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째 날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호텔의 8층에 있는 노천 온천을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밖으로 내다보이는 도시가 온통 구름인지 연기인지 수증기인지 뿌연 안개기둥이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한국 할머니 말이 이것이었다. 벳부의 아침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온천의 증기를 뿜어 올리며 열리고 있었던 것일까? 미국의 옐로스톤의 가이저들은 숲의 여기저기서 증기를 뿜더니 여긴 사람 사는 마을의 곳곳에서 증기가 솟고 있다. 해는 그런 안개 너머에서 그저 붉은 기운으로 떠 오른다.
아침 신선함을 마시며 온천을 하는 행복을 누리고 이미 차려진 아침을 덜어다 먹으며 또 다시 행복하다. 주부인 우리에게 밥 중에 가장 맛있는 밥이 남이 차려주는 밥이라는데 끼니마다 횡재하는 기분이다.
해가 구름을 드나들며 숲을 비추다 사라진다. 우산하나 챙겨넣고 길을 떠났다. 숲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이웃집 토토로’의 무대인 유후인이다. 일본서 본 대분의 집들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니메이션에서 보던 오래된 목조주택들이었다. 그 집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가득한 마을이다.
긴린코라는 작은 호수는 호수 속에서 맑은 샘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깨끗한 곳이었다. 석양에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모습이 금빛 비늘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고 보니 양평 우리 집 앞 작은 강에도 저녁마다 물고기들이 춤을 추듯 쇼를 하듯 반작이며 튀어 오르던 게 생각난다. 나는 그 시간에는 대부분 일손을 놓고 강을 바라보는데 여기선 아마 그걸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저녁까지 머물 수 없을 테니까. 여행은 추억은 담고 아쉬움은 남겨둔 채 지나가는 것인가 보다.
크고 넓지는 않지만 그 속을 무리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을 보며 우리는 아름다운 상점들이 줄지어 선 유후인 거리로 나왔다. 오르골을 하나 살까 싶어 들린 상점에서 나는 사람이 들어오면 새가 즐겁게 노래하는 웰카밍 벨을 하나샀다. 어제부터 인기 있었던 비옷도 하나사고 우산도 샀다. 이미 배낭에 우산이 하나 있는데 너무 예쁘고 단정한 모습에 맘이 빼앗겨서. 친구들 사이에선 이미 비옷 패션이 물결을 이루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금상을 받았다는 고로케도 먹으며 동화의 나라에 온 것같이 아기자기한 상점들 사이를 홀린 듯 다녔다. 유후인에서는 하루 이틀 더 묵어도 전혀 지루할 것 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아소산으로 가는 길에서 얼마만큼 산을 오른 후에 먹었다. 길가에 펼쳐지는 풍경이 점점 제주도를 닮아가고 있었다.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넓은 목초 지대 같은 곳에 간혹 말도 보였다. 길은 산을 타고 자꾸 높이 올라갔다. 외륜산을 꼬불꼬불 멀미가 나도록 돌며 눈아래 펼쳐지는 화산의 모습을 굽어보았다. 산길에는 산벗꽃이 지고 있었고 곳곳에 나물캐는 사람들이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니고 있었다. 고메즈카의 전설을 들을 즈음 나는 자꾸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멀미에 식곤증가지 겹친 탓인지 아니면 어젯밤 숙희랑 영애랑 두런두런 얘기하다 잠을 좀 덜 잔건지 하여간 아깝게 쌀을 쌓아놓은 것 같은 구릉 고메즈카가 내려다보이는 진풍경을 놓쳤다. 정호 말로는 신들이 쌓아 놓은 쌀을 사람들이 몰래 훔쳐가느라 산 정상에서부터 마치 누가 일부러 만든 것처럼 여러 개의 골들이 파이도록 길이 나고 가운데는 움푹 쌀을 퍼간 흔적이 남아 파여 있단다. (맞지, 정호야?)
