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반란(소담 이정희).hwp (전체 내용 보기는 첨부파일을 다운받아 보세요. )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면 늘 안개 자욱한 김포 들판이 히끄무레 보인다.
이곳에서 3주째 기거하고 있다. 시집간 큰 딸애 가 또 Help me를 청했다. 딸아이는 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었는데 결혼한 후 딸딸이 애 둘 을 낳고 집에만 있으니 우울했는지 다시 학교에 입학해서 무대의상디자인 공부를 더 하느라 제 딴 엔 힘들었나 봐...
졸업 작품전 하느라 집에 못 들어오고 하니 애 들 돌봐줄 사람으로 친정에미인 내가 낙찰되었다. 시집간 후 세 번째다. 제 남편 따라 유럽여행 갈 때는 둘째가 돌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20여일을 두 아이 때문에 꼼짝 못하고 돌 봐 주었더니 그 다음엔 또 프라하를 꼭 다녀와야 한단다. 무대의상을 전공하다 보니 연극이니, 뮤지컬 등을 많이 보고 예술 감각을 익혀야 참고가 될 줄 알기에 그러마고 했다. 젖먹이를 업고 가려는 걸 먼 여행길 에 고생고생할까봐 두고 가라고 했지만, 사실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었다. 엄마 보 고 싶다고 서럽게 울 땐 이 할미도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것이 안쓰러워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려 고 우방랜드에 가서 기구도 태워주고 사진도 예쁘게 찍어 주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아이 스크림도 사주며 놀아주자니 이 할미는 맥이 다 풀렸다.
이제는 그 아이들이 훌쩍 커서 벌써 7살, 5살의 고운 소녀들이 되었다. 큰 아이인 하연이는 가무잡잡하게 생겨 가지고 피부가 까맣다고 놀려 줄라 치면 요즘은 까만게 매력적인 피부란다. 그렇게 웃으면서 음악만 나오면 이효리 춤을 흉내냈다. 요 즘은 원더걸스의 노바디춤과 의자에 앉아서 “미쳤어~”하는 노래(이 할미는 도저히 가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겠구나)에 맞춰 춤을 춰댄다. 딴에는 감정과 느낌을 넣어가며 춤을 추는데 뭐가 될라고 저러는지, 원...? 하면서도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앙증스럽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사 춘기 소녀티를 낸다. 지 엄마랑 홈플러스에 쇼핑을 가서는 브래지어를 사달라고 졸라서 “너는 아 직 어리니 좀 크면 사줄게” 하고 달래도 막무가내로 울어대는 바람에 결국은 브래지어가 붙은 런 닝셔츠를 사주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온 가족이 한참을 웃었다.
지 엄마를 닮아서인지 7살짜리가 바느질도 한다 . 쿠션 속통이 터져서 솜이 삐져 나와 있길래 내가 바늘로 꿰매다가 잠시 전화를 받고 왔더니 나머 지는 지가 다 꿰매어 놓았다. 기특하다. 요리도 하고 싶다며 비엔나 햄에다 꽈배기 모양, 무슨 모 양하며 칼집을 넣어 볶다가 케찹이랑 양념도 뿌리고, 어전과 호박전을 부칠 땐 옆에 앉아 밀가루를 꼭꼭 눌러가며 잘도 묻혀 주곤 한다. 그리고 지 아빠가 퇴근해 오면 자기가 만든 요리라며 먹어 보 라고 애교를 떤다. 사위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게 딸 키우는 재미가 아니겠는 가?
