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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받아야 할 아이디어
당자(當者) 같기야 하랴만 산수(傘壽)를 넘기신 김용원 자당의
신고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의 노모가 손수 지으신 식탁에 앉기가 송구스러웠다.
다시 방문했을 땐 병마를 훌훌 털어버린 건강한 모습을 대하게
되기만을 빌며 산장을 떠났다.
김용원은 머구막골 주차장까지 차를 몰았다.
무거운 배낭 대신 달랑 물 한 병 넣은 작은 색(sack)을 메게 했다.
어차피 오늘 마감할 부항령으로 마중나갈 거라며.
어제 후회까지 하게 한 머구막골을 오를 때에는 김용원의 세심한
배려에 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魔)의 험한 계단도 부드러웠고 뜀박질이라도 할 수 있을 듯이
가벼운 걸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체질화된 대형 등짐 대신 거목에 빌붙은 매미같은
헛개비 색이 어색하기만 했다.


대간 종주자의 차림으로는 어색하지 않은가.
석기봉이 멀리서 따라오고 있다.
삼도봉 이후 경북과 전북이 오손도손한 대간길은 마냥 즐거웠다.
석기봉과 주봉 민주지산이 내년 화합의 날 약속 어기지 말라고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 먼 발치에서 계속 따라왔다.
이들을 따돌리고 신명나게 전진하는데 웬 목교(木橋)?
완만한 경사의 목장지대에 목축대신 약초를 재배중인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철책으로 진입을 막고 우회하게 하는데 반해
곧장 건너가도록 꽤 넓고 긴 육교를 설치했다.
보기도 좋고 편했다.
굳이 귀한 작물을 일부러 훼손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철책보다 훨씬 많은 비용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간 종주자들이 마구 짓밟고 건너다님으로써 미구에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는 철책에 비해 이 방부목 다리는 수명이
길거니와 종주자들의 본의 아닌 훼손으로 피차 마음 아파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대간과 정맥의 무수한 지주들이 이 멋진 아이디어를 본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조되는 육교와 철책
나는 복이 많은 늙은 山나그네
정오를 조금 지나 부항령 삼도봉터널 앞으로 김용원이 왔다.
무주 무풍면과 김천 부항면을 잇는 1089번 지방도가 903번도와
만나는 월곡리의 한 만물상회에 간이 이별주석이 마련되었다.
합석한 마을 여인들이 어느 결에 맥주값을 지불했다.
김용원이 간 후 좌중의 화제는 그의 순애보에 대한 찬사였다.
모두 이 면 태생의 동연배로 죽마고우와 진배 없다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그의 한결같은 충심이 헛되지 않게 부인이 쾌유되기를
빌고 있었다.
나도 물론 가세했다.

김용원이 마중나온 부항령 삼도봉터널 앞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예정대로 마친 후의 귀로에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늙은 山나그네임을 재삼 확인했다.
김용환이 하루 반 그랬던 것처럼 이틀 반 동안 김용원이 바쁘고
어려운 사정중에서도 나를 감동시켰으니까.
정녕 '용'자 두 김씨가 작당이라도 한 것인가.
북상 때 열차의 연착으로 인해 대간 첫 택시를 탔던 쓰린 경험을
되풀이 해서야 되겠는가.
심야 열차편으로 도착한 김천에서 월곡리행 첫 버스를 탔다.
김용원은 월곡리 ~ 부항령 교통 문제도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벼룩도 낯은 있다 잖은가.
이른 아침이긴 해도 hitch-hike 외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편승이란 언제나 통과하는 차량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손을 들 일도 없다.
논과 밭으로 빠지는 농경 트럭들만 이따금 지나가는 아침의
월곡리 앞 지방도에 소형승합차 한 대가 등장했다.
곧 나를 태운 운전자는 한국건설관리공사 무주반딧불이테마공원
CM관리단 문덕영 이사다.
출근길인 듯한 그가 나를 부항령 터널 앞에 세워줌으로서 나의
대간길을 이어주었다.
역시 나는 복이 많은 山나그네다.

