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의 감초’ 뒷맛 떨떠름...뜬금없는 당파(삼지창) 등장

조선 후기 병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당파의 실제 자세 중 ‘복호세(伏虎勢)’. 당파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명나라에서 도입된 무기로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조선 시대 사극에서 가장 흔히 보는 무기 중 하나가 창처럼 길지만 끝에 가지가 세 개 달린 당파(일명 삼지창)다. 이 무기를 들고 전쟁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TV 속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심지어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조선 수군들이 당파를 들고 왜군과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도성 치안을 담당했던 포도청 포졸들도 옆구리에 긴 당파를 끼고 순라를 도는 모습은 현재 익숙하다 못 해 당연시된 상태다.
그러나 이 가지가 세 개 달린 당파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군대를 통해 도입된 당시로서는 신무기였다. 따라서 조선군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였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의 창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사극에서 흔히 보는 당파와는 조금 다르며 크기 또한 더 작았다.
문제는 ‘조선군’ 하면 떠오르는 무기가 당파라서 이제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이야기에도 당파가 등장하고,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극화한 사극에서도 친위병들이 당파를 들고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시대를 초월한 퓨전 사극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요즘으로 치면 항일 광복군들이 K2 소총을 사용하고 18세기 말인 정조시대에 M16 소총을 자동으로 설정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이 연출된다고 생각하면 답이 확실히 나올 것이다.
조금 유머감각을 더한다면 정조 임금님이 전라도 나주로 유배 간 정약용에게 근황을 묻는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을 보내는 장면이 사극에서 연출돼도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정도의 파격적이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일어났으니 그때 도입된 무기가 2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392년 조선의 개국 시기를 다룬 사극에 버젓이 등장하고 그것을 대중들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더 심각한 것은 조선 후기에도 당파가 그렇게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파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세 개의 창날 중 좌우의 창날이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깊숙이 찌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파는 적을 바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장창을 비롯한 적의 긴 무기를 대상으로 가지 사이를 이용해 찍어 누르면 옆에 있던 다른 군사들이 제압하는 무기인 일종의 특수병기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병법서’에서는 당파를 사용하는 군사의 첫 번째 필수조건으로 용맹과 위엄이 뛰어나고 담력이 큰 사람을 따로 선발해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즉 조선 시대에 당파를 사용한 군사들은 요즘으로 치면 특수훈련을 받은 특공대원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조선 시대 사극에 등장해 당파를 사용하는 군사나 포졸들은 모두 특수훈련을 받은 최정예 병이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된 연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극에서 당파를 든 군사들이 어설퍼 보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하자면, 요즘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나 사극 관련 테마공원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를 지키는 수문군들은 어김없이 당파를 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이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이미 그 어린이들의 머릿속에는 조선 시대 군사들은 당파를 보편적으로 사용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벌써 각인됐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극이 아무리 오락거리로 보는 방송물이라도 그것으로 또 다른 역사교육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결코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몇 년 전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TV 사극을 통해 역사교육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70% 이상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재미도 좋지만, 기본은 지켜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처럼, 웃고 즐기는 사이에 역사인식이 각인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