첸 내에서도 강력한 씨족 (베노이) 출신으로 보유하고 있는 병력도 우수하였으며 정치에 대해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이 씨족 중의 한명인 루슬란 야마다예프는 2003년에 체첸 공화국을 대표하여 러시아 하원 의회 (국가 두마)의 의원이 되었다. 이 씨족의 리더격인 술림 야마다예프는 북코카서스 군관구 참모총장이자 부사령관인 알렉세이 마스로프 원수와 친했으며, 그로부터 러시아 최고 훈장인 '러시아의 영웅'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마스로프 원수는 '보스토크' 부대에 관심을 보이고 직접 관리하기도 하였다.
왼쪽이 술림 야마다예프, 오른쪽이 루슬란 야마다예프
친러 진영 내의 군벌은 이들 외에도 아흐마드 카디로프의 경호를 담당했던 모브라디 바이사로프도 있었다. 역시 1차 체첸전에서 반러 진영에서 2차 체첸전과 함께 친러 진영에 넘어간 바이사로프는 카디로프가 암살된 이후에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을 이끌고 '고레츠 (산악인)' 부대를 만들었다. 이 병력은 불과 50명이었지만 체첸 그로즈니 북서부 포베딘스코에 주둔하였다. '고레츠' 부대는 러시아 북코카서스 연방보안국(FSB)에 협력하면서 해당 지역을 장악하였고 알루 알하노프 대통령을 후원하였다.
모브라디 바이사로프
하나 같이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세력들이었다. 그러나 누가 체첸 친러진영을 장악하느냐는 이들 외에도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아들이었다. 그의 이름은 람잔 카디로프였다.
람잔 카디로프
람잔 카디로프. 아버지가 2004년 암살당할 당시에는 나이가 불과 27세였다.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 때문에 얼핏 그를 애송이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람잔 카디로프는 1차 체첸전 당시에 소규모 반러 게릴라 부대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이는 16살이었다. 그가 1차 체첸전 당시에 어떤 전투를 치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카디로프 본인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샤밀 바사예프와 아흐마드 카디로프가 만날 당시에 같이 찍힌 사진이 남아있다. 아마 1차 체첸전 당시 체첸 최고 신학자 (무피) 였던 아흐마드 카디로프를 경호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1차 체첸전 당시 샤밀 바사예프 뒤편에 서있는 람잔 카디로프
아흐마드 카디로프가 암살된 직후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평상복 차림으로 독대했던 람잔 카디로프는 푸틴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뒤의 행적으로 보건데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았다. 체첸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30살 이전에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람잔 카디로프를 무리해서 다음 대통령으로 낙점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부총리로 임명하여 권력의 핵심부에서 너무 멀어지지는 않게 하였다.
람잔 카디로프 신임 부총리는 자신이 반군 진영에서 친러시아 진영으로 옮긴 것에 대해 "나는 대중들의 선택에 따랐을 뿐이다. 나는 항상 대중들의 편이다"라고 말하였다. 1차 체첸전 당시에는 체첸의 거국적인 민심이 반러 진영이었으나 2차 체첸전 당시에는 친러 진영으로 옮겼기 때문에 자기도 따랐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체첸 수피즘의 2대 종주인 '쿤타 하지'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체첸 내 수피 이슬람의 부흥을 권장하였다. 이는 기존 체첸 수피즘 세력들이 체첸 반군 진영에서 점차 확산되는 와하비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잘 파악하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이슬람 사원(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람잔 카디로프
당시 체첸 대중들의 전반적인 정서는 전통적인 반 러시아 정서 외에 1차 체첸전 이후로 국토를 황폐하게 한 반러시아 이슬람 급진주의에 대한 반감도 강한 상태였다. 따라서 람잔 카디로프는 자신의 친러시아 진영 선택으로 인한 대중들의 막연한 반감을 경제 발전과 이슬람 권장을 통해 해소하기를 원했다. 신임 부총리로 임명된지 약 1년 쯤 지난 2005년 8월에 람잔 카디로프는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건설하겠다고 하였다. 자기 아버지인 아흐마드 카디로프의 이름을 딴 이 이슬람 사원은 3년 뒤인 2008년 10월에 완공되는데 전체 넓이 14 헥타르 (14만 평방미터), 첨탑 높이 62미터로 유럽 최대 크기였다. 그는 이 사원이 완공됬을 때 체첸 티비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아흐마드 카디로프 이슬람 사원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 부총리로 임명될 당시의 체첸 총리는 30살의 세르게이 아브라모프였다. 아흐마드 카디로프가 암살될 당시에 체첸 재무부 장관이었던 세르게이 아브라모프는 타슈켄트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평범한 관료였는데 카디로프는 관료를 보좌하는 위치에서 만족하기에는 너무 자신만만하고 세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세르게이 아브라모프를 노리는 암살 시도가 몇회에 걸쳐 벌어졌는데 2005년 11월 18일에는 모스크바에서 차량사고로 거의 죽을 뻔하였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세르게이 아바라모프는 2006년 3월 1일에 체첸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 체첸 부총리 람잔 카디로프가 체첸 공화국을 이끌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세르게이 아브라모프. 현재는 러시아 철도공사 이사로 일하고 있다.