어느 날은 이 할미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는 “ 할머니, 나... 유치원에서 딴 애들이 날 따돌림하며 지네들끼리 수군수군해서 눈물이 났어.”한다. 아이들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우리 하연이가 손재주도 있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라 유 치원 선생님께서 자주 앞장을 세우고 동시 낭송도 잘했다고 상을 받고 하니까 다른 친구들이 샘을 내는 눈치 같았다. 집에서도 아빠, 엄마가 두 살 아래인 동생 윤하를 더 예뻐한다고 토라지곤 한다 . 여러모로 서러운 게 많은 7살이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차에서 내리면서 마중 나온 할미가 반가운지 두 팔 벌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더니 “할머니 우리 밖에서 좀더 놀다 가면 안 돼요?” 한다. 어디 가고 싶냐고 했더니 이 할머니의 손을 잡아 끈다. 따라가 봤더니 “Piggy Tree"라는 book cafe였다. 이미 와 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여자아이 두 명은 마 주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눈치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근사하다. 오렌지색 쇼파와 그린색 쇼파가 아주 예쁘게 나란히 있고 두 줄로 길게 책들이 꽂혀 있고 창가에도 둥근 의자들이 놓여 있 다. 7살의 하연이도 자기가 읽을 책을 한 권 꺼내 오더니 얌전히 보고 있다. 머핀과 핫쵸코를 사다 줬더니 아주 의젓하게 폼을 잡고 앉아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조금씩 머핀을 포크로 찍어 먹기도 하 고 하트 모양이 그려진 핫쵸코도 얌전히 홀짝홀짝 마신다. 마치 다 큰 소녀처럼 숙녀티를 내는 꼴 이라니......?! ‘저 아이가 크면 무엇이 될꼬?’ 이 할미는 어질어질하다. 그러나 눈치 빠른 하연 이는 아마도 저를 바라보는 이 할미의 눈빛에 따뜻한 미소가 숨어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 다.
둘째 윤하는 또 성격이 영 딴판이다. 이 아이는 앞에 잘 나서지도 않고 새침을 떨며 자칭 ‘핑크 공주’다. 지 언니와는 달리 피부는 뽀얗지만 코 가 납작해서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고 그냥 귀여운 편인데, 자기는 공주님처럼 항상 머리 방울에서 부터 양말까지 모두 핑크색이어야 한단다. 추운 날씨에도 기어이 핑크 원피스를 입고 유치원에 가 겠다고 고집이다. 치마를 하두 좋아해서 잘 때도 치마를 벗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 결국 잠이 들고 나서야 치마를 벗기고 잠옷을 입힐 수 있다.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정말 지독한 고집쟁이 다.
하루는 큰 애 시백부가 돌아가셔서 시골에 가야 하니까 그날은 유치원을 못 간다고 했더니 큰 손녀 하연이는 기어이 유치원엘 가겠단다. 잠시만이 라도 갔다 와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원차가 이미 떠나서 없다고 하니 그러면 걸어서라도 갔다 와야 한단다. 그 고집에 기가 막혀 날씨도 쌀쌀하니 추운데 왜 가야 하냐고 물으니 남자친구 민규와 약 속이 있단다. 지 아빠가 대체 무슨 약속이냐고 물으니 “비밀이예요”하며 집을 나선다. 동생 윤하 까지 “언니 가지마~”하고 울어 대는데도 기어이 뿌리치고 혼자 유치원에 가 버렸다. 7살짜리에게 친구와의 약속은 그렇게 소중했다. 어느덧 혼자서도 유치원에 갈 수 있고 아빠나 할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남자친구와의 비밀까지 생긴 하연이...
갓 태어나 지 어미 해산구완 해 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목욕시켜 놓고 보드라운 살결과 똘망똘망한 눈망울 쳐다볼 때는 천사같이 예뻤는데, 5살 만 되면 어찌나 영악하고 고집쟁이가 되어 버리는지 때때로 나는 감당이 안된다. 그리고 벌써 7살 이니...
그래도 7살의 반란은 계속 되겠지?
7살의 반란을 시작한 손녀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감수성이 예민한 하연아!
제발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아라. 조금만 단순 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편하단다.
사랑하는 예쁜 우리 손녀들이 아무 탈 없이 건 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이 세상이 무질서하고 타락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해주십사...간절히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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