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에서 경주까지 새마을호를 타면 4시간 30분. 고속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5시간 이상이 걸렸다. 눈이라도 오면 경주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 경주에 변화가 생겼다. KTX가 관통하는 신경주역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를 타고 2시간 만에 천년고도 경주에 도착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찾아 간 곳은 골굴사. 경주 시내를 관통해 보문단지에 들어섰다. 4월 초인데도 아직 만개하지 않은 벚꽃들. 혹자들은 진해 벚꽃보다 경주 벚꽃이 더 화사하다고들 한다. 10년 만에 마음먹고 왔건만 벚꽃들은 때 아닌 이상기온으로 아직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았다.
봄날 찾아간 경주 골굴사. 대적광전에 도달하니 보물 581호 마애아미타불이 눈에 들어온다.
골굴사에 도착했다. 1천 5백 년 전 인도에서 건너온 광유(光有)성인이 함월산(含月 山)지역에 정착해 창건했다는 골굴사. 함월산은 남쪽으로는 토함산, 북쪽으로는 운제산과 이어져 있다. 토함산이 불국사를, 운제산이 오어사를 품고 있듯 함월산은 골굴사와 기림사를 안고 있다.
골굴사는 불국사보다 2백년 먼저 창건된 천년사찰이다. 보물 581호로 지정된 주불 마애아미타불을 위시해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등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채의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찬탄한 조선조 정시한 선생의 산중일기 그대로이다.
대적광전에서 반가운 얼굴이 손을 흔든다. 골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담당하고 있는 보림법사. 법사님은 이날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들과 함께 요가와 선무도 수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타공인 선무도 본산으로 유명한 골굴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연중 상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다. 템플스테이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굴사에 예약을 하면 언제든지 템플스테이에 참가할 수 있다.
대적광전 앞에서 선무도 수련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 골굴사에서 상주하며 선무도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오후 5시전까지 입소를 마치고 나서 저녁공양을 한 후 저녁예불을 올린 후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선무도 수련 및 체험을 할 수 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기상해 4시 30분 새벽예불을 드린 후 새벽 6시까지 좌선과 행원이 이뤄진다. 아침공양 이후 오전 11시까지는 선무도 수련이 진행된다.
11시에는 선무도 고수들이 펼치는 공연이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펼쳐진다. 공연은 오후 3시 30분에도 있다. 오후 1시내로 입소하면 점심공양 후 좌선(월,수, 금), 국궁(화, 목, 토)등에 참가할 수 있다. 오후 3시부터는 입소자 전원이 울력에 나선다.
한번이라도 공연을 본 참가자라면 공연을 뒤로 하고 함월산 산행에 나서도 좋다. 마애아미타불을 뒤쪽에 조성된 산행코스.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래도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봄은 봄인가 보다.
아무리 쉬운 산길이라도 방심은 금물.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자리밭이라는 마을이 있다. 과거 마을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어 참 좋다”는 보림 법사의 말만 믿고 따라나섰다가 가파른 비탈길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함월산 언덕에서 바라본 골굴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골굴사에서 함월사 가는길에 핀 진달래. 벚꽃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봄을 알리는 진달래가 피어 있어 다행이었다.
마을로 내려오니 낯선 사람이 왔다고 개들이 짖는다. 낮은 담을 뒤로한 채 서있는 고택. 참가자들은 법사들과 함께 마을에 내려와 밭에서 쑥 등을 캔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종무소에 부탁해 화전도 해먹기도 한다. 보림 법사는 “큰 틀의 일정은 있지만 기상조건에 따라 프로그램을 진행 한다”고 말했다.
숲 속 마을을 걷다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동네 어귀에 서있는 나무들도 정겹다. 길 옆 냇가에는 송사리들이 춤을 춘다. 길가에 올라온 개구리가 나를 반긴다.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다시 발품을 팔아 골굴사에 도착하니 한 시간이 조금 넘었다. 한 시간 밖에 걷지 않았는데 몸이 개운하다. 가족들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서로 손잡고 함월산에 오르면 좋다.
함월산에는 골굴사와 함께 불국사 말사인 기림사가 있다. 기림사에서는 주말 개인 및 가족단위 템플스테이를 상시 진행한다.(054)744-2292 골국사와 기림사를 순례한 후 불국사로 이동하면 경주에서 ‘삼사순례’가 가능하다. 더불어 경주 인근 영천에는 은해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은해사에서는 ‘팔공산 숲길 명상 프로그램’ ‘휴식형 템플스테이’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별빛여행, 승마장 체험, 허브(한약재) 시장 방문 등으로 구성된 ’인근 지역 연계 템플스테이‘도 참가할 만하다.(054)335-3318
옛 농촌마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리밭'마을 풍경.
이밖에도 매월 2,4주 토~일요일 ‘느림과 비움 그리고 나눔’으로 열리는 김천 직지사 템플스테이도 참여 가능하다.(054)429-1716. 동화사, 선본사 등이 있는 대구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삼사순례’를 마칠 수 있다.
점심공양 시간이 되니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도, 관광객들도 대적광전 아래로 내려간다. 공양 후 골굴사 일주문 밖에 조성된 길을 따라 걸었다. 강가를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다. 감포까지 이르는 4차선 도로공사가 한참이었지만 그래도 강물은 도도히 흘러갔다.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살면 좋을 텐데…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나보다. 일정을 마치고 보림 법사를 만났다. 따지고 보면 5시간이 채 되지 않은 만남이었는데 법사님이 살갑게 느껴진다.
골굴사 입구에 조성된 산책길. 흐르는 물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다시 신경주역. 2시간 후면 서울에 도착한다. 다음 주면 경주 일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함월산 정기를 듬뿍 받았으니 만족해야겠다.
김치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