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초등학교 졸업식을 보고
기우현
2월 11일(금)은 안사람과 상주의 화북초등학교에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내가 연고도 없는 그 학교를 방문하게 된 것은 오늘부터 봄 방학이 시작되어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안사람이 동행해 주었으면 하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사람이 관악구 새마을문고회장으로 있을 때, 그 학교와 맺은 연이 있었다. 또한 그 지역에서 학생들을 인솔하고 체험봉사활동을 활발히 했었다. 그 애정으로 학교 측에서 안사람을 내빈으로 졸업식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었다.
졸업식은 9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했다. 좀 이른 시각에 졸업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상주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아침 일찍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했다. 아침 식사는 서안성 휴게소에서 충무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화북초등학교 위치는 경북 상주이지만 상주 시내는 아니었다. 산골이었다. 그 학교에 근접했을 때 속리산 문장대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을 보았다. 여기가 충북 보은의 반대편에 위치한 학교라는 것을 알겠다. 지방의 조그마한 학교였다.
일찍 서둘러서인지 학교에 도착하니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다. 운동장에 주차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렸다. 안사람은 내빈인사로 교장실로 갔고, 나는 바로 강당으로 입실했다. 강당은 별관에 있었다. 교실 2개를 턴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나는 학교에서 내 준 슬리퍼를 신고 복도를 걸어가 문을 열고 입실했다. 석유스토브를 켜서 난방을 했지만 실내는 약간 추웠다. 내빈, 재학생, 학부모가 이미 앉아 있었다. 강당 안에 들어와 둘러보았다. 강당 뒤편은 개가식으로 책들이 3면을 차지하고 있다. 제법 많은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좌석에 놓여 있는 ‘2010학년도 학사보고’ 팸플릿을 훑어보았다. 녹색 종이로 또는 연분홍색으로 만든 팸플릿이었다. ‘제66회’ 꽤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였다. 그러나 졸업생은 총 2,913명. 역시 규모가 작은 산골학교였다. 현재 전체 초등학생 수도 6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학급 수는 10개에 유치원도 있다. 금년에 유치원을 개원했다고 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선생님의 숫자였다. 교장, 교감, 부장교사 1명, 교사 10명, 보건교사 1명으로 14명이나 되었다. 학생이 선생님을 먹여 살린다고 할까. 이것이 우리나라 현재 농촌의 교육 현실이었다.
남교사 7명, 여교사 5명으로 남자 비율이 높은 것이 특이했다. 교대 입학하는 학생의 성비에서 여학생이 압도적인 현실에 비추어 놀랄 만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벽지에 근무하면 평점이 높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능하고 야심 있는 젊은 교사가 벽지에 많이 지원한다는 것은 교육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졸업생은 10명뿐이다. 그들이 가슴에 꽃을 단 채 등장하여 착석하면서 졸업식은 시작되었다. 졸업식은 식순대로 개식사로 시작되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졸업장 및 상장이 수여되었다. 학교장상 수상자는 6년 개근상 1명, 6년 정근상 7명이었다. 꽤 출석률이 높은 수치였다. 그리고 선행상, 문예상, 과학상, 봉사상, 공로상이 수여되었다. 졸업생 모두가 상을 받았다. 그리고 특별상 수상자 수여식이 이어졌다. 운영위원장상, 학부모회장상, 분교학부모회장상, 관악새마을문고회장상, 한국스카우트 총재상, 한국스카우트 경북연맹장상, 한국스카우트경북연맹지구연합회장상을 수여했다. 이 상장과 상품은 내빈이 수여했다. 안사람도 관악새마을문고회장상 수여식 때 연단에 나가 해당학생에게 상장과 가져 온 상품을 수여했다.