29살의 나이에 체첸 공화국 총리가 된 람잔 카디로프는 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을 강조하였다. 당시 체첸 공화국은 75퍼센트의 실업률이 말해주듯이 경제 상황이 엉망이었으며, 카디로프는 이 문제의 해결을 보기 전에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선 공화국의 예산에 대한 승인을 거절하며 러시아 연방 측에서 더 많은 지원금을 예산에 반영하기를 요구하였다. 거기에 파괴된 건물을 복구하기 위해서 러시아 연방의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여 건설 경기를 일으키길 원하였고, 이를 통해 점차 실업율을 낮추고 대중들의 사는 환경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도 갖게 되기를 원하였다. 여기에 수도에 여가 시설, 병원, 유원지 등을 건설하여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체첸 남부 산악지대에 스키 리조트를 건설하여 관광까지 유치하기를 원했다.
'체첸어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하며 전통 춤을 추는 람잔 카디로프
람잔 카디로프의 경제 정책은 넓은 틀에서 패전 직후의 체첸 공화국 상황에서는 적절했으며, 반군 토벌을 위해서는 무력 외에 경제적인 성장도 병행해야 된다는 점을 인식한 러시아 연방의 전폭적인 지원 (예를 들어 러시아 연방 메드베데프는 2008년도에 향후 4년 동안 체첸 공화국에 5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에 힘입어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총리 취임을 한 2006년도에 체첸 국내 산업은 11.9퍼센트 성장하였고, 다음해인 2007년에는 26.4퍼센트 성장하였다. '지난 5년보다 불과 몇달 동안에 건설된 건물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그로즈니 중심가의 신축 건물
경제 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인 람잔 카디로프는 자신이 2007년도에 30살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알루 알하노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총리 직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체첸 공화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체첸인의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책에 있어 유능하다는 점으로는 불충분했지만,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만족시킬 훨씬 더 든든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카디로비치'였다.
카디로프 가의 사병, 카디로비치
'카디로비치'는 원래 1차 체첸전 당시에 러시아군에 대항해서 싸웠던 카디로프 가문의 사병 집단이었다. 이들은 2차 체첸전 이후로 카디로프 가문이 친러시아 진영으로 바뀐 뒤에는 체첸 대통령인 아흐마드 카디로프를 호위하면서 아들인 람잔 카디로프가 직접 지휘하면서 점차 규모가 커졌다. 물론 공식적인 경호는 앞서 언급한 모브라디 바이사로프의 부대가 맡았지만 경호에 필요한 좀더 광범위한 영역의 경계 및 안전 유지는 '카디로비치'가 맡았던 것이다.
람잔 카디로프와 카디로비치
람잔 카디로프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 부대를 맡아 관리하면서 점차 병력수를 늘렸다. 주로 사용한 방법은 반군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서 반군을 투항시킨 뒤에 자신의 진영에 포섭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넘어간 사람 중에 마고메드 함비에프가 있었다. 1차 체첸전 당시에 준장의 계급을 단 지휘관이었고 2003년까지 아슬란 마스하도프 휘하의 이치케리아 내무부 장관이었던 함비에프는 자신의 친척 중 무려 40명이 람잔 카디로프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자 2004년도에 투항하였다. 러시아측의 통계에 따르면 이무렵 '카디로비치'의 70퍼센트는 전직 반군 출신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체첸 공화국 부총리, 총리 직을 거치며 점점 권력의 핵심에 서게되자 그에 합류하는 세력들도 많아졌다.
