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 해도 일주일 남았습니다.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시해된 것이 1895년, 그러니까 120년 전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55년은 베이비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년이죠. 그때 태어난 분들이 한 갑자 지나 이순에 이른 것이 올해 을미년이었습니다. 다시 60갑자가 돌아오면 2075년이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올해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돌이켜보면서 저무는 을미년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성찰과 숙고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작지 않으니까요.
1) 지난 1년 동안 50여 차례 여론현장에 출연하셨는데, 어떤 주제를 많이 다루셨나요?
제가 대학에 있기도 하고, 대학이 우리나라의 근간이라는 생각에서 경북대를 포함한 대학 문제를 가장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경북대 총장부재사태, 대학강사법, 중앙대 사태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등을 거명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양극화 문제와 헬조선과 청년실업, 노인빈곤과 고독사 문제도 다루었고요. 밖으로 눈을 돌리면 습근평 국가주석의 일대일로와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한일 과거사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 그리스 부도사태와 국민투표, 아일란 쿠르디로 드러난 시리아 난민사태 등이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2) 얼마 전에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서 발표합니다. 작년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였습니다.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습니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죠.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져 이뤄진 말로 각박한 사회의 책임을 군주, 곧 최고 정치 지도자에게 묻는 말입니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대 교수는 “연초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는데 정부는 이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드러냈고,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으며, 후반기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낭비가 초래됐다”고 정치 지도자의 무능을 꼬집었습니다.
혼용무도 이외에 교수들이 꼽은 사자성어는 사시이비 (似是而非), 갈택이어 (竭澤而漁), 위여누란 (危如累卵), 각주구검 (刻舟求劍) 등으로 하나같이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어들입니다.
3) 그렇다면 2015년에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간추려 재구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국내문제와 국제문제로 대별 가능하고, 그것을 정치-경제-사회-문화 영역으로 특화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정치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보죠. 아까 혼용무도에서 제기된 것입니다만, 삼권분립 문제가 연말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압박에 뒤이어 노동개혁이란 명분으로 청와대가 집요하게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노동개혁 5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청년실업 문제나 기업 구조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 생각이라 합니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법, 고용보험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존립과 최소한도의 권익에 관한 것으로 예외 없이 기업에게는 유리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한 법안들입니다. 따라서 새정연과 정의당 등 야당에서는 절대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고, 새누리와 청와대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국회의장에게 압박하는 형국입니다.
4) 국제 정치적인 문제에서 그리스 채무불이행 사태와 시리아 난민문제가 주목할 만하죠?!
거기에 습근평의 일대일로 전략, 일본의 재무장 문제를 추가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스는 지난 6월 30일까지 시한(時限)이었던 ‘국제통화기금’ 채무 약 2조원을 갚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는 서방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채무불이행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는 ‘트로이카’(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가 제시한 구제 금융과 긴축방안 수용여부를 두고 7월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61.5% - 38.5%) 트로이카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국민투표 이후 치프라스 총리는 개혁안을 만들어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하게 됩니다. 21세기 오래된 미래를 열었던 유럽연합의 존립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 형국입니다.
세 살 박이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터키 해안에 떠오르면서 시리아 난민문제가 국제문제화 합니다. 시리아는 1,900만 인구의 지중해 연안 국가입니다. 국민의 90%가 아랍인이며, 나머지는 쿠르드인과 아르메니아 사람입니다. 90%가 무슬림이며, 기독교도가 10% 정도 됩니다. 무슬림의 74%가 수니파이고, 집권계층인 알라위파는 16%에 불과합니다. 시리아는 45년 동안 부자가 대를 이어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2010년 12월부터 불어 닥친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예멘 등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합니다. 그 민주화 바람의 일부가 시리아에도 불어오게 됩니다. 2011년 봄부터 반정부 운동이 일어나 내전상태로 돌입하는데, 아랍세계와 서방 및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면서 내전과 난민이 발생한 것입니다.
5) 지난봄에 한국사회를 강타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아닙니까?!
