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제2의 직업을 찾아 창업에 연착륙한 이들의 공통점은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보험회사 영업소장에서 차량 복원수리 1급 기술자로 변신한 권구완(權九完·39)씨도 예외가 아니다.
●창업비용, 임대료 포함 850만원
29일 서울 강동구 길동사거리 부근의 자동차 복원수리 전문점 '챠밍덴트칼라'.
점포의 전면은 셀프 세차장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300평쯤 되는 마당에 세차장, 경정비점, 복원수리(덴트컬러) 전문점이 입주해 있다.
넓은 공간이 필요없는 복원수리 전문점은 10평 규모다.
'덴트컬러'는 자동차 범퍼 등이 가벼운 추돌 사고로 찌그러지거나 외장에 흠집이 생겼을 때 이를 감쪽같이 복원한 뒤 부분 도색으로 상처를 감추는 기술이다.
지난해 3월 이곳에 복원 수리점을 낸 권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견습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형차 수리에 여념이 없다.
갈색의 운전자 문짝이 못 같은 물건으로 20㎝ 이상 그어졌다. 사포를 몇차례 바꿔가며 흠집 부위를 기술적으로 간 뒤 흠집 부위를 다듬고 페인트를 뿌렸다. 그는 페인트가 마른 후에 2차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점포를 차린 지 1년 밖에 안됐지만 복원수리 경력은 6년째. 이 분야의 A급 기술자다.
차량 한 대의 수리비는 10만∼40만 원선이다. 하루 평균 견적문의는 5건 정도. 이 중 2∼3건의 수리를 예약받는다.
작업은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정교함을 살리기 위해 하루 한 대만 한다. 그러고도 한 달 수입은 300만∼700만원이 된다. 네 식구가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다.
창업비용은 10평 점포의 임대료(보증금 없이) 월 50만원에 광택기 등 기기와 공구 구입비 800만원이 들었다.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점포 월세 이외에 페인트 등 약품 구입비 월 10만 원뿐이다.
●나만의 기술개발이 생명
권씨의 전직은 뜻밖에도 보험회사 영업소장. 시골에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권씨는 군 제대 후 무작정 상경, 중국집 배달원 등을 전전하다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매사 열심히 하는 성격 덕분에 입사 5년만에 영업점 책임을 맡았다. 월급이 많을 때는 1000만원까지 벌었다. 그러나 영업실적을 맞추느라 신용카드 빚이 7000만원으로 늘었고, 외환위기 한파까지 겹쳐 실직하고 말았다.
빚더미 속에 아무 기술도 없는 그로선 앞길이 막막했다. 밑천이 별로 안들고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 일을 물색했는데 자동차 광택이었다.
99년 초 250만원을 주고 중고 소형 화물차를 구입했다. 청계천 약재상에서 몇 만원 어치의 광택재료를 샀다. 차량에 연락처를 크게 표시한 뒤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갔으나 며칠 동안 주문이 없었다.
아는 사람들 승용차를 공짜로 열심히 닦아주었다. 주문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해 하루 평균 2∼3건은 됐다. 주문받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작업하다보면 이웃들이 덩달아 예약하는 바람에 한번 찾은 동네를 벗어나는데 보름씩 걸릴 때도 있었다.
욕심이 생겼다. 광택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차량의 복원수리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
기존 복원수리 전문점을 찾아 눈치껏 남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차량 페인트 업체들이 실시하는 부분도색 연수(1박2일)도 10여 차례 다녀왔다.
차량수리 교재를 구입해 눈이 아프도록 읽었다. 그렇지만 국내 기술수준이 차량 정비공들의 경험적 손재주 정도에 불과해 핵심기술을 터득할 수 없었다. 기술도 문제지만 흠집이 남지 않도록 하는 페인트의 배합비율도 알기 어려웠다.
권씨는 하는 수 없이 낮에는 이동광택 일을 하면서 밤이면 페인트를 칠하고 사포로 밀어댔다. 기술이 조금 쌓이면서 광택을 의뢰받은 차량에 연습삼아 공짜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결국 빚을 다 갚고 지난해에는 월세방에서 아파트로 옮겼다. 지난해에는 점포도 열었다. 최근 2000만원을 들여 국내에선 보기드문 조색기(調色機)를 구입했다.
한 번의 부분도색에 필요한 페인트는 3숟가락 정도. 하지만 이를 위해선 2ℓ짜리 한 통을 구입해야 했다. 조색기에 페인트를 부어두면 수 십종의 색을 만들 수 있고 페인트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울리는 상혼
권씨가 힘겹게 기술을 익히며 한푼 두푼 돈을 모으던 2000년 초 못으로 깊게 난 흠집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는 신종 페인트가 개발됐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전의 한 페인트 장사꾼을 찾아가 시연을 요구했다. 흠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너무 반가워 색깔에 따라 수십종의 페인트를 500만 원어치나 샀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차량에 직접 실험해봤다. 시연 때와 달리 흠집이 그대로 남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장사꾼이 보여준 것처럼 차량 색깔이 검은색이나 흰색은 잘 되는데 다른 색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
권씨는 “복원수리를 배우고 싶은 분들이 주의할 점이 또 있다.”고 했다. 차량의 흠집을 제거하는 데에는 권씨와 같은 복원수리 기술도 있지만 흠집부위 전면을 아예 따로 도색하는 판금도색 작업이라는 게 있다.
복원수리는 판금도색에 비해 수리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지만 판금도색처럼 체계적인 개발이 안돼 기술자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웬만한 경정비 업체들은 복원수리보다 벌이가 좋은 판금도색을 권유하곤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복원수리 기술이 뒤처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최근 복원수리 기술과 창업을 지원한다는 덴트컬러 전문점 프랜차이즈 모집이 성행하는 데,10명중 6명은 3개월 안에 창업비용 2000만원만 날리고 문을 닫는다.”면서 “일부 창업지원 업체들이 단순히 사포로 밀고 페인트만 덧칠하면 초보자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유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창업 희망자에 무료로 기술 전수
요즘 권씨는 자신보다 더 큰 점포를 갖고 있는 경정비업소 사장 등 3명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권씨는 “어렵게 기술을 익혔지만 창업을 원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