마로메드 함비에프.
친척 40명이 인질로 잡히자 람잔 카디로프에게 투항했다.
카디로프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에 위협될 다른 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하였다. 우선 2003년 3월, 카디로프 가문에 껄끄러운 상대였던 체첸 경찰특공대(OMON)의 지휘관인 무사 가지마고마도프가 트럭에 치여 죽었다. '카디로비치'와 교전한 적도 있는 체첸 오몬은 람잔 카디로프가 경고한 방식으로 지휘관을 잃었으며, 이후 2003년 5월에 지휘관으로 선임된 사람은 '카디로비치' 중 한명인 루슬란 알하노프였다. 역시 반군 출신으로 2000년에 '카디로비치'에 합류한 루슬란 알하노프는 300명의 우수한 부대를 효과적으로 장악하였고, 이후 2004년 6월 체첸 공화국 내무부 장관이 되다. 이 과정에서 오몬 부대를 공식적으로 통솔하는 러시아 내무부는 침묵을 지켰다.
무사 가지마고마도프
2004년에 아흐마디 카디로프가 암살된 이후로 람잔 카디로프는 '카디로비치' 를 개편한다. 기존의 막연한 '경호팀' 편성을 해체하고 러시아 정규군의 부대 편성에 최대한 맞춰서 부대를 운영하려고 하였다. 우선 체첸 내무부 소속으로 '아흐마드 카디로프' 제 2 도로 순찰대 (일명 카디로프 연대), 송유관 경비대 (Oil Regiment)를 편성하였고 이후 대테러 센터 (ATCs)를 추가하였다. 이들의 총병력은 2006년도 시점에 이미 5,000명이었다. 이중에 대테러 센터는 2006년도에 다시 해체하고 새로 2개 부대를 편성한다. '서버 (북쪽)', '유르그(남쪽)' 대대였다. '서버' 병력은 500명, '유르그' 병력은 700명이었는데 공식적으로는 러시아 내무부 소속이었다.
체첸 '서버' 대대
점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커짐에 따라 람잔 카디로프의 정치적 야심도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는 채 30살이 되기 전에 이미 알루 알하노프 대통령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였고, 그가 임기를 끝내기 전에 사임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1차 체첸전에서 친러시아 진영에서 전투를 치뤄봤던 알루 알하노프는 세르게이 이브라모프 보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고, 선출받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에 대해 모스크바에서 둘을 불러서 중재까지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2006년 4월에는 람잔 카디로프가 알루 알하노프의 대통령궁을 방문했을 때 양측 경호원의 마찰로 인해 총격전이 발생했을 정도다.
알루 알하노프 대통령과 경호원
람잔 카디로프의 야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날수록 다른 친러시아 체첸 군벌들의 반감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채 30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에게 굴복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력과 러시아 정부 내의 조력자들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를 굴복시키려는 자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자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서로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Ramzan_Kadyrov#President
http://www.justicefornorthcaucasus.com/jfnc_message_boards/war_in_chechnya.php?title=two-special-motorized-battalions-will-be-established-in-chechnya&entry_id=1143876240&comments=comments
http://www.jamestown.org/programs/nca/single/?tx_ttnews%5Btt_news%5D=2253&tx_ttnews%5BbackPid%5D=185&no_cache=1
http://www.alter.most.org.pl/fa/php/showart.php?artid=401
http://www.jamestown.org/single/?no_cache=1&tx_ttnews%5Btt_news%5D=5023
http://www.themoscowtimes.com/mt_profile/ramzan_kadyrov/433775.html
http://www.jamestown.org/programs/nca/single/?tx_ttnews%5Btt_news%5D=5248&tx_ttnews%5BbackPid%5D=169&no_cache=1
첫댓글 이거. 마치 고려말기 상황 같은데요..