지난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218일 동안 이어졌던 메르스는 사망자 38명, 확진자 186명, 격리 해제자 16,752명을 남기고 12월 23일 자정에 종료됐습니다. ‘메르스’ 확산은 정부의 무능하고 안이한 초동대응, 삼성 서울병원에 대한 정부의 무한신뢰, 삼성병원의 무책임과 무능, 감염원과 이동과정 및 ‘메르스’ 관련병원 정보에 대한 과도한 보도통제, “낙타고기는 충분히 익힌 다음에 먹어라!” 하는 어처구니없는 대응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전염병에 대한 선진국들의 대응을 보면서 적잖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진국들은 전염병 방역과 대응전략이 일목요연하고 즉각적입니다. 그들은 돈보다 인명이 우선한다는 의식으로 무장돼 있습니다.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리고 감염원을 격리-퇴치하는데 주력합니다. 정보를 투명하게 정리해서 실시간 제공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생명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진국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저는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 deja vu’을 느꼈습니다.
6) 2015년에 있은 문화적인 사건 역시 적지 않았는데, 몇 가지 간추려 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베테랑>이 전국관객 1,341만을 돌파하여 <명량>과 <국제시장>의 뒤를 이어 역대 3위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란 무엇인가, 사회정의는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던져준 영홥니다. <암살>은 1,270만 관객으로 역대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군을 등장시킨 화제작입니다. 하지만 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인 다양성 영화에도 주목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쾌한 소식은 2015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만 21세 청년 조성진이 당당하게 우승했다는 것이죠.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에서는 미술가 겸 영화감독 임흥순이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사태’는 한국문단에 내재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우울한 것이었습니다. 장구한 세월 중국과 일본, 미국을 답습하고 모방해온 결과가 얼마나 뿌리 깊고 참혹한 것인지를 웅변한 사건입니다.
7) 2015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문제는 역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여론현장에서 처음 거론한 것이 지난 9월 11일입니다. 청와대와 교육부, 새누리당에서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 이후 지금까지 집요하게 국정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멍박 정권이 방통위를 장악하여 재벌과 대기업에게 종편을 허용함으로써 한국의 언론지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에 입각해서 오류 없는 교과서, 전문가들이 합의해서 만드는 중립적인 교과서, 우리나라를 긍정하는 하나의 한국사 교과서”를 말합니다. ‘사실에 입각한다’는 것은 초보적인 상식이지만 국정화 되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사실을 선별하거나 같은 사실도 달리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암살>에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 선생과 의열단 활동은 대폭 축소되거나 삭제될 위험에 처해질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합의에 기초하는 교과서’는 허울만의 생색입니다. 왜냐하면 국정교과서 집필진 선정은 교육부가 전담하기 때문에 정권이 추구하는 역사관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육부가 선정한 위원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권 편에 서있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수나 연구자들이 주로 국정화에 참여할 것이고, 따라서 전문성보다는 정치적-정파적-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 교과서가 집필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역사관을 가진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상만을 부각합니다. 반면에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립운동사 및 반독재 민주화투쟁은 축소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반쪽짜리 긍정적인 역사관입니다. 이런 역사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겠다는 것인데, 진정한 애국심은 주입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기획, 현재의 반성적 사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의 역사 교과서 운운하지만, 오늘날 소수 독재국가에서만 그런 교과서를 씁니다. 21세기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다문화 시대입니다. 열린 마음과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8) 2015년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신조어가 ‘헬조선’인데요, 이것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올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금수저가 1위, 헬조선이 2위, 엔포세대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용어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것은 한국사회의 현저한 불평등입니다. 금수저와 대비되는 용어는 흙수저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젊은이들 미래는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부모가 재산도 많고 학벌도 탄탄하면 금수저 물었다고 하고, 그러지 못하면 흙수저 물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대명천지 2015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그런 식으로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겁니다.
극소수의 금수저 출신과 (1:99의 사회) 다수의 흙수저 출신이 모여 사는 헬조선에서 다수 청년들에게 장밋빛 미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엔포세대가 등장하는 겁니다.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꿈과 희망도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엔포세대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지 하는 문제는 기성세대가 곰곰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세대의 꿈과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2015년을 보내면서 심도 있고 내실 있게 살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첫댓글 한 해를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새 해에도 선생님의 글을 꼭 읽어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수수께끼로 풀어야 하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안 될 것 같은 데도 잘만 굴러가고, 사람을 저렇게 무시하고 모욕을 해도 되나 싶은데도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아무 일 없는 듯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언짢은 소식이 많아서 언짢습니다. 새해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마노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족한 글, 성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연말연시 행복과 웃음이 지식과 세상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