멀리서부터 보아도 아소산에서 솟구치는 검은 구름은 그렇지 않아도 흐린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꿈결에 그 산이 자꾸 가까이 오더니 아소산이라고 내리란다. 차창으로 내다봐도 밖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연기 탓인지 열린 차 문으로 메케한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오늘따라 산이 성을 내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일까? 그 구름의 기둥은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의 구름 기둥을 연상 시킬 만큼 거대하여 하늘을 다 가린 듯하다. 활화산이다. 오늘은 구름이 솟지만 언젠간 불을 뿜어 올릴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화산에 사람들이 오른다. 그래도 오늘은 로프웨이를 타고 분화구를 들여다보는 행운을 얻지 못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러 화산 박물관엘 들렸다. 그곳에서 활화산의 분화구인 분지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위험한줄 알면서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도시를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또 그걸 구경하겠다고 달려온 우리는 무엇일까? 산다는 것이 원래 위험하지 않은 게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을 내려와 일 때문에 하루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정임이를 히고오오즈 역에서 배웅하고 우리는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특급이었다. 태옥이와 방에 들어서며 넓고 럭셔리한 방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베란다로 나갔다. 수로형태로 된 수영장이 내려다보이고 앞에는 신록이 뭉글거리는 산이 겹겹이 둘러 처졌다. 애들처럼 옆방 친구들을 베란다로 불러 모두 객실을 나누어 둔 철창을 사이에 두고 행복을 나누었다.
아직 환한 시간이라 모두 밖에 나가 산책을 했다. 여기도 호텔 옆에 결혼식을 위한 작은 교회가 있고 길 곳곳에 꽃이 장식되었다. 교회 옆 잔디밭에서 우리는 마음속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용이의 시작으로 손을 잡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보는 다른 사람들도 없으니 얼마나 자유롭던지.
식사 또한 게와 스테이크가 있는 고급 뷔페였다. 싫컷 먹고 또 온천 하고 그리고 행복에 이미 취한 모습으로 우리는 한방에 모였다. 맥주와 와인이 돌고 나니 잠시 잔을 놓으면 어느 게 내 잔인지 헷갈리고 그래서 누가 내 술 먹었냐고 외치는 소리가 난무한다. (대니야 니껀 내가 마셨어 미안) 또 한바탕 이런 저런 얘기로 웃고 즐기며 놀다가 헤어지는데 종희가 난처해한다. 누가 제 신을 신고 갔다고. 복도에선 방마다 두개씩 가져온 유리컵을 누가 세 개를 가져갔다고 찾고 난리지만 이런 여행이 오래 이어지길 나도 모르게 바래보았다. 우리들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어수선한 행복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넷째 날
밤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엔 해가 반짝인다. 어제 산 비옷 입고 나섰는데.
다자이후 텐만구라는 신사로 가는 길엔 정리된 상점들이 즐비하다. 유난히 줄이 긴 집에서 매화 떡 한입 씩 베어 물으며 떠들고 사진 찍고 웃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오래된 녹나무가 우거진 신사에는 공부의 신이 모셔졌단다. 노란 종이리본이 묶여진 나무를 지나 본당에 가니 절의 불상이 놓일 자리에 거울하나가 놓여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공부의 시작인가 생각하며 ‘날아온 매화나무’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오면서 아이스크림하나씩 또 먹으며 그 순간조차도 사진 찍느라 바빴다.
항구 쪽에 있는 하카다타워는 자그마한 등대 같았다. 한용인 이번에는 등대지기 노래를 시작한다. 어느새 미란이나 정옥이 처럼 노래잘하는 친구들이 화음을 넣으며 멋진 합창이 되어 울린다. 가이드가 별로 볼게 없는 여기서 이렇게 잘 노는 팀은 처음 봤다며 감탄이다. 우리가 모여서 다니는데 어딘들 재미없을까 의기양양한 오만을 잠시 보았다.
점심으로 100년 되었다는 우동 집에서 나가사키 우동을 먹었다.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나온 양에 놀라고 그거 다 먹고 또 놀라고 그리고 사진 찍으면서 웃고. 그렇게 마지막 점심을 먹고 캐널시티라는 거대한 쇼핑몰로 갔다. 너무 넓어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제시간까지 일행에게 못갈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몇 가지 물건을 마지막까지 쇼핑하고 비행기시간에 빠듯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마치고
긴 인생에서 사일의 여행길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래 반추할 달콤한 무엇을 마음속에 넣어두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순례하는 일이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를 함께 보내고 그것을 같이 기억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순례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교감하는 마음의 여운이 일본의 신록만큼이나 신선하고 잔잔하다. 은선이의 삶이 그랬고 숙희나 한용이 그리고 대니의 조용한 섬김이 그랬고 몸에 밴 작은 배려들이 그러했다.
돌아보며 미소 짓는 시간을 동행해준 친구들, 어쩌다 독사진을 찍거나 룸메이트와 둘이 찍는 사진조차도 여기저기서 고개 내밀며 ‘나도, 나도’ 하는 친구들로 번번이 실패했던 그 신나는 표정으로 우리 또 가자, 어디든 어느 때든 지금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사랑이 온천물처럼 전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