22.....무신정권 시대가 오버랩되네요:
무인시대죠 완전
그리고 람잔 카디로프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체첸의 수장이 되어서 의문이었는데 알고보니 상당한 수완가 였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중3꼬꼬마로 피시방에서 죽돌이할 16살에 반군 게릴라를 지휘하다니ㄷㄷㄷ
나이는 정치하기에 어려보이지만 실제 경험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음. 걸물이군요. 러시아입장에서 뒤를 봐줄만한 인물이네요.
호불호를 떠나 능력은 다들 인정하더군요.
헉 드디어 세글이 올라오네요!!! 선리플 후감상 ㅋㅋ
도움이 됬으면 합니다.
새 ㅡㅡ
30대에 저런 수완가라니...
대단하죠 정말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재밋게 잘 봤습니다. ^^
보람이 있어서 저도 좋네요.
드디어 새로운 편이 나왔군요(ㅠㅠ)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저 수완이 20대 후반 ~ 30대 초반의 수완인가... 이건 뭐 노련한 50대 중견 정치인 그 이상이군요.....
어지간한 정치인들이 대적하기 힘들겁니다.
오웅 새로운 국면
새로운 진영의 내부 숙청이죠.
ㅎㄷㄷㄷㄷㄷ 김정은 따위는 그냥 뺨후려치는 조숙함이내요
김정은이는 세자책봉을 받은거고 저 놈은 스스로(물론 가문의 힘과 사병이 있기는 했지만) 된거니 진짜 대단한 놈이네요.놈 대신에 존칭붙이고 싶지는 않음.사람 많이 죽였을거 같아서
김정은 나이보고 저는 카디로프 생각나더군요.
선리플 후감상~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읽다보니 람잔 카디로프 똑똑하네요. 무력 장악과 더불어 민심 수습, 경제적 기반 건설까지. 거기에다 러시아 입을 다물게 만드는 외교력까지.. 호오.
대단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죠.
야망에 맞는 능력을 갖추는 건 정말 흔치않은 일인데 영걸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하더군요.
톨스토이의 소설 하지 무라드는 저도 작년에 구입해서 잘 읽었습니다. 하지 무라드가 샤밀과의 갈등 끝에 러시아에 투항하려 했는데, 그를 러시아 측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죽인 점이 참 씁쓸하더군요.
저는 솔직히 러시아 측이 처음에 환대한 것이 더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요즘 코카서스에서도 반군이 투항해서 친러시아 간부로 싸우고 하는 것을 보면 적장이 투항하면 우리편으로 활용하는 것이 저 동네의 풍습인 것 같네요
어차피 체첸인 전부를 모두 적으로 만드는 건 무리이니, 차라리 체첸인들을 포섭해서 간접 지배를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겠죠.
이거 신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나왔군요. 잘읽었어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머리도좋고 정책적 사업과 러시아와의 정치적상황도 잘이용했는데 오히려 내분이, 반러진영의 체첸반군에게는 호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내분으로 인해 반군들이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죠.
감사합니다ㅠㅠ
도움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연재 감사합니다! 역시 흥미진진하네요
글쓴 보람이 있네요.
오랫만에 나왔네요 ㅋㅋ 선추천 리플 후 읽겠습니다.
야거님 이거 책으로 내는 건 어떠신지
책을 낼 정도 수준인지는 ㄷㄷ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jager 님. 토탈워 카페의 운영자 타메를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jager 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저는 지금 전쟁이 만든 종족들의 역사라는 원고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jager 님이 우리 카페에 올리고 계신 체첸 관련 역사 게시물인 코카서스의 늑대들에서, 체첸인들의 대 러시아 항쟁에 관련된 부분을 일부 인용해서 제 원고에 꼭 넣고 싶습니다. 인용을 허락해 주신다면 jager 님의 이름은 제 원고에 꼭 넣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 건강히 지내세요.
답변을 쪽지로 드렸습니다. 집필은 잘되고 계신지요?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도 하고 나서 보람있는 일 같습니다.
아, 그게 님이 연재하신 글들을 한 번 모아 보았는데, 그 분량이 A4 용지로 무려 240페이지가 넘는 막대한 분량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매우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짧은 시일 내에 그대로 책에 옮기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고, 내용을 좀 많이 축약해야 할 듯 합니다. 애써 쓰신 글들을 제가 임의대로 정리해도 되는지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