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프로축구는 KPFL(Korea Professional Football League:한국프로축구연맹)에 가입한 프로축구단끼리 리그전으로 펼치는 경기를 말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한국축구는 1980년대 초까지 아시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세계무대에 진출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였다.
특히 1982년 뉴델리(New Delhi)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이란에 0:1, 일본에 1:2로 패해 예선에서 탈락한 이후 한국축구계는 자성의 바람이 일기 시작해 마침내 프로축구를 탄생시켰다. 1980년 12월 12일 할렐루야 프로축구팀이 창단되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1982년 12월 17일 제2구단 유공 프로축구팀이 창단되면서 본격적인 프로축구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1983년을 ‘한국축구 재건의 해’로 정한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대한축구협회)는 같은해 2월 프로축구 리그 창설을 결정하고 이른바 ‘슈퍼리그’를 탄생시켰다. 할렐루야·유공 등 2개의 프로팀 외에 당시 최근 3년 동안의 실업축구 상위 4개 팀을 참가시켜 성인축구의 정상을 가리는 페넌트레이스를 벌이기로 하였다.
출범 첫해 경기수는 팀당 40게임을 갖기로 했으며 할렐루야가 강원도와 충청남·북도, 유공이 서울특별·경기도·인천직할시, 대우가 부산광역시·경상남도, 포항제철이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국민은행이 전라남·북도를 연고지로 채택하였다.
1983년 5월 30일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 프로축구의 개막을 알리는 슈퍼리그가 시작되었다. 프로 2팀(할렐루야·유공), 실업팀 3팀(대우·포항제철·국민은행)이 참가하여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출범한 슈퍼리그는 9월 25일 마산에서 막을 내릴 때까지 한국축구사상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며 축구 중흥의 초석을 다졌다.
원년도 슈퍼리그의 기록적인 열기는 새로운 프로축구팀 창단을 가능하게 하여 기존 할렐루야와 유공에 이어 1983년 12월 3일에는 대우 로얄즈의 프로 전향, 3일 뒤인 12월 6일에는 현대의 창단, 22일에는 엘지까지 가세하여 프로축구의 열기는 가속화되었다.
1984년 2월에는 포항제철이 프로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재벌기업들의 프로축구 리그 참여라는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배경과 뜨거운 열기 속에서 1954년 본선 진출 이후 32년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부산대우 로얄즈는 그해 제5회 아시안컵대회에서 우승하였다.
5개팀(프로 2팀, 실업팀 3팀)으로 출범한 슈퍼리그는 1984년에는 6개 프로팀과 2개의 실업팀(국민은행·한일은행)이 참가했으며 1985년에는 프로 6개팀에 한일은행과 상무가 실업팀 대표로 참가하였다. 그러나 1985시즌을 끝으로 할렐루야가 다시 아마추어팀으로 전환, 프로축구 활성화를 바라던 축구관계자들의 비난을 샀다. 이 여파로 1986년에는 5팀의 프로팀에 한일은행이 실업팀 대표로 참가, 다시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7년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인 프로축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1988년 11월에는 성남 일화 천마가 프로축구팀을 창설, 1989시즌부터 가세함으로써 프로무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1995년에는 수원 삼성 프로축구단이, 1997년에는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이 창설하였다. 프로축구 출범은 한국축구를 한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에는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전북 버팔로가 프로에 가세했으나 재정난으로 1년 만에 해체되고, 전라북도 다이노스와 함께 같은해 10월 전라남도 드래곤스팀이 창단, 프로축구 불모지인 호남에 프로축구의 거점을 확보하며 1995시즌부터 프로리그에 동참하였다.
같은해 7월 30일에는 프로축구 행정을 획일화하기 위해 KPFL을 독립, 발족시켰으며 3월 15일 월드컵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한 2002년 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를 설치하였다. 한국은 2002년 현재 대전 시티즌, 부산 아이콘스, 부천 SK,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안양 LG 치타스, 울산 현대 호랑이, 전남 드래곤즈,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포항 스틸러스의 10개의 프로축구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