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임문우 치과의원장] 소망심은 푸른초장
“여기가 병원이에요.교회예요”
서울 송파구 방이동 181.건물 2층에 널찍이 자리잡은 임문우 치과의원에 들어선 환자들은 이 질문부터 하고 싶어 한다.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대형 유리에 시편 100편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로 시작되는 시편 100편 말씀 전체가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소독약 냄새는 간 곳 없고 편안한 대기실 탁자에는 먹음직스런 귤이 바구니마다 가득 담겨 있다.병원 전체에 기악기로 연주되는 은은한 성가곡이 가득 흐르고 인테리어가 잘 돼있는 일반 가정집 거실같은 포근한 이곳은 임문우 집사(42·오륜교회)가 운영하는 치과병원이다.
더구나 환자들이 이곳을 교회로 착각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매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동안 어김없이 드려지는 예배 때문이다.임원장을 포함한 6명의 직원들은 임원장이 직접 연주하는 키보드 연주에 맞추어 ‘찬양과 경배’의 시간을 갖는다.가슴으로 드려지는 열정적인 찬양 후에는 모두 그날 분량의 성경을 돌아가며 읽고 이를 통해 각자가 깨닫고 느끼는 점을 함께 나눈다.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나라와 민족,한국교회와 사회,경제를 위해,오늘 만날 환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한다.
이처럼 교회같은 병원을 운영하는 임원장의 신앙 여정은 좀 특이하다.모태신앙으로 작은아버지와 외삼촌,고모부가 목사인 집안이었지만 그가 예수님과 감격적으로 만난 것은 연세대 2학년에 재학할 때였다.
임원장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만남으로 인생에 대한 가치관과 삶의 목적이 바뀌게 했다”며 “제2의 신앙생활을 통해 비로소 주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인식했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훤칠한 키에 귀공자풍의 임원장의 외모는 부모 잘 만나 고생 모르고 지내온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공무원이었던 부친이 80년 강제 해직당해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5평짜리 오피스텔을 거쳐 10평짜리 옥상 연립주택에 살 때는방에서 시커먼 쥐가 튀어나오곤 해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누구나 가길 원하는 미국 시키고 요올라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여건상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주셨다.
“미국 유학중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미국치과교정전문의 자격을 단시간에 따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이때 나를 지탱시키고 힘을 준 것은 바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한 믿음이었습니다”
88년 미국에서 돌아와 곧바로 병원을 개업했다.너무 숨가쁘게만 달려온 탓인지 이듬해 건강이 안 좋아져 고생했다.이때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의 절실함을 스스로 느끼고 인간의 나약함을 절절히 확인했다.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 가운데 건강을 회복했고 이것이 임원장에게 하루 1시간 예배를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일도 바쁜데 하루에 1시간씩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고 반문합니다.그러나 예배가 주는 그 역동적인 힘과 기쁨,감격은 하루를 감사와 보람으로 엮는 근원이 됩니다”
임원장은 늘 자신이 주님께 받은 것을 생각하면 감사기도가 절로 나온다고 고백한다.그래서 수년전부터는 자신이 받은 것을 함께 나누는데 열심이다.
현재 경기 성남시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의 복지시설인 무지개선교회를 적극 돕는 일을 시작으로 국내외 무료 진료 봉사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한때 이사장을 맡기도 한 무지개선교회는 거동이 힘들고 다른 사람의 수발이 필요한 중증장애인 40여명이 생활하는 곳.미력하나마 이곳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 기쁘고 직원들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아 봉사한다.
또 1년에 최소 10일 이상은 해외의료선교에 시간을 낸다.그동안 동남아 각국을 비롯한 키르기스스탄 등지를 다녀왔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국내 농어촌지역도 찾아간다.오지선교후원회를 통해 선교사들에게 구급약을 보내기도 한다.
임원장은 병원의 안정도와 비례해 앞으로 봉사기간을 계속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아울러 군부대 위문도 나선다.직원들과 덕적도 군부대를 방문,장병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또 출석하는 오륜교회가 주1회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봉사현장에 나가는 일에도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
“언재부터인가 의료봉사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장기선교사로 부르실 것이라는 비전을 받아 나름대로 기도하며 준비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아이들을 가급적 외국의 선교현장에 꼭 데려가고 있고 아내(강은혜 집사)는 지금 장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임원장은 대학시절에 불신자였던 아내가 자신을 통해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이제 신학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여간 흐뭇하지 않다.선교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한다던 어떤 선교사님의 말을 항상 상기한다는 임원장은 날마다 만나는 환자가 전도대상이 된다.교정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기에 환자들이 장기간 치료를 받는 것이 전도에 매우 유리하다.직설적인 전도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속에서 환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다보면 전도로 자연스레 연결되곤 한다.
“제가 깨달은 것은 말로 하는 전도는 한계가 있어요.마음문을 열지 않으면 도저히 힘들죠.그러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감동으로 연결되는 복음은 효과가 큽니다.무늬만 기독교인이고 삶속에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가 녹아있지 않다면 안됩니다”
병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병원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통해 고객만족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임문우 원장과 전 직원들.오늘도 이 병원을 통해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길 기도하며 예배로 하루를 연다.
김무정기자 moojeong@kmib.co.kr
[아름다운 사람들] 날아라! 나의 ‘신앙로켓’…美우주공학 VIP
정재훈(鄭載勳·미국명 제이 정·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장로.55세.
언제나 입가에 감도는 잔잔한 미소만큼이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신사다.미국이라는 다인종 사회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동양인.
그러나 그의 포트폴리오를 들쳐 보면 그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한국인인가를 금방 알게 된다.우주열공학박사이자 미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 소재 우주관련부품전문회사 테이코 엔지니어링 사장.무엇보다 여지없이 곤두박질쳤던 미국의 자존심을 건져낸 작은 거인으로 미국정부와 우주분야에서 ‘애지중지하는’ 인물이다.
지난 86년 1월28일 미국의 우주개발 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추진로켓의 연결부위에 있는 O-링이 균열돼 발사 1분12초만에 공중 폭발,초등학교교사인 매콜리프를 포함한 우주인 7명이 산화한 것이다.
사건 발생후 미 항공우주국(NASA)은 망연자실,한동안 우주왕복선 발사를 중지한다.그때 캘리포니아의 작은 부품회사에 근무하는 ‘제이 정’이라는 사람이 우주왕복선 균열방지용 특수 열가열 장치라는 것을 개발해 NASA에 출품한다.88년 9월 디스커버리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미국은 비로소 자존심을 회복하게 된다.제이 정은 우주왕복선뿐 아니라 금성탐사선,화성탐사선 등 수많은 인공위성용 특수 적외선장치와 열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요즘 그는 캐나다 우주국과 공동으로 내년에 완공예정인 국제우주정거장(ISS)용 로봇팔에 들어갈 핵심 신경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세상적인 잣대로 봐서 ‘성공’이라는 단어가 맞춤양복처럼 들어맞을 사람.하지만 그에게 교만함이나 으스댐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왜일까.바로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사향(麝香)보다 더 짙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수다한 발명 특허를 가진 그에게 발명의 동인(動因)을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열가열장치를 개발할 때 주위에서 모두 비웃었습니다.그러나 그럴수록 저에겐 어떤 확신이 생기더군요.나의 작은 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바로 그거였다.
‘주께서는 무소 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기 42:2).그는 그저 선한 청지기처럼 주어진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지난 77년 우주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슴에 안고 미국 이민을 단행한 정재훈에겐 동갑내기 아내 정정숙과 지윤(당시 5세),윤경(당시 3세) 두딸과 함께 동행한 무엇이 있다.바로 목숨보다 귀중한 신앙이었다.
3대째 모태신앙으로 내려온 그는 모친 김정희 권사(현 86세)로부터 신앙의 기둥을 단단히 잡으라는 권면을 그대로 간직한 채 캘리포니아로 온다.이민 직후 당시 가내공업 수준이었던 테이코 엔지니어링의 말단사원으로 들어간 그는 곧이어 정착한 교회에서도 회사일 만큼이나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바로 지금 장로로 섬기고 있는 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에서다.성가대,중고등부 교사,남전도회장으로 섬겼다.그러다가 85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장로에 장립된다.
동갑내기 아내 정집사는 그에게 믿음의 동반자다.과학기술자로 아무리 승승장구한다 해도 이역에서의 삶은 때로 곤비하고 때론 외롭다.정장로 부부는 삶의 초점을 믿음생활에 두고 사반세기의 이민생활을 다정한 오누이처럼 경영해 오고 있다.그래서인가.오누이처럼 닮은 이 부부를 보면 “부럽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교인이든 과학기술자든 부부 문제로 고민하는 이웃들은 정장로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이 부부의 사는 법을 보는 것만으로.
정장로의 신앙 생활은 미국의 ‘메인스트림’에서도 발휘되고 있다.93년부터 롱비치 도심의 흑인 갱단을 대상으로 목회를 해 오고 있는 프레드 뉴커크 백인목사와 함께 흑인 부랑인 전도 활동에도 깊이 관여해 이들중 60여명과 한국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다.그는 매년 2월 세계적인 지도자만이 초청되는 백악관 조찬기도회의 고정 멤버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정장로는 신앙생활에서 또 한차례 도전을 시도했다.부인 정집사와 함께 3년간 캘리포니아 고려신학대학원을 수학한 것이다.정장로 부부는 “이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 속에 진행된 특권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최근 정장로 부부에겐 커다란 기도제목이 하나 생겼다.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테이코엔지니어링의 대주주인 테일러 가족에 대한 전도이다.
/헌팅턴비치=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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