월곡리 삼거리 / 해인산장 안내판이 있다(가운데)
변함 없는 얼음골, 대덕산, 소사고개
6월에 접어들면서 기승부리는 더위에도 진행은 순조로웠다.
부항령 이후의 부드러운 대간길은 덕산재에서 일단 끝나고
대덕산을 향한 오름이 줄기차게 계속된다.
30번 국도가 지나가는 덕산재에서 대덕산에 오르는 한 팀을
만난 이후 심심찮게 종주자들과 교행하게 되었다.
대덕산 아래 얼음골은 과연 명불허전이다.
북상하는 종주자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얼음골의 얼음같은 물이 심기일전케 했다 할까.
지치려던 몸에 활기가 도는 듯 했다.
대덕산 정상부 까지 올라온 山나물꾼들이 이 늙은 이를 자기네
부류로 본 것인가.
일행을 놓쳤는지 멀찍이 있는 내게도 수하(誰何)를 하며 법석을
떨고 있는 그들을 뒤로 하고 1.290m 대덕산에 올랐다.
언제 올라도 이름대로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 서보나 이름대로 덕스럽다.


상 / 대덕산 정상
하 / 전북, 경북, 경남의 삼도봉
또 하나의 삼도봉(초점산 : 경북, 전북과 충북 대신 경남)에서는
몹시 힘겨워 하는 종주자들을 만났다.
한 중년(H고등학교 행정실장)은 체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 보다도 종주 준비가 덜 된 채 길을 떠나온 느낌이었다.
대간의 사정을 너무 모르는 듯 하니 말이다.
곧 만난 젊은 이도 소사고개 이후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한 1시간
때문에 체력이 바닥났다니 앞길이 염려되었다.
곧 소사고개(도마치)에 내려섰다.
1089번 지방도로가 전북 무주군 무풍면에서 경남 거창군 고제면
으로 넘어가는 이 고개의 가게는 북상 때 한 밤 묵었던 곳이다.
시간도 어중간하거니와 그 때의 언짢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
(백두대간 8회 글 참조) 빼재까지 계속 진행할 요량하고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다.
두어 젓가락 분량의 김치가 안주로 나왔다.
맛이 괜찮아 좀 더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매정한 거절이다.
값을 셈해 주겠다 해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어머니 대신 딸로 바뀌었을 뿐 그 때 그대로다.
얼음골, 대덕산은 그대로 있되 소사고개만은 변했기를 바랐는데.

마구 개간된 소사고개 일대의 백두대간
인적 드문 신풍령휴게소
소사고개 지역은 일대가 워낙 개간되어 백두대간 마룻금 잇기가
까다로운 지형중 하나다.
도계(道界)마저 벗어나 있는 곳이다.
삼봉산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암릉을 휘돌아야 한다.
이 산을 덕유삼봉산이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덕유산은 여기까지
아우르는 것이리라.

덕유삼봉산 정상
어둡기 전에 빼재에 도착하려고 막판에 피치(pitch)를 올렸다.
뜻 대로 신풍령휴게소에 도착은 했으나 나도 지쳤다.
아뿔싸, 오늘도 마신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구나.
휴게소는 산사처럼 적막했다.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단다.
유치원 아이 둘의 젊은 이, 남종세 부부가 새 주인이다.
현상 유지도 안된다는 이 휴게소를 이들은 언제까지 지킬까?
비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공기 좋은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젊은 그들을 과연 붙박이로 만들 수
있을까.


정적이 감도는 신풍령휴게소
어린이용 그네도 한가롭기만 하다.
내가 북상할 당시만 해도 휴게소 주차장에 차량들이 즐비했다.
무주군과 거창군을 이어주는 37번 국도의 빼재(신풍령)를 넘나
드는 차량들의 소음이 대간 저 멀리까지 간단 없이 올라왔다.
그러나 대전 ~ 통영 간의 고속도로 개통 이후 장거리 차량들이
전멸하다시피 되었다는 것.
터널 개통이 아니고 인근의 고속도로 개통의 영향이다.
고속도로와 터널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장될 텐데 계속해서
늘어날 엇갈리는 희비를 어찌할꼬.
내일 덕유산 본령을 원활하게 통과하려면 편한 밤이어야 한다는
판단에 이 휴게소의 민박을 택했다.
서울에서 밤내 달려와 당일에 부항령 ~ 빼재를 소화한 것은 무리
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