상장 수여식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외상 수상자 수여식이 이어졌다. 경상북도상주지원청교육장상, 상주시교원총연합회장상, 화북중학교장상, 국회의원상, 상주시장상, 화북면장상, 화북파출소장상, 화북우체국장상, 중화농업협동조합장상, 바르게살기운동상주시협의회장상, 119소년단상의 상장수여식이 있었다. 학생 수는 적고 상이 이렇게 많다 보니 어떤 학생은 8번이나 연단에 나가 상장과 상품을 받는 일도 있었다. 상을 한 장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없는 것 같았다. 지루했다. 교무부장이 상장 내역은 한 번만 읽은 것이 그나마 시간을 줄였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상장 수여식이 끝나니 장학금 수여식이 이어졌다. 화북초등학교학부모회장학금, 한국농업경영인상주시화북면회장학금, 화북면체육회장학금, 화북성결교회장학금, 화북초등학교사도장학금, 건영식품 장학금, 화북초등 제33회 동기회장학금, 화북초등 제45회장학금, 화북면개발자문위원장장학금, 입석초등 제27회 동기회 장학금, 입석초등 제28회 동기회 장학금, 일시테프론 장학금, 용화초등학교총동창회장학금, 용화백년장학회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전체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번에도 한 학생이 여러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한 시간은 훌쩍 넘겼다. 이제 학교장 회고사가 있었다. 주로 학생들이 앞으로 진학해서 가져야 할 정신과 덕목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빈 축사로 학교운영위원장 축사가 있었다.
그 이후 행사는 영상으로 진행되었다. 첫 행사가 ‘나의 꿈 발표회’였다. 그간의 학교 행사를 잠깐 보여 준 뒤, 학생 한 명 한명이 나와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영상이었다. 소방관이 되겠다는 학생, 변호사가 되겠다는 학생, 씩씩하게 자라서 부모님을 잘 모시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재학생 송사와 졸업생 답사가 영상과 자막, 그리고 음악과 어우러져 발표되었다. 이런 영상은 소규모학교이니까 가능한 시도였다. 그러나 서울의 대규모 학교도 송사와 답사를 영상으로 시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름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학교장이 작은 꿀단지 항아리를 들고 연단에 섰다. 지금 여러분이 발표한 꿈은 이 단지 안에 들어 있다. 여러분이 40살이 되었을 때 과연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여러분 자신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꿈을 꼭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이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졸업식 노래와 교가 제창이 있었다. 윤석중 선생 작사의 졸업식 노래는 정말 오랜 만에 들어보는 노래였다. 졸업식 노래는 3절까지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은 목청껏 불렀다. 나도 상기하는 의미에서 노랫말을 주시하며 음미했다. 참고로 가사를 적어 보았다.
1) 재학생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2) 졸업생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 모두 함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가사의 의미도 새삼스러웠다. 윤석중 선생님은 노랫말을 참으로 동요답게, 쉬우면서도 의미 깊게 쓰셨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폐식사로 졸업식 행사는 마감이 되었다. 행사에 걸린 시간이 1시간 40분. 작년 행사 시간보다 줄였다고 하나 좀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의미 있는 행사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식후 학생 및 학부모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식당에 식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먼저 식사하고 그 뒤에 내빈과 학부모가 식사해 달라는 시간 고지 안내도 했다.
안사람은 다시 내빈과 함께 교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내빈과 학생, 학부모가 어느 정도 나간 뒤 강당에서 나왔다. 복도 벽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졸업 축하 글을 읽었다. 1학년에서 6학년 학생 모두가 졸업하는 언니, 형, 누나에게 축하하는 글이 붙여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인쇄 글이었다. 학생 글에는 특정한 학생에게 축하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이죽거리거나 치기어린 글은 보지 못했다. 선생님이 교육적으로 다듬어서 쓰인 글인지 그간 교육의 성과를 그대로 살려 아이들이 쓴 글을 그대로 실은 글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재학생들이 형 언니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를 잘 살리는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졸업을 진정으로 축하하는 졸업식의 의미를 상실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의미 있게 행사를 치르지도 않는다. 1회성 연례행사로 치르고 무사히 식을 마치는 것만 바라고 있다. 졸업생 알몸 뒤풀이가 하나의 사회문제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을 뿐이다. 경찰이 동원되고. 대도시에서 이런 졸업식을 겪고 있다가 너무도 다른 시골의 정든 졸업식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날의 졸업식이 그리워져서인지 울컥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다. (2011.2.11.)
첫댓글 시골 초등학교에는 아직도 옛날 졸업식의 정취가 남아 있군요^^* 졸업식 행사가 학생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사회 모든 구성원이 진지하게 논의하고, 새 방향을 제시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방학 일기 중 일부분을 발췌해서 실은 글입니다. 글이 무미건조해서 그런지 반응이 차갑군요. 역시 독자의 눈은 냉정한 것 같군요. 저도 속으